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4화
제8화.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3)
낮은 포복, 높은 포복, 그리고 응용 포복을 한 번씩 번갈아 몸소 체험한 훈련병들.
드디어 쉬는 시간이 찾아오게 되었다.
"10분간 휴식한다. 전체, 탈모!"
"탈모!"
휴식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훈련병들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피로가 밀려와 훈련병들을 짓눌렀다.
방탄모를 벋고 나서야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어휴, 이제야 살 거 같네!"
한숨을 돌리게 된 백우호였으나, 그전에 손을 봐둬야 할 게 있다.
"이 망할 놈의 양말 덩어리들 때문에 몸만 둔해지고! 내가 이딴 걸 왜 달았나 몰라!"
양말로 만든 팔꿈치, 무릎 보호대가 훈련을 받을 때마다 계속 위로 말아 올라가거나 밑으로 흘러내리게 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만 생기고. 팔꿈치, 무릎은 보호는커녕 시퍼런 멍 자국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결국 오히려 훈련 받는데 방해만 된 꼴이었다.
이강진의 예상대로였다.
양말로 만든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은 훈련병이 역으로 승리자가 되었다.
조교들이 못 보는 사이에 백우호와 훈련병들은 재빠르게 양말 보호대를 꺼내서 건빵 주머니 속에 넣어뒀다.
그동안 이강진은 조교, 교관들이 몰려 있는 쪽을 살폈다.
‘뭐지?’
급한 용무라도 생긴 것 마냥 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강진은 연대장이 부부싸움 직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훈련병의 입장에서 그런 속사정까지 어떻게 알겠나.
한편. 현무중대 중대장인 윤일원 대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연대장님이 여기 훈련장까지 걸어서 오실 거라고 한다."
"잘 못 들었습니다?"
"걸어오신다는 게······ 도보 말씀하시는 거 맞지 말입니다?"
교관, 조교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레토나를 놔두고 왜 여기까지 걸어오나.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하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더 큰 사실이 있다.
"연대장님 오늘 기분이 별로라신다."
"······!"
훈련장까지 걸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해는 안 가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연대장의 기분이 안 좋다.’라는 말은 결코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연대장의 기분에 따라 하급 부대의 운명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칼 같이 잡아낸다. 낭패가 따로 없다.
윤일원 대위는 교관, 조교들에게 신신당부 했다.
"나, 진급 코앞이라는 거 다들 알고 있겠지?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한테도 교육 시켜. 내일 목소리가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크게 크게 지르라고. 상점도 아낌없이 팍팍 걸어둬. 그래야 훈련병들 의욕도 생기고 그럴 테니까."
"예!"
상급자의 칭찬 한 마디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곳.
바로 군대다.
* * *
포복 훈련이 끝나고 코스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최만보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지금부터 각개전투 우수 훈련병을 뽑도록 하겠다. 우수 훈련병이 된 훈련병에게는······."
잠시 뜸을 들이는 최만보 조교.
이것만 봐도 훈련병들은 제법 큰 점수가 걸려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일이 벌어졌다.
"15점을 주도록 하겠다."
"······!"
훈련병들은 경악했다.
15점. 청소를 죽어라 해도, 모포와 매트리스 각을 아무리 칼 같이 맞춰도 1점이오, 사격에서 만발을 맞춰도 8점밖에 안 주던 것을 15점이나 주겠다고 한 것이다. 훈련병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건 당연했다.
15점이면, 잘하면 포상휴가를 노려볼 수도 있다!
이 생각에 훈련병들은 없던 힘마저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저번보다 점수가 좀 커진 거 같은데? 아니면 내가 기억 못하는 건가?’
이강진이라 하더라도 20년이 지난 과거의 일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구체적인 점수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15점,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다들 의욕이 넘치는군. 좋아. 이 기세 그대로 각개전투 끝날 때까지 힘내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코스 설명을 들려주도록 하겠다."
포복 부분만 통과하면 나머지는 크게 의미가 없다.
통나무 건너기, 철조망 통과하기, 은폐엄폐 이후 고지를 향해 돌진하기 등등.
포복에 비하면 훨씬 쉬웠다.
다만, 철조망 통과하기 때에는 진흙탕과의 싸움이 약간 펼쳐졌다.
고지 점령전을 펼치기 전에 최만보 조교는 가장 앞 번호를 불렀다.
"120번."
"120번 훈련병 최인중!"
"분대장 역할 맡는다. 그 옆 훈련병은 부분대장 역할을 하면 된다."
각 분대의 분대장, 부분대장을 정해서 상황 조치 훈련을 실시한다.
조교가 상황을 내리면, 분대장은 그 상황에 맞춰서 정해진 대본을 크게 외치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크게 외치면’이라는 부분이다.
"목소리 무조건 크게 한다!"
"실시!"
120번 훈련병, 최인중은 팻말에 적혀 있는 글자를 국어책 읽듯 감정 없이 읽기 시작했다.
"분대. 전방에 나무 그루터기가 보이는가."
"목소리 크기가 그게 뭐야!!!"
기다렸다는 듯이 최만보 조교가 윽박을 지르기 시작했다.
"연대장님이 오셨다고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크게 내질러!"
"부, 분대! 전방에 나무 그루터기가 보이는가!"
"더 크게에!!"
마치 ‘라스트 원!’이라고 계속 외치는 헬스 트레이너처럼 최만보 조교는 훈련병에게 더욱 큰 목소리를 요구했다.
"전방에 보이는 나무 그르······ 아니, 나무 그루터기까지 시, 신속하게 이동한다. 약진 앞으로······!"
"약진 앞으로!"
소총을 들고 앞으로 이동하는 7조.
그러나 최만보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다시 한다. 제자리로!"
목소리가 너무 마음에 안 든 것이다.
심지어 대사도 틀렸다.
결국 참다못한 최만보 조교는 120번이 아닌 다른 훈련병에게 분대장을 맡기기로 했다.
"이강진."
"125번 훈련병, 이강진!"
원래는 앞 번호를 지닌 훈련병부터 차례로 돌아가면서 훈련을 시키려고 했었다. 하나 목소리 크기가 너무 마음에 안 든 나머지 최만보 조교는 잠시 ‘순서대로’라는 규칙을 무시하고 이강진을 지목했다.
이강진이라면 왠지 그가 원하는 목소리 크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네가 분대장 역할 해본다. 잘하면 상점 2점 부여하도록 하겠다."
먼저 찾아온 기회.
2점이라 하더라도 놓칠 수 없다.
"분대엣!"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사나이의 외침. 끝맺음 역시 길게 늘어지는 것 없이 깔끔했다.
"전방에 나무 그루터기가 보이는가!"
"예!"
"보입니다!"
훈련병들도 이강진의 목소리 크기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외쳤다.
"전방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까지 신속하게 이동한다! 분대, 약진 앞으로!"
"약진 앞으로!"
목소리 크기 좋고! 발음 깔끔하고!
그야말로 교과서 그 자체였다.
이동하면서도 이강진은 먼저 기합 소리를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이강진의 뒤를 따라 훈련병들도 하나둘씩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적군으로 표시되어 있는 목표물을 총검으로 한 번씩 푹푹 찌르는 형태의 모션만 취하면 된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고지를 점령했다!"
이강진의 선창에 훈련병들은 총을 흔들고서 환호를 질렀다. 그들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최만보 조교의 귀에 불길한 무전이 들려왔다.
-지금 연대장님, 연대장님 오고 계십니다.
"······!"
드디어 연대장이 이곳, 각개전투 훈련장에 강림했다.
* * *
연대장의 뒤를 따르던 대대장은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손수건으로 빠르게 식은땀을 훔쳤다.
난데없이 벌어진행군의 여파였다.
연대장이 왔다는 소식에 윤일원 대위는 허겁지겁 달려왔다.
"추, 충성!"
"충성. 오랜만이야, 윤 대위. 그동안 잘 지냈지?"
"대위 윤일원! 연대장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어디, 훈련하는 모습 좀 볼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연대장이었다.
연대장이 왔다는 소식에 훈련병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기백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연대장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고지 점령 상황 훈련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만보 조교는 바짝 긴장했다.
‘하필이면······.’
자기가 담당하는 파트에 연대장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조교."
심지어 자신을 부르기까지 했다.
"상병 최만보!"
"고지 점령하는 거, 훈련병들한테 시켜 봐. 훈련이 얼마나 잘 되어 있나 한 번 봐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어쩔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치트키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125번."
"125번 훈련병, 이강진."
"분대장 역할 맡도록 해라."
이강진은 조교가 자신을 지목할 줄 알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원래는 이강진의 차례가 아니었다. 그러나 연대장이 보러 온 이상, 이강진 말고 연대장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훈련병은 없다고 판단했다.
기회가 왔을 때 붙잡을 줄 아는 자.
그가 바로 이강진이다.
"분대! 전방에 나무 그루터기가 보이는가!"
"예!"
"전방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까지 신속하게 이동한다! 약진 앞으로!"
"와아아아아!"
아까 했던 것에 플러스로 볼륨을 더 높여 업그레이드를 시킨 버전을 연대장 앞에 선보였다.
여기에 이강진은 추가로 애드리브를 넣었다.
"고지가 코앞이다! 돌격!"
"돌겨어어어억!"
훈련병들은 이강진의 애드리브에 충실히 따라줬다.
마무리로 적군이라 설정해둔 마네킹까지 격파!
여태껏 선보인 고지 점령 훈련 중 가장 완벽했다.
최만보 조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얘들아, 잘했다!’
이 정도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음······."
연대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덩달아 같이 온 간부들은 바짝 긴장했다.
"잘했어. 다 좋은데 말이지······ 솔직히 이런 건 다 정해져 있는 거잖아. 심지어 팻말에 대사도 적혀 있고. 조교, 안 그런가?"
"사, 상병 최만보! 마, 맞습니다!"
마음 같아선 ‘아니오’라고 하고 싶었으나, 감히 연대장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전쟁이라는 건 말이야. 언제, 어느 때에 무슨 긴급한 상황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그런 곳이라고. 틀에 박힌 훈련 방식, 이건 너무 낡았어."
점점 불안해지는 연대장의 서두.
불안감은 점점 가속되었다.
"정해진 상황 조치 훈련은 관두고. 이건 어떤가?"
"어,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지금부터 내가 상황을 내려줄 걸세. 그러면 훈련병들이 그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이걸 보는 거지."
"하, 하지만······."
대대장이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으나, 연대장은 막무가내였다.
"훈련병들, 지금부터 내 통제에 따른다. 내가 상황을 부여할 테니, 거기에 맞는 행동 조치를 보이도록. 이런 교육은 기본으로 다 되어 있겠지?"
"주, 중령! 황서박! 무,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믿어 보겠어, 대대장."
위기는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