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0화 (30/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0화

제11화. 퇴소 (1)

신병교육대 조교!

조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간부들의 눈에 일찌감치 들어오거나, 혹은 조교로서 싹수가 보이는 훈련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병교육대 조교다.

목소리도 크고. 무엇보다도 몸동작에 각이 잡혀 있어야 한다. 자신의 행동 가짐을 보고 훈련병들이 그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줄 아는 자세. 그리고 리더십도 갖추고 있어야 조교를 할 수 있다.

이강진은 중대장에게 직접 조교직을 제안 받았다.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중대장이 병사에게 직접 제안한 전례가 여태껏 없었다는 사실을.

중대장은 눈이 굉장히 높다. 여자 보는 눈도 높지만, 자신의 중대에서 조교로 뛸 병사를 직접 고르는 선정 기준 또한 높다. 그래서 중대장이 먼저 누군가를 찜한 적은 없었다. 여태껏 그의 기준을 충족시켜준 훈련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타이밍에 이런 질문을 해올 줄이야.’

이강진은 다음 주 정도에나 중대장이 자신의 의사를 물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야간행군 끝나자마자 바로 물을 줄은 몰랐다.

중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조교직이 하는 일은 너도 봐서 잘 알 거다. 새로운 기수 받으면, 훈련병들한테 제식 가르치고 훈련 통제하고. 그러면 된다. 솔직히 많이 빡세지. 하지만 군대는 원래 빡센 만큼 그만한 보상을 주는 법이야."

그 보상이 ‘포상휴가’라는 건 이강진도 잘 알고 있었다.

조교가 되면 휴가를 많이 받을 수 있다.

빡셀 땐 빡세고, 풀어줄 땐 풀어주는 곳.

그곳이 19사단 신병교육대다.

사실 아직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너무 갑작스런 제안이라서······ 혹시 저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나도 지금 당장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고 다음 주 중에 내가 다시 한 번 부를 테니까 그때 대답 줘."

"예, 알겠습니다."

마침 큰일을 해결한 백우호가 변기 물을 내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중대장은 바로 화장실을 나섰다.

"충성!"

"충성."

거수경례로 그를 보내준 이강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야간행군 이후에 마지막 종교 행사를 치르게 된 156기 현무중대.

이번에도 어김없이 천주교를 택한 이강진과 백우호는 이 고단한 훈련소 생활에서 유일한 힐링 요소가 되어준 여대생들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모든 종교행사가 끝난 뒤.

여대생들은 훈련병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무사히 퇴소할 수 있기를 바랄게요!"

"파이팅!"

그녀들이 보내준 마지막 응원 때문일까. 백우호의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하아······ 첫 사랑을 떠나보내는 기분이네."

"첫 사랑이 아니라 짝사랑이겠지. 얼른 일어나기나 해라. 이러다가 대열 합류 늦으면 조교들한테 또 잔소리 듣는다."

기분 좋게 미녀들과 이별했는데, 이 기쁨을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야간행군을 무사히 마쳐서 그런지 대대장은 훈련병들에게 약속한대로 주말동안 편안한 휴식을 보장했다.

총기 손질이라든지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작업이나 일광건조 등.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유다.

물론 군대 내에서만 허락된 자유다. 전화나 외출, 외박 같은 건 할 수 없다.

대신, 이들에게 특권이 하나 주어졌다.

바로 PX 개방이다.

"여기가 PX라는 곳이구나!"

"와, 미친! 가격 봐! 여기, 우리나라 맞냐?"

편의점 가격과 PX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컬쳐쇼크를 느끼면서 훈련병들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을 원 없이 먹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탄산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매번 훈련 때마다 미지근한 물만 마셨던 훈련병들. 그러나 PX에서는 그런 제한도 없었다.

시원한 탄산의 감촉이 훈련병들의 목을 톡톡 쐈다.

이강진도 전우조 멤버들과 함께 PX를 찾았다.

이강진과 백우호에겐 두 번째 PX 방문이었다.

냉동식품 하나를 이쑤시개로 콕 찍어서 입 안에 털어 넣은 백우호.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조교들이 하는 말 얼핏 들었는데······ 다음 주에 GP, GOP 면접 시행할 거라던데. 그게 뭐야?"

백우호는 GP, GOP 개념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역시 이강진이 나서야 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철책 경계선 근무라고 보면 돼. 최전방이지."

"······내가 아는 형이 최전방 가는 건 어떻게든 피하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여긴 19사단이니까."

19사단 신병교육대 출신 대부분이 최전방으로 빠진다.

논산훈련소 출신 훈련병들도 최전방으로 배치되곤 하지만, 19사단 신병교육대에 비해서 그 비중은 한없이 낮다.

이번에는 김철이 물었다.

"면접은 다 보는 거야?"

"아니. 조교, 교관들이 괜찮다 싶은 인원들 몇몇 골라서 선별해뒀을 거야. 그 훈련병들만 받는 거지. 면접에서 합격하면 바로 최전방행이야."

순간 두 사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최전방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강진은 슬쩍 웃었다.

"왜 없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이강진은 이들에게 비책을 알려주기로 했다.

* * *

훈련소 마지막 주차에는 정신교육 일정만 잡혀 있었다.

오늘도 정신교육 하나를 소화한 훈련병들.

생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병장에 못 보던 레토나들이 정차되어 있었다.

이강진은 그걸 보자마자 바로 감을 잡았다.

‘GP, GOP에서 왔나보군.’

훈련병들을 최전방으로 끌고 갈 저승사자들이 이곳에 강림했다.

잠시 후.

서기준 조교가 3생활관을 찾았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훈련병들은 1층 시청각실로 향한다. 119번, 120번, 121번, 125번, 126번······."

예상대로 이강진의 번호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김철은 면제였다.

김철을 남겨두고 이강진, 백우호는 1층 시청각실로 향했다.

못 보던 간부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앞 번호 순서대로 채워서 앉도록."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의 얼굴에 긴장이 흘렀다.

이들 중에는 GP, GOP에 가고 싶어 하는 훈련병이 있을 테고, 백우호처럼 가고 싶지 않은 훈련병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강진은 과연?

그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허리를 세우고 자리에 앉았다.

간부들은 앞 번호부터 차례대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115번."

"115번 훈련병, 최훈!"

"산 오르는 거, 좋아하나?"

최훈은 격렬하게 부정했다.

"안 좋아합니다! 저는 산만 봐도 어지럼증을 느낍니다."

"오호, 그래?"

질문을 던졌던 간부는 매의 눈으로 115번 훈련병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특기가 ‘등산’이라고 적혀 있던데.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때에도 등산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심지어 동아리 부장이던데?"

"······!"

115번 훈련병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간부는 씨익 웃었다.

‘잡았다, 요놈!’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혹시 GP, GOP 가기 싫어서 일부러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아아닙니다!"

말을 더듬은 순간, 이미 게임 오버다.

이강진은 남몰래 115번 훈련병을 애도했다.

다음은 이강진의 차례다.

이강진은 GP, GOP에 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신상명세를 기입할 때 앞선 115번 훈련병처럼 GP, GOP에 잘 어울릴 만한 특기, 취미 같은 걸 일부러 적지 않았다.

마라톤, 농구, 축구 같은 스포츠 쪽은 완전히 배제했다. 애매하게 영화 감상, 독서를 적었다.

그리고 추가로 필살기도 하나 준비해 왔다.

"125번."

"125번 훈련병, 이강진."

"높은 계단 올라가는 건 자신 있나?"

이강진은 약간 뜸을 들이는 척 연기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제가 높은 곳은 좀······ 힘듭니다."

"음? 힘들다고?"

"예."

혹시 이 녀석도 115번처럼 GP, GOP 가기 싫어서 일부러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 간부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강진은 강수를 하나 뒀다.

"사실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정신이 혼미하고, 숨이 오래달리기 한 것 마냥 턱 밑까지 차오르고······ 실제로 얼마 전에 등산 갔다가 중간에 실신을 해서 친구들이 절 업고 내려온 적도 있습니다."

"으, 으음······."

"그런가? 그거 참 안 됐군."

구체적인 일화까지 들어서 자신의 고소공포증을 최대한 어필한 이강진.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다.

이 자리에서 이강진이 정말로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할 만한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이강진은 일부러 고소공포증 핑계를 둘러댔다.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 기관지가 안 좋아서 호흡계 쪽에 문제가 있었다든지 하는 이력을 어필했다.

이건 실제로 있던 일이다. 의료 진료 기록에도 남아 있다.

하나 고등학생 때부터는 멀쩡해졌다. 성인이 되어서는 아침마다 조깅을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간부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순간, 이강진은 직감했다.

‘통과했다!’

그의 촉이 ‘안심해도 좋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다음.

"126번."

"126번 훈련병, 백우호!"

"자네는 자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갑자기 백우호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호흡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원래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선택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면······ 오, 신이시여."

간부들은 백우호를 또라이 보듯 바라봤다.

* * *

군 간부들은 사건, 사고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래서 자신의 부대에 정신적으로 뭔가 이상한 사상관을 가지고 있는 병사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강진은 그 점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4차원적인 사상관을 보여준다면 간부들이 질색을 하고 바로 너를 포기할 것이다. 이강진은 백우호에게 그렇게 알려줬다.

얼추 잘 통한 것 같았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야, 강진아. 아까부터 동기들이 자꾸 나를 피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면접에서 이상한 말을 자꾸 지껄이는데. 피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강진은 그냥 백우호의 착각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생활관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이강진."

최만보 조교가 이강진을 불렀다.

"125번 훈련병, 이강진."

"중대장님이 부르신다. 따라오도록."

올 게 왔다.

이강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최만보 조교의 뒤를 따랐다.

중대장실로 향한 이강진.

"충성!"

"충성. 거기 앉아라."

그는 중대장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너를 부른 이유는······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알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조교 건 때문이었다.

"부담 가지지 말고 네 생각을 들려줬으면 좋겠군. 하기 싫다고 해도 뭐라고 할 생각 없으니까."

이강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고민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전 조교 할 체질은 아닌가 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