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3화
제4화. 수류탄, 투척! (1)
얼룩무늬를 지닌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소리를 내면서 이강진에게 다가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었다.
"옳지, 옳지. 착하다."
이강진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반면, 백우호와 김철은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강진아. 그 고양이, 아는 고양이야?"
"아마 한 번 정도는 만나봤을 거야."
잔반통에서 봤던 괴생명체의 정체.
그것은 아마도 눈앞에 있는 이 고양이였으리라. 이강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김철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양이가 굉장히 크네."
"짬타이거니까."
"그게 뭔데?"
모르는 이들을 위해 이강진은 친절히 짬타이거의 역사와 유례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많이 봤잖아. 군부대 근처에도 버려진 야생 고양이가 꼭 몇 마리씩 어슬렁거리고 있거든. 병 식당에 있는 잔반통 기억하지? 그것 때문이야. 배고프다 싶으면 몰래 내려와서 짬통 뒤지고 그러거든. 이런 고양이들을 가리켜서 군대에선 ‘짬타이거’라고 부르고 있어."
많이 먹기에 덩치도 비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백우호와 김철은 그제야 이강진이 고양이를 보자마자 짬타이거라고 중얼거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짬타이거는 이강진의 손에서 벗어나 다시 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고양이가 사라진 방향을 보던 백우호가 넌지시 물었다.
"그럼 우리가 갈 자대도 저런 녀석들이 있다는 말이지?"
"어. 십중팔구 그럴 거야."
짬타이거가 여기 있는 훈련병들······ 아니, 어쩌면 조교로 근무하는 병사들보다도 더 오랫동안 짬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 * *
훈련소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주말이 모두 끝났다.
다시 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드디어 오늘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훈련병들이 첫 번째로 소화할 난관은 바로······.
"지금부터 수류탄 파지법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우선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본 뒤, 계속 설명을 이어나가겠다. 조교 위치로."
"위치로!"
최만보 조교의 부름에 따라 일병 조교 두 명이 각기 다른 방향을 보면서 훈련병 앞에 섰다.
한 명은 훈련병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다른 한 명은 측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로 준비 동작을 보여줬다.
모의 수류탄을 건네받은 조교들은 능숙한 솜씨로 수류탄 파지법을 선보였다.
"보는 바와 같이 양 손으로 수류탄을 꼭 쥐고 있어야 한다. 특히. 안전손잡이는 반드시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 자칫 잘못하다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까딱하면 그냥 죽는다.
혼자만 죽는 게 아니다. 조교도, 그리고 근처에 있는 훈련병들도. 수십 명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훈련이다.
그래서일까. 3소대 조교들은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엄한 모습을 보였다.
"거기! 조교가 설명하는데 조는 녀석 누구야! 미쳤어? 앞으로 튀어 나와!"
거두절미하고 바로 얼차려가 부여되었다.
최만보 조교의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천사라 불리던 서기준 조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나! 교육이 집중 못하는 훈련병 있으면 바로 열외시켜서 오늘 하루 종일 얼차려 줄 테니까 각오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일부러 훈련병들에게 바짝 긴장하게끔 언성을 높이는 조교들.
그 다음 동작 설명에 들어갔다.
"안전손잡이를 꽉 붙잡은 채로 안전핀과 안전클립을 제거한다. 그리고 수류탄을 들어 올린 뒤······."
최만보 조교가 말끝을 흐릴 때, 시범 조교로 나선 일병 둘이 ‘수류탄 투척!’이라고 외치면서 가짜 수류탄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더니 미리 그려둔 원 안에 수류탄에 정확히 안착했다.
"저렇게 목적지에 정확히 던지면 된다.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목적지가 어디인지 먼저 확실하게 위치를 가늠한 후에 던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둬라. 알겠나!"
"그럼 양팔 간격, 좌우로 나란히!"
거리를 충분히 벌린 뒤.
훈련병들이 직접 수류탄을 투척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의 손에 모조품이 지급되었다. 모조품이라 할지라도 무게감은 수류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선 자세부터 먼저 연습한다. 안 된다고 징징거리지 마라. 이건 될 때까지 계속 시킬 테니까. 준비동작 하나!"
삐익!
호루라기 신호에 따라 훈련병들은 자세를 취했다.
조교들이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자세를 직접 교정해줬다.
최만보 조교의 시선은 이강진에게 고정되었다.
"준비동작 둘!"
계속해서 이어지는 수류탄 투척 훈련.
그렇게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넘게 반복했다.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
이강진은 굳이 따지자면 전자에 속했다.
심지어 굉장히 잘한다.
"125번."
"125번 훈련병, 이강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나와봐."
불안한 예감은 늘 적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강진은 조교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다들, 125번 훈련병이 하는 동작 보고 따라 해라. 아주 모범적인 자세야."
분명 칭찬일 텐데. 하나 이강진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씨발!’이라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수류탄 잘 던진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군대뿐이다. 사회에 나가서 수류탄 잘 던진다고 자랑해봤자 받아주는 이라고는 예비군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진 않는다. ‘그걸 왜 자랑하고 있냐?’라고 놀림당할 게 뻔하다.
조교가 시켰기에 이강진은 어쩔 수 없이 시범을 보였다.
"수류탄 투척!"
"투척!"
복명복창까지 소화하면서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아름다운 각도를 뽐내며 날아가던 수류탄은 정확히 원 한 가운데에 툭 떨어졌다.
양궁으로 따지면 정 중앙을 맞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들, 박수!"
훈련병들은 이강진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럼에도 이강진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이 거지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수류탄 던지는 훈련만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진행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생활관 막사로 돌아온 훈련병들.
백우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른팔에 알 베기겠어."
간단한 동작이라 할지라도 몇 시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근육이 비명을 지르게 된다.
백우호뿐만 아니라 다른 훈련병들도 그와 같은 고충을 토로했다.
특히 김철이 문제였다.
"나는 없던 수전증도 생길 거 같아."
순간 이강진은 오늘 받았던 수류탄 투척 훈련을 떠올렸다.
다른 훈련병들은 그래도 무난히 잘 해냈다.
하나 김철은 심각했다.
긴장한 탓에 손이 너무 떨려서 그런 걸까. 수류탄을 바로 코앞에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던지긴 던졌는데 원 안에 한참을 벗어난 곳에 떨어뜨리곤 했다.
덕분에 김철은 조교들의 갈굼 속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진행해야만 했다.
이강진과 대비될 정도였다.
이번 주 수요일에 바로 수류탄 투척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남은 기간은 내일, 하루뿐.
이강진은 회귀하기 이전의 기억을 되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 훈련소에 있을 때, 어떤 훈련병이 수류탄 잘못 던져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거 같았는데.’
다행히도 사고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아찔했던 상황이었단 말은 들은 기억이 났다.
‘사고 일으킨 소대가 분명 3소대였을 텐데······ 설마?!’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김철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김철은 그런 이강진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왜? 나한테 볼 일 있어?"
그 주범이 김철인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른다. 김철 말고도 수류탄 투척 훈련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훈련병들은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김철이 독보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손을 뻗어 김철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너 정말로 잘할 자신 있지?"
"뭐를?"
"수류탄 훈련. 수요일에는 모의 수류탄이 아니라 진짜 수류탄을 던지러 가잖아. 그때 안 떨고 잘 던질 자신이 있냐고 묻는 거야."
"그거야······ 해봐야 알 거 같은데."
불안감이 가속되기 시작했다.
번호 순서대로 차례로 3명씩 각 호에 들어가서 수류탄을 던지는 식으로 훈련이 진행될 것이다.
번호가 붙어 있다 보니 이강진의 옆에서 김철이 수류탄을 던질 게 분명하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사고라도 벌어진다면······.’
어렵게 붙잡은 회귀의 기회가 수류탄 훈련 한 방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거 같았다.
아직 못 사둔 주식이 한 가득이다. 심지어 그토록 기다리던 코인판은 오지도 않았다.
차라리 김철이 수류탄 훈련에서 열외라도 된다면 참 좋으련만.
그러나 신병훈련소 대대장은 ‘열외’라는 단어를 굉장히 싫어했다. 행군에서도, 각개전투에서도, 화생방에서도 정말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열외는 없다.
수류탄 훈련도 마찬가지일 터.
이강진은 마른 침을 삼켰다.
‘군생활 최대의 위기다!’
어쩌면 목숨이 걸린 일생일대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 * *
수류탄 훈련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훈련장으로 향하는 훈련병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특히 이강진의 걸음은 더욱 무거웠다.
‘철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어제 훈련에서는 그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강진이 뭔가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한편. 훈련병들의 걸음 속도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완전군장도 아니고, 심지어 총도 없는 단독군장 차림인데도 불구하고 훈련병들의 발걸음은 축 쳐졌다.
바로 산 때문이었다.
"아니, 훈련장 가는데 뜬금없이 웬 등산이야······!"
뒤에서 백우호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심지어 비탈길 경사도 굉장히 가파르다. 여기저기서 훈련병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막상 수류탄 한 번 던지는 건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 오히려 훈련장까지 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오늘이 수류탄 훈련인지, 행군 훈련인지 햇깔릴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수류탄 훈련장에 도착한 훈련병들.
미리 도착해 있던 대대장이 이들에게 외쳤다.
"다들 주목!"
"주목!"
훈련병들의 시선을 모은 대대장은 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류탄 훈련은 굉장히 위험한 훈련이다. 실수하면 나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조교들도, 그리고 전우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 이 대대장이 어떻게 수류탄을 투척하면 되는지 직접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굉장히 열정이 넘치는 대대장이었다.
직접 호에 들어가서 수류탄을 인수인계 받은 대대장. 안전핀과 안전클립을 제거한 후, 수류탄을 물웅덩이 쪽에 투척했다.
그리고 조교와 함께 호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퍼어어어엉!
작은 웅덩이 위로 기다란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순간 훈련병들은 놀란 눈빛으로 웅덩이를 내려다봤다.
"수류탄이라는 게 저 정도 위력이었어?!"
"게임에선 저렇진 않던데······."
"씨발, 잘못 던지면 좆되는 거잖아!"
"나, 갑자기 손 떨리기 시작하는데, 어쩌냐."
훈련병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누구나 다 수류탄 훈련을 소화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 대대장이 몸소 시범을 보이긴 했으나.
‘역효과만 났네.’
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이강진은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