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0화 (10/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0화

제2화. 신병교육대, 입소! (5)

평일이 끝나고 훈련소에서 맞이하는 첫 주말 아침이 도래했다.

주말이라 하더라도 점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김없이 새벽 6시에 나팔소리와 함께 기상. 심지어 아침 구보도 빼놓지 않고 거행했다.

비가 오거나 아니면 폭설이 내리지 않는 이상, 훈련소에서의 아침은 늘 그렇듯 같을 것이다.

아침 구보를 끝낸 뒤에 막사로 돌아온 이들.

이강진은 그대로 생활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자신의 전우조인 두 사람에게 말했다.

"식사 집합하면 깨워줘."

"안 씻어도 돼?"

"어차피 밥 먹고 오면 씻을 시간 많이 생길 거야."

지금 가봤자 화장실에 사람들만 붐빌 뿐.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밥 먹고 올라와서 혼자 여유롭게 세면 타임을 가지는 게 좋다.

잠시 후.

-행정반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 전 병력은 즉시 막사 아래로 식사 집합하기 바랍니다.

‘올 것이 왔군.’

이강진은 눈을 절로 떴다.

훈련소는 수요일 점심, 그리고 토요일 오전 식사가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바로 일반인들도 안다는 그 유명한 군대리아다.

먼저 집합한 2생활관부터 조교의 인솔과 함께 훈련소 식당으로 향했다.

군대리아가 나오자 훈련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웬 햄버거?"

하나 통상적으로 알려진 일반 햄버거는 아니다.

햄버거 빵과 패티, 딸기잼, 샐러드, 슬라이드 치즈, 그리고 스프와 우유까지.

자기 입맛에 따라 조합해서 먹는 그런 햄버거다.

이강진만의 레시피가 있었다.

햄버거 빵 위에 패티를 올려두고, 그 위에 패티와 샐러드를 올려놓는다.

화룡점정은 딸기잼의 몫이다.

이강진표 햄버거를 본 백우호는 기겁을 했다.

"야, 거기에 딸기잼을 왜 넣어서 먹어?!"

"이 녀석이 뭘 모르네. 딸기잼이 들어가야 비로소 군대리아가 완성되는 거야. 잘 새겨둬."

이것이야말로 이강진이 지난 1년 10개월간의 복무기간 끝에 찾아낸 황금 레시피였다.

아그작!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기름진 패티와 상큼한 샐러드, 그리고 딸기잼의 달짝지근한 맛이 한 군데에 아우러져 입 안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강진은 전역하기 전까지도 군대리아를 즐겨먹었다. 전역하고 난 뒤에도 가끔 이 맛이 그리워져서 재료를 사두고 개인적으로 만들어서 먹어보기도 했지만, 군대에서 먹었던 그때 그 맛이 안 났다.

‘그래, 이게 바로 군대리아지!’

군대에서 즐길 수 있는 아주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 * *

남은 샐러드와 스프를 한 군데에 몰아넣은 이강진은 우유를 몰래 건빵주머니에 챙겼다.

김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식은 막사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조교가 그랬잖아."

"군인들 사이에서 도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뭔지 알아?"

"뭔데?"

이강진은 씨익 웃었다.

"안 들키면 장땡."

무슨 짓을 하든 조교들, 간부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문제가 안 된다.

우유를 몰래 챙긴 이강진은 식판을 들고 짬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군대리아여서 그런지 오늘의 짬통은 평소에 비해 내용물이 많지 않았다.

잔반을 버리기 위해 식판을 털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이강진의 발밑에 괴생명체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강진 때문에 놀란 모양인지 순식간에 산 쪽으로 모습을 감추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설마 저거······.’

뒤에서 백우호가 이강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진아. 곧 조교님 나오신다."

"알았어. 금방 갈게."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시 2생활관 동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 *

토요일이라고 훈련소는 훈련병들을 마냥 가만히 쉬게 나두지 않는다.

막사에 올라오자마자 뜬금없이 대청소를 시켰다.

어디 대청소뿐이랴.

"자, 지금부터 주목한다. 주목!"

"주목!"

생활관으로 들어온 최만보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려줬다.

"현 시간부로 일광건조 실시한다."

일광건조!

그 말을 들은 순간, 이강진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조교가 사라진 후, 백우호가 이강진에게 물었다.

"강진아. 일광건조가 뭐야?"

모르는 게 있으면 항상 이강진에게 묻는다. 이것이 백우호의 버릇이었다.

"모포, 매트리스, 배게, 포단, 그리고 전투화하고 장구류. 전부 다 햇볕 잘 드는 곳에 널어놓으라는 뜻이야."

"응? 그냥 가서 말리라고? 왜? 세탁한 것도 아니잖아."

"우호야. 내가 충고 하나만 해줄게."

이강진은 정색하면서 백우호의 어깨에 손을 툭! 하고 올렸다. 그리고 강조하듯이 말했다.

"군대에서 ‘왜?’라는 의문을 품지 마라. 그냥 시키면 하는 게 좋아. 그래야 너도 덜 스트레스 받을 거다."

앞으로 군생활을 하면서 오늘처럼 ‘이걸 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수십, 수백, 수천 번 넘게 들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게 좋다.

‘왜?’라는 의문이 들어도, 그리고 이 일을 굳이 안 해도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떠올려도, 위에서 하라고 하면 그냥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군대다.

‘참 더러운 곳이지.’

마음 같아선 욕지거리를 다발로 내뱉고 싶은 이강진이었으나, 괜히 지나가던 조교가 들을까 봐 차마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 * *

매트리스를 새워둔 뒤에 그 위로 모포와 포단, 베개를 올려뒀다.

장구류는 판쵸우의를 밑에 펼쳐서 깔아둔 다음에 그 위에 울려뒀다.

이것으로 일광건조 세팅이 완료되었다.

하나 백우호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아니, 정말 이렇게 놓아둔다고 뭐가 달라져? 그냥 밖에다 잠시 놔두는 것뿐이잖아. 아무리 봐도 헛짓 하는 거 같은데."

"낸들 아냐. 퍼뜩 들어가기나 하자."

이강진은 일광건조로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막사로 들어가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이강진."

"125번 훈련병, 이강진."

서기준 조교가 이강진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라는 뜻이었다.

"엊그제 대대장님 정신교육 하실 때 전화 포상 받은 거, 기억하지?"

"예, 기억합니다."

"중대장님이 오늘 전화 포상 시켜주라고 하더라. 나 따라와라."

"감사합니다!"

아직 훈련소에 들어온지 2주차도 접어들지 않았는데 이강진 혼자서 벌써 전화 포상을 2번이나 받게 되었다.

백우호와 나머지 훈련병들은 이강진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이강진은 점점 훈련병들에게 있어서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서기준 조교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번처럼 5분 주마. 여유롭게 통화하고 와."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서기준 조교가 저번 통화 때에 자신한테 2분이라는 시간을 더 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역시 3소대로 오길 잘했다.

그런 생각과 함께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호음이 꽤 길게 이어졌다.

‘이상하네.’

아들 전화라면 바로 받을 텐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여보세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하나 낯선 자의 것은 아니었다.

"민수 아저씨?"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러자 민수 아저씨라 불린 남자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설마 강진이냐?

"네, 저예요. 아저씨.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냈지! 어이구······ 강진이 네가 고생이 많다. 군생활은 할 만하고?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근데 엄마는요?"

-지금 잠깐 밖에 뭐 사러 나갔어. 깜빡하고 폰 두고 나간 거 같네.

"아, 그렇군요."

타이밍이 안 좋았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전화를 받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황민수. 이강진의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의 사장이면서 동시에 한식요리사다. 나이는 이강진의 어머니보다 2살 연상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왔기에 슬하에 자식도 없다.

‘민수 아저씨가 우리 어머니를 참 좋아했었는데.’

하나 용기를 내지 못해서 결국 이강진의 어머니에게 고백조차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이강진은 황민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사실 이강진에게는 친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강진이 군대에 있을 때 이혼을 하게 된다.

술과 도박에 빠져 이강진과 그의 어머니를 고생만 시키더니, 결국 다른 여자와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 것이다.

단 한 번도 그 남자를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차라리 민수 아저씨가 내 아버지가 되어준다면 참 좋을 텐데.’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강진을 자신의 아들처럼 상냥하게 대해줬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한테도 부드럽고 착한 남자였다.

게다가 황민수는 이강진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아저씨. 주식 하시죠?"

-주식? 하긴 하지. 소액이지만.

"저, 주식 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주가지수 물어보려고 하는데,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저희 어머니가 주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거든요. 그래서 마침 궁금한 게 있는데, 아저씨가 대신 알아봐 주실 수 있으세요?"

-어렵지 않지.

"그럼 일단은······."

남은 시간은 대략 3분.

이강진이 알고자 하는 정보를 알아내기까지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강진과 함께 온 조교가 바로 서기준 병장이다. 이강진은 서기준 조교가 저번에 통화 시간을 2분 더 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인 모양인지 거의 5분이 다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운이 좋네.’

3소대를 고른 보람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전화 포상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따낼 수 있다.

그리고 이번 통화로 원하는 주식 정보는 전부 다 확인했다.

똑똑똑.

서기준 조교가 노크를 했다.

"1분 남았다. 슬슬 마무리 해."

"예, 알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1분.

이 시간을 이강진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어머니를 위해 쓰기로 했다.

"민수 아저씨."

-어, 강진아. 또 필요한 거 있어?

"아니요."

이강진은 대뜸 황민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저씨가 참 좋아요."

-응?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저뿐만 아니라 저희 어머니도 민수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그래? 미, 미영 씨가······?

"네."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강진의 어머니는 황민수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몇 차례 했었다.

-근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 아저씨는 잘 모르겠구나.

이강진은 슬며시 웃었다.

"그냥 그렇다고요."

황민수는 다 좋은데, 약간 숫기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 여자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래서 이강진은 그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의 새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직설적이다.

큐피드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

좀 더 도와주고 싶지만, 현재 큐피드는 군 복무 중이다.

‘나머지는 두 분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