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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47화 (47/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47화

제16화. 보내는 이, 떠나는 이 (1)

같이 근무할 파트너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이강진은 혀를 차고 말았다.

‘망할.’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선임 중에서 김명찬이라니.

‘가만. 근데 김명찬 병장, 모레 전역하는데 외곽 근무 명단에 아직도 있나?’

아무리 선임급 병사가 없다 하더라도 그렇지, 전역을 불과 이틀 남겨놓고 있는 말년 병장까지 외곽 근무에 투입되는 건 좀 심해 보이긴 했다.

병력이 부족하다. 그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김명찬 병장에겐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행보관한테 제대로 찍혔으니까 근무자 명단에서 빠지고 싶어도 못 빠지나 보군.’

말년 휴가까지 전부 짬처리 당했다. 행보관의 분노를 아주 크게 사버린 탓에 김명찬은 말년에도 불구하고 물병장처럼 지내야만 했다.

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니까 신병놀이를 왜 해.’

이런 이유들이 얽히고설킨 덕분에 이강진과 김명찬이라는 조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백우호는 이강진의 타들어가는 속을 아직도 모르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물었다.

"넌 누구랑 나가는데?"

"······."

이강진은 대답 대신 손으로 김명찬의 이름을 가리켰다.

입에 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명찬의 이름을 본 순간, 백우호는 ‘푸읍!’ 하고 웃음 참는 소리를 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아이고, 내 동기! 불쌍해서 어쩌냐!"

순간 백우호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이강진이었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옆에서 자꾸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까 더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참자. 계속 근무 같이 서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만······ 아니지. 한 시간만 참으면 되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 * *

저녁 점호를 마친 후.

이강진은 바로 취침 준비를 서둘렀다.

같이 근무 나가는 파트너 대진도 최악이었지만, 근무 시간도 영 별로였다.

둘번초. 23시부터 24시까지다.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외곽근무 시간대가 23시에서 24시까지. 새벽 4시에서 5시까지. 이렇게 두 파트가 있다.

주어진 1시간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근무를 나가거나 혹은 아침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두 파트가 나란히 기피대상 1, 2위를 달렸다.

둘번초에 걸리게 되었기에 이강진은 남은 1시간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자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그때, 김명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야! 이 형, 오늘 마지막 외곽 근무니까 나가서 쌈박하게 하다가 오자.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쌈박이고 나발이고.

‘잠부터 재워줘라, 말년아!’

* * *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이강진을 부르는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진아······ 이강진······."

"······이병 이강진!"

이강진은 관등성명을 읊조리면서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불침번 근무를 선 황지웅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딱 두 번 불렀는데 일어나네. 역시 에이스야."

"······김명찬 병장님은 일어나셨습니까?"

"이제 깨워야지. 이 인간,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확신 못하겠어."

"일어나실 겁니다."

이강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행보관이 당직사관이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환복을 마친 이강진은 먼저 행정반에 들어섰다.

외곽근무에 투입되는 후임근무자는 선임근무자보다 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총기현황판에 ‘근무 투입’으로 수정해둔다. 자기 것뿐만 아니라 선임근무자 것까지 포함해서 수정해둬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이강진과 선임근무자의 이름이 적힌 말판을 탄약고 초소로 올려둔다. 간혹 말판을 안 옮기고 가는 후임근무자가 있다. 그러면 그 후임근무자는 1시간동안 고된 근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알아서 척척척.

이강진의 빠릿빠릿한 행동을 지켜보던 당직병은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잘하네. 네 동기는 총기현황판 수정하는 거 까먹어서 갈굼 받고 갔는데."

동기라고 해봤자 김철 아니면 백우호. 둘밖에 없다.

둘 중 누가 실수를 저질렀는지 이강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우호겠지.’

전번 근무자가 백우호, 라인혁 조다. 김철은 이강진의 다음 근무조에 편성되어 있다.

후번 근무자인 김철이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생활관에서 꿈나라 여행 중이니 말이다.

‘불쌍한 녀석.’

그래도 어쩌랴. 본인이 실수한 것을.

2분 정도 지났을 무렵.

행정반의 문이 열리면서 이강진과 함께 외곽 근무에 나설 김명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직병은 웃음을 흘렸다.

"김명찬 병장님, 오늘 마지막 근무시지 말입니다."

"씨발, 모레 전역인데 외곽근무 뛰는 말년이 어디 있냐. 하아."

"그러기에 왜 신병놀이 하다가 걸리셨습니까. 그것도 행보관님한테."

"그 소리 좀 그만해. 귀에 피딱지 생길 거 같다, 야."

백우호도 그렇지만, 김명찬도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당직병이 행보관실 문을 노크했다.

잠시 후. 행보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성! 병장 김명찬 외 1명, 탄약고 초소 근무 투입하겠습니다!"

"그래. 마지막 근무니까 성심성의껏 임하고 와라. 내가 불시에 갈 수도 있으니까 바짝 긴장하고."

"예, 알겠습니다!"

저건 거짓말이다.

행보관은 이강진이 군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야간에 탄약고 초소를 급습한 적이 없었다.

김명찬도 그걸 아는 모양인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K-2를 들고서 총기거치대로 향하는 두 사람.

"노리쇠 후퇴 고정."

"노리쇠 후퇴 고정!"

당직병의 말에 복명복창하는 이는 이강진밖에 없었다. 김명찬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총기를 비스듬하게 세워놓은 채 늘어지게 하품만 했다.

"조정간 안전."

"조정간 안전! 이상 무."

"근무 투입."

"투입!"

K-2를 대충 든 김명찬이 이강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막내, 목소리에 패기가 넘치네."

"이병 이강진, 감사합니다."

"이번이 첫 근무 맞지?"

"예, 그렇습니다."

"근데 영 첫 근무가 아닌 거 같아. 너무 능숙한데?"

대충 넘어간 것처럼 보여도 김명찬은 이강진이 총기현황판을 제대로 수정했는지, 말판을 확실하게 옮겼는지. 일일이 다 확인을 했다.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근무 준비였다.

이 신병은 도무지 빈틈이 안 보인다.

"허술한 부분이 좀 보여야 트집 잡는 재미가 있는데. 우호를 좀 보고 배워라, 강진아. 얼마나 빈틈이 많냐. 괴롭히는 재미가 쏠쏠한데, 강진이는 그런 맛이 없어."

이강진 대신 당직병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김명찬 병장님. 세상에 ‘실수 좀 해라.’라고 가르치는 선임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어차피 조금 있으면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직은 군인이잖아."

"오, 군인정신이 완전 투철하십니다? 이러다가 하사 지원 하시는 거 아닙니까?"

"개머리판으로 콱 머리를 찍어버릴라.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전역하면 나, 부대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국방부에게 시달렸는데, 그것을 왜 스스로 자처하겠나.

물론 군대가 체질에 맞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김명찬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지."

"꿈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어허. 쉽게 공개 안 한다. 난 비밀이 많은 남자니까."

"남자의 비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하."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탄약고 초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라인혁, 백우호 조가 FM대로 외쳤다.

김명찬은 손사래를 쳤다.

"쇼 그만 하고 후딱 나와라. 귀찮으니까."

김명찬은 조금이라도 빨리 초소 안으로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근무자 교대를 할 때.

백우호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근무 투입되면서 저지른 실수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이강진은 선임들 몰래 백우호의 등을 토닥여줬다.

초소로 들어가자마자 김명찬이 이강진에게 말했다.

"총 내려놓고 쉬고 있어."

"아닙니다."

일단 한 번 거절을 했다.

"어허. 그냥 내려놓으라니까."

"전 괜찮습니다."

여전히 좌경계총을 유지했다.

이강진의 경험상······.

‘딱 세 번째에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면 되겠지.’

이름하야 삼고초려(三顧草廬) 작전이다.

유비의 부탁을 거절하는 제갈량의 기분으로 계속 버텨냈다.

한숨을 푹 내쉰 김명찬.

"내려놓으라니까? 형 화낸다?"

"이병 이강진, 알겠습니다."

딱 여기까지다.

외곽 근무 투입된지 2~3주 지나면 총 내려놓으라고 할 때 그냥 바로 내려놓으면 된다. 하지만 첫 근무에서 바로 총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설령 모레에 전역하는 말년 앞에서라도 말이다.

이강진의 모습을 보면서 김명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필 이런 빈틈없는 녀석한테 신병놀이를 하려고 했다니······ 나란 녀석도 참. 이러니까 행보관님한테 바로 걸리지."

"죄송합니다, 김명찬 병장님."

결과적으로 봤을 때, 김명찬이 이런 신세가 된 건 이강진의 탓이다.

그러나 김명찬은 이강진의 사과를 거절했다.

"네가 나 일부러 엿 먹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 이야기는 됐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 탓 아니야. 그냥 내가 병신짓 해서 그런 거지."

김명찬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이강진이 일부러 김명찬 엿 먹인 거 맞다고.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강진은 김명찬이 전역할 때까지 이 사실을 평생 혼자서만 알고 있기로 했다.

굳이 자처해서 욕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실은 말이다."

김명찬이 비밀 하나를 알려줬다.

"이번 근무조, 내가 행정 쪽한테 부탁해서 너하고 같이 근무투입 시켜달라고 했거든."

금시초문이었다. 설마 이강진이 김명찬과 같이 근무를 서게 된 것이 김명찬 때문이었다니.

"저하고 같이 근무 서고 싶으셨습니까?"

"어."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도 됩니까?"

"별 거 없어. 예전에 내가 너처럼 자대에 막 들어왔을 때, 지금의 나 같이 전역 얼마 안 남겨둔 말년이 일부러 나하고 근무조 짜게 만들었더라고. 그때 나도 너처럼 물어봤지. 왜 나하고 같은 조 짜게 했냐고. 그때 진후 형이······ 전역했던 그 말년 말이야. 그 형이 했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

옛 기억을 떠올리는 김명찬.

그때 당시에 들었던 발언을 똑같이 이강진에게 들려줬다.

"내 신병 때 모습이 어땠는지 떠올리고 싶어서. 그래서 일부러 첫 외곽 근무 투입하는 신병이랑 같이 나왔다고 하더라."

사람은 떠날 때가 되면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김명찬도 그렇게 해보려 했으나.

큰 미스가 있었다.

"근데 망했네. 나는 강진이, 너처럼 완벽하게 군생활 하던 녀석이 아니었거든. 오히려 문제아였어. 첫날부터 폐급 소리 들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이강진과 근무를 서니까 편하긴 하다.

야상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김명찬.

그의 손에 새X달콤 하나가 들려나왔다.

"먹을래?"

"감사합니다."

"짜식. 총 내려놓으라고 할 때는 정색하고 거절하더만. 이건 거절 안 하네."

"먹을 거 앞에 장사 없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는 더욱 그렇지."

새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러고 보니 김명찬 병장님."

"응, 왜?"

"아까 꿈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김명찬 병장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이건 회귀 이전에도 들었던 기억이 없다.

김명찬은 두 번째 새콤달콤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 물었다.

"알고 싶냐?"

"예."

"흠······ 뭐, 좋다. 대신, 다른 애들한텐 말하지 마라."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이번에도 별 거 아니겠지. 이강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뮤지컬 배우. 나, 이래봬도 무대 몇 번 섰던 경험도 있거든."

"······진짭니까? 농담 아닙니까?"

"농담은 무슨. 진짜야, 이 녀석아."

순간 이강진은 생각했다.

뮤지컬과 김명찬.

어찌 이토록 안 어울리는 조합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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