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4화
제12화. 또 왔다 (2)
박우원 중위.
성태원 소위와 마찬가지로 같은 소대장 직책을 맡고 있으며······.
소대장 중에서도 가장 짬이 높은 남자이기도 했다.
고작 신병 데리러 오는데 중위가 나섰다?
이강진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신병들 최대한 많이 데리고 오려고 2중대 소대장이 왔었지.’
좀 더 많은, 그리고 우수한 신병을 데려가기 위한 기싸움이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성태원 소위가 박우원 중위보다 짬으로 봐도, 계급으로 봐도 안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인사장교인 장민철 중위보다도 윗 기수였다.
인사과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쭉 눈으로 스캔을 마친 박우원 중위.
그는 씨익 웃었다.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캐치했기 때문이다.
"민철아."
"중위 장민철!"
"신병 많이 들어왔다며? 우리한테 많이 좀 줘. 안 그래도 사람 없어서 지금 우리 애들 죽기 일보직전이거든."
"하지만 1중대도······."
인사장교는 그래도 1중대를 챙겨주려고 노력은 해봤다.
하지만.
"어허! 너무 1중대만 챙겨주는 거 아니야? 장민철. 이렇게 나오면 섭섭하지!"
"······."
박우원 중위는 성태원 소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태원아."
"소위 성태원!"
"1중대가 사람이 그렇게 부족해? 저번 달에도 신병들 많이 데려가지 않았어?"
"저번 달은 3중대가······."
"그럼 이번 달에는 우리 2중대한테 양보하고, 다음 달에 1중대가 가져가면 되겠네. 어때? 콜?"
"그건······."
짬에서 밀린다. 계급에서 밀린다. 심지어 말빨에서도 밀린다!
마음 같으면 이강진이 성태원 소위에게 지원군으로 붙고 싶었지만, 지금 그의 신분은 이등병이다. 게다가 이제 막 자대 전입을 명받은 신병이다. 그런 위치에서 장교들간의 기싸움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승기는 점점 박우원 중위에게 쏠리는 듯했다.
하나 변수가 발생했다.
인사과의 문이 열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남자의 계급장으로 향했다.
다이아몬드가 자그마치 세 개!
"추, 충성!"
박우원 중위가 허겁지겁 거수경례를 펼쳤다.
그의 거수경례를 받아주는 남자.
3중대 중대장, 나영훈이다.
그가 인사과에 무슨 일일까?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영훈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인사장교를 불렀다.
"민철아."
"중위 장민철!"
"이번에 신병 많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우리 3중대 쪽으로 애들 좀 많이 배정해주면 안 되겠냐?"
중대장이 직접 나섰다!
한 개 중대의 총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중대장이 떴으니, 이번 싸움은 3중대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이강진은 아쉬움을 삼켰다.
‘1중대도 중대장님이 직접 왔다면 좋았을 텐데.’
1중대 중대장이 다른 중대장들에 비해서 가장 짬이 높다.
아니면 하다못해 행보관이라도 왔다면 그대로 게임은 끝이다.
하지만 그전에 3중대 중대장이 먼저 선수를 치고 말았다.
이 싸움은 이대로 3중대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마지막 반전이 남아 있지!’
머지않아 등장할 ‘그분’을 기다리기로 했다.
때마침 또 다시 문이 열렸다. 오늘따라 인사과의 문이 참으로 바쁘게 열었다 닫혔다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조커 카드는 없다.
변수는 없으리라······ 라고 생각했건만.
"충! 성!"
3중대 중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1075대대의 끝판왕.
"음, 충성."
대대장이 강림했다.
* * *
인사과는 난리도 아니었다.
소위, 중위, 대위, 그리고 중령까지.
인사과에서 장교 정모라도 펼치는 모양인지 이 좁은 인사과에서 옹기총기 잘도 모여 있었다.
대대장은 장교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너희들은 왜 여기에 모여 있나."
"대위 나영훈! 신병들 데리고 가려고 왔습니다!"
"신병들 때문에 중대장이 직접 왔다고?"
"처, 첫 만남 때부터 병사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제가 직접 왔습니다!"
듣기 좋은 핑계였다.
하나 대대장은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인사장교가 대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대장님, 인사과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주임원사가 인사과에서 좀 보자고 해서. 근데 아직 안 오셨군. 가만, 여기 병력들이 신병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어느 부대에 몇 명 분배할지 정해졌나?"
"이제 막 분배 작업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신병을 필요로 하는 중대가 많은 거 같습니다."
"그래?"
대대장이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럼 공평하게 나눠줘. 어느 한 쪽에 다 몰아주면 다른 중대가 힘들어질 테니까."
솔로몬 뺨치는 대대장의 결단이었다.
결국 대대장의 난입으로 인해 장교들의 기싸움은 강제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 * *
1중대는 결국 3명의 신병을 차지하게 되었다.
누가, 어느 중대로 가느냐. 이것 또한 굉장히 중요했다.
이때 중대장이 한 말이 있었다.
어느 중대로 갈지는 신병들에게 맡겨보자고 한 것이다.
이강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것도 이강진이 기억하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대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강진은 신병들 중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이병 이강진! 1중대 가고 싶습니다!"
대대장이 띄워준 배에 얌전히 승선만 하면 된다.
이강진이 간다면 그의 전우조도 따라간다.
백우호, 김철도 이강진과 함께 1중대에 가고 싶다고 어필했다.
이렇게 해서 총 세 명이 1중대행을 결정지었다.
각자 짐을 짊어진 채 성태원 소위의 뒤를 따랐다.
소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내가 적어도 일곱 명은 데려간다고 했는데.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혼잣말을 흘렸다. 그 말을 들은 이강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 명 데려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여겨야 합니다, 소대장님.’
자칫 잘못하면 다른 중대에게 신병들 다 빼앗길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대장이 갑자기 난입을 했기에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인사과 대전(?)을 끝마친 뒤에 이들은 1중대로 바로 향했다.
막사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1중대 막사인가?"
김철이 물었다. 순간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어, 맞아."
"응?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냥······ 사열대에 1중대라고 적혀 있어서. 그거 보고 알았지."
"아, 그래?"
사실 거짓말이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그래도 얼추 잘 넘겼다.
소대장과 신병 3인방은 행정반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공간.
이강진은 근 20여년 만에 다시 보게 된 1중대 행정반의 모습에 이강진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립기도 하고, 쌍욕도 같이 튀어나올 거 같기도 하고. 미묘하다.
행정반에 들어선 순간, 이강진이 잘 아는 인물들이 이들을 반겼다.
"오, 신병들! 드디어 왔네."
"옆에 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있어라. 곧 행보관님 오신다니까."
전마등 병장과 정일문 일병이었다.
이강진과 백우호, 김철은 행정병인 정일문 일병의 지시대로 짐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팔은 쭉 뻗어 무릎 끝에 붙였다. 자대에 처음 전입했을 때 볼 수 있는 신병 특유의 자세가 펼쳐졌다.
잠시 후.
배불뚝이 남자가 행정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1중대 행정보급관이었다.
그는 신병 셋을 쭉 훑어보더니 이내 소대장을 찾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소대장님."
"아닙니다. 그보다 죄송합니다, 행보관님. 설마 중대장님까지 보내서 신병들을 독차지하려고 할 줄은······."
"허허허, 들었습니다. 때마침 대대장님이 오셔서 중재해주셨다고요?"
"아, 네. 타이밍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군요. 허허."
순간 이강진은 행보관의 어투에 집중했다.
‘설마 행보관님이?’
뭔가를 숨기는 그런 낌새였다.
이강진의 감은 정확했다.
사실 대대장이 인사과로 향하게끔 뒤에서 계획을 꾸민 인물이 바로 행보관이었다.
행보관은 소대장이 인사과 대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거란 사실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임원사에게 연락해서 대대장을 인사과로 끌어들이게끔 유도를 했다.
행보관이 아는 대대장의 성격대로라면, 그가 어느 한 중대가 신병을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중재를 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행보관의 모험수는 제대로 통했다.
그러나 행보관은 자신이 뒤에서 이런 일을 꾸몄다는 사실을 구태여 언급하지 않았다. 소대장을 위해서였다.
행보관은 소대장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 후에 전마등을 불렀다.
"당직."
"병장 전마등."
"행보관실에서 신병들 면담 진행할 거니까 한 명씩 들여보내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누가 먼저 들어갈래?"
백우호와 김철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럴 때에는 항상 이강진이 첫 스타트를 끊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병 이강진!"
"오, 적극적이네. 이런 적극성, 우리 분대에 아주 필요하지. 그래, 들어가 봐라."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전마등 병장을 지나치고서 행보관실로 향했다.
한때 이 지긋지긋한 군생활을 함께 했던 전우들.
이들과 다시 조우하게 되니 기분이 너무 묘했다.
* * *
2분대에 소속되어 있는 김명찬 병장.
그는 2주 후에 전역일을 맞이할 예정인 말년병장이었다.
다른 병사들이 바깥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동안에도 김명찬 병장은 간부들 몰래 생활관으로 들어와 농땡이를 부리고 있었다.
그때, 생활관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김명찬 병장은 침대 아래에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면서 일병 한 명과 상병 한 명이 나란히 생활관에 들어섰다.
그들을 보자마자 김명찬 병장은 짜증을 냈다.
"아이, 씨. 너희들이었냐?"
"김명찬 병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행보관님이 엄청 찾았지 말입니다."
말년병장의 천적이 바로 행보관이다. 김명찬 병장은 행보관이 그를 찾고 있다는 말에 몸서리를 쳤다.
"그래서 안 들키게끔 여기저기 도망 다니고 있는 거잖아. 행보관님은 어디 계시냐?"
행보관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둬야 요리조리 잘 피해 도망칠 수 있다.
"지금 행정반에 계십니다."
"뭐하시는데?"
"신병들 면담하고 계시는 거 같았습니다."
"······음? 신병?"
순간 김명찬 병장의 눈과 귀가 번뜩였다.
"우리 중대에 신병이 들어왔다고?"
"예. 3명 정도 들어온 거 같습니다."
이게 얼마 만에 신병이란 말인가!
신병 가뭄 현상에서 마침내 탈출하게 된 1중대.
그 순간, 김명찬 병장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신병이 왔단 말이지······."
안 좋은 예감이 든 모양인지 안준렬 상병이 김명찬 병장에게 말했다.
"김명찬 병장님. 이상한 짓 하시면 안 됩니다. 저번 달에 마음의 편지로 누가 우리 중대 선임급들 다 저격해서 부대 분위기 완전 별로인 거 아시지 말입니다?"
"알지. 아니까 분위기를 전환시킬 만한 계기가 필요한 거잖아. 준렬아. 이등병들 야상 좀 줘 봐. 아무거나."
"뭐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불안감이 점점 상승했다.
얌전히 있어주는 게 도움이 되거늘. 김명찬 병장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김명찬 병장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신병놀이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