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64화 (64/347)

제21화. 전투 축구 (1)

자대 전입 이후 처음으로 고필증을 보는 이강진.

하지만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회귀하기 이전에 지겹도록 봤던 얼굴이었으니까.'

황지웅 일병과 동기였기에 이강진과 1 년 이상 군대에서 얼굴을 마주치면서 지내왔던 그런 남자였다.

고필중의 복귀 소식에 근처를 지나던 병사들이 관심을 보였

"필중이 왔냐!

"충성! 고필중 일병님 오셨습니까!"

고필중은 선임들에겐 거수경례를, 후임들에게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면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그런 그가 드디어 이강진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병?"

"이 병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통신반장이 대신 설명을 했다.

"이강진이라고, 우리 부대를…… 아니, 우리 대대를 살린 영웅 님이시다."

"영웅님? 아, 혹시 연대장님한테 공포탄 쐈다던 그 이병입니 까?"

"맞아.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인데."

"소대장님 덕분입니다. 여기 오면서 범상치 않은 녀석이 들어 왔다고 하시면서 구체적으로 다 설명해주셨습니다."

1075 대대 전역에 소문이 다 퍼졌다.

어디 대대뿐이랴. 연대에서도 이강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간부는 없었다.

하기야. 어느 미친놈이 연대장에게 방아쇠를 당길까.

이강진이 남긴 임팩트는 상당했다.

그런 이강진이 자신의 후임이라는 말에 고필중은 감회가 남 다른 표정을 지었다.

"굉장한 녀석이 들어왔네. 복귀하자마자 재미있는 일이 빵빵 터지고. 군생활 참 스펙타클 하다니까."

고필중의 입 꼬리가 위로 향했다.

반면, 이강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강진의 입장에선 고필중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이전 군생활에서 아주 특별한 관계였으니까.

* * *

"뭐? 필중이가 왔어?!"

라인혁의 목소리가 잔뜩 상기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1생활관에 도착한 라인혁. 고필중의 복귀가 어 찌나 반가운지, 거의 뛰어오다시피 했다.

라인혁을 보자마자 고필중이 일어서서 거수경례를 하려고 했다.

"충성!"

"어허 앉아 있어라, 필중아. 다리도 불편한 녀석이 뭐 하러 무리하려고 해."

"예, 알겠습니다."

아직 고필증은 부상에서 벗어난 게 아니었다.

두꺼운 깁스가 당분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노골적 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언제쯤 깁스 풀 수 있냐?"

"다음 달이면 될 거 같습니다."

"이 녀석. 말로만 다음 달이라고 하고서, 나중에 유격 훈련 일 자 정해지 면 그때 지나고 나서 깁스 풀어야 한다고 그러려고 하 는 거 아니냐?"

"하하하. 들켰습니까?"

"내 이럴 줄 알았다."

딱 봐도 두 사람은 아주 친해 보였다.

라인혁과 같이 1생활관으로 복귀한 백우호는 뒤늦게 고필증 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었다.

"충성! 이 병 백우호입니다."

"네가 우호구나. 강진이 동기, 맞지?"

"예, 그렇습니다!"

"듣자하니 FIFA 좀 한다던데. 잘해?"

백우호가 '잘합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전이었다.

라인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보다 못해. 좆밥이야."

"그렇습니까? 나중에 제가 실력 검증 한 번 해보겠습니다."

"네가 탈탈 털고도 남을 거다. 크큭."

군대에서는 곧 계급이 깡패다.

아무리 백우호가 FIFA를 잘한다고 한들, 이등병인 이상 상병 과 일병을 이겨먹으려 할 수는 없을 터.

이강진의 옆자리를 차지한 백우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은 언제 복귀한 거야?"

"한 10시쯤."

"성격 좋아보이시는데."

"그럴 수밖에. 저분도 라인혁 상병님 라인이니까."

"아, 그래?"

1분대는 두 라인으로 갈린다.

두뇌파인 안준렬 라인, 그리고 피지컬파인 라인혁 라인. 대체적으로 라인혁 라인은 체격이 좋고 운동을 좋아한다. 공통점은 축구 마니아라는 점이다.

백우호도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1중대 내에서 는 백우호도 라인혁 라인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강진은?

그는 제3의 세력이었다.

안준렬 라인처럼 머리도 잘 쓰고, 라인혁 라인처럼 몸도 잘 쓴 다.

그는 만능이다.

그래서인지 백우호처럼 특별히 어느 라인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라인혁은 고필중의 깁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빨리 나아라. 조만간 중대 대항전 있으니까. 득점기계가 깁 스 차고 있으면, 누가 골 넣냐?"

"하하, 알겠습니다. 빨리 나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필중은 축구 게임뿐만 아니라 실제 축구까지도 굉장히 잘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득점기계. 라인혁이 언급한 대로였다.

고필중은 백우호와 이강진을 쭉 훑었다.

"막내들은 축구 잘하나?"

"이 병 백우호! 잘하진 않지만, 못하지도 않습니다!"

"중간은 간다,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이번엔 이강진의 차례다.

그는 어떤 대답을 할지. 모두가 집중했다.

이강진의 대답은 인상적이었다.

"이 병 이강진. 잘합니다."

고필중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기가 축구 잘한다고 허세 부리는 사람들은 군대에 널리고 널렸지. 막상 경기 해보면 실력이 다 뽀록나더라. 너도 그런 경 우는 아니겠지?"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 잘합니다."

동기인 백우호조차 이강진의 축구 실력을 본 적이 없었다.

이강진은 면회니, 휴가니, 중대 ATTM 하는 이유로 중대에 들어와서 축구공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백우호는 딱 한 번 공을 차본 적이 있었다. 본인이 말했던 그 대로 중간은 가는 실력이었다.

베일에 감싸여 있는 이강진의 축구 실력은 과연 어떨지. 모두 의 관심이 쏠렸다.

* * *

일과 시간이 끝난 후.

저녁 8시에 이강진은 전투화를 들고 사열대로 향했다.

이강진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통신반장이 또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강진아!"

"이병 이강진."

"아까 못한 이야기 있잖아. 기억나지?"

"예. 기억납니다."

이 정도면 애착이 아니라 집착이다.

그래도 간부 앞에서 대놓고 썩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이강진은 어느새 주특기가 되어버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을 다시 해보자면 ….

통신반장이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였다.

"주명아!!! 권주명 어디 있어!!!"

바깥까지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행보관의 것이었다.

"중사 권주명!"

"이 버러지 같은 녀석! 내가 오늘 해놓으라고 한 거 내팽개치 고 농땡이 치고 있냐! 어디, 오늘 부대에서 같이 밤 한 번 새볼 까!"

"그, 금방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행보관이 훼방꾼이 되었다.

짧게 혀를 찬 통신반장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재촉했다.

"강진아, 나중에 이야기하자! 꼭!"

"예. 시간 나실 때 언제든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통신반장을 물리치는 데에 성공한 이강진.

혼자서 여유롭게 전투화를 손질하려고 할 때쯤이었다.

"강진이 여기 있었네."

이번에는 다른 인물이 이강진을 찾았다.

'오늘 참 바쁘군.'

이강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너무 인기 있어도 골치가 아팠다.

이강진에게 다가온 인물은 라인혁이었다.

"전투화 손질 다 끝났어?"

"이 병 이강진. 이제 막 하려 던 찰나였습니다."

"그래? 잘 됐네."

털썩!

라인혁은 아예 이강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너, 축구 잘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을 찾은 이유를 언급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인정이하고 축구 PX 내기하기로 했거든."

2분대에 속해 있는 마인정 상병은 라인혁과 동기이면서 동시에 축구 라이벌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자신만의 팀을 꾸려서 이런 식으로 자 주 PX 내기를 진행하곤 했다.

현재 전적은 6전 3승 3패.

서로 막상막하다.

이번 주말에 있을 한 경기로 승자와 패자가 갈릴 예정이다.

"원래 우리 팀 에이스가 필중이었거든. 근데 이 녀석이 저번 에 다리를 다치고 말아서 지금 한 명이 빈단 말이야. 그래서 너 를 고용할까 하는데. 어때?"

"지게 되면, 저도 PX비 부담해야 하는 겁니까?"

확인할 건 확인하는 게 좋다.

"아니. PX비는 나하고 선임급 몇 명만 부담할 거야. 우린 이런 거 가지고 후임들한테 돈 안 뜯어내.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너 희는 그냥 얌전히 먹기만 하면 돼. 어때, 부담 없지?"

시간만 내면 된다.

여기서 이기면 공짜 PX 이용권까지 생긴다.

어차피 주말에 할 것도 없고 해서 이강진은 그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오케이. 너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 강진아. 잘해보자."

"이 병 이강진. 예!"

기운 넘치는 이강진의 대답에 라인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분과별 간담회 시간.

고필중은 이강진을 새로운 멤버로 들이게 되었다는 라인혁의 말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정말로 강진이 말 믿으시는 겁니까?"

"본인이 잘한 대잖아."

"라인혁 상병님. 아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축구 잘한다고 말했던 사람들 치고 정말로 잘하는 사람 없는 거."

그러나 라인혁의 태도는 확고했다.

"선임인 내가 우리 분대 후임을 못 믿어주면, 누가 믿어주겠 냐. 그리고 의심된다고 기회조차 박탈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또 강진이가 정말 본인 말대로 잘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사 용할 수 있는 카드가 더 늘게 되는 셈이고. 일석이조지."

라인혁은 이강진을 믿어보기로 작정했다.

하나 고필중은 의심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이러다가 라인혁 팀이 지기라도 한다면, 고필중은 자신이 경 기에 뛰지도 못하고 그대로 PX비를 내게 될지도 모른다.

'강진이한테 차라리 스스로 못하겠다고 말하라고 압박을 넣어볼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고필증은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 었다.

'아니, 됐다. 이렇게까지 치졸하게 하진 말자.'

그리고 라인혁이 했던 말이 자꾸 고필중의 귓가에 맴돌았다.

선임이 후임을 못 믿어주면, 누가 믿어주랴.

라인혁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병원에 너무 오래 입원하긴 했었나 보군.'

옅은 웃음을 흘리는 고필중.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도 이강진을 믿어보기로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토요일 아침을 군데리아로 해결한 병력들은 사열대 앞에 있 는 작은 연병장으로 향했다.

참가 인원수는 총 22명.

각 팀별로 딱 11명씩 맞춰서 나왔다.

대신, 팀원을 짜는데 제한이 하나 있었다.

간부는 팀원으로 받을 수 없다. 이게 유일한 제한 조건이었다.

만약 간부를 팀원으로 기용하게 된다면, 그 순간 밸런스가 붕괴 된다.

작대기 두 개 달고 공을 차면서 상대편 골대까지 갔는데, 상 대가 다이아몬드 2개 내지 3개 달고 있는 중위나 대위다. 그러면 마음껏 슛을 날릴 수 있을까?

천만에. 군대에서 그런 결정은 남은 군생활을 포기한 결정이 라고 봐도 무방하다.

계급이 깡패다. 그것은 축구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인정과 라인혁은 간부들을 제외하고 병사들로만 팀을 꾸리기로 합의를 봤다.

물론 눈치 없이 팀에 넣어달라고 졸라대는 간부도 있었다. 하 지만 병사들끼 리의 승부라는 말로 어찌저찌 둘러대 면서 막을 수 있었다.

"라인혁! 오늘에야말로 결판을 내자!"

"오냐! 이번이 마지막 승부다!"

몇 주째 이어지고 있는 라인혁과 마인정의 축구 대결.

그 대망의 마지막 대결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강진과 백우호는 수비를 보기로 했다.

경기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던 두 남자.

백우호는 이강진을 힐끔 바라봤다.

'정말로 강진이가 잘 할 수 있을까?'

계속 의심이 됐다.

그 순간.

마인정 팀에 속해 있는 주덕연 일병이 하프라인을 넘어섰다.

라인혁 측 선임들은 난리가 났다.

"강진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

마침내 이강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 제21화. 전투 축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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