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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1화 (31/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1화

제11화. 퇴소 (2)

중대장의 눈빛에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음······ 그렇군. 내심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내가 너무 일찍 김칫국을 마셨구먼."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죄송할 필요 없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거절해도 너를 크게 뭐라고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아무리 군대가 자율성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라고 해도 이런 건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난 생각하거든. 적성 검사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잖나. 본인이 복무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에 배치해주는 게 당연히 좋지."

맞는 말이다.

체질과 더불어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 이것까지 고려한 인사 배치가 효율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대장은 이강진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듣자하니 GOP, GP 쪽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 같다고 하던데. 혹시 가고 싶은 부대가 있나?"

"예."

1지망으로 꼽는 곳이 있었다.

바로······.

"1075대대입니다."

이강진이 회귀하기 전에 복무했던 그곳이다.

중대장은 약간 의아했다.

1075대대. 특별한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좋은 곳도 아닌 그냥저냥 무난한 곳이다.

1지망으로 삼기에는 특색이나 메리트가 딱히 보이지 않았기에 왜 이강진이 이곳을 원하는지 궁금했다.

"1075대대에 뭔가 있나 보군."

"제 삼촌이 예전에 1075대대에 근무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호, 그런 연이 있을 줄이야. 삼촌 분께서 그 부대 칭찬을 많이 했었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삼촌 이야기는 그저 둘러대기용에 불과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내 선임이 될, 그리고 내 부대의 간부가 될 사람들이 누군지 난 다 알고 있지.’

그 사람들의 취향, 타입, 성격 등.

이강진은 1075대대, 그중에서도 1중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머릿속에 전부 다 입력해놓았다.

여자 이야기를 좋아하는 선임이 누군지, 어느 선임이 어느 게임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행보관이 주식에 얼마를 넣어뒀는지. 이런 사소한 것까지 다 알고 있었다.

이 데이터베이스만 있다면······.

‘내 마음대로 그들을 지지고 볶고 다 할 수 있단 말씀!’

휴가도 문제될 건 없었다.

어느 타이밍에 돋보여야 깜짝 포상 휴가를 얻어낼 수 있는지 다 기억하고 있다. 그걸 노리기만 해도 이강진은 남들보다 2배······ 아니, 적어도 3배 이상 가는 휴가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병교육대 조교직을 맡았을 때 받는 휴가보다도 더 많은 휴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한때는 불안했지만, 지금의 이강진은 2번째 군생활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다.

‘기다려라, 1075대대! 나, 이강진이 간다!’

그는 이미 1075대대의 전설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 * *

훈련소 퇴소까지 D-1.

이제 내일이면 정들었던 훈련소에서 퇴소하게 된다.

오전, 오후 내내 정신교육 일정을 마친 훈련병들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전역 때까지 이곳 19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만 받다가 끝날 거 같은 기분이었는데. 벌써 퇴소일이 다가온 것이다.

훈련소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할 피날레 이벤트가 남아 있었다.

바로 ‘현무인의 밤’이다.

현무중대로 입소한 훈련병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뒤풀이 행사로, 훈련소에서 느껴보지 못한 축제 분위기를 이곳에서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오와 열을 맞춘 채 자리에 앉은 훈련병들.

단상 위로 최만보 조교가 모습을 보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조교 목소리 잘 들리나?"

"예!"

"잘 들립니다!"

너무 잘 들려서 탈이었다.

최만보 조교는 헛기침을 한 차례 한 후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럼 지금부터 156기 현무인의 밤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중대장님, 올라오시면 됩니다."

현무중대 중대장, 윤일원 대위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자, 전체 주목!"

"주목!"

"현무인의 밤이라고 해서 아마 너희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행사일 거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냥 이 순간만큼은 웃고 떠들고 즐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군인으로서의 격식을 갖추면서 충분히 즐기고. 또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회포를 풀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다시 최만보 조교에게 마이크를 넘긴 중대장.

현무인의 밤을 축하하기 위해 천주교 종교행사에서 맹활약을 했던 군인 밴드가 등장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그 미녀 삼총사는 어디 갔어?"

백우호의 물음에 이강진은 이렇게 답했다.

"종교행사가 아니니까 안 왔겠지."

"쳇!"

미녀 삼총사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훈련병들은 점점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 흥에 취했다.

나중에는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중간에 인상적인 추임새가 있었다.

"나를 떠나보낸 당신~ 하나둘셋넷!"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울려 퍼졌던 그 구호를 이곳에서 추임새로 활용한 것이다.

군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추임새와 함께 광란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음악에 몸을 맡긴지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

훈련병들의 장기자랑 순서도 같이 시작되었다.

최만보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외쳤다.

"가장 반응이 좋은 훈련병에게는 중대장님이 상점 부여하신다고 한다! 어서 나와라!"

"······!"

상점이라는 말에 훈련병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상점 5점밖에 안 될 텐데.’

다른 훈련병이 5점을 가져가봤자 이강진의 1위 자리를 넘볼 수는 없다. 이것이 승리자의 여유다.

하나 백우호는 달랐다.

"126번 훈련병, 백우호!"

목이 터져라 외친 백우호는 겨우 마이크를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상점에 목마른 백우호가 펼친 장기자랑은 바로 자신의 특기인 랩이었다.

"군대 관련 소재로 노래를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그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랍 더 비트!"

훈련소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든 노래.

빠른 비트와 가사 속에서 강인함, 그리고 힘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좋았다.

‘괜찮은데?’

이강진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왔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랩에 대해 잘 모르는 중대장조차 어깨를 들썩일 정도였다.

마무리까지 완벽했다.

훈련병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백우호는 모자를 벗어재끼면서 훈련병들의 환호성을 좀 더 이끌어냈다.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큰 일조를 했다.

중대장은 백우호를 가리켰다.

"126번. 아주 재미있는 무대였다. 보답으로 이 중대장이 특별히 상점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이강진 못지않게 백우호도 기회가 오면 확실하게 붙잡을 줄 아는 남자였다.

* * *

현무인의 밤, 마지막 차례가 도래했다.

"특별히 준비한 영상이 있으니, 이것을 보고 오늘 행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최만보 조교의 신호에 따라 VTR이 재생되었다.

현무중대 소속 조교들이 모두 나와서 한 명씩 소감을 말하는 영상이었다.

조교들이 나올 때마다 훈련병들은 열광했다.

도중에 몇몇 훈련병들은 눈물을 보였다.

3소대 조교, 서기준 병장의 차례다.

-영상, 나오고 있는 거 맞지?

-예, 맞습니다.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래? 어흠······ 3소대 애들아. 그동안 훈련 받느라 고생 정말 많았고. 사실 너희들이 내가 조교 생활하면서 마지막으로 받은 기수거든. 너희가 자대에서 굴림 당할 때 나는 아마 사회의 공기를 맛보고 있을 거다.

훈련병들은 화면에 나오는 서기준 조교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서기준 조교도 이런 반응을 예상한 모양인지 약 올리는 것을 그만 두고 다른 이야기로 전환했다.

-군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때,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꼭 기억해둬라. 너희는 내가 받은 훈련병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가장 우수한 태도로 훈련에 임한 훈련병들이었다.

훈련소에서 보여준 모습만큼 자대에서도 열심히 한다면, 나처럼 무사히 병장 만기 제대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늘 힘내고. 언제나 너희를 응원하마. 현무중대 3소대! 파이팅!

"파이팅!!!"

훈련병들도 서기준 조교와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재미와 감동이 함께 했던 현무인의 밤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 훈련병들.

마지막 저녁 점호를 마친 후에 이들은 취침 준비를 서둘렀다.

"취침소등 하겠습니다."

취침등만 남기고 모든 불이 꺼졌다.

그때, 백우호가 훈련병들에게 몰래 이런 제안을 했다.

"얘들아. 마지막인데 그냥 보내면 쓰겠냐? 파티하자, 파티! 강진아, 너도 가만히 있지 말고 가지고 있는 건빵하고 음료 꺼내, 어서!"

"귀찮게······."

말은 싫다고 하지만, 그래도 몸은 백우호의 파티 계획에 따르고 있었다.

대략 10여명 정도 되는 훈련병들이 한 곳에 모였다. 불침번을 맡은 김철수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조교님 오면 어쩌려고?"

이강진의 한 마디가 김철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줬다.

"안 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이강진이 ‘그렇다.’라고 하면 그런 거고, ‘아니다.’라고 하면 아닌 거다. 여태껏 그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제야 김철도 안심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망보기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대신, 백우호가 약간의 건빵과 음료수 캔 하나를 김철에게 가져다줬다.

"철아, 여기."

"아,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마지못해 못 이기는 척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분위기메이커, 백우호를 따라 훈련병들은 보급 받은 맛스타를 들어올렸다.

"건배!"

짠!

경쾌한 마찰음이 들렸다.

이강진은 이런 걸 주도적으로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때에는 백우호가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끌어올렸다.

훈련소 입소를 시작으로 PRI, 실사격 훈련, 화생방, 그리고 각개전투와 행군까지.

이제는 추억이 된 훈련들을 거론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도중에 훈련병 중 한 명이 이런 제안을 했다.

"얘들아! 우리, 서로 연락처 교환하자."

"연락처? 좋지!"

"퇴소하고 나서도 꼭 연락하기다? 꼭!"

이들은 사회에서 사용하던 개인 휴대폰 번호를 적어서 서로에게 건네줬다.

이강진도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거나 아니면 다른 훈련병들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았다.

하나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도 실제로 연락 오는 놈들 하나 없었지.’

자대라면 몰라도 훈련소 때 만났던 동기들과 연락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퇴소하자마자 서로의 부대가 어디인지 알릴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휴가나 외박, 외출을 맞춰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락이 어려워지니 마음도, 그리고 이때 당시 가졌던 ‘꼭 연락하자!’ 약속도 자연스럽게 잊혀져 간다.

그래도 이강진은 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어쩌면 훈련소 동기들과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자리를 지금, 충분히 즐겨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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