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2화
제8화.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1)
2주차, 3주차를 겪을 때마다 훈련병들은 점점 자신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군대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서 그런지 덜컥 겁을 먹곤 했었다.
그러나 하나둘씩 훈련을 무사히 마칠 때마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샘솟기 시작했다.
이 자신감이 정점을 찍었을 때에는 역시 ‘화생방 훈련’을 거치고 났을 당시였다.
하나 훈련병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아직 화생방보다 더한 훈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외곽 근무 투입 전.
이강진은 당직병이 행보관실에 있는 당직사관을 데리러 갔을 때, 슬쩍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선명하게 박혀 있는 네 글자.
각. 개. 전. 투.
‘이런 씨발.’
순간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군대에 오고 나서 욕을 참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군대는 욕을 부르는 곳이니까.
사실 화생방 훈련은 아주 잠깐 고통스럽다가 끝나면 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개전투는?
하루 종일 고통 받는다.
아니, 하루 종일이라는 개념을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각개전투하고 야간 숙영은 세트로 묶여 있으니까.’
아직도 이강진의 머릿속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첫 실사 사격, 주간 행군, 야간 행군, 화생방.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각개전투장에서 맞이하는 야간 숙영은 최악의 하루로 손꼽혔다.
물론 지금도 가장 불편한 잠자리가 어떤 때였는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훈련소 야간 숙영이다.
한숨을 푹 쉬는 이강진.
근무자 신고를 마친 후에 이들은 바로 외곽 근무로 투입되었다.
세 명이서 한 시간 동안 덩그러니 서 있기도 심심하다.
이럴 때에는 수다가 최고다.
"그러고 보니 다음 일정이 각개전투라고 적혀 있던데. 강진아, 무슨 훈련인지 알아?"
백우호의 물음에 이강진은 역으로 질문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군대 박사잖아."
훈련병들 사이에서 최근에 붙은 이강진의 별명이 바로 방금 언급했던 ‘군대 박사’라는 것이었다.
이강진에게는 참 여러 가지 별명이 붙어 있었다.
모범생,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남자, 상점 사냥꾼, 에이스, 훈련병들의 영웅, 등등등.
다 마음에 안 드는 별명들이다.
군대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군대 박사 아니니까 그딴 별명으로 부르지 마. 들으면 토 나올 거 같으니까."
"그래도 각개전투가 뭔진 알 거 아니야?"
"······."
할 말을 잃은 이강진.
알긴 안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가서 겪으면 돼. 그러면 ‘아, 군대가 이래서 좆같은 곳이구나.’라고 알게 될 거다."
의미심장한 이강진의 설명에 백우호와 김철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 * *
훈련병들은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각개전투의 순간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사격 훈련이라든지 화생방, 수류탄 같은 것은 이름만 들어도 ‘아, 이 훈련!’이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하나 각개전투는 과연?
훈련병들의 의구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하도 여기저기서 물어오던 탓에 이강진은 결국 각개전투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주기로 했다.
"병사 개인이나 분대 혹은 소대 단위가 약진과 포복 등으로 전투를 해나가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각개전투라는 거다, 녀석들아."
"포복은 또 뭐야? 설마 우리가 그 포복?"
백우호가 생활관 마룻바닥 위에서 몸소 시범을 보였다.
이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에이, 뭐야."
"쉽잖아."
"난 또. 조교들이 각개전투 훈련, 빡세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겁을 잔뜩 주기에 무슨 훈련인가 했더니만. 겨우 포복하는 거였어?"
순간 이강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특히 ‘겨우’라는 부분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 생활관에서 하는 포복이야 어렵지 않지. 하지만 말이다······."
이강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목소리에는 살기마저 담겨 있었다.
"돌바닥에서 포복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
그제야 훈련병들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평지에서 포복하는 것도 사실은 몸을 굉장히 많이 써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몇 시간 단위로, 그것도 흙바닥인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시행한다?
팔꿈치, 무릎, 안쪽 허벅지 등등등. 본의 아니게 멍 수집가가 될 것이다.
훈련병들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을까?"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팔하고 다리에 피멍까지 들긴 싫은데······."
훈련병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맞아, 그 방법이 있잖아!"
백우호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갑자기 여분의 양말들을 꺼냈다.
"이 양말로 보호대를 만들어두면 괜찮지 않을까?"
군대에서 지급하는 양말은 굉장히 길고 두텁다. 보온을 최선으로 디자인 되어 있기 때문에 양말에 푹신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이것으로 팔꿈치와 무릎을 감싸면 괜찮을 거라는 게 백우호의 아이디어였다.
"오······!"
"머리 좋은데?"
다른 훈련병들은 백우호의 아이디어에 나이스(Nice)라는 평가를 보냈다.
부랴부랴 양말로 임시 팔목, 무릎 보호대를 만드는 훈련병들.
그러나 그건 반쪽짜리 정답이었다.
무릎, 팔목 보호대를 만드는 건 좋다.
하지만.
‘어차피 포복 하다보면 흘러내릴 게 뻔한데.’
워낙 격렬한 훈련이다 보니 아예 고정을 시켜두지 않는 이상, 양말 보호대는 계속 아래로 흘러내리거나 아니면 위로 말아 올라가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힘든 훈련이 더 귀찮고 힘들어진다.
각개전투 훈련은 꼼수도 좋지만, 가장 좋은 파훼법이 있었다.
‘근성이지.’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미친 척하고 훈련 받다보면 어느 순간 끝나 있는 게 바로 각개전투다.
* * *
각개전투 훈련 당일.
생활관에서 대기 중인 훈련병들의 표정은 굉장히 비장했다.
훈련장까지는 도보로 이동할 예정이다. 사격장으로 이동할 때에도, 수류탄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이번 이동은 차이가 있었다.
바로 복장이었다.
그때에는 단독군장 차림이었지만, 각개전투 훈련장까지 가는 행군은 처음으로 완전군장이라는 게 도입되었다.
각개전투장으로 떠나기 직전, 조교가 각 생활관으로 들어가 훈련병들에게 완전군장 꾸리는 법을 안내했다.
"바깥 주머니에 수통을 넣는다. 그리고 야삽은 여기 이 주머니에 넣어두면 된다. 안에는 모포, 포단, 그리고 깔깔이를 꼭 챙기도록 해라. 야간 숙영 때 추위 때문에 감기 걸리기 싫다면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완전군장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꾸려보는 훈련병들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막힘없이 척척 진행해갔다.
‘자대 때랑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니까.’
순식간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된 이강진.
서기준 조교는 이강진의 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강진."
"125번 훈련병, 이강진."
"너, 혹시 사회에 있을 때 완전군장 꾸리는 법 강의라도 받고 왔냐? 왜 이렇게 잘해."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결국 립서비스를 택했다.
"조교님께서 워낙 잘 알려주셔서 금방 따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다른 애들은 아직도 헤매고 있는데?"
그냥 이강진이 특출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
완전군장을 처음 짊어진 훈련병들의 소감은 공통적이었다.
‘무거워!’
게다가 민간 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 가방이 아닌 쇠봉이 결합되어 있는 군장이다 보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무거웠다.
여기에 방탄모, K-2 소총까지 들고 가야하니 무게는 배로 느껴졌다.
하나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야간 행군 때에는 이 상태 그대로 10시간에 가까운 행군을 이어가야 한다.
거친 호흡을 내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훈련병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여러 개 맺혔다.
한 50분 걸었을까.
이들은 드디어 전설의 각개전투 훈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널리 펼쳐진 각개전투 훈련장을 보자마자 이들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 번째. 예상했던 것보다 돌부리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아니, 뭔 놈의 비탈길이 저렇게 가파르지?!"
"30도······ 아니, 45도는 되겠는데?"
"미쳤네, 미쳤어!"
심지어 고지는 가장 위쪽에 있었다.
흔들리는 붉은 깃발. 저곳을 점령하면 각개전투 1회 끝이다.
잊지 말도록 하자. ‘1회 끝’이라는 사실을
1회가 끝나면 2회가 시작되고, 2회가 끝나면 3회가 시작된다.
반복, 또 반복된다. 해가 저물 때까지. 이것이 각개전투다.
중대장이 훈련병들 앞에 섰다.
"전체 주목!"
"주목!"
방탄모를 고쳐 쓴 중대장. 그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비장했다.
평소의 중대장도 목소리 상태는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오늘은 유독 더 컸다.
목소리가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훈련병들은 중대장이 왜 저럴까 의아해 했다.
아직 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하나 이강진은 알고 있다.
곧 들이닥칠 크나큰 위기의 정체를!
"이번 각개전투 훈련에 연대장님께서 오셔서 우리 현무중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보겠다고 하셨다."
"······!!!"
대대장도 아닌 연대장이다!
절망적인 소식 앞에서 훈련병들은 거의 쓰러질 뻔했었다.
"잘 들어라."
중대장은 훈련병들에게 경고하다시피 했다.
"이번 각개전투,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임해라. 안일한 태도는 결코 용납 못한다. 설령 오늘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 각개전투 훈련장이 내 무덤이다! 생각하고 훈련 받는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연대장의 등장만으로 훈련의 난이도가 배로 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