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4화
제4화. 수류탄, 투척! (2)
1소대부터 차례대로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3소대까지 오는 대에는 금방이었다.
순번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강진은 생각이 많아졌다.
‘설마 철이가 뭔가 사고를 치거나 그러진 않겠지?’
그러나 ‘혹시, 만약에’라는 것들을 항상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의심을 가지는 순간, 이 의심이 확신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이강진을 과거로 되돌려보낸 회귀 트럭의 존재 또한 이와 마찬가지였다. ‘에이, 설마’했더니 정말로 과거로 회귀하게 되지 않았던가.
이강진은 김철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지금 심정은 좀 어때. 속이 울렁거린다든지. 그런 건 없지?"
"어. 근데 왜?"
"아니, 그냥. 잘하라고."
김철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하나 단순한 토닥임은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좀 들어가 있었다.
"철아. 이거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 호에 들어가면 발밑에 쥐구멍 같은 게 보일 거야. 그 구멍이 어떤 용도냐면, 수류탄을 잘못 던져서 호 밑으로 떨어질 경우, 그걸 발로 차서 안으로 넣으라고 만든 거거든? 그러면 수류탄이 웅덩이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서 터질 거야."
"저 안에 그런 게 있어?"
"어. 쥐구멍 위치 잘 봐두고. 혹시나 만약에 네가 실수를 저질렀다 싶으면 당황하지 말고 그 쥐구멍 안에 수류탄을 넣어버려. 괜히 의협심 발휘한다고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네가 수류탄 깔고 누울 필요 없어. 그래봤자 근처에 있는 사람이 다치는 건 변함없으니까."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기왕이면 이강진은 김철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안전핀, 안전클립을 뽑으면 무조건 멀리 던진다는 거 잊지 말고. 던진다. 이 세 글자만 기억해. 알았지?"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이강진의 말에 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명심할게."
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를!
이강진은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 * *
드디어 김철과 이강진, 그리고 백우호. 이 세 명의 순서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전 조는 앞의 조가 수류탄 훈련을 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다.
마침 121번 훈련병의 차례였다.
"수류탄 투척!"
"투척!"
머지않은 시간 내에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이강진이 있는 가건물의 방탄유리가 흔들릴 정도였다.
옆에서 백우호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수류탄이 저렇게 엄청난 무기일 줄은 몰랐네."
괜히 대량 살상용 화기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앞 조의 마지막 차례인 123번이 수류탄을 던질 차례다.
이강진은 김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뜬금없이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우리 철이, 힘낼 수 있지? 난 널 믿는다. 파이팅!"
"뭐야, 갑자기. 순간 우리 부모님한테 응원 들은 줄 알았네."
마음 같으면 그 이상의 응원도 해주고 싶은 게 지금의 이강진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드디어 앞 조의 차례가 끝났다.
조교가 이강진 트리오에게 외쳤다.
"각 호에 들어갈 때 자신의 관등성명 크게 외치고 들어간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가장 먼저 김철이 맨 오른쪽 호에 들어섰다.
"124번 훈련병, 김철!"
"125번 훈련병, 이강진!"
"126번 훈련병, 백우호!"
아직까지 큰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강진이 들어간 호에는 서기준 병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강진. 잘할 수 있지?"
"예!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 기세 그대로 가자!"
지금은 이강진보단 김철이 더 문제다.
김철부터 차례로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조교의 명령에 따라 김철은 목소리를 크게 키웠다.
"안전핀 제거!"
팅!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제발······!’
이강진은 언제든 호에 몸을 숨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수류탄, 투척!"
"투척!"
휘익!
김철이 던진 수류탄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면서 정확히 물웅덩이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퍼어엉!
물기둥이 호가 위치한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조교가 김철의 방탄모 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칭찬했다.
"잘했어!"
"124번 훈련병, 김철! 감사합니다!"
훈련 때 보이던 불안한 모습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아주 깔끔하게 수류탄 훈련을 끝마친 것이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하긴. 미래에서 벌어졌던 일이 회귀 이후 과거에서 그대로 똑같이 발생한다는 법은 없다. 그랬다면 이강진은 3소대가 아닌 1소대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미래는 바뀐다.
어쩌면 김철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다음은 이강진의 차례다.
"125번 훈련병, 준비 됐나!"
"예!"
"안전핀 제거!"
"제거!"
팅!
물 흐르듯 안전핀을 제거한 이강진. 준비 자세를 취하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수류탄 투척!"
김철이 수류탄을 참 잘 던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강진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자연스러운 수류탄 던지기. 폭음과 함께 웅덩이에서 물기둥은 마치 이강진에게 수류탄 훈련 잘 마쳤다고 축하해주는 축포와 같았다.
마지막으로 백우호 차례가 왔다.
‘우호는 잘하겠지.’
수류탄 투척 훈련에서 조교들에게 칭찬을 받은 몇 안 되는 훈련병 중 한 명이 바로 백우호였다.
본인도 수류탄에 대해 크게 겁먹는 듯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단, 수류탄을 인계 받기 전까진 말이다.
"아, 안전핀 제거!"
핀을 뽑아든 백우호의 손이 급격하게 떨렸다.
안전핀이 호 바닥에 떨어졌다.
"126번 훈련병! 뭐하는 거야!"
"어서 수류탄 안 던져?!"
"씨발, 이 새끼 돌았나!!"
사방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모양인지 백우호는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을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친!!!’
백우호. 그가 복병이었다!
분명 예전의 백우호는 무사히 수류탄 훈련을 소화했을 터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미래는 바뀌지만, 김철 같은 경우처럼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바뀌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부정적인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해결책을 떠올려야 한다!
이강진은 무심코 이렇게 외쳤다.
"김정빈, 그 녀석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짱돌 던지듯 던져!"
"뭐? 김정빈이라고?!"
순간 백우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개자식!!!"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던 백우호였으나, 이강진이 외친 김정빈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분노가 그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휘익!
있는 힘을 다해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퍼어엉!
세 번째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수류탄이 정상적으로 터졌음을 알리는 흔적이었다.
"······."
"······."
호에 들어가 있던 조교뿐만 아니라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중대장과 간부들 훈련병들, 그리고 당사자인 백우호까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수류탄 훈련이 종료되었다.
하나 백우호는 훈련이 끝날 때까지 따로 열외 되어 조교에게 얼차려와 벌점 5점을 받아야 했다.
수류탄 훈련에서 어리바리 탄 죄. 이것이 백우호의 죄목이었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이강진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얼차려를 마치고 다시 대열에 합류하게 된 백우호.
그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강진은 그런 백우호의 등을 토닥여줬다.
"고생했다."
"고생이야 뭐······ 그보다 미안해. 괜히 너희들까지 신경 쓰게 만들고. 내가 진짜 죽일 놈이야."
도중에 김철이 그에게 물었다.
"너, 잘했었잖아. 근데 갑자기 왜 그랬던 거야?"
"나도 모르겠어. 막상 내 손에 진짜 수류탄이 주어지니까 막 머리가 어지럽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그러더라고."
김철이 실전에 강한 반면, 백우호는 실전에 약한 편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끝났으니 다행이다.
하나 백우호는 이강진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그런데 강진아. 김정빈 그 사람을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건······."
김정빈은 백우호에게 래퍼로 데뷔시켜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그를 꼬셔서 돈 떼어먹고 도망친 사기꾼의 이름이었다.
병장 만기 제대를 할 때까지 백우호는 이강진에게 사회에 나가서 김정빈을 만나면, 녀석의 이까지 모조리 씹어 먹어 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자대에 같이 배치되었을 때의 일일뿐. 훈련소에서 백우호는 이강진에게 김정빈에 관한 말을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의문이 든 것이다.
‘적당해 둘러대야겠군.’
미래의 일을 알고 있어서 그랬다고 말은 못하니까.
"저번에 네가 잠꼬대 하는 걸 들었거든. ‘김정빈, 이 개새끼······.’ 하면서 막 욕을 하길래 알고 있었지. 때려죽이고 싶은 사람 이름을 들려주면 정신 차릴 거 같아서."
"그랬었구나. 추한 모습을 보였네. 미안해."
"괜찮아. 사고 안 났으면 됐지, 뭐."
과정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군대는 무조건 결과다.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다.
* * *
아슬아슬했던 수류탄 훈련을 끝낸 뒤.
훈련병들은 바로 막사로 복귀하지 않고 다른 장소로 향했다.
"다들 주목한다, 주목!"
"주목!"
"지금부터 크레모아에 대해 설명하겠다. 설명 끝난 뒤에는 실제로 크레모아를 폭발시키는 모습도 보여줄 테니까 피곤하다고 졸지 말고 조교들 설명에 귀 잘 기울일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수류탄 훈련이 끝난 뒤에는 이렇게 크레모아 교육까지 연달아 실시한다.
조교는 빠르게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크레모아. 정확한 발음으로는 클레이모어(Claymore)라고도 하며, 수평세열지향성지뢰 타입의 폭발물이다. 폭발하면서 안에 있던 구슬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비산해 전방에 있는 적들을 쓸어버리는 위험한 물건이지. 살상 반경은 50미터. 위험 반경은 250미터로······."
지루한 설명이 이어졌다.
훈련병들은 잠을 쫓기 위해 자신의 몸을 꼬집으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머지않아 이들의 잠을 싹 달아나게 만들 순서가 찾아왔다.
"그럼 지금부터 크레모아를 실제로 터트려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훈련병들은 멀리까지 이동을 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P96K 무전기를 통해 전달받은 조교는 다시 한 번 훈련병들을 주목시켰다.
"곧 터질 테니 잘 봐둬라."
3, 2, 1······.
퍼어어어어어엉!!!
엄청난 굉음이 몰아졌다. 후폭풍으로 밀려오는 바람이 훈련병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수류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화력이었다.
"자, 다들 봤겠지? 나중에 전술훈련을 받을 때에는 너희가 직접 크레모아 설치도 해야 할 테니 잘 기억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언제 봐도 신기한 크레모아 폭발 장면.
이강진은 설마 이걸 두 번이나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 *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훈련병들은 샤워실로 직행했다.
수류탄 훈련 자체는 빡세지 않았지만, 훈련장을 왔다 갔다 하는 코스가 너무 험난하고 길었다.
그것 때문인지 훈련병들의 군복은 땀에 쩔어 있었다.
이강진도 슬슬 샤워를 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2생활관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강진! 이강진 어디 있어!"
탄약반장, 이문청 중사였다.
"125번 훈련병, 이강진."
이문청은 이제 막 샤워하려고 준비 중이었던 이강진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네가 말대로 오늘 갑자기 신웅제지가 엄청 올랐다고 하더라! 다 네 덕분이다!"
이강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미리 던져놓은 떡밥이 큰 물고기를 낚아 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