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2화
제11화. 퇴소 (3)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마지막이라서 그런 걸까. 오늘의 아침은 굉장히 호화스럽게 나왔다.
군대 아침 메뉴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비엔나소시지가 나온 것이다.
심지어 배식도 넉넉하게 해줬다. 밥 한 숟가락에 비엔나소시지를 하나 얹어서 다 먹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부식으로 나온 우유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은 뒤.
훈련병들은 짐 정리에 돌입했다.
더블백에 자신의 짐을 모조리 쑤셔 박았다. 군장처럼 주머니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따리처럼 되어 있는 구조였기에 많은 양의 보급품들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짐 정리를 끝마친 후에 하나둘씩 연병장으로 집합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에 퇴소식 일정이 잡혀 있다.
훈련병들이 오와 열을 맞추는 사이에 이강진은 서기준 조교로부터 식순 교육을 받았다.
"입소식 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입소식 순서에 우수 훈련병 표창 수여식하고 이등병 계급장 수여식, 이렇게 두 개만 추가되는 거니까 외우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잘할 수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서기준 조교는 이강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그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래. 너라면 마지막까지 잘해낼 수 있을 거다."
"125번 훈련병 이강진! 감사합니다!"
125번 훈련병이라는 관등성명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계급장 수여식이 끝난 뒤에는 이등병 이강진이 된다.
‘병장 만기 제대한지가 20여 년이 지났는데. 다시 이등병이라니.’
갑자기 급 현기증이 몰려오는 듯했다.
입에서는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잘 버텼다. 일단 튜토리얼을 끝냈으니, 가서 본 게임만 무사히 클리어하면 된다.
전역 때까지만 버틴다면, 성공으로 꾸며진 탄탄대로가 이강진을 기다릴 것이다.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한 차례의 리허설을 가졌다.
입소식 때 했던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퇴소식 때 특별히 추가된 이등병 계급장 수여식까지.
가장 앞에 서 있는 훈련병들부터 차례로 간부들이 돌면서 이등병 계급장을 직접 달아준다. 이강진의 경우는 대대장이 직접 달아주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후우."
한 차례 깊은 호흡을 내쉰 이강진.
훈련소 생활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입소식에 이어 퇴소식 신고자 역할까지 맡아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맨 뒷줄에 서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신병교육대 현무중대라면 누구나 다 알아주는 특급 에이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전방을 주시했다.
"대대장님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익숙한 나팔 소리가 대대장의 입장을 널리 알렸다. 그에 따라 간부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아들의 퇴소식을 지켜보기 위해서 멀리까지 온 부모들도 대대장의 입장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불행하게도 이강진의 어머니는 일이 바쁜 탓에 오지 못했다.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차렷 자세를 취하는 훈련병들.
"부대~ 차렷!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 성!"
그 어느 때보다도 기합이 바짝 들어간 외침이었다.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들의 거수경례에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대대장은 흡족한 미소를 내내 유지했다.
이어 이강진이 다시 한 번 목청을 높였다.
"신고합니다! 이강진 외 257명은 2013년 2월 21 19사단 신병교육대 퇴소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 성!"
대대장은 이들의 거수경례를 받아줬다. 뒤이어 배경음이 깔리면서 대대장은 좌, 우측으로 천천히 훈련병들을 훑었다.
이후에 애국가 제창과 선서 등의 식순을 진행했다.
다음은 대대장의 훈시 차례다.
"가장 먼저 156기 현무중대 인원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이곳 신병교육대를 퇴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거듭 강조하지만 군대는 다 필요 없고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지금은 비록 군인이지만,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부모님의 아들이며 여자 친구의 사랑스러운 애인, 그리고 친구들의 동료다. 그분들을 위해서 병사들을 몸 건강히, 그리고 무사히 전역시키는 것이 이 대대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백 번 옳은 말이었다.
군대에서 다치면 그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제대로 된 보상조차 안 해주는 곳이 군대인데, 결국 다치면 자기 손해다.
그래서일까. 대대장은 계속해서 무사고를 강조했다.
"자대에 가서도 자신의 몸과 건강은 스스로가 챙긴다는 마음가짐으로 군생활에 임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리고 퇴소를 축하한다. 이상!"
"부대~ 차렷!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대대장에게 하는 마지막 거수경례.
훈시가 끝난 뒤에 최우수 훈련병 수상식이 이어졌다.
볼 것도 없이 이강진이 선정되었다.
단상으로 올라온 이강진은 포상휴가증이라 적힌 상장을 받았다.
대대장은 이강진의 등을 토닥여줬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아직 자대 전입도 안 했는데 벌써 포상휴가를 받았다.
뒤에서 훈련병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강진이 승리자다.
* * *
이등병 계급장을 받게 된 훈련병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계급장을 바로 부착했다.
계급장을 단 백우호는 기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작대기 하나 달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하나 달기도 힘든데, 네 개는 어떻게 달까.
의가사제대가 아닌 이상, 보통은 병장까지 지급하고 나서야 전역을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들이 수집해야 할 작대기는 세 개.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칠흑 같은 암흑뿐이었다면, 지금은 작대기 하나로 인해서 아주 약간이나마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퇴소식을 마친 훈련병들은 각자 향할 부대를 배정받게 되었다.
최만보 조교는 우선 김철을 먼저 불렀다.
"김철."
"124번 훈련병, 김철!"
관등성명을 들은 순간, 최만보 조교는 피식 웃었다.
"너, 이제 124번 아니야. 이등병이잖아. 다시 해 봐."
"죄, 죄송합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에 새롭게 부여받은 관등성명을 읊었다.
"이병 김철!"
"나와서 받아가도록."
자대가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다.
다음은 이강진의 차례다.
"이강진."
이강진은 번호가 아닌 계급으로 자신의 관등성명을 댔다.
"이병 이강진!"
다른 훈련병들은 김철처럼 아직도 번호와 이름을 대는 실수를 연발했지만, 이강진은 확실하게 이등병 계급을 붙여 자신의 관등성명을 완성시켰다.
최만보 조교에게 받은 쪽지를 바로 펼쳤다.
[1075대대]
역시.
이강진의 예상이 제대로 적중했다.
회귀 이전에도 1075대대로 전입했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면, 이강진은 1중대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강진만이 아니었다.
백우호도, 그리고 김철도. 1075대대라 적힌 쪽지를 받았다.
"오, 우리 셋이 같은 대대네!"
백우호와 김철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대대는 같지만, 중대는 이강진과 백우호. 이렇게 둘만 배치될 것이다. 김철은 본부중대, 혹은 2중대로 발령받을 터.
모든 훈련병들이 자신이 배정받은 자대를 확인했다.
더블백을 들고서 막사 아래로 향하는 훈련병들.
대대 명칭이 적힌 팻말 뒤로 나란히 정렬했다.
1075대대 쪽에는 서기준 조교가 섰다.
"조금 있으면 각 대대 쪽에서 너희들을 데리러 올 거다. 그때까지 더블백 내려놓고 쉬고 있어라."
순간 훈련병들이 외쳤다.
"조교님!"
"같이 사진 안 찍습니까?"
"다른 소대 보니까 조교님들하고 사진 찍던데. 저희도 찍지 말입니다!"
서기준 조교는 그들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얌마. 사진은 무슨······."
하나 최만보 조교와 류승역 조교의 생각은 달랐다.
"서뱀. 한 번 찍자."
"마지막 기수들이잖아? 현무중대 조교 타이틀 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텐데. 괜히 폼 잡다가 안 찍고 전역하면 분명 후회한다고."
같은 조교들까지 합세했다. 결국 서기준 조교는 못이기는 척 사진 찍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사진은 신병교육대 정훈병이 직접 찍어주기로 했다.
"자, 찍습니다! 하나둘셋 하면 치즈 외치면 됩니다. 하나둘셋!"
"치~즈!"
찰칵!
156기 현무중대 3소대의 단체 사진이 완성되었다.
포즈도 제각각이었다. 몇몇은 타이밍에 맞춰서 모자를 공중에 던져올렸다. 백우호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다른 훈련병들은 거수경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 촬영까지 마친 후에 서기준 조교는 다시 줄을 세웠다.
"훈련소 퇴소하기 전까지 품위 유지해라. 마음껏 떠드는 것도 좋지만, 너무 지나치게 소란 피우면 중대장님께서 화내실 수도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병사 중 일부가 서기준 조교에게 다가왔다.
"조교님, 혹시 전화번호 적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가면 꼭 연락하겠습니다!"
사진 촬영 이후에 번호 요구까지.
서기준 조교는 쓴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들아. 나는 여자가 번호 알려달라고 해도 안 알려주는 남자야. 사내 녀석들에게 뭣 하러 번호 알려 주냐."
"에이, 그래도 알려주시지 말입니다!"
"안 알려주시면 부대에 물어봐서라도 알아낼 겁니다!"
협박(?) 멘트가 난무했다. 결국 서기준 조교는 훈련병들에게 자신의 번호를 남겼다.
"휴가 나오면 연락해라. 술이라도 사줄 테니까."
"예!"
"강진아, 너도."
이강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훗날을 기약하는 병사들.
때마침 위병소를 통과해 이곳으로 오는 차량들이 보였다.
이 순간, 병사들은 깨달았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 * *
훈련병들을 한 명씩 떠나보내던 이강진 트리오도 어느새 1075대대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군용 트럭 뒤에 더블백을 먼저 올려놓았다. 그 뒤에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선탑자로 온 하사가 병사들에게 물었다.
"하나, 둘, 셋······ 열 넷. 오케이. 다 탔지?"
"네!"
"좋아, 출발한다."
부릉!
차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병사들은 멀어져가는 조교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조교들 또한 거수경례로 그들을 떠나보냈다.
5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신병교육대.
위병소를 통과하고 나서야 병사들은 알아차렸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백우호가 혼잣말을 흘렸다.
"하······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진짜 기분 묘하네."
원래 이별이라는 게 다 그렇다.
두 번 다시 못 볼 신병교육대를 뒤로한 채 도로 한 가운데에 들어서게 된 군용 트럭.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병사들은 덜컹거림에 몸이 튕겨나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김철이 다급하게 물었다.
"안전벨트 같은 거 없어?!"
"있을 리가 있겠냐."
군대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
이미 적응이 된 이강진은 같이 탄 병사들과 다르게 아주 편안한 자세를 유지했다.
앞으로 지겹도록 타고 다니게 될 차다.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
차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했을 때.
위병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위병소 위에는 ‘내 목숨, 조국을 위해!’라는 짧고 강렬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강진에게는 매우 익숙한 글자였다.
‘결국 또 오고야 말았구나!’
전역했던 이강진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