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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9화 (39/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9화

제14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1)

백우호는 최대한 귀를 기울인 채 화장실 벽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냥 이거 그대로 던지고 오면 됩니까?"

"어. 녀석들 꼴 뵈기 싫어 죽겠는데, 이렇게라도 괴롭혀야지. 안 그러냐?"

"그러다가 전마등 병장한테 들키면 어떻게 합니까?"

순간 최승헌 병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쭈. 내가 위냐, 전마등이 위냐?"

"최, 최승헌 병장님이 위지 말입니다!"

"앞으로 조심해라. 순간 옛날 성격 나올 뻔했으니까."

"예! 죄송합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게 된 것인지. 백우호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걸 어쩌지?!’

일단 나가서 이강진에게 상담을 구해보기로 했다.

쏴아아!

화장실 물을 내리고 바지를 빠르게 입었다. 이강진은 김철과 화장실 입구에서 백우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 강진아! 큰일······."

"아, 여기 있었네. 거기 신병들!"

당직병이 도중에 찾은 탓에 백우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대대장님하고 저녁 회식할 거니까 바로 내려갈 준비해라."

"예, 알겠습니다!"

당직병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강진은 백우호에게 아까 하고자 했던 말이 뭔지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그게······."

말을 하려고 했으나, 주변에 듣는 귀가 너무 많았다.

지금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말이다.

"나중에 조용히 둘이서 이야기하자."

"······."

이강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이리도 눈치를 보면서 말을 하는 걸까.

* * *

대대장과의 회식은 말 그대로 고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산처럼 쌓여 있는 삼겹살이 신병들의 눈을 휘어잡았다.

천하의 이강진조차 삼겹살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대대장은 열네 명의 신병 중에서 김철을 지목했다.

"거기 자네."

"이병 김철!"

"아까 면담 진행할 때 웹툰 작가라고 하지 않았었나?"

"정식 작가는 아닙니다. 작가 지망생입니다."

"허허, 그러면 나중에 여기 부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웹툰으로 그리고 그럴 때도 있겠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대장님을 아주 멋스럽게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지, 좋아!"

신병교육대에 거쳐서 자대 생활까지 발을 들이게 된 덕분일까. 김철의 입에서 사탕발림이라는 게 나올 때가 있었다.

이강진은 그런 김철을 보면서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장소가 사람에 맞춰서 변화하지 않는다.

사람이 장소에 맞춰서 변화한다.

그곳이 바로 군대다.

‘하긴. 나도 예전에는 그랬으니까.’

삼겹살 두 개를 상추에 싼 뒤에 쌈장과 마늘, 고추까지 넣은 후에 그것을 통째로 삼켰다.

우물우물.

입 안이 행복으로 가득 차는 기분을 느꼈다.

사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삼겹살. 하지만 군대에서 삼겹살은 웬만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다.

그 흔한 치킨, 피자도 이곳에서는 희귀종이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 정신없이 먹어둬야 한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백우호가 조용히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아까 하려고 하던 이야기 있는데······."

"어, 뭔데?"

대대장이 앉아 있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들리지 않을 터.

이들 주변에는 타 부대에 가 있는 동기들밖에 없었다. 오히려 지금이 말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쓰레기 마구잡이로 버리는 범인 있잖아······ 누군지 알아냈어."

"뭐? 누군데."

이강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귀하기 전 때의 경우에는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그것도 백우호가 알아냈다고 하니까 놀라는 게 당연했다.

"그, 뭐였더라······ 최승헌 병장님이라는 분이 그냥 쓰레기 분리수거 하지 말고 버리라고 지시하던데."

"최승헌 병장이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최승헌 병장.

3분대에 소속되어 있는 남자며, 1분대를 굉장히 싫어했다.

이유도 얼추 기억한다.

상병 때 최승헌이 모종의 실수로 인해서 1분대 분대장에게 다량으로 경고카드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3분대는 5개월 동안 분리수거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칭찬카드, 경고카드는 간부뿐만 아니라 분대장 자격을 가지고 있는 각 분과의 선임급 병사도 줄 수 있다. 그러다보니 간혹 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칭찬카드 교환이 생기곤 했다.

하나 최승헌이 받았던 경고카드는 순전히 자신이 잘못해서 받은 거였다. 그러나 최승헌은 1분대가 자기를······ 아니, 3분대를 싫어해서 일부러 트집을 잡아 경고카드를 몰아준 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최승헌 병장이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벌이고도 남을 녀석이긴 하지.’

아주 간단한 말로 인격 파탄자다. 김명찬 병장보다도 더 악독하고 심하다. 이 정도면 말 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꼴통 녀석이 저지른 거였군!’

20여년이 지난 지금, 진범이 밝혀졌다.

* * *

대대장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이강진과 백우호.

"대대장님 회식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강진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하면서 전마등 병장에게 신고했다.

전마등 병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거수경례를 받아줬다.

"고생했다. 대대장님 앞에서 말실수 한 건 없고?"

"예,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조금 있으면 청소 시간이니까 앉아서 쉬다가 분리수거장으로 올라가라."

"예, 알겠습니다!"

전투복에서 활동복으로 환복하는 동안, 백우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강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게? 말씀 드릴 거야?"

이강진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전마등 병장님한테는 말 안 할 거야."

"그럼 누구한테 말하게?"

"서일주 이병님이나 아니면 황지웅 일병님한테."

군대의 보고 체계를 무시할 순 없다. 중간계급을 건너뛰고 바로 상급자한테 보고했다간 오히려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잠시 후.

청소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 병력은 청소구역으로 가서 청소 실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다녀와라, 애들아."

전마등 병장의 배웅을 뒤로하고 신병들은 황지웅 일병과 함께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분리수거장에 도착했을 때,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서일주 이병도 금세 튀어나왔다.

황지웅과 서일주는 신병 둘과 함께 분리수거장을 정리했다.

그때, 이강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황지웅 일병님, 서일주 이병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뭔데?"

황지웅 일병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분리수거 범인, 찾았습니다."

"뭐?"

"지, 진짜?!"

두 사람의 귀가 번뜩였다.

* * *

이강진은 백우호가 들었다는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들려줬다.

"최승헌 병장님이······."

"하긴. 신병 말이 일리가 있지 말입니다, 황지웅 일병님. 저번에도 최승헌 병장님이 저희 물 먹이려고 한 거, 몇 번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미수로 끝나긴 했지만."

트집 잡을 만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

하나 상대는 병장급이다.

황지웅 일병이 손대기에는 너무 거물급이었다.

"일단 내가 전마등 병장님한테 말씀드려볼게. 너희는 여기서 뒷정리 하고 있어 봐."

"예, 알겠습니다."

생활관으로 향하는 황지웅 일병.

그러나 이강진은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거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최승헌 병장은 전마등 병장보다 선임일 텐데.’

전마등 병장이 5월 군번, 최승헌 병장이 3월 군번이다. 2개월가량 선임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마등이라 하더라도 뭐라고 크게 말을 못할 터.

그렇다고 빤히 알면서도 계속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강진은 백우호가 알아낸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기로 한 것이다.

‘일찌감치 뒷작업을 해둬야겠어.’

전마등이 해결하지 못할 거 같으면······.

이강진이 손을 쓸 수밖에 없다.

* * *

저녁 점호 전에 가지는 분과별 간담회에서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된 전마등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일 3분대에 가서 이야기해보마."

안준렬 상병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최승헌 병장한테 직접 가실 겁니까? 그 인간, 워낙 개차반이어서 전마등 병장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만."

"분대장은 그 인간이 아니니까."

지금 3분대 분대장은 박이율 병장이다.

전마등 병장과 동기다. 박이율은 그래도 말이 통한다. 그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최승헌 병장 관리 좀 해달라고 말하면 잘 해줄 터.

하지만.

‘글쎄. 난 반대인데.’

이강진의 생각은 달랐다.

최승헌. 그자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 * *

전마등 병장은 이른 아침부터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 3분대 최승헌 병장이 1분대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

"아, 씨발. 왜 또 당직이야."

당직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전마등 병장은 또 당직 완장을 차게 되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행정병, 정일문 일병은 쓴웃음을 흘렸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마등 병장님. 지금 선임급이 너무 없어서 전마등 병장님도 로테이션에서 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 알아. 안다고. 아니까 더 그지 같은 거잖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때마침 사열대 앞에선 행보관의 작업 인원 분류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도 이강진과 신병 셋은 1생활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병력들이 해산함과 동시에 전마등이 바로 자리를 떴다.

"일문아. 나, 잠깐 3생활관 갔다 온다."

"잘 못 들었습니다?"

"3생활관 간다고. 나 찾거든 그쪽으로 바로 와줘."

"아······ 네, 알겠습니다."

기합이 잔뜩 담긴 전마등의 발걸음에 정일문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율아!"

3생활관에 등장한 전마등.

때마침 박이율은 작업복으로 환복 중이었다.

"응? 네가 웬일이냐? 그보다 너, 또 당직 달았냐?"

"사람 없대잖아. 그보다 할 말 있는데. 잠깐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둘이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었다.

괜히 일을 크게 벌였다간 중대 분위기 또 안 좋아질 수 있을 테니까.

복도로 나온 박이율은 정글모를 고쳐 쓰면서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건데. 얼굴 보니까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구먼."

"짜식, 눈치는 빨라."

"예전부터 ‘박눈치’라고 불렸던 거, 기억 안 나냐."

"그러면 왜 최승헌 병장이 우리 쪽 분리수거장에 쓰레기 마구잡이로 버리는 거는 눈치 못 챘냐."

"······!"

박이율 병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율아. 우리, 예전에도 이거 비슷한 일 있었잖아. 안 그래도 군생활 힘드니까 서로 좋게 좋게 지내자고 그냥 넘겼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하, 최뱀이 또······ 알았어. 미안하다. 일단 내가 이야기 좀 해볼게. 잠깐만."

마침 3생활관으로 들어가려던 일병 하나를 붙잡은 박이율 병장.

"지형아."

"일병 나지형!"

"최승헌 병장, 어디 있는지 알아?"

"최승헌 병장님이라면······."

나지형 일병이 손으로 반대쪽 방향을 가리켰다.

"신병들한테 볼 일 있다고 1생활관으로 갔습니다."

"뭐라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전마등과 박이율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생활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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