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화. 두 번째 휴가 (3) >
이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강진은 금세 할 게 없어졌다.
만날 사람이라고 해봤자 그의 어머니, 그리고 황민수. 이렇게 둘뿐이었다.
최근에 한지윤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녀는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거리도 멀고, 게다가 이미 휴가를 나 오자마자 한 번 만나지 않았나.
휴가 복귀까지 남은 기간은 3박 4일.
이사 갈 집의 계약서를 작성 이후에 바로 계약금까지 넣어준 이강진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나니 할 게 없어졌다.
휴가 복귀 일까지 할 게 없다.
그럴 때에는 역시…….
"주식만한 게 없지."
단타라도 하는 게 좋아 보였다.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모니터에 다수의 프로그램 창을 띄웠다. 이강진의 눈이 날카 로워 졌다.
"이건 한 8프로만 먹으면 되겠어."
빠르게 익절한 뒤에 다른 종목으로 다시 매수하기를 반복했 다.
이강진에게 주식은 마치 게임과도 같았다.
하면 재미있다.
회귀 이후에 하는 주식은 특히나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치트키를 쓰고 게임을 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버그를 쓰든, 꼼수를 쓰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이강진은 이기는 것에서 참맛을 느낀다.
오늘도 이강진은 승자였다.
"군대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었을 텐 데."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강진이 원하는 만큼의 휴가를 충분히 확보 해두면 된다. 40일에서 50일 정도 텀을 두고 4박 5일 이상의 휴가를 정기적으로 나오기만 해도 된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강진 은 만족하고 있다.
전역하고 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돈벌이를 시작하면 된다. 오늘 번 수익을 확인해보는 이강진.
"다음에 휴가 나왔을 때 차나 한 대 뽑아둬야겠네."
그때쯤이면 이사도 마친 상태일 테고. 차고에 차를 넣어두면 될 거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이강진은 군대에서 커다란 산을 넘어야 했다.
"휴가 복귀하면…… 유격이 기다리고 있겠지."
복귀일이 다가올 때마다 다시 부대에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매번 들곤 했지만.
이번 휴가만큼 그런 생각이 격렬하게 든 적은 없었다.
휴가 복귀 당일.
같이 복귀할 사람도 없었기에 이강진은 혼자서 택시를 타고 부대로 향할 생각이었다.
곧 택시 타고 부대로 돌아가겠다는 연락을 한 순간. 건너편에서 행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가자한테 전화 왔냐?
-예, 그렇습니다.
-누군데.
-이강진 이병입니다.
-강진이? 그러면 거기 시내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라. 안 그래도 유격 훈련 때문에 필요한 비품 사러 시내에 나가야 하니 까. 내가 픽업해서 부대로 복귀시키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들었지, 강진아?
이강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예. 그럼 전 어디서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까?"
-행보관님이 휴가자들 매번 내려주시는 곳 알지? 택시들 몰 려 있는 곳. 거기에 가 있으면 행보관님이 알아서 픽업하실 거 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냐. 조금 있다가 보자. 아, 그리고 스파링 이번 달 호 사오 는 거, 잊지 말고.
원래는 이강진보다 휴가 복귀가 빠른 전마등이 사갈 예정이 었다. 그러나 도중에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강진의 몫 으로 남게 되었다.
"예. 근처 서점 들러서 사가겠습니다."
-꼭 사와야 한다, 꼭! 이 번 호, 완전 대박이라고 옆 중대 사람 들이 그러더라. 지금 선임들이 너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으니 까 실망시키면 안 된다!
스파링 하나에 영웅이 될 기회를 거머쥐게 된 이강진.
군대는 참으로 단순하다.
아무것도 아닌 잡지 한 권만으로도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은 거의 군대가 유일할 것이다.
서점에 들어가자, 이강진처럼 오늘 부대로 복귀하는 휴가자 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군부대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어딜 가든 군복을 입은 사람들 이 보였다.
서점도 다르지 않았다.
군인들은 이곳에서 자기개발서 라든지 영어 수험서 등 다양 서 적들을 구매해간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단연 구매율 1순위라고 한다면 바로…….
'성인 잡지지.'
남자는 욕망에 중실한 존재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들 아닌가. 여자에 대한 호기심 이 한창 왕성할 때라고 할 수 있다.
스파링 6월호를 사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는 이강진.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저기군.'
바로 잡지 코너를 발견했다.
이제 스파링 6월호만 찾으면 된다.
스파링을 찾는 법은 간단하다. 노출도가 높은 의상을 입은 여 성이 표지 모델로 나온 잡지가 있다면, 그건 거의 99퍼센트 확 률로 스파링이다.
남심을 자극하는 잡지였기에 찾기 쉽다.
하지만 이걸 들고 계산대까지 가기는 어 렵다. 특히 계산하는 점원이 여성인 경우에는 더더욱.
운이 좋게도 스파링 6월호는 딱 한 권 남아 있었다.
문제는…?
'설마 저 군인, 스파링을 노리는 건가?'
맞은편에서도 군복을 입은 남자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시선 역시 스파링 6월호로 고정되어 있었다.
'뺏길 순 없지!'
이건 1075 대대 1중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만약 타 사단에게 마지막 한 권 남은 스파링을 빼앗겼다는 사 실이 다른 병사들에게 알려진다면, 이강진은 영웅에서 패배자 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된다!
이강진은 서점에 있는 사람들의 현재 위치와 예상 이동 경로, 그리고 타깃(스파링 6월호)과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 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였다!'
최상의 루트를 발견했다!
이강진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한편, 맞은편의 군인도 이강진이 스파링 6월호를 노리고 있음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허겁지 겁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라!'
오른손을 뻗어 잽싸게 잡지를 집어 들었다.
나이스 캐치!
'해냈다!'
지금 이 순간.
군대에서 갈굼 받을 자와 추앙 받을 자가 결정되었다.
약속대로 행보관의 차를 타고 부대로 향하게 되었다.
이강진과 행보관. 두 사람이 만나면 할 이야기는 두 개밖에 없 다.
군생활 이야기.
그리고…….
"요즘은 어떤 종목이 핫한 거 같냐, 강진아."
주식 이야기다.
MVW는 완전히 상승기류를 타버린 탓에 이제 더 이상 살 수 가 없게 되었다. 물론 사도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마음에 들 만한 수익은 아니다. 지금의 MVW를 매수할 바에야 차라리 성 장 가능성이 있는 다른 종목에 투자를 하는 편이 훨씬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줄 것이다.
"눈여겨보고 있는 곳이 세 군데 정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주가흐름을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해야 할 거 같아서 아직 행보관님한테 추천 드리기는 시기상조인 거 같습니다."
"음, 그러냐."
"행보관님께서 저에게 주기적으로 주가흐름 관련 정보를 전 해주시 면, 제가 분석을 한 다음에 알려드리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돈이 되는 정보인데, 행보관에게 무료로 줄 수는 없었다.
그만큼 받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걸 은근슬쩍 언급했다.
행보관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이강진이 먼저 걸어온 딜을 흔 쾌히 수락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대신, 다른 간부들한테 이야기하진 말 고."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 행보관 동맹 라인을 다시금 견고하게 만들어뒀다.
부대로 복귀한 이강진은 당직사관인 소대장에게 휴가 복귀 신 고를 했다.
이후에 총기현황판과 말판 위치를 수정하고 생활관으로 향했다.
"충성 이 병 이강진, 휴가 복귀했습니다."
"어서 외라, 강진아! 안 그래도 너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선임들이 이강진을 격하게 반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한 권의 서적 때문이었다.
"스파링 이번달 호, 사왔지?"
"예. 여기 있습니다."
"오오오……!"
선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중대 최고의 인기 서적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성서. 기뻐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강진은 쓴웃음을 삼켰다. 짐을 정리하는 동안, 이강진은 백우호를 불렀다.
"부대에 별다른 일 없었지?"
저번처럼 대대장에게 경계근무 서다가 탈탈 털리거나 한 일 이 없었는지 묻고 싶었다. 백우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어. 유격 대비한다고 체력 훈련만 주구장창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다음 주였나?"
"그래. 우린 이제 좆됐다, 강진아. 선임들한테 유격 훈련이 어 떤 훈련인지 대강 들었는데…… 시발, 이건 미쳤더라. 훈련이 아니라 지옥이래, 지옥!"
유격을 아주 잘 표현한 단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격장에 악마 대신에 붉은 모자를 쓴 조 교들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백우호는 이강진이 휴가를 간 동안 들었던 유격 일화들을 쭉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강진이 유격에 대해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이강진만큼 유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유일하게 유격 훈련 2번 뛴 사람일 텐데.'
이제 한 번 더 받게 되면 3번째가 된다.
'시발, 갑자기 좆같네.'
2번 받는 것도 빡셋는데. 3번째 유격이라니.
휴가를 처음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면 재입대, 할 만 하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이강진이었지만…….
그 생각은 유격 일정으로 인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백우호의 말대로 1075 대대는 유격에 대비한다는 명목하에 계속해서 병사들에게 체력 단련 훈련을 강요하고 있었다.
체력을 길러두면 물론 좋다.
하지만 '유격 대비'라는 말이 병사들의 입에서 계속 한숨이 새 어나오게 만들었다.
일과 시간을 끝낸 뒤에는 단체 구보가 이어졌다.
구보 뒤에는 체육 시 간이다.
단, 평소의 체육 시간과는 달랐다.
열외가 없는 체육 시간이었기에 축구든 농구든 족구든 배드민턴이든 아니면 헬스든 뭐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도 체력 단련 훈련의 일부분이니까.
압도적인 축구 실력을 보유한 이강진은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축구파에게 불려가야만 했다.
고필중은 다친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이들을 응원했다.
"파이팅입니다! 아자, 아자, 아자!"
"야, 고필중!"
라인혁이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년 대체 붕대 언제 푸냐! 군의관님한테 들어보니 풀어도 한 참 전에 풀었어야 했다며! 설마 유격 훈련 끝날 때까지 버티려 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아직까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그러셨습니 다!"
"뻥 치지 마라! 너, 저번에 똥마렵다고 화장실로 막 뛰어갔던 거, 내가 못 봤을 줄 아니냐? 아픈 척 그만하고 붕대 풀고 너도 들어와라. 그리고 같이 유격 뛰자고!"
선임들의 압박 속에서 고필중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가고 있었다.
부상으로 유격 훈련까지 빼려고 했던 고필중의 원대한(?) 계 획은 딱 여기까지였다.
그 와중에 통신반장이 사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아!"
"이병 이강진!"
"중대장님께서 찾으신다. 행정반으로 와라."
"예, 알겠습니다!"
중대장이 이강진을?
대체 왜?
특별히 이강진을 부를 일은 없었다. 의아함을 품으며 행정반 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충성, 이병 이강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중대장실로 가 봐. 중대장님이 너 기다리고 계실 거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관등성명을 다시 한 번 말하는 이강진.
안에서 중대장의 들어오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중대장실의 문을 열었다.
"널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중대장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비밀스러운 이야기임을 뜻하는 신호였다.
"이번에 유격 조교로 뛰어볼 생각 없나?"
< 제24화. 두 번째 휴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