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70화 (70/347)

제22화. 무박 3일 (5)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이도훈.

한편 안준렬과 황지웅, 이강진은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협의가 안 된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이도훈이 왜 병사들을 커버 쳐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서민형 대위는 병사들에게 물었다.

"도훈이 말이 사실이냐?"

"상병 안준렬. 그게……."

말끝을 흐리는 안준렬.

그는 이도훈처럼 능수능란하게 거 짓말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 었다.

대신 이강진이 답했다.

"이병 이강진. 제가 선임들이 화장실로 잠시 자리 비웠을 때 여기 이도훈 소위가 베터리 필요하다고 해서 잠시 빌려줬습니다. 선임들에게 말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렇게 말을 해두면 안준렬이 베터 리 하나가 방전되었다는 사 실이 밝혀졌을 때 당황했던 이유까지 완벽하게 설명이 된다.

이강진은 안준렬, 황지웅과 다르게 거짓말에 아주 능했다.

마치 이도혼처럼.

군대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이강진과 이도훈, 두 사람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연 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민형 대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병사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옆에서 이도훈도 한 마디를 거들었다.

"저를 봐서라도 한 번만 넘어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서민형 대위가 작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 내가 너한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네가 그렇게 부탁을 해오면 거절 못하지. 그래, 알았다. 이건 그냥 없던 걸 로 하마."

"감사합니다, 서민형 대위님."

"천만에. 그보다 나중에 시간 좀 내줘라. 얼굴 못 본지도 오래 잖아? 내가 술 한번 쏘마."

"예, 알겠습니다. 일정 체크해서 제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냐!"

간만에 이도훈과 만나서일까. 서민형 대위는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레토나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들이 자취를 감추자마자 안준렬이 대표로 이도훈에게 고마 움을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전포대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돕는 거지. 나도 병사 시절 때가 있어서 그런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우리가 실사격 때문 에 하도 시끄럽게 해서 미안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지."

병사 출신이라 그런지 이도훈은 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오래된 P96K 베터리는 방금 충전했어도 갑자기 방전되 고 그러더라. 나중에 통신한테 말해서 오래된 베터리는 교체하 게끔 간부님들께 잘 말하라고 해. 오늘처럼 결국 털리는 건 너 희 중대가 될 테 니까."

"예,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하고. 너희들도 수고해라. 아, 그렇지."

이도훈의 시선은 황지웅을 지나쳐 이강진에게 머물렀다.

"이강진이라고 했나? 거짓말하는 게 아주 능숙하더라. 병사 시절 때 나 보는 줄 알았다."

"칭찬인 줄 알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칭찬으로 들어줘서 고맙다. 그럼 난 갈 테니까 혹시 우리 쪽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정이 넘치는 간부, 이도훈의 도움으로 인해 큰 위기를 넘겼다.

만약 이도훈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되 었을까?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 뭘.'

이강진은 그런 일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8시간의 근무가 끝나면 12시간이라는 휴식 시간이 이들에게 주어진다.

오자마자 베터리 문제부터 해결한 후에 생활관으로 돌아간 안 준렬 팀.

아직도 발에 깁스를 한 고필중이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안준렬 상병님. 지웅이하고 강진이도 고생 했다. 별 일 없었지?"

황지웅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입을 열었다.

"말도 마라. 사단한테 털릴 뻔했어. 죽다가 살아 돌아온 거야, 지금."

"응? 왜?"

"통신 놈들 때문에. 어떻게 된 거냐 하면……"

황지웅이 자초지좋을 말해주는 동안, 이강진은 안준렬과 함 께 샤워실로 이동했다.

쏴아아!

따스한 물이 이들의 어깨에 쌓인 피로를 녹여줬다.

"강진아.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저녁 먹 고 개인정비 시간 가진 다음에 일찍 자둬라. 점호는 없으니까 취침시간 아니더라도 피곤하면 미리 자도 돼."

"예,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강진은 그럴 생각이었다.

근무 막바지에 온 기습 검열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독 피곤하네.'

느낌상 조기취침은 확정이다.

무박 3일 훈련, 이틀째.

저녁 점호뿐만 아니라 아침 점호도 생략되었다.

오전에 목진지로 투입될 병력들은 거의 눈을 뜨자마자 동시 에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빠르게 아침식사를 해결한 이후에 다시 차에 탑승하는 오전 반.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같은 도로를 달리다보니 길이 낮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전 8시 50분.

10분 정도 미리 도착한 안준렬 조는 새벽 내내 밤을 지새워가 면서 목진지를 지킨 전마등, 라인혁, 백우호 조에게 바통을 이 어 받았다.

피곤함이 가득한 전마등은 안준렬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남겼

"특이사항이랄 건 없고. 저기 포병대대 보이지? 저쪽 부대가 오늘 대항군 상황조치 훈련 한다고 하더라. 오후쯤에 할 거 같 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추진한 거, 조금 남겨뒀으니까 입 심심할 때 지웅이, 강진이하고 같이 나눠먹고."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마등 병장님."

"그래. 너도 고생해라."

이동하기 전에 백우호는 이강진과 말없이 눈빛만 교환했다.

그렇게만 해도 백우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강진 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피곤하다. 졸리다. 그리고 배고프다.

이거면 지금 백우호의 모든 상황을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목진지에 들어온지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강진이 안준렬에게 물었다.

"안준렬 상병님.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큰 거?"

"작은 겁니다."

"그래, 알았다. 저기 저 갈대밭 보이지? 저기서 싸고 와."

"예, 알겠습니다.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8시간동안 한 곳에서 근무를 서야 했기 때문에 생리 현상도 느낌이 왔다 싶으면 바로바로 해결을 해둬야 한다. 참고 있어봤 자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좋은 항상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단독군장, 그리고 K-2 소총을 차고서 갈대밭으로 향하는 이강진.

'갈대 한 번 무진장 크네.'

사람의 키 정도 되는 갈대밭의 모습에 이강진은 혀를 내둘렀 다.

바지줌을 내리고 소변을 보려고 할 때였다.

바로 근처에서 낯선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어떻습니까? 이곳에서 잠복해 있다가 지휘통제실하고 사격지휘소 급습해서 뒤통수 빡! 때리는 거."

"나쁘지 않겠는데? 몸 살짝만 숙여도 전혀 안 보이고. 소리만 조심하면 되겠어."

대화 내용이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이강진은 소변보는 것을 잠시 중단했다. 그러고 난 뒤에 조심 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을 확인했 다.

처음에는 이도훈이 속해 있는 포병대대 일원인 줄 알았다. 하 지만 이들은 전혀 다른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누런 상의와 바지. 그리고 붉은색의 머리띠.

'저건 대항군 복장인데?'

아까 저들은 갈대밭에 숨어서 지휘통제실이나 사격지휘소를 노리자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문득 오전에 전마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항군 훈련 한다고 했었지.'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세 팀으로 나누자. 두 팀이 최대한 저쪽 부대 흔들어놓고, 나머지 한 팀이 여기에 잠입해 있다가 아까처럼 지통실하고 사격지휘소 습격하는 거지."

대항군계의 엘리트, 한중훈 중사가 선보였던 작전과 비슷했 다.

다만, 그때보다 규모가 좀 커보였다.

"상대는 그 유명한 이도훈 소위 님이시다. 실전에서 무장공비 여럿 때려잡은 사람이 니까 최대한 주의해."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 루트로 가보자."

이동하기 시작하는 대항군들.

그제야 이강진은 자신이 소변을 보러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오줌보 터지는 줄 알았네!'

볼 일을 보면서 이강진은 방금 들었던 내용을 머릿속에 확실 히 기억해두기로 했다.

어쩌면.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겠어.'

어제의 보답을 하고 싶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지루한 경계근무 타임이 돌아왔다.

자칫 졸릴 수도 있는 시간.

때마침 이들의 잠을 깨우는 이벤트가 발생했다.

"오대기 비상!!!"

포병대대 쪽에서 갑자기 오대기 비상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감을 잡았다.

'시작되었군.'

대항군 상황조치 훈련이다.

전마등이 미리 인수인계를 해줬기 때문에 안준렬 조는 당황 하지 않았다.

바삐 움직이는 포병대대들.

황지웅은 문득 이 런 궁금증이 들었다.

"포병들이 대항군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후방 에서 포 쏘는 게 포병들 역할 아닙니까?"

"포병들만으로 대항군을 제압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 니까. 왜, 포병들도 병기본 훈련은 받잖아. 안 그래?"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는지 황지웅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각 포대의 오대기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항군이 최초로 목격된 곳을 향해 달려갔다.

남은 포병들은 견인곡사포를 지키기 위해 경계에 돌입했다.

이강진은 훈련장을 누비는 한 무리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대령이면…… 연대장까지 온 건가?'

연대장이 보는 앞에서 직접 대항군 상황조치 훈련을 취하게 된 포병대대.

저쪽 대대장도 연대장 앞에서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 이고 있었다.

어느 부대든 상급자를 두려워하는 건 같을 것이다.

이도훈도 무전기를 통해 여기저기서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경계 근무 똑바로 서라. 대항군의 숫자가 많으니까 분명 팀을 나눠서 움직일 테니까."

그도 대항군의 행동 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항군이 어느 침투 경로를 이용할지는 모르는 듯해 보였다.

무전기를 든 채 직접 호를 돌아다니면서 현재 상황을 살피는 이도훈.

그러다가 도중에 안준렬 조가 있는 목진지까지 거치게 되었다.

"충성!"

안준렬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했다. 이도훈은 바쁜 와중임에 도 불구하고 안준렬의 거수경례를 받아줬다.

"충성. 오늘은 실사격 일정 안 잡혀 있으니까 귀마개 안 껴도 된다."

농담조로 말하는 이도훈.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는 표정이었고생하라는 말을 남긴 뒤에 자리를 뜨려고 하던 찰나였다.

"전포대 장님."

이강진의 목소리가 그를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어. 왜?"

이도훈뿐만 아니라 안준렬, 황지웅도 이강진을 바라봤다. 뜬금없이 바쁜 이도훈을 왜 부르나? 그 생각이 들었다.

이강진은 이도훈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3097 진지 입구 반대편에 갈대밭 있는 거 아십니까?"

"얼핏 보긴 했는데. 거기가 왜?"

"그곳이 대항군이 침입하기 참 좋은 경로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한 쪽이 병력들을 유인하고, 그 사이에 다른 한 쪽이 갈대밭 에 몸을 숨겼다가 경계가 허술해지는 틈을 타 급습하고. 만약 제 가 대항군이라면, 그런 작전을 짰을 겁니다."

이강진은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

그러나.

이도훈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바로 눈치 챘다.

"어디서 들은 게 있나 본데."

"붉은 머리띠를 맨 갈대들이 속삭이는 걸 우연히 들었을 뿐입 니다."

이강진은 대항군을 갈대들로 비유해 표현했다.

씨익 미소를 지은 이도훈.

그는 이강진에게 짧게 말했다.

"고맙다."

그렇게 말하고서 빠른 걸음으로 장소를 이탈했다.

은혜 갚은 까치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난할수 있는만큼 해줬어.'

너무 많이 해줘서 문제다.

< 제22화. 무박 3일 (5)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