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63화 (63/347)

< 제20화. 기습 순찰 (5) >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긴 이강진.

추민복을 비롯해서 대대장, 소대장, 심지어 행보관까지 놀라 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대대장의 분노가 매우 컸다.

"이, 이 정신 나간 녀석이! 감히 연대장께 고, 공포탄을 쏴기 너, 누구야! 당장 안 내려 와?"

목소리를 높이는 대대장.

빨리 초소에서 튀어나와 연대장에게 머리를 조아리 면서 사과 하라고 강요를 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대대장의 명령을 거절했다.

"이병 이강진.초소 근무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초소를 비 워선안 됩니다."

"뭐?!"

대대장의 혈압이 상승하는 소리가 이강진의 귀에까지 들릴 정 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FM이니까.

이 와중에 추민복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좆됐다는 사실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이강진이 방아쇠를 당긴 시점부터 모든 게 다 끝났다. 이제 연 대장에게 탈탈 털릴 일만 남았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연대장이 웃기 시작한 것이다.

대대장 일행과 추민복, 그리고 연대장과 함께 온 작전과장조차 갑자기 웃는 그의 모습에 놀랐다.

왜 그러지? 이런 생각만 들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연대장은 대대장 일행에게 손짓했다.

"다들 초소로 올라오게."

"주, 중령 오승진!"

"대위 윤형인!"

"소위 성태원!"

장교들은 경직된 몸을 이끌고 연대장에게 다가갔다. 행보관 과 작전과장도 연대장의 뒤를 따랐다.

이때, 이강진이 이들에게 말했다.

"답어를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대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저 미친놈이 아직도……!"

"허허, 됐어. 그만해."

연대장이 대대장을 만류했다.

그러고 난 뒤. 이강진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답어를 말했다.

"가로등."

당연한 말이지만, 연대장은 답어를 알고 있었다. 몰라서 등산 객 연기를 했던 게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1중대가 탄약고 초소 근무를 얼마나 잘 서 고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신원까지 확인하고 난 이후에야 연대장 일행은 탄약고 초소 에 접근할 수 있었다.

"충성!"

받들어총으로 연대장에게 경례를 표하는 추민복과 이강진.

두 사람의 표정은 상반되어 있었다.

추민복은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반면.

이강진은 떳떳했다.

한 치 부끄럼 없다는 듯한 저 표정. 대대장의 눈에는 굉장히 아니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연대장에게 공포탄을 발사한 주제에 어떻게 저런 뻔뻔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대대장."

연대장의 묵직한 부름에 대대장은 잔뜩 경직된 채 대답했다.

"중령 오승진!"

"이 둘한테 포상휴가 주도록 해."

"……?!"

순간 대대장은 귀를 의심했다.

영창이 아니라 포상휴가를 주라고?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해서 대대장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포상휴가-말씀이십니까?"

"그래. 4박 5일로 빵빵하게 챙겨줘."

1박 2일, 2박 3일. 이런 자투리도 아닌 4박 5일 포상휴가다!

추민복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연대장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줬다. 특히 공포탄을 발사한 당사자, 이강진을 많이 칭찬했다.

"잘했다! 아무리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자들을 초소와 탄약고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게 하는 게 초소 근무 수칙 요령 1순위 아닌가.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아 무리 연대장이라 하더라도 총구를 겨누는 게 당연해. 예전에 그 런 사건이 있지 않았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연대장.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 병사한테 들켰는데, 부대 간부인 척 해서 몰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는 전례 말이야. 그것 때문에 군 단장님을 비롯해서 윗선이 줄줄이 군복을 벗어야만 했지."

병사들은 간부라는 존재에 꼼짝 못한다.

그래서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하나 이강진은 간부든 민간인이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그것도 흉기를 들고 접근해오는 걸 보고 거침없이 방아쇠 를 당겼다.

연대장은 이강진의 대범함, 결단력과 근무 수칙 요령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준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강진이라고 했나?"

"이병 이강진! 예!"

"자네, 군생활 아주 잘할 거 같군. 마음에 들었어!"

연대장이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에 따라 불편했던 대대장 과 중대장의 마음도 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지금 이 순간.

1075 대대에 새로운 전설이 탄생했다.

* * *

연대장이 1075 대대에 기습 순찰을 감행했어도 군대의 아침 은 변함이 없었다.

아침 점호를 마친 뒤에 식사를 끝내고 오전 집합까지 각자 청 소구역을 관리한다.

오전 9시.

행보관이 병력들을 사열대 앞으로 집합시켰다.

그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어제 연대장이 갑자기 부대를 깜짝 방문한 탓에 쌓인 피로였

"작업 분류하기 전에…… 민복이하고 강진이, 여기 있나."

"상병 추민복!"

"이병 이강진!"

이름을 불린 두 사람을 향해 행보관이 손짓했다.

"행정반에 들어가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저 둘이 왜 따로 열외 되었는지. 병사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연대장한테 공포탄을 발사해서였다.

작게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병력들.

"강진이, 저 녀석. 담력이 장난이 아닌데?"

"이등병이 연대장님한테 방아쇠를 당길 줄이야."

"난 심장 떨려서 그 짓은 못하겠는데."

"그것 때문에 중대장님, 엄청 열 받으신 거 아니야? 그래서 호출 당한 거 같은데."

연대장님은 호쾌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칭찬했었다.

하나 대대장과 중대장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상급자에게 공포탄을 쏜 것은 충격 적인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쓴 소리를 들으 러 호출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강진과 추민복이 행정반에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중대장이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는 상태였다.

중대장은 둘을 바라봤다.

딱딱하게 굳은 눈빛.

하지만 이 눈빛은 이내 두 사람을 보자마자 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보물들 왔구나!"

보물?

순간 이강진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평소에 잘 대해주고 보물이라고 하지, 뜬금없이 이럴 때만 보 물이라고 지칭하는지 원.

'하여튼 간부들이란 사람들은 다 똑같단 말이야.'

병사들의 적은 간부다.

그래도 이강진은 티를 내지 않았다.

"충성!"

"자, 여기 와서 앉아라, 앉아. 당직! 뭐하냐! 우리 1중대 보물 들이 왔는데!"

당직들이 마실 것을 준비하는 동안, 두 사람은 중대장실로 향했다.

중대장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면서 말했다.

"어제 연대장님이 너희 근무 태도에 굉장히 만족하고 떠나셨 다. 덕분에 우리 대대가 연대 밑에 있는 모든 부대 중에서 유일 하게 연대장님을 만족시킨 부대가 되었어."

연대장이 만족했으니 대대장도 만족했을 터.

그러지 않고선 중대장이 이렇게 웃고 있을 리가 없었다.

"연대장님께서 말씀하신 4박 5일 포상권은 바로 지급하도록 하마. 그리고 강진이."

"이병 이강진!"

"너는 대대장님께서 특별히 2박 3일 더 붙여서 주라고 말씀하 셨다."

이건 예상외의 소득이었다.

아무렴 어떠랴. 포상휴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 좆같은 군대에서 최대한 자주, 오랫동안 나올 수 있으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중대장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저 번과 같이 철통 근무 설 수 있도록 바라마. 고생 했다!"

"감사합니다!"

아직 일병도 안 단 상황에서 벌써 4박 5일, 2박 3일 포상휴가 를 따낸 이강진.

'좋아. 순조롭게 잘 풀려가고 있군!'

이강진의 계획대로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중대에 또 다른 전설을 기록하게 된 이강진.

중대장의 부름 때문에 이강진은 따로 배정받은 작업 없이 부대 주변을 배회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강진아!"

누군가가 이강진을 불렀다.

하나 주변을 살펴도 누가 이강진을 불렀는지 도통 모습을 확 인할 수가 없었다.

"강진아, 여기다!"

"여기가 어딥니까?"

"위쪽."

그제야 이강진은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알게 되었다.

통신반장, 권주명 중사였다.

그는 3층 난간에 매달린 채 통신분과 병사들과 함께 유선 작 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충성 무슨 작업 중이십니까?"

"티비가 안 나온다고 해서. 선 좀 만지고 있는 중이다. 그보다 강진아. 지금 바쁘냐?"

"아닙니다. 오히려 한가합니다."

이강진은 자신이 통신 작업에 불려할 줄 알았다. 그러나 통신 반장은 이강진을 인력으로 써먹으려고 그를 찾은 게 아니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 안 그래도 너하고 이야기 좀 나누 고 싶었거든."

작업을 중지시킨 통신반장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계단을 타고 밖에 있는 이강진이 있는 1층 로비까지 내려왔다.

손에는 음료수 캔이 두 개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감을 잡았다.

'주식 이야기로군.'

행보관뿐만 아니라 통신반장도 주식에 손을 대고 있었다.

군인 월급은 너무 짜다고, 부업으로 할 만한 걸 찾다가 발견한 게 바로 주식이었다.

하지만 통신반장은 행보관보다 더 꽝손이었다. 본인 말로는 3 개월 동안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서 주식 공부를 했다 고 하지만, 이강진이 보기에는 돈을 바닥에 버린 거나 다를 바 없었다.

그 정도로 재능과 센스, 그리고 감각이 없었다.

행보관이 주식으로 돈 좀 만지기 시작하자, 간부들 사이에서 이강진에 관한 소문이 점차 나고 있었다.

그게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자, 여기 앉아라."

"이 병 이강진. 예, 알겠습니다."

사열대 계단에 나란히 자리를 잡은 두 사람.

통신반장은 이강진에게 애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소식 들었다. 연대장님한테 칭찬을 엄청 받았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역시 강진이다. 나는 처음에 네가 부대로 전입하는 거 보자 마자 딱 느꼈지. 아, 이 녀석. 언젠가 제대로 사고 칠 녀석이다. 물론 나쁜 사고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의 사고지.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통신반장이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도 낼 수 있었던가. 병사 들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양반인데 말이다. 그의 가식 적인 모습에 이강진은 헛구역질이 나올 뻔했지만, 그래도 필사 적으로 참아냈다.

그래도 통신반장은 행보관 다음으로 부사관들 중에서 짬 순 위로 넘버 2다. 통신반장까지 이강진의 편으로 만들어두면 앞으 로 남은 군생활이 더욱 편해지리라.

"네가 주식 좀 한다는 말, 행보관님한테 얼핏 들었거든. 그래 서 말인데……."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훼방꾼이 등장했다.

저 멀리서 레토나가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중대장이 타고 다니는 레토나다.

레토나의 등장 때문에 대화는 이대로 중단되었다.

선탑자로 나섰던 소대장이 먼저 하차했다.

"충성."

통신반장이 소대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의 거수경례를 받아주는 소대장. 통신반장이 소대장에게 물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양순 병원 갔다 왔습니다."

양순 병원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이강진의 뇌리를 스치는 이가 있었다.

'설마……!'

레토나의 뒷문이 열렸다.

발에 깁스를 한 채 등장한 남자.

"충성! 통신반장님! 오랜만입니다!"

"오, 왔냐!"

1분대 인원 중 한 명인 고필중 일병.

그가 드디어 오랜 침묵을 깨고 부대로 복귀했다.

< 제20화. 기습 순찰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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