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61화 (61/347)

제20화. 기습 순찰 (3)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이강진은 서일주와 함께 행정반으로 향했다.

"충성 이 병 이강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마침 행정반에 정일문과 김철이 나란히 있었다.

점심시간, 그리고 개인정비 시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게 바로 행정병의 고중이다.

"일주하고 강진이, 무슨 일이야?"

정일문의 물음에 답한 인물은 서일주였다.

"저하고 강진이 근무를 서로 바꿀까 해서 말입니다. 오늘, 내 일. 이렇게 이틀이면 될 거 같습니다."

"근무를 바꾼다고? 왜?"

근무자 편성 담당이 바로 정일문이다. 바꾸는 건 좋지만, 이유 정도는 들어봐야 했다.

아무리 1중대가 근무 편성을 바꾸는 것에 융통성이 있는 편 이라 해도, 되도 않는 이유라면 당연히 반려될 것이다.

나름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 사유를 만드는 건 서일주를 설득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 다.

이번에는 이강진이 바통을 이어 받아 설명했다.

"서일주 이병이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거 같아서 푹 자게 해주 려고 근무를 서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어디 보자. 그러고 보니 강진이 근무 편성 시간이 좋긴 하네. 오늘 초번초에 내일 말번초라……."

중간에 근무 나간다고 깰 필요 없이 쭉 잘 수 있는 그런 편성표였다.

"강진이가 선임을 챙기려는 마음이 가상하네. 근데 컨디션 안 좋으면 미리 나한테 말해도 돼, 일주야. 며칠 정도는 빼줄 수 있어."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하하."

"그래? 심하다 싶으면 너희 분대장님한테 보고하고. 아무튼 알았다. 근무자 편성표에 가서 서로 이름 바꿔서 적고 사인해."

"감사합니다. 충성!"

이강진의 예상대로 쉬웠다.

행정반 앞에 걸려 있는 근무자 편성표를 수정하는 두 사람.

그때, 마침 한 남자가 이들의 행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을린 피부에 우락부락한 팔뚝을 가진 사나이. 서일주와 같이 근무에 나서기로 예정되어 있던 추민복이었다.

"근무자 바꾸는 거냐?"

"충성! 예, 그렇습니다!"

서일주의 얼굴에 긴장 빛이 감돌았다. 눈을 흘기는 추민복.

"일주 너, 설마 나하고 같이 근무 서기 싫어서 후임한테 근무 바꾸자고 압박 넣은 건 아니겠지?"

"이병 서일주! 그런 적 없습니다!"

서일주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바짝 긴장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를 위해서 이강진이 나서기로 했다.

"제가 먼저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음? 강진이, 네가?"

"예, 그렇습니다. 사실 추민복 상병님하고 운동 이야기 나누 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운동 이야기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추민복의 눈에 이 채가어렸다.

"오, 그래? 운동 좋지! 그러고 보니 너하고 라인혁 상병님하고 자주 헬스장에서 마주치곤 했었지. 운동에 관심 있나? 싶었는데 …… 역시 그랬군! 하하하! 좋아, 좋아! 오늘하고 내일이지? 아주 재미있는 근무 시간이 되겠어!"

추민복은 이강진의 등을 거세게 두세 번 토닥여준 뒤에 다시 갈 길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던 서일주는 이강진에게 확인 차원에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로 저 인간이랑 같이 근무 서는 게 좋다는 거야?"

이강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괜찮을 겁니다."

그날 저녁.

이우준 소령은 사복을 입은 채 자신의 차량을 이끌고 1075 대 대로 향했다.

차를 타고 30분 정도 달린 끝에 위병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 했다.

현재 시각, 저 녁 9시.

민간 차량이 다가오자, 조장 근무자가 초소에서 나왔다.

"충성.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 여기 대대장님하고 오늘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실례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여기."

이름을 확인한 순간, 조장근무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충성! 신원 확인했습니다!"

대대장은 이미 조장 근무자들에게 자신의 친한 후배가 부대 로 올 예정이라는 말을 흘려둔 상태였다.

물론 관등성명도 제대로 전달을 해뒀다.

이우준 소령.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조장 근무자는 선임근무 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바리게이트 치워, 어서!"

"예, 알겠습니다."

선임근무자가 바삐 바리게이트를 치우는 사이.

뒷좌석에서 뭔가 기척을 느낀 조장근무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이우준만 온 게 아닌 듯했다.

"혹시 동행자가 있습니까?"

이우준 소령은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냈다.

"어흠! 나 혼자 왔네."

"하지만……."

혹시 모르니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하나 이우준 소령의 태도는 강경했다.

"혼자 왔다니까."

"……."

소령 앞에서 조장근무자가 무슨 힘이 있겠나. 상급자의 말이 곧 법이다. 이우준 소령이 혼자 왔다면 혼자 온 것이다.

"통과하시면 됩니다."

"고생하게."

차를 몰아가는 이우준 소령.

조장근무자는 그 와중에 차 뒤를 유심히 바라봤다.

'안 보이네.'

뒷좌석에 필히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사람의 그 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착각한 거겠지.'

큰일은 아니리라.

그렇게 생각한 조장근무자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다시 조 장실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조장근무자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뒷좌석에 몰래 탑승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황영일 대령.

1075 대대를 털기 위해 몰래 잠입한 연대장이다.

몸을 숙이고 있던 연대장은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온 뒤에 웃 음을 흘렸다.

"허허. 12년 전에 국지도발 훈련 뛴다고 대항군 소대하고 맞 붙었던 이후로 이렇게 긴박한 적은 없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작전과장."

"소령 이우준! 예, 맞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야."

차는 지휘통제실 앞에 정차했다.

이우준 소령이 왔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대대장이 때마침 지 휘통제실에서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이우준 소령.

"충성!"

"충성. 오랜만이야, 자네. 살이 쪽 빠졌군. 연대장님이 많이 괴 롭히기라도 하셨나?"

연대장 이야기가 나오자 이우준 소령의 등에 식은 땀 한 줄기 가 주룩 흘러내렸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연대장님이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시 는지……."

"에이. 내 앞에선 거짓말 안 해도 되네. 대대에 소문이 다 났 어. 이번에 새로 취임하신 연대장님이 보통 깐깐한 성격이 아니 라고 말이야."

병사들이 선임들 뒷담화를 까는 것처럼, 간부들 또한 마찬가 지로 사석에선 자신의 상급자를 뒷담화 까곤 한다.

계급 사회에서 그나마 상급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기회는 이럴 때 말고 없어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우준 소령은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하면서 대대장에게 눈 치를 줬다.

아직 연대장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대장은 이 사실을 까망게 모르고 있었다.

"상부에서 근무 제대로 서라고 지침 온 건 좋은데, 굳이 연대 장님이 직접 나서서 부대를 돌아다니시는 건 난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그냥 자네한테 부대 시찰 한 번 쭉 하라고 시키시면 되 잖아? 근데 왜 직접 하시지? 내가 보기에는 상부에서 받은 스트 레스를 우리한테 풀려고 하는 게 아닐……."

"오, 오승진 중령님!"

이우준이 황급히 그를 만류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이우준이 타고 온 차량의 뒷문이 열렸다.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연대장.

대대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추, 추우웅! 서어엉!!!"

대대장은 중령 계급장을 단 이례에 가장 큰 목소리로 거수경 례를 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론 이우준 소령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연대장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스트레스 풀려고 대대를 돌아다니는 건 아니네. 어디까지나 자네들이 병사들을 제대로 교육시켰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황영일 대령에게 붙은 별명이 하나 있었다.

완벽주의자.

무슨 일을 추진하든 간에 그는 본인의 눈으로 확인하는 걸 습 관처럼 해온 그런 남자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죄, 죄송합니다! 연대장님의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알면 됐네. 그나저나 자네는 상관 뒷담화 까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모양인가 보군. 그렇게 안 보였었는데. 의외야, 의외. 작 전과장하고 만난 지 1분도 안 돼서 바로 뒷담화라니. 허허."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시기 바 랍니다!"

대대장은 그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대장에게 연대장은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자네 부대의 근무 상태가 날 만족시킨다면, 방금 그건 잊어 주도록 하겠네. 하지만."

연대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의 목숨이 달린 지옥의 기습 순찰이 막을 올렸다.

저녁 점호가 시작되기 직전에 10분에서 15분가량 분과별 간 담회를 진행한다.

간담회라고 하지만, 사실은 별 거 없다. 그냥 분과끼리 옹기 총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게 다다.

게다가 분과마다 각자 별도의 생활관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모 인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지 않았다.

분과별 간담회 실시하라는 방송이 있은 후,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라인혁이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뭐야. 왜 저녁 점호 시작 안 해?"

시간이 벌써 9시 45분이다.

보통은 30분에 저녁 점호가 시작된다. 늦어도 40분 정도에는 시작해야 점호를 마치고 취침준비 시간 10분이 지난 뒤에 바로 잠에 들 수 있다.

그런데 45분이 지나 50분이 다 되어가는 와중에도 아무런 방 송이 나오지 않았다.

이강진이 빠르게 슬리퍼를 신었다.

"제가 한 번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막내가 확인해봐라."

"예, 알겠습니다."

군대에서 엉덩이가 무거우면 욕먹기 딱 좋다.

그래서 이강진이 먼저 나서기로 한 것이다.

행정반 안에서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온 한 남자.

중대장이 었다.

"충성!"

"어?! 어, 그, 그래! 충성!"

반쯤 정신이 나간 거 같은 그런 표정을 보여주는 중대장.

그는 저녁 6시 땡 치자마자 바로 퇴근길에 올랐었다.

그런데 왜 다시 부대로 돌아온 걸까?

전투복도 다시 허겁지겁 입고 있었다.

중대장만이 아니었다.

오늘 당직사관인 소대장도, 당직을 서게 된 전마등도, 김철을 포함한 행정병들도. 모두가 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중대 ATT가 저번 달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만 그 훈련을 반복해서 다시 받는 듯했다.

"철아."

이강진이 김철만 조용히 불렀다.

그러나 이강진이 몇 번을 불러도 김철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 린 모양인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철."

"이, 이병 김철!"

그제야 이강진의 목소리가 김철의 귓가에 닿았다.

"뭐야…… 강진이잖아? 놀랐네."

"무슨 일이야. 뭔데 행정반이 난리가 났어?"

얼추 예상이 가는 게 있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기에 확신까진 하지 못했다.

이강진의 이 예상이 과연 맞아 떨어질지.

김철의 대답에 모든 게 달려 있다.

"지금 장난 아니야. 연대장님께서 갑자기 오셔가지고 부대 다 뒤집어졌어!"

순간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왔구나!'

포상의 기회가 찾아왔다.

<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6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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