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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0화 (20/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0화

제7화. 가스, 가스, 가스! (2)

사실 제식 훈련이라든지 주간 행군, 집총제식이나 군가 등 이런 것들은 훈련소에서 받을 수 있는 훈련 중 약과에 속했다.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첫 선에 오르게 된 훈련이 바로 전설의 ‘화생방 훈련’이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방독면 주머니.

그것들을 본 이강진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한편, 의무대에서 이제 막 복귀한 김철이 절뚝이는 걸음으로 이강진에게 다가왔다.

"지도실에는 왜? ······이게 다 뭐야?"

어느새 근처까지 온 백우호는 ‘낸들 아냐.’라는 듯한 얼굴로 어깨를 한 차례 으쓱였다.

다른 훈련병들도 방독면 주머니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냥 하나 골라서 까면 바로 알 수 있지만, 그랬다가 괜히 조교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바로 벌점을 받을까 봐 무서워서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독면 주머니야."

"방독면 주머니?"

"가만, 그럼 설마······!"

훈련병들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 설마가 맞다.

미필이어도 화생방의 괴로움, 고통이 무엇인지 지겹도록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군대를 먼저 간다온 선배, 혹은 친구들과 술 한 잔 할 때에 꼭 거론되는 훈련이 바로 화생방이다.

그 정도로 굉장히 인상적이고 괴로운 훈련이라는 뜻이었다.

마침 조교가 생활관에 들이닥쳤다.

"다들 주목한다, 주목!"

"주, 주목!"

훈련병들은 후다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조교는 훈련병들의 수상한 동작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저녁 점호 때 방독면 마스크를 개인당 하나씩 분배할 거다. 미리 알아두고 있도록."

"아, 알겠습니다!"

이들에게는 거의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이를 어쩐다······.’

이강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신병교육대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이들은 연병장에 집합했다.

이번에도 단독군장 차림이었다.

단, 평소와는 달리 뭔가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었다.

바로 방독면 주머니였다.

어제 저녁에 분배받은 방독면 주머니를 각각 왼쪽 허벅지 측면에 차고 나온 훈련병들.

이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생방 훈련, 오늘 하는 거 맞지?"

"일정표 보면 오늘 맞아."

"하······ 좆됐네!"

연기를 마시기만 하면 갓 태어난 신생아가 된 기분으로 펑펑 울게 된다는 바로 그 유명한 화생방 훈련이 때마침 오늘 예정되어 있었다.

연병장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훈련병들 앞에 한 낯선 교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생방 교관을 맡게 된 하성익 중사였다.

"다들 주목!"

"주목!"

하성익 중사는 훈련병들의 얼굴을 쭉 훑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러냐. 오다가 단체로 개똥이라도 밟았어? 오늘 너희가 그토록 기대하던 화생방 훈련 할 건데. 안 기쁜가 보군."

훈련병들은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속으로 ‘기대 안 했습니다!’라는 말을 삼켰다.

물론 교관도 이들이 정말로 화생방 훈련을 기대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다.

"우선 화생방 훈련에 앞서 화생방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도록 하겠다. 혹시 MOPP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

"······."

금시초문이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도 아니고. 이들이 알 리가 없었다.

하나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MOPP. 군생활을 하면서 지겹도록 들은 단어다.

그럼에도 그는 조용히 있었다.

일부러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아니다.

화생방 교관을 맡은 하성익 중사. 그가 나타났을 때가 바로······.

‘상점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다!’

교관들 중에서도 하성익 중사는 유독 상점을 잘 뿌리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마치 이강진의 마음 속 외침을 듣기라도 한 모양인지 하성익 중사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말을 꺼냈다.

"좋아. 그럼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에게는 상점 3점 주도록 하겠다."

예상대로였다.

상점 3점이 걸리자 훈련병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훈련소에서 최고로 많은 상점을 받은 훈련병은 자대에 가서도 사용할 수 있는 2박 3일 포상휴가권을 얻을 수 있다.

단독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정기 휴가에 붙여서 다른 동기들보다 더 길게 휴가를 즐기고 올 수도 있다.

군대에서는 휴가만큼 확실한 포상은 없다.

상점을 주겠다는 하성익 중사의 말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번쩍 손을 든 훈련병 하나.

"125번 훈련병, 이강진!"

"말해 봐라."

"MOPP. 임무형 보호 태세로, Mission Oriented Protection Posture의 약자를 따서 줄인 말입니다. 작전에서 개인 및 부대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 취하는 보호 방법으로, 준비 단계부터 0, 1, 2, 3, 4 단계로 구분됩니다."

그야말로 교범에 나올 법한 완벽한 대답이었다.

특히 MOPP의 영어 단어를 풀어서 말할 때, 하성익 중사의 얼굴에는 경이로움이라는 감정마저 비쳤다.

풀 명칭을 아는 사람은 화생방 조교들 중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걸 이강진이 알고 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그럼 추가로 하나 더 묻지. 방독면 보호 두건까지 착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5초 내로 써야 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정답이다.

‘분대장 교육대에서 지겹도록 외웠던 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이것이 바로 재입대의 위력이었다.

하성익 중사는 이강진을 가리켰다.

"125번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상점 5점 주마. 조교들, 잘 체크해라."

원래는 3점을 주기로 했지만, 대답을 너무 잘해서 5점으로 격상시켰다.

이강진은 다시 한 번 훈련소 동기들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벌리는 데에 성공했다.

* * *

하성익 중사의 설명이 끝난 이후,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훈련병들은 각 소대별로 흩어져 화생방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훈련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다.

방독면을 꺼낸 뒤에 그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단, 제한 시간 이내로.

하성익 중사는 서기준 조교와 함께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화생방 훈련 진행 상황을 살폈다.

"이강진이라고 했었지? 그 125번 훈련병."

"예."

"문청이한테도 들었었는데. 훈련병 맞아? 아는 게 너무 많던데?"

"저도 그게 좀 신기합니다."

이강진은 이미 현무중대를 넘어서 19사단 신병교육대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웬만한 조교보다도 더 능숙하고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는 훈련병.

마치 만렙 플레이어가 일부러 1레벨, 2레벨 장비를 끼고 초보 던전에 와서 양학을 하는 듯했다.

때마침 이강진이 속한 조가 방독면 착용 실습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하성익 중사는 걸음을 멈췄다.

"125번 훈련병 차례네. 어디. 방독면은 얼마나 잘 쓰나 한 번 볼까?"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이론만 빠삭하지, 방독면 착용은 엉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독면이라는 걸 만져봤을 테고, 그걸 보호두건까지 15초 내로 쓰는 훈련을 처음 받아보는데, 과연 잘 할 리가 있을까.

다른 훈련병들은 방독면 안에 있는 수통마개 등 부수물자를 우수수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착용을 잘못 하거나 하면서 조교들에게 윽박을 당했다.

이강진도 잔 실수 하나 정도는 하리라.

하나 이건 하성익 중사의 섣부른 예상이었다.

"가스!"

조교의 신호에 훈련병들의 손과 발이 바빠졌다.

김철은 중간에 자신의 안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백우호는 더 나아가서 방탄모까지 떨어뜨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장구류 누가 지면에 떨어뜨리랬어! 정신 안 차려? 지금 너희들 앞에 화학탄이 낙하했다고! 바닥에 닿는 것마다 모조리 화학물질에 오염된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 요령이다.

이강진은 방독면 마스크의 안면 부분을 오른손으로 크게 움켜쥐었다.

그런 뒤, 마스크 안쪽을 얼굴 전면에 댄 다음에 머리끈 뭉치를 그대로 한꺼번에 넘겼다.

머리끈 뭉치가 뒤통수에 오게끔 제대로 위치를 조절한 뒤에 빠른 손동작으로 끈을 조였다.

정화통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손바닥으로 구멍을 막은 채 호흡을 했다.

"흡, 허! 흡, 허!"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았다. 제대로 결합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 아직 끝이 아니다.

보호두건이 남았다!

옅은 초록색을 띈 보호두건을 펼친 후에 밑에 달린 두 개의 끈을 각각 자신의 오른쪽, 왼쪽 겨드랑이에 꽂아 넣었다.

끈을 조인 후에 방탄모를 썼다.

마무리로······.

"가스, 가스, 가스!"

팔을 수평으로 뻗고 안으로 구부리면서 구호까지 외쳐주면 완벽하다.

100점 만점에 150점은 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동작에 조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성익 중사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저 녀석, 재입대 아니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제는 서기준 조교도 확신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 * *

이제 훈련병들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시간.

화생방 체험만 남았다.

훈련병들은 막사 뒤쪽으로 이동했다. 자물쇠로 잠긴 철망을 열고 부대 뒤쪽에 있는 작은 가건물 근처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하성익 중사가 다시 한 번 훈련병들 앞에 섰다.

"전체, 주목!"

"주목!"

"이제부터 화생방 훈련 시작할 건데, 혹시 천식이라든지 아토피 피부염 등 호흡계, 피부 질환을 가지고 있는 훈련병들이 있다면 미리 거수한다."

불행하게도 이강진은 너무 건강해서 탈이었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었다.

김철은 체력이 부족할 뿐, 질병을 가지고 있진 않았기에 예외 없이 화생방 훈련에 편성되고 말았다.

하성익 중사는 방독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교 둘과 함께 가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쪽에서 탁탁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게 뭔 소리야?"

고개를 갸우뚱하는 백우호의 물음에 이강진이 짧게 답했다.

"CS캡슐."

"그게 뭔데?"

"화생방 연기 나게 하는 물건이야. 터트리면 연기가 나오지."

그 연기가 곧 훈련병들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줄 주범이다.

가건물 안에서 미세하게 새어나오는 CS 연기가 앞쪽에 있는 훈련병들에게 흘러갔다.

"콜록!"

"켁! 이게 뭐야?!"

"어흑······!"

벌써부터 눈물, 콧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아직 맛보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훈련병들은 잔뜩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강진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큰일인데.’

어떻게 하면 보다 빠르게 저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답은 하나다.

‘하성익 교관을 만족시키면 돼.’

그러기 위해선 이번에 같이 화생방 훈련에 투입될 조원들끼리의 단결이 필요하다.

"얘들아."

이강진은 조원들을 불렀다.

"상점 받고 싶지?"

"상점?"

"그야 받으면 좋지."

상점에 목말라 있는 훈련병들에게 이강진이 단비를 내려주기로 했다.

"내게 작전이 있거든. 내 말대로만 하면 무조건 상점은 받을 텐데."

"······!"

"정말?!"

순간 훈련병들의 눈에 이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어때, 나 한 번 믿어볼래?"

이들의 대답은 안 봐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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