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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46화 (46/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46화

제15화. 첫 외곽 근무 (2)

저번 주만 하더라도 생활관에서 줄곧 대기만 했던 이강진과 백우호.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안준렬 상병이 후임급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장비들 챙기고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이들은 곧 다가올 여름 시즌을 대비해 배수로 보수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작업 주도는 안준렬 상병이 맡기로 했다.

라인혁도 작업 인원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무슨 작업을 맡을 때에는 주로 안준렬 상병이 메인이 되곤 했다.

선임, 후임 구분할 것 없이 라인혁은 두루 친하게 지낸다. 친화력이라고 하면 라인혁이다. 하지만 안준렬은 라인혁이 가지지 못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안준렬의 지시에 따라 후임들은 삽과 곡괭이를 챙겨들었다.

이강진,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뒤를 따르던 중에 백우호는 이강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 곡괭이 만져보는 건 처음이야."

"삽은?"

"만져보기야 했지. 근데 거의 만질 일 없잖아."

맞는 말이다.

도시에서 자란 경우에는 특히나 삽과 곡괭이를 더욱 만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일부러 막노동판에 나가지 않는 이상은 잡기 어려운 삽과 곡괭이.

그러나.

‘군대에서는 365일 중 364일은 만져야 하는 게 이것들이지.’

그만큼 많이 보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산언저리에 위치한 탄약고였다.

때 아닌 등산 체험을 하게 된 병사들. 그러나 외곽 근무 때문에 매번 오르던 길이라서 그런지 선임들은 무난하게 산길을 탔다.

반면, 이번이 처음인 백우호는 벌써부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헉, 헉······."

거친 호흡 소리를 들은 라인혁이 뒤를 돌아봤다.

"우호야. 벌써 지쳤냐."

"이병 백우호, 아닙니다!"

"다음 주부터 너희 외곽 근무 서기 시작하면 여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올라와야 하는데,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지. 네 동기 봐라. 멀쩡해 보이잖아."

백우호는 그 점이 신기했다.

왜 이강진은 지치지 않지?

분명 이강진도 백우호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초행길일 텐데.

하나 백우호는 알지 못했다. 이강진은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이 산을 가장 많이 탔을 거라는 사실을.

‘설마 여기를 또 오게 될 줄이야!’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입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오히려 이강진은 이것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탄약고 초소 안에 있는 근무자 중 한 명이 초소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더니 이내 장난기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김춘오 병장님. 지금 대낮입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자동차!"

"······."

안준렬 상병은 한숨을 삼켰다.

그러나 김춘오 병장은 계속해서 문어를 반복했다.

"자동차! 어서 답어 말해 봐. 설마 답어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거······."

안준렬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아니, 지적에 가까운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가 도중에 멈췄다.

이유가 있었다.

"강진아."

"이병 이강진."

"암구호, 외웠겠지?"

신병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바로 ‘암구호 미숙지’다.

1075대대에서 암구호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대대 식당에 가서 확인하거나. 혹은 행정반에 가서 확인하거나.

암구호는 점심시간인 12시를 기점으로 바뀐다.

암구호 숙지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신병교육대에서도 줄곧 강조했던 것이 바로 암구호다.

이강진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웠습니다."

"네가 한 번 대답해볼래?"

안준렬은 일부러 이강진을 시험해보려고 했다.

"이병 이강진! 하지만 그전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이강진은 안준렬이 아닌 김춘오를 향해 말했다.

"오늘의 암구호 문어는 자동차가 아니라 시계입니다."

김춘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내가 암구호를 일부러 틀리게 말했다는 거냐, 신병?"

"김춘오 병장님께서 일부러 틀리게 말씀하신 건지 아닌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오늘의 문어는 시계입니다. 자동차는 어제자 암구호 문어였습니다."

순간 김춘오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김춘오의 속셈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일부러 틀린 문어를 말했군.’

만약 이강진이 답어만 제대로 말했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상대방이 틀린 문어를 말했는데, 오늘자 답어를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랴.

김춘오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 준렬아."

"상병 안준렬."

"신병 교육 잘 시켰네. 저번 군번들은 내가 일부러 틀린 문어 말하면 그냥 속아 넘어가서 오늘자 답어 술술 이야기하던데."

안준렬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 들어온 막내들이 많이 똑똑합니다."

"왜 에이스들은 1분대가 다 독점해서 가져가는지 모르겠네. 우리 분대도 좀 나눠주지. 쳇."

이강진 덕분에 안준렬의 체면이 살았다.

안준렬은 이강진을 향해 몰래 엄지를 추켜올렸다.

잘했다.

이강진은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 * *

배수로 보수 작업에 착수한 병력들.

라인혁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구슬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휴가 복귀하자마자 배수로 작업이라니. 하아. 다음 휴가는 또 언제 나간담."

"한참 멀었잖아. 잔말 말고 후딱 땅이나 까. 속도가 너무 늦다."

"알았다고, 알았어!"

라인혁이 곡괭이로 땅을 헤집으면, 안준렬과 병력들이 삽으로 흙을 퍼 올린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작업을 반복했다.

삽은 그렇다 치더라도. 곡괭이질은 굉장히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었다.

"아구구, 허리야!"

자신의 허리를 툭툭 치는 라인혁.

안준렬은 그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가 한 번 다녀왔다고 체력이 입대 전으로 떨어지기라도 했냐?"

"그런 거 같아. 잠깐 쉴 겸 우리 막내들한테 곡괭이 한 번 쥐게 해볼까?"

"위험해. 나중에 곡괭이질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난 다음에 쥐게 해. 작년 중순에 두영이가 곡괭이질 할 줄도 모르는 후임한테 억지로 시켰다가 발등 찍혀서 병원으로 실려 간 거, 기억 안 나냐?"

"살살 시키면 되겠지. 자자, 막내 둘! 일로 와 봐라!"

기어코 이강진과 백우호를 부르는 라인혁이었다. 그의 억지스러운 모습에 안준렬의 입에서 연달아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편. 라인혁은 두 신병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애들아. 혹시 곡괭이질 해본 적 있니?"

"이병 백우호! 없습니다!"

"이병 이강진! 있습니다!"

두 사람이 상반된 대답을 들려줬다.

엄밀히 말하면 이강진은 회귀 이전에 곡괭이질을 해봤다.

그것도 군대에서 지겹도록.

"그럼 미경험자인 우호부터 먼저 해 봐. 네가 아는 곡괭이질이 어떤 건지 우선 보고 난 다음에 자세를 교정해주마."

"아, 알겠습니다!"

백우호는 곡괭이의 기다란 손잡이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한 손은 곡괭이 중간에. 다른 한 손은 곡괭이의 쇠뭉치 근처로 잡은 후.

통, 통, 통.

곡괭이를 소심하게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던 라인혁은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했다.

"준렬아, 예전에 너 곡괭이질 할 때랑 똑같은 모습 아니냐. 하하하!"

"좀 닥쳐."

개구리도 올챙이였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어엿한 상병인 안준렬도 한때는 지금의 백우호처럼 곡괭이질도 제대로 못하던 신병 시절이 있었다.

"다음, 강진이."

"이병 이강진!"

곡괭이질을 해봤던 경험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이강진.

과연 이 자신감이 허세일지 어떨지.

선임들은 팔짱을 낀 채 이강진의 곡괭이질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강진은 시작 자체가 달랐다.

양 손으로 곡괭이 손잡이를 잡았다. 곡괭이를 머리 위쪽 방향으로 높게 추켜올렸다.

위로 쭉 뻗은 곡괭이. 앞쪽을 잡았던 한 손을 떼어 곡괭이 끝부분을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내려 쳤다!

쿵!

곡괭이 끝이 정확히 지면에 박혔다.

지면에 다수의 균열이 생겼다. 라인혁이 헤집은 흙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이것을 쉼 없이, 계속해서 반복했다.

‘스킬만 있으면 곡괭이질도 할 만하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옛 기억이 몸에 스며들었다.

쿵, 쿵, 쿵!

리드미컬한 곡괭이질. 이강진은 마치 악단의 연주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곡괭이질을 하던 이강진은 행동을 멈추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직 많이 미숙합니다."

이것은 극한의 겸손함이다.

전혀 미숙하지 않았다.

선임들은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본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저 녀석······.’

‘대체 못하는 게 뭐야!’

가면 갈수록 이강진은 미스터리한 존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 * *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새 주말이 찾아왔다.

일요일 오전.

오늘은 자대에서 처음 받는 종교행사 날이다.

"강진아, 철아. 우리, 불교 한 번 가볼래?"

신병교육대에서 천주교에 꽂혀서 계속 천주교만 갔었던 백우호와 이강진.

그래서일까. 이제는 다른 종교도 가고 싶었다.

하나 김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교회 가야 해."

김철은 기독교인이다. 어쩔 수 없이 김철을 제외하고 이강진과 백우호, 이렇게 둘만 가기로 했다.

종교집합 이후에 이들은 위병소 근처에 있는 작은 절을 찾았다.

불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백우호. 이강진도 예전에는 종교행사 때문에 군대에서 한두 번 와봤을 뿐, 구체적인 진행 순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종교행사가 끝난 뒤.

이강진은 백우호에게 소감을 물었다.

"어땠냐."

"불교는 내 취향이 아닌 거 같아."

"취향이 아니라 여자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

"올~ 어떻게 알았냐?"

"니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한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강진은 백우호를 딱히 욕할 생각은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던 백우호가 아래에 위치한 교회를 가리켰다.

"야, 강진아!"

"또 왜."

"저기 저 여자! 저번에 행보관님하고 같이 목욕탕 갔을 때 봤던 그 여자 아니야?"

순간 이강진의 시선이 빠르게 교회 쪽으로 향했다.

한지윤. 그녀가 천사같은 미소로 병사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백우호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철이 말 들을 걸. 그랬으면 우리도 저기 교회에서 저 아가씨가 나눠준 초코파이 받을 수 있을 거 아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비록 이번엔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라도······.

군인들에게는 다음 주가 있다!

‘이제부터 전역할 때까지 교회만 간다!’

이강진은 결심했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 * *

이강진과 백우호가 자대에 전입한지 이제 2주차가 되었다.

오늘부로 이들은 노란 견장과 이별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막내들, 첫 외곽 근무 일정 나왔다. 행정반에 붙어 있으니까 가서 확인하고 사인해."

"예, 알겠습니다!"

라인혁의 말에 따라 이강진과 백우호는 빠르게 행정반으로 향했다.

첫 외곽 근무에 같이 나설 파트너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내 파트너는 누구였더라?’

이강진은 기억이 잘 안 났다.

직접 확인해보면 되리라.

백우호가 먼저 반응했다.

"라인혁 상병님하고 나가네. 가서 FIFA 이야기만 죽어라 할 거 같은데."

그렇다면 이강진은 과연 누구랑 나가는 걸까.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이름 세 글자.

[김명찬]

‘이런 씨발!’ 스타트가 영 좋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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