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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53화 (53/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53화

제18화. 포상휴가 사냥꾼 (2)

8392 진지에 도착하자마자 병사들은 우선 진지 점령 작전부터 펼쳤다.

대대장이 없는 관계로 점령 과정은 그렇게까지 빡세게 굴러가지 않았다.

그냥 호에 들어가서 ‘점령 완료’ 통보만 지휘통제실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이강진은 전마등과 함께 팀을 꾸려 이동했다.

호에 도착하자마자 전마등은 지면에 털썩 하고 엉덩이를 붙였다.

"그래도 어제 1-3보다는 훨씬 낫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제의 경우에는 산을 타야만 했다. 그러나 8392 진지는 전부 평지에 있다. 산을 타는 것보다 몇 배는 나았다.

"그나저나 대항군 때가 문제네. 분명 탈탈 털릴 텐데."

걱정 어린 목소리를 내는 전마등.

안 그래도 중대장과 소대장 또한 이것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는 연대급으로 유명한 귀신 한중훈 중사다.

1075 대대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한중훈 중사를 제압해본 적이 없었다.

3중대가 털리고, 2중대가 털렸으니. 이제 1중대 차례다.

윤형인 대위는 한중훈 중사의 전략, 전술 성향에 대해 어떻게든 알아보려고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해봤으나,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얻진 못했다.

한중훈 중사는 훈련을 앞두고 자신의 전략, 전술에 대해 철저하게 입을 다무는 성격이다. 자신이 허무하게 제압되면, 오히려 본인이 직속상관에게 탈탈 털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털리기 싫기에 남의 부대를 털리게 만들어야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행보관님도 못 알아내셨다고 합니까? 행보관님, 인맥 엄청 넓으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근데도 그런 행보관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면······ 괜히 별명이 귀신이 아닌 거 같더라. 어휴."

1중대 행보관의 치를 떨게 만들 정도로 지독한 한중훈 중사.

그는 대항군 역할에 묘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한중훈 중사는 자기가 부대를 털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주변인들의 증언을 고려한다면,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인물인 듯했다.

정보가 부족하다.

이 말에 이강진의 눈이 번뜩였다.

"전마등 병장님."

"어, 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귀신 한 중사를 잡기 위해 이강진은 미리 판을 깔아두기로 했다.

* * *

1075 대대장과 함께 8392 진지를 방문한 한중훈 중사.

그는 먼저 1중대 중대장을 찾았다.

"충성!"

윤형인 대위가 대대장에게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한중훈 중사를 힐끔 바라봤다.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

"예, 그렇습니다!"

"서로 선의의 경쟁 한 번 해보게. 한 중사. 봐줄 거 없이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군. 우리 1중대 전투력이 얼마만큼 되는지 가늠해보고 싶으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한중훈 중사 또한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그런 뒤, 윤형인 대위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중대장님."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그리고······."

윤형인 대위가 작게 속삭였다.

"살살 좀 부탁합세."

"하하, 알겠습니다."

대답은 알겠다고 했지만, 한 중사에게 그런 건 없다.

어떻게든 1중대를 털어먹기 위해 최선의 몸부림을 펼칠 것이다.

서로 인사를 마친 후.

한중훈 중사는 자신이 데려온 병사들을 소집했다.

황인주 상병, 조강선 병장.

두 병사들은 오랫동안 한중훈 중사와 함께 타 부대의 훈련에 참가하면서 대항군 역할을 소화해온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다.

한중훈 중사는 두 병사에게 말했다.

"저 부대가 오늘, 우리의 먹잇감이 될 부대다. 잘 봐둬라."

황인주와 조강선의 시선이 오랫동안 1중대에 머물렀다.

"별 볼일 없는 부대인 거 같습니다."

"저 정도면 30분 컷 예상해봅니다."

"30분은 너무 길게 잡았어."

입맛을 다시는 한중훈 중사.

"15분 안에 끝낸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귀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서 대항군 상황조치 훈련이 거행되었다.

중대장은 시작 전에 간부, 병사들에게 강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으라고!

하나 말은 쉽다. 실제 훈련에서 저 넓은 산속을 누비는 대항군을 잡는다는 게 영 쉬운 일이 아니다.

1분대 부소대장을 맡은 민영석 하사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아."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앞서가던 전마등이 민영석 하사에게 다가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소대장님. 몸이라도 안 좋으신 겁니까?"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라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런 거다. 너도 봤지? 중대장님이 눈에 불을 켜고 반드시 대항군 잡으라고 하신 거."

"예, 봤습니다."

"근데 그 귀신 한 중사를 무슨 수로 잡냐, 이 말이지. 고스트 버스터즈라도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이건 민영석 하사만의 고민만은 아니었다.

1중대 모두의 고민거리다.

그때였다.

"부소대장님. 실은 강진이가······."

"음? 강진이가 왜. 속이 안 좋대?"

"그게 아닙니다. 사실은 아까 진지 점령하고 나서 대기 탈 때, 강진이가 저한테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 전역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가 귀신 한 중사 밑에서 같이 대항군으로 움직이던 팀 일원이었다고······."

"뭐?! 그, 그게 정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강진아, 맞지?"

뒤에서 이강진이 ‘예,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추가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가 저한테 말해줬습니다. 귀신 한 중사가 주로 사용하는 패턴이 몇 개 있다고. 그것만 알면, 방어하기 용이해질 거라고 술자리에서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입대 전이어서 잘 몰랐는데, 그래도 기억나는 게 몇 개 있습니다."

"지, 진짜로?!"

"예.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사실 친구한테 술자리에서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 친구의 존재도 물론 거짓이다.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에둘러 말을 해야 이강진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회귀해서 재입대를 했기 때문에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부소대장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강진아, 와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봐라. 어서!"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의 걸음이 빨라졌다.

* * *

한중훈 중사의 노림수가 있었다.

우선은 황인주와 조강선으로 오대기를 비롯해서 1중대 병력들을 가급적이면 진지에서 멀리 유도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중훈 중사는 본진을 털러 간다.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황인주와 조강선은 우선 작전을 수행 중인 1중대 병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일부러 자신들의 모습을 노출시키고, 1중대 병력을 점점 먼 곳으로 유도한다.

사사삭!

산길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던 황인주가 조강선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아래쪽을 보라는 뜻이었다.

"······."

조강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1중대 병력들이었다.

민영석 하사가 이끄는 1분대가 탁 트인 길을 통해 이동 중이었다.

‘뭐지?’

순간 조강선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렇게 시야가 트인 공터로 대놓고 이동하는 이유가 뭔가? 마치 대항군의 눈에 띄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런 모습이었다.

‘뭐, 아무렴 어때.’

그냥 별 생각 없이 이동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을 해버린 조강선은 빠르게 황인주와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

1분대 쪽으로 이동을 해 그들을 유인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가만. 근데 숫자가 뭐 저리 적지? 1개 분대 단위 맞아?’

자세히 보니 4명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분대원들은 어디 있지?’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철컹!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등에 차가운 총구의 감촉이 느껴졌다.

"얌전히 있어요, 대항군 아저씨."

"······!"

헛숨을 삼키는 조강선.

옆을 보니, 황인주도 어느 새 1분대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조강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둘이 일부러 1중대 병력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먼 곳으로 유인 작전을 펼칠 거라는 걸 이강진은 미리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회귀 전에 같은 방식으로 당했었으니까.

그래서 이강진과 1분대는 일부러 미끼를 던지고, 두 대항군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 유인 작전이다.

전마등과 라인혁이 능숙한 솜씨를 뽐내며 조강선의 양 손을 포승줄로 묶었다.

조강선이 침음을 흘리면서 물었다.

"어, 어떻게 우리를······."

어떻게 우리를 붙잡을 수 있었던 거지? 하고 묻고 싶을 것이다.

이강진은 총구를 겨눈 채 조강선의 말에 답해줬다.

"몰라도 됩니다."

누구 좋으라고 알려주겠나.

* * *

이강진의 말대로 조강선과 황인주를 붙잡았다.

부소대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빨리 중대장님에게 알려야······!"

P96K를 든 순간, 이강진이 황급히 그를 만류했다.

"안 됩니다, 부소대장님!"

"응? 왜."

"지금쯤 한중훈 중사님이 지휘통제실을 노리기 위해 진지로 접근하고 있을 겁니다. 만약 대항군 둘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한중훈 중사는 지통실 습격을 포기하고 바로 도주할 겁니다. 그러면 영영 못 잡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은 씩 웃었다.

"함정을 파는 겁니다. 일부러!"

대항군을 잡았다는 소식을 감춘다. 그리고 한중훈 중사가 계속 지휘통제실을 노리게 만든다.

한중훈 중사가 지휘통제실에 발을 들인 순간.

이강진과 1분대가 몰래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잡는다.

이것이 이강진의 시나리오다.

하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도래했다.

-치익!

대항군 조강선 병장의 단독군장에 달려 있는 P96K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푸라, 지푸라. 여기는 베일도. 병력들 유도 잘 하고 있는지 보고 바람.

한중훈 중사의 목소리였다.

순간 부소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답이 없는 걸 알면, 한중훈 중사는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중훈 중사를 놓치게 된다.

하나 다 방법이 있다.

이강진은 포승줄에 묶여 있는 대항군들에게 다가갔다.

그런 뒤,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저씨들, 저희한테 협력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이강진이 선보인 미소는 귀신 한 중사의 것보다도 섬뜩하고 무서웠다.

* * *

"지푸라, 지푸라. 여기는 베일도. 응답 바람."

계속해서 무전을 쳐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내 답변이 들려왔다.

-여기를 지푸라라 알리고 현재 작전 수행중이라는 통보.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 중사는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수신 양호."

이제 진지로 가서 1중대의 지휘통제실만 탈탈 털기만 하면 된다.

‘어떤 식으로 요리를 해줄까.’

8392 진지로 향하는 한 중사.

1중대의 방어진은 굉장히 허술했다.

이 정도면 거의 열린 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휘통제실까지 도착하는데 채 7분이 안 걸렸다.

‘15분 컷도 안 되겠네.’

모의 수류탄을 챙긴 한 중사는 CP 텐트로 향했다.

열린 천막 사이로 빠르게 숨어들었다.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네."

승리를 예상한 한중훈 중사.

그가 수류탄을 꺼내들려고 하는 순간.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얌전히 투항하라!"

잠복해 있던 병사들이 동시에 총구를 들어올렸다.

"······?!"

한중훈 중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대항군의 승리를 확신했던 한중훈 중사였으나.

완패(完敗)라는 두 글자가 눈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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