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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9화 (29/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9화

제10화. 마지막 관문 (3)

라면 취식을 마치자마자 벌써부터 걱정이 몰려왔다.

‘이거 다 먹으면 분명 졸릴 텐데.’

그렇다고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라면이 꿀맛처럼 느껴지는데. 어찌 이유혹을 거절할 수 있으랴.

6시간 가까이 완전군장을 짊어진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곳에 도착했다. 아직 5시간가량을 더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체력을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잠을 자거나, 아니면 먹거나.

잠을 자는 건 지금 상태에선 불가능하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먹어야 산다!’

후르릅!

면발과 동시에 얼큰한 국물이 잠시나마 행복감을 선사했다.

라면을 다 먹은 뒤에는 이온 음료로 목을 축였다.

이제 누워서 자기만 하면 정말 좋을 텐데.

그게 안 된다는 게 참아쉽다.

백우호는 어느새 라면 하나를 다 해치웠다.

"하나 더 먹을 순 없을까? 나, 사회에 있을 때에도 라면 하나는 부족해서 맨날 두 개씩 끓여먹고 그랬는데."

"가서 하나 더 달라고 말해봐. 말하는 순간 조교가 얼차려 부여할 테니까."

라면은 1인당 1개씩.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라면을 다 먹자마자 김철은 다시 전투화에서 양 발을 꺼내 발을 말리기 시작했다.

이강진은 슬쩍 김철의 발바닥을 바라봤다.

물집이 장난이 아니었다.

"괜찮겠어?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데."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김철은 애써 웃으면서 이강진의 물음에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해보려고."

"의무대라도 가보자. 내가 부축해줄게. 우호야! 너도 와라."

"오케이."

이강진과 백우호가 김철을 부축해줬다. 절뚝거리면서 이동하는 김철을 때마침 목격한 서기준 조교.

"거기 훈련병. 물집이 많이 심한가?"

"124번 훈련병, 김철!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못하겠다 싶으면 언제든 조교한테 말해라."

"예, 알겠습니다!"

김철은 원래 의지박약이었다.

하나 뭐랄까. 훈련소에서 받는 마지막 훈련이라 그런지 어떻게 해서든 완주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 이 야간 행군을 완주한다면······.

소극적이기만 했던 자기 자신을 조금이나마 바꿔갈 수 있을 용기가 들 것 같았다.

* * *

서기준 조교는 김철의 상태가 신경 쓰였다.

의무대에 다녀온 김철의 발바닥을 살펴본 서기준 조교는 이강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강진아. 네가 뒤에서 지켜보다가 124번 훈련병 상태가 영 아니다 싶으면 나한테 와서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낙오자 없이 행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괜히 부상자가 생기면 더 골치 아프다.

무사고(無事故). 상급 기관들이 참 좋아하는 단어다.

김철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온 서기준 조교. 때마침 최만보 조교가 그를 찾았다.

"서뱀. 곧 1시 다 되가니까 다시 행군 시작할 준비하라던데."

"그래? 알았어."

서기준 조교는 목소리를 크게 외쳤다.

"출발 5분 전!"

훈련병들은 서기준 조교의 말을 복명복창했다. 라면 취식을 해서 그런지 아까와 다르게 훈련병들의 목소리에는 잔뜩 힘이 실려 있었다.

훈련병들에겐 이번 야간 행군이 훈련소에서 받는 마지막 훈련이다.

마지막이라는 의미는 서기준 조교에게도 해당된다.

"서뱀. 이번이 군생활 마지막 행군이지?"

최만보 조교의 말에 서기준 조교는 씨익 웃었다.

"그래. 156기 애들 퇴소시키고 나도 곧 전역하니까."

"말년휴가 며칠 나가는데?"

"5박 6일."

"그것밖에 안 돼?"

생각보다 기간이 너무 짧았다.

서기준 조교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번에 작업하다가 실수해서 중대장님한테 휴가 며칠 짤렸거든."

"이런······."

말년휴가니까 그래도 며칠 더 붙여서 9박 10일 정도는 갔다 오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휴가가 없었다.

그게 좀 아쉽긴 했다.

그래도 휴가 갔다 오고 며칠만 군대에서 지내다보면 어느새 전역일을 맞이한다.

이번 현무중대 156기가 서기준 조교가 담당하는 마지막 기수다.

감회가 남달랐다.

하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훈련의 끝은 병사들이 생활관 침상에 누워 잠에 들기까지다.

이제 겨우 절반 왔을 뿐.

사고 없이 무사히 야간행군이 끝나기를. 서기준 조교는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 * *

새벽 3시 반.

훈련병들은 이제 추위와의 싸움에 졸음과의 싸움으로 턴을 넘기고 있었다.

병든 닭 마냥 머리를 위, 아래로 계속 끄덕였다.

현무중대 156기 최고의 에이스라 불리는 이강진도 졸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씨발! 더럽게 졸리네!’

옆구리를 꼬집거나 혹은 자신의 뺨을 스스로 때려보거나. 별 짓을 다 했다.

야한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졸음은 계속해서 이강진의 눈꺼풀 위에 머물렀다.

졸음의 요정이 자꾸 이강진의 눈꺼풀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수면욕과의 싸움을 진행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앞서가던 김철의 몸이 크게 기우뚱했다.

"······!"

이강진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김철이 넘어지기 직전에 이강진은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위험할 뻔했다.

"야, 철아! 괜찮냐?!"

바로 김철의 상태를 확인했다. 김철은 침음을 흘렸다.

고통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확인한 서기준 조교는 최만보 조교에게 외쳤다.

"만보야. 애들 데리고 먼저 가라."

앞선 행렬을 먼저 보낸 뒤, 서기준 조교는 이강진과 함께 김철의 상태를 살폈다.

발바닥이 물집으로 인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중간에 피도 섞여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서기준 조교는 바로 P96K를 들었다.

"여기는 3소대. 3소대라 알리고 현재 부상자 발생. 앰뷸런스 지원 요청바람."

뒤따라오던 구급차에서 의무병들이 출동했다.

의무병은 김철의 발바닥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상태론 무리입니다. 앰뷸런스에 자리 남아 있으니 태우는 게 좋겠습니다."

서기준 조교도 의무병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철은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있습니다! 꼭 완주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집 부리지 마라. 그 상태로는 무리야."

"이거 완주 못하면, 평생 후회로 남을 거 같습니다!"

"······."

김철이 이렇게까지 의지를 불태우는 건 처음 봤다.

전우조인 이강진과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소극적이기만 하던 김철에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강진은 김철의 하고자 하는 의욕을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서기준 조교님. 철이가 계속 행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1시간 남짓만 걸어가면 됩니다. 산행도 없고. 평지만 걸어가면 될 텐데······ 한 번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진은 앞으로 남은 코스들이 어떻게 되는지 다 기억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어려운 코스는 이제 없다. 평지만 걸어가다가 위병소만 통과하면 될 터.

결국 서기준 조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군장 줘라. 124번 훈련병 군장은 내가 짊어지고 갈 테니까 125번, 그리고 126번. 너희 둘이 124번 훈련병 부축해주면서 따라오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여럿이 뭉치면 할 수 있는 일이 군대에서는 참 많다.

이런 것들은 믿을 수 있는 전우들이 곁에 있기에 가능하다.

김철의 좌측에 이강진이, 우측에 백우호가 위치했다.

군장을 짊어진 서기준 조교가 앞장섰다.

‘옛날 생각나네.’

사실 서기준 조교가 김철의 행군을 허락한 데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그도 김철과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완주를 코앞에 두고 발목을 삐끗했었다. 그때 지금처럼 자신의 군장을 들어준 조교가 있었다.

순간 그 조교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언젠간 자신도 그 조교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신병교육대 조교가 되었다.

‘설마 이번에는 내가 조교의 입장이 될 줄이야.’

완전군장으로 인해 몸은 무겁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군생활 마지막 훈련으로 삼기에 딱 좋네!’

서기준 조교의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 * *

새벽 5시에 가까운 시각.

드디어 저 멀리 위병소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힘내라, 철아!"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이강진과 백우호는 김철에게 용기를 복돋아줬다.

마침내 위병소를 통과했다.

그 순간,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훈련병들이 세 남자에게······ 아니, 이들을 인솔해 온 서기준 조교를 포함한 네 남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강진은 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기분 참 묘하네.’

한편 네 남자가 쓴 행군 스토리에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대대장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외쳤다.

"잘했네, 잘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 아주 감동적이었네! 중대장!"

"대위 윤일원!"

"저 훈련병들에게 상점 주도록 하게. 그리고 조교!"

"병장 서기준!"

"3박 4일 포상휴가 줄 테니까 잘 쓰게."

"······?!"

이게 웬 떡인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포상휴가를 받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사랑합니다!"

포상휴가를 준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대대장에게 사랑 고백까지 하고 말았다.

자기가 동경했던 조교처럼 훈련병을 도와주기도 하고, 동시에 휴가까지 받게 되었다.

서기준 조교에겐 오늘 받은 야간 행군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 *

야간행군 뒤에 샤워를 하고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눕자마자 바로 꿈나라행 기차에 몸을 싣게 된 훈련병들.

물집과 치열한 싸움을 펼쳤던 김철도, 중간에 소형차에 매달려 탈영 유혹에 빠질 뻔했던 백우호도. 모두 꿀잠을 청했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잠에 취해있던 이강진.

그는 훈련병들 중에서 가장 먼저 눈을 떴다.

"······."

부스스한 몰골로 무거운 상반신을 일으켰다.

아직 기상까지는 30여분 정도 남아 있었다.

때마침 백우호도 이강진의 기척에 눈을 떴다.

"강진아······ 마침 잘 됐다. 화장실 같이 가자."

훈련병은 혼자서 화장실조차 갈 수 없다. 어딜 가든 전우조와 함께 해야 한다.

이강진도 마침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방광 좀 비운 다음에 다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화장실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충성!"

중대장과 딱 마주친 이강진과 백우호는 곧바로 거수경례를 펼쳤다.

"충성. 도중에 잠이 깼나?"

"예, 그렇습니다."

"그래? 마침 나도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잘 됐군. 같이 가지. 강진이, 너한테 할 이야기도 좀 있고 하니까."

할 이야기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이강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패턴 하나가 있었다.

* * *

백우호가 잠시 큰 거를 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이강진은 소변을 보고 손을 씻는 중이었다.

그때 중대장은 이강진에게 물었다.

"군생활은 할 만하나?"

"예."

"하긴. 네가 훈련 받는 거 보면 어느 부대에 가서든 제 역할은 충분히 해낼 거 같더군."

중대장은 이강진을 높게 평가했다.

간부들 사이에서 이미 이강진의 명성은 자자했다.

그 명성은 이강진에게 이런 기회를 부여했다.

"이강진."

"125번 훈련병, 이강진."

"자네, 혹시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일해 볼 생각 없나?"

"······!"

이강진이 예상했던 바로 그 패턴이다.

언젠가는 올 줄 알았던 조교 제안!

선택의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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