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기습 순찰 (4)
연대장이 갑자기 들이닥친 탓에 저녁 점호는 빠르게 생략되 었다.
저녁 10시가 되자마자 침상에 눕는 병사들.
오대기 인원들은 '오늘 오대기 걸리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 감에 욕지거리를 입에 달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한편. 근무를 나서는 서일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 시간대에 연대장님 오시면 안 되는데. 좆됐네!"
이강진은 그런 서일주를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서일주 이병님. 연대장님이 초소까지 바로 올라 가시진 않을 겁니다."
"하아……! 너랑 근무 괜히 바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둘 번초 나가는 건데, 시발!"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이강진을 크게 나무랄 순 없었다. 서일주도 근무 교 체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강진이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근무 시간을 교대 하자고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쓴 소리를 못하는 것 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강진은 이 모든 걸 다 예견하고 있었다.
자리에 누운 이강진은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연대장한테 어떤 식으로 브리핑을 해볼까.'
남들이 취침할 때.
이강진은 포상휴가를 따내기 위한 작전 구상에 열을 올렸다.
지휘통제실을 쭉 훑어보는 연대장.
"깔끔하게 잘 해놨군."
"중령 오승진! 감사합니다!"
"암구호라든지 이런 건 다 갱신된 걸로 적어뒀겠지?"
"예, 그렇습니다!"
언제 연대장이 올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본부중대는 지 휘통제실을 계속 청결하게 관리해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바로 지휘통제실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당직사령은 각 중대에게 빠르게 키를 넣어 연대장님이 오셨다는 연락을 전파하라고 몰래 지시를 넣어뒀다.
그 덕분에 중대들은 현재 난리가 났다.
1중대 중대장도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가 다시 재줄근을 하 게 되었다.
물론 행보관도 마찬가지였다.
"지통실은 이만하면 됐고."
연대장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어디. 여기 대대 병사들은 근무를 잘서고 있나 한 번 보러 갈 까."
대대장이 앞장섰다.
"안내하겠습니다!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일단 위병소부터 먼저 가도록 하지. 그 다음에는 탄약고가 좋겠군. 탄약고 초소는 어느 중대가 관리하지?"
"1 중대 입니다."
"그래?"
1075 대대 1중대에 관한 소식을 최근에 들었던 연대장.
"듣자하니 중대 ATT때 그 악명 높은 한중훈 중사를 붙잡았다 고 하던데."
"에, 그렇습니다!"
"1 중대라…… 탄약고 초소 쪽이 가장 기대되는군. 허허."
연대장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대대장의 부담은 같이 커져갔저녁 10시 45분.
불침 번이 깨우는 소리에 이강진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연대장님, 1중대에 오셨습니까?"
"아니, 아직 안 오셨어. 지금 위병소 보고 계시니까…… 강진이, 네 근무 시간대에 올라가실 거 같다."
역시.
이강진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행정반에 들어서자마자 중대장이 근무 투입자인 이강진과 추 민복을 불렀다.
중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1중대의 운명이 너희 둘의 어깨에 달려 있다!"
그 말에 추민복은 마른침을 삼켰다.
반면, 이강진은 담담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내가 강조한대로 근무는 무조건 FM으로 서라. 어깨가 나가 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좌경계총 유지해! 그리고 암구호, 근무자 수칙 꼭 숙지하고! 연대장님이 갑자기 너희한테 이런저런 상황을 내려줄지 모르니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너희만 믿는다!"
부담감이 아주 무럭무럭 샘솟았다.
근무 인솔을 맡게 된 전마등까지 포함해서 세 남자는 무거운 걸음으로 탄약고 초소를 향해 나아갔다.
추민복 상병이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흘렸다.
"전 번근무자들은 운이 좋은 거 같습니다. 반대로 저하고 강진 이는 운이 지지리도 없고……."
쓴웃음을 짓는 전마등.
충분히 공감 가는 탄식이었다.
"군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운 없는 걸로 따지면 강 진이가 제일이지 않냐. 일주랑 근무 바꿨는데, 연대장님 앞에서 근무 평가 받게 생겼으니까. 그렇지, 강진아?"
"이병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운도 참 없는 거 같습니다."
하나 이것은 연기였다.
이강진은 일부러 판을 짠 것이다.
FM대로 근무 교대를 이행했다.
서일주의 표정은 마치 급한 볼일을 끝내고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처럼 평온했다.
반면, 추민복은 달랐다.
"좆같네, 진짜! 모처럼 강진이하고 좋은 시간 보내려고 했더니 만. 다 망했네."
이 말을 들은 순간, 이강진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대장이 와서 참 다행이라고.
그렇게 10분 정도 서 있었을까.
키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강진은 손을 뻗어 바로 키를 받았다.
"통신보안, 탄약고 초소 이 병 이강진입니다."
-통신보안, 이병 김철입니다. 강진아, 지금 연대장님 올라가고 계시니까 조심해. 알았지?
"수신 양호."
키를 내려놓는 이강진.
추민복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진아…… 뭐래?"
이강진은 옅은 미소를 애써 감추면서 답했다.
"그분이 오고 계시답니다."
잠시 후.
이곳에 은색 무궁화 꽂이 만개할 것이다.
1중대가 지키는 탄약고 초소로 향하는 연대장 일행. 대대장은 뒤따라오는 중대장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근무자들 교육은 잘 시켜 뒀겠지?"
"예, 그렇습니다."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하네. 만약 연대장님의 신경을 건드리 는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자네나 나나 모두 끝이야, 끝!"
"아, 알겠습니다!"
대대장과 중대장의 대화를 몰래 듣고 있던 행보관은 전마등 에게 물었다.
"오늘 근무자가 누구랬지?"
"추민복 상병하고 이강진 이병입니다."
"민복이하고 강진이란 말이지……."
행보관은 두 사람이 근무에 투입될 당시에 행정반에 없었다.
추민복과 이강진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행보관은 내심 이 런 생각을 했다.
해볼 만하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있었다.
'민복이 녀석이 걱정이야.' 오히려 행보관은 고참인 추민복을 걱정했다.
이강진은 여태껏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준 이등병이다. 심 지어 신병교육대에 있을 당시, 연대장이 갑작스럽게 지시했던 상황조치도 분대장 훈련병으로서 잘 소화했다는 일화를 행보관 은 들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이강진은 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추민복은 달랐다.
'그 녀석은 유독 이런 실전 무대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 문 제야.'
평소에는 싹싹하게 잘하지만, 평가를 받는 자리에선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지는 문제점을 보였다.
행보관은 이게 걱정이었다.
결국, 이강진이 해줘야 한다.
고작 이등병에게 중대의 운명을 맡겨야 하다니. 행보관은 헛 웃음을 삼켰다.
탄약고 초소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자네들은 여기서 대기하게."
연대장의 한 마디에 대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소대장의 표정 이 얼어붙었다.
대대장의 말이 빨라졌다.
"여, 연대장님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 됐어. 작전과장하고 나하고, 이렇게 둘이서만 가도록 하지."
사복을 입은 사람들끼리 가겠다. 심지어 병사들이 얼굴도 모 르는 둘만!
대대장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연대장의 노림수가 있었다.
"작전과장. 연기 잘하는 편인가?"
"연기 말씀하시는 겁니까?"
연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작전과장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야밤에 등산을 왔다가 길을 잃고 어쩌다가 이곳 부대까지 오게 된 등산객을 연기할 걸세. 우리가 초소 근무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접근하려고 하면, 저들이 어떻게 반 응하는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합세."
아주 난해한 상황 설정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연대장이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작전과장은 엉거주춤 연대장의 뒤를 따랐다.
한편. 대대장의 표정은 그야말로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망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추민복 상병님."
이강진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아무래도 오신 거 같습니다."
"오, 오셨다고?!"
사복을 입고 접근해오는 두 중년 남성.
"연대장님 맞으셔? 민간인 아니야?"
주변에 대대장과 중대장도 없어서 저들이 정말로 연대장이 맞 는지 헷갈렸다.
연대장이든 민간인이든. 일단 무단으로 초소에 접근하는 것 에 대해서 조치를 하긴 해야 했다.
초소 문을 열고 연대장, 작전과장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두 남 자.
대사를 외쳐야 하건만. 추민복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떨렸기 때문이다.
"가가가가강진아! 부탁 좀 하마!"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추민복이 실전에 약한 타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추민복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않고도 바로 알았다고 답했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이강진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수풀 속에 숨은 채 이강진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대대장 일행.
이들의 손에 땀이 절로 났다.
대대장 일행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강진을 응원했 다.
한편. 연대장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반응했다.
"군인 양반. 우리 가 등산하다가 길을 잃은 거 같은데. 오래 걷 다보니까 목이 너무 마르네. 물 좀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강진의 대답은 매몰찼다.
"바위!"
"응? 바위? 그게 뭐요?"
연대장의 연기는 의외로 리얼했다. 작전과장은 연기에 자신이 없었기에 뒤에서 그냥 맞장구나 쳐주고 있었다.
이강진이 다시 한 번 외쳤다.
"바위!"
"글쎄 바위가 뭐냐니깐?"
암구호의 문어다. 연대장도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모른 척을 했다.
답어를 말하지 않은 채 연대장은 몇 걸음을 더 내딛었다. 방 향은 초소 쪽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연대장. 이강진은 더욱 강도 높게 경고했다.
"움직이 면 쏜다! 바위!"
"바위 같은 거 모른다니까! 물이나 좀 주쇼!"
이 모든 광경을 바로 옆에서 라이브로 지켜보는 추민복은 목 이 바짝 타들어갔다.
"가, 강진아! 저 사람, 진짜 연대장님 맞으셔? 민간인 아니야?"
"연대장님 맞습니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연대장이 사복을 입고 일부러 길 잃은 등산객처럼 연기를 하면서 부대를 털고 다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 상황은 더욱 긴박해졌다.
"군바리 새끼들이! 좋게 좋게 말하니까 사람을 무시해?"
갑자기 연대장이 근처에 놓여 있던 짱돌을 들어 올린 것이다.
덩달아 작전과장도 놀랐다. 설마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 각 못했기 때문이었다.
추민복은 거의 패닉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 씨! 어, 어쩌냐, 이거! 미쳐버리겠네!"
민간인이면 민간인인대로 문제고 , 연대장이면 연대장인대로 문제다.
그 와중에 이강진은 끝까지 연대장의 행동을 주시했다.
후우.
무거운 호흡.
어쩌면 잘못된 결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 령 잘못된 판단이라 할지라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연대장은 아마 모든 상황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굴러가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연대장의 착각이다.
손바닥 위는 손바닥 위 다.
하지만 그 손바닥은…….
이강진의 것이다.
-타앙!!!
새벽으로 향해가는 늦은 밤.
공포탄의 총성이 잠든 밤을 깨웠다.
<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6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