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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8화 (18/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18화

제6화. 은혜 갚은 중사 (2)

이강진이 이문청 중사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탄약반장님, 매일 아침마다 신문 보시지 않습니까?"

"응? 뭐, 그렇지."

"제가 금융권에서 일하다가 왔다고 저번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근데 훈련소에 있는 동안에는 경제 흐름이라든지 이런 걸 전해들을 기회가 전혀 없다보니 좀 답답합니다. 사실 저도 입대하기 전에 주식에 돈 좀 넣어두고 와서 그런지 이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흠, 그래?"

돈을 넣어두긴 했는데, 주가가 현재 어떤 식으로 변동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문청 중사도 한때 직접 주식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강진의 지금 심정이 어떤지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그래서 말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탄약반장님이 보시는 신문, 저도 볼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됩니까? 훈련소 퇴소할 때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음 같으면 이문청 중사의 스마트폰 사용권을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강진은 차마 그 부탁까진 하지 못했다. 괜히 들켰다가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르니 말이다.

훈련병에게 멋대로 스마트폰을 보여줬다간 이문청 중사에게도 징계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은 어찌 저찌 커버칠 수 있을 터.

"신문이야 어렵지 않지. 근데 어떻게?"

구체적인 작전이 필요했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이강진은 거기까지 미리 생각을 해왔다.

그의 작전을 전해들은 이문청 중사는 고개를 한 차례 크게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자."

"감사합니다, 탄약반장님."

"이 정도야 뭐. 나중에 훈련소 퇴소하고 휴가나 외출, 외박 나오면 연락해. 내가 크게 한 턱 쏘마!"

"하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이문청 중사의 은혜 갚기는 당분간 계속 될 듯 싶었다.

* * *

이강진이 세운 작전은 대략 이러했다.

19사단 신병교육대에는 각 생활관마다 ‘지도실’이라는 게 있다. 행정보급관이라든지 소대장, 혹은 이문청 중사 같은 3소대 간부들이 훈련병들과의 상담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는 작은 공간이다.

지도실 내부에는 청소도구 같은 것도 보관되어 있었다. 때로는 간이 이발소로도 사용된다.

사실 말이 지도실이지, 귀에 걸면 귀걸이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 되는 그런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강진은 이곳을 비밀 거래 장소로 선정했다.

이문청 중사가 아침에 신문을 보고, 그 신문을 3소대 2생활관 지도실 청소보관함 위에 올려둔다. 그러면 이강진은 개인정비 시간에 몰래 지도실로 들어가 신문을 꺼내서 그것을 보면 된다.

지도실에서 신문을 보다가 설령 조교에게 들켜도 그냥 주의만 받고 끝날 것이다. 그것조차 꺼려진다면 신문을 옷 속에 숨긴 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몰래 보면 된다.

이것이 이강진의 작전이었다.

일요일 오전.

종교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강진은 지도실로 슬쩍 걸음을 옮겼다.

‘어디 보자······.’

청소보관함 위쪽으로 손을 뻗었다.

더듬더듬 하다 보니 뭔가가 손에 탁 걸리는 느낌이 났다.

‘찾았다!’

두툼한 종이의 감촉.

틀림없다. 이문청 중사가 약속대로 두고 간 신문이었다.

식사 집합까지는 20분 정도 남았다.

어차피 이 두꺼운 신문을 다 볼 것도 아니었다. 이강진이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훑고 다시 올려놓으면 된다.

"무주 CEO 경제포럼, 경제 살리기 모색이라······."

미국 태양광 모듈 원천기술업체인 솔리어드가 무주에 7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5300억 원 규모의 수출 협약까지 체결했단 말이지."

관련 주들이 요동칠 게 뻔했다.

하나 그렇다고 이강진이 이 요동치는 종목들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거친 파도에 뛰어들어봤자 무엇하랴. 물만 잔뜩 먹을 게 뻔한데.

그리고 이강진의 목적은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 지식대로 일이 진행되어 가는지. 이걸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이건 맞았어."

사실 솔리어드 관련 소식은 이강진도 알고 있던 것이었다. 금액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이강진이 알고 있던 미래 정보와 신문에 실려 있는 정보가 얼추 비슷한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정보를 확인해가면 되겠지."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고 안일하게 대처했다가 또 다시 실패를 맛볼 수 있다.

보장된 성공일수록 돌다리를 확실하게 두드리고 건너야 한다.

* * *

저녁 점호 시간이 다가왔다.

생활관 책임자를 맡게 된 이강진은 오늘 당직사관을 맡게 된 소대장을 향해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3소대 2생활관 저녁 점호 인원 보고. 총원 24명. 열외 무. 현재 인원 24명. 점호 준비 끝!"

"쉬어."

"쉬엇!"

칼 같은 저녁 점호 보고에 소대장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조교들보다 이강진이 더 잘하는 거 같았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란 말이야.’

잠시 다른 생각을 품었던 소대장은 이내 개인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오늘은 훈련병들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내일 주간 행군 있는 거, 다들 알고 있겠지?"

"예!"

"코스는 어렵지 않을 거다. 산행도 없고. 그냥 소풍 나간다는 느낌으로 부대 주변을 쭉 걷다가 돌아오면 되니까 벌써부터 겁먹지 말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16km밖에 안 되는 짧은 코스니까 다들 낙오자 없이 무사히 생애 첫 행군을 마칠 수 있도록 한다. 그럼 저녁 점호 마칠 때까지 대기하도록."

행군이라는 말에 훈련병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하게 된 행군.

그러나 사실 훈련소에서 겪는 주간 행군은 반쪽짜리 행군에 불과하다.

거리도 통상 시행하는 정식 훈련에 비해 반 이상 짧은 편이고, 게다가 복장도 단독군장이다.

한 마디로 본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는 튜토리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적어도 이강진은 그렇게 보고 있었다.

저녁 점호를 끝마친 뒤에 훈련병들은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웠다.

그러나 오늘따라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강진아. 행군 말이야. 엄청 힘들지 않을까?"

"별로 안 힘들어."

단독군장에 16km면 이강진은 웃으면서 행군할 자신이 있었다.

혹한기 훈련만 하더라도 그 추운 날씨에 완전군장을 짊어지고 42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었다. 게다가 주간 행군도 아니고 야간 행군이었다.

체력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졸음, 추위와의 싸움까지.

정신력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행군을 이강진은 이미 몇 차례 경험했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소에서의 주간 행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어려울 거 하나도 없으니까 푹 자둬. 그래야 내일 편하게 행군하지."

군대에선 잘 수 있을 때 푹 자두는 게 제일이다. 이게 이강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충고였다.

* * *

이른 아침부터 현무중대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첫 행군 때문이었다.

"수통에 물 미리 채워둬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은 정수기에 일렬로 줄을 선 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진은 이럴까 봐 식사 집합하기 전에 미리 수통에 물을 채워뒀다.

주식이나 훈련소나.

‘역시 정보가 생명이야.’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게 이렇게 큰 혜택일 줄은 미처 몰랐다.

15분 후.

훈련병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연병장에 집합했다.

이강진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김철의 수통을 바라봤다.

수통이 지나치게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무게 때문에 탄띠가 수통 쪽으로 축 쳐진 그런 느낌이었다.

"철아. 너, 혹시 수통에 물 가득 채웠어?"

"응? 어. 원래 그러는 거 아니야?"

"적당히 채우지 그랬어. 어차피 오래 걸릴 것도 아닌데."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워봤자 자기가 짊어질 단독군장의 무게만 늘어나는 꼴이 될 뿐이다.

끽해봐야 4~5시간 정도면 끝날 것이다. 그때까지 수통 안에 있는 물을 전부 다 비우진 못할 터.

게다가 걷다보면 간부들이 보급품도 준다. 초코파이에 맛스타 음료. 이것만으로도 당분과 수분을 보충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훈련병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또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이의 차이가 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대장이 단상에 모습을 비췄다.

"다들 주목!"

"주목!"

중대장도 훈련병들과 같은 단독군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는 훈련병들을 빠르게 쭉 훑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에게 늘 강조했듯이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조교 통제에 따라서 안전하게 행군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바로 조교, 교관들에게 알리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행군에서 부상이라고 해봤자 99퍼센트 확률로 ‘그것’밖에 없다.

‘물집이지.’

물집을 방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밴드나 붕대로 미리 발바닥을 둘둘 감아둔다든지. 양말을 두 겹 이상 신는다든지.

하나 이강진은 일부러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차라리 주간행군 때 미리 물집 잡혀두는 게 오히려 편할 수 있어.’

어차피 자대에 가면 지겹도록 행군할 것이다. 차라리 그전에 미리 발바닥에 굳은살들을 만들어두는 게 좋다.

다행스럽게도 이강진의 발바닥은 나름 튼튼한 편이었다. 훈련소 주간행군 때 크게 물집 한 번 잡히고, 그 이후로는 물집이 생긴 적이 없었다.

이강진은 그 루트를 다시 한 번 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무중대, 파이팅!"

"파이팅!!!"

앞에서 중대장이 훈련병들의 사기를 이끌었다.

목청껏 파이팅을 외치는 훈련병들.

위병소를 벗어나면서부터 훈련병들은 각각 좌, 우측으로 갈라지면서 한 줄을 유지한 형태로 대열을 이어갔다.

"각각 좌, 우측으로 밀착한다. 밀착!"

"밀착!"

시골 길이다보니 폭이 큰 편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민간 차량이 한 대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 뒷좌석에는 어린 소년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훈련병들을 바라봤다.

차가 사라질 무렵.

백우호는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저 녀석들도 몇 년 후면 우리처럼 이러고 있겠지?"

이강진은 백우호의 말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훈련병들은 입대한 이후 위병소 밖을 처음 나서게 되었다.

바깥 공기는 그야말로 상쾌함이 가득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옆에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그리고 정겨운 시골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라는 게 느껴졌다.

이 자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훈련이 바로 행군이다.

행군의 몇 안 되는······ 아니, 어쩌면 유일한 장점이기도 했다.

다른 훈련병들에게는 주간행군 코스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강진은 달랐다.

‘이곳도 참 오랜만이네.’

일평생 두 번 다시 안 올 것만 같았던 신병교육대 주간행군 코스.

이강진은 또 한 번 이곳에 오게 되었다.

‘기분이 묘하네.’

추억 보정이 들어가서 그런 걸까.

다른 사람이 들으면 미쳤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온 봄바람과 함께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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