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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84화 (84/347)

< 제25화. 유격 훈련 (5) >

제25화. 유격 훈련 (5)

유격훈련체조만 주구장창 받았던 오전에 비해서 오후 일정은 그나마 할만 했다.

코스 훈련만 소화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1분대 인원들은 첫 코스인 암벽등반으로 향했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이들을 집중시켰다.

"교육생들 전체 주목합니다, 주목."

"주목!"

"우선 암벽등반 코스에 온 걸 환영합니다. 말 그대로 암벽을 등반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 암벽을 등반하는 건 아니고, 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모형 암벽을 오르기만 하면 됩 니다. 팔과 다리의 근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감입 니다.

214번 교육생. 방금 조교가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까?"

"악! 자신감입니다!"

"맞습니다. 자신감 하나만 있으면 누구든지 오를 수 있습니다."

순 거짓말이다.

못 오를 병사는 못 오른다. 군대는 자신감, 멘탈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긴 하지만, 아무리 멘탈이 좋아도 피지컬의 부족함 까지 전부 메꾸진 못한다.

"우선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고 한 번씩 코스 훈련 받도록 하겠습니다. 조교, 위치로."

"위치로!"

암벽등반 코스에 오르기 전에 안전장치가 채워졌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안전만큼 중요한 건 없다.

"도하준비 끝!"

"도하!"

"도하!"

조교의 손과 발이 바빠졌다.

상당히 빨랐다. 거미줄만 못 나오지, 거의 스파이더맨이나 다 를 바 없었다.

조교의 시범에 1분대원들은 절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걸 이들이 해내야 한다.

가장 먼저 선택받은 이는 기운상.

조교는 기운상을 보면서 사견을 꺼냈다.

"213번 교육생은 키가 크고 팔, 다리도 기 니까 앞선 조교보다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겠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213번 교육생, 도하준비 끝!"

"도하!"

"도하!"

모두가 다 기운상은 이번 코스를 잘 소화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잠시 후. 무참히 으깨져버렸다.

기다란 갈과 다리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허우적 거리기만 했다.

결국 지면에서 1 미터조차 벗어나지 못한 채 훈련이 마무리되 었다.

"213번 교육생. 높은 곳을 무서워합니까?"

"악! 사실은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저런…….'이라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코스 훈련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건 굉장히 큰 방해 요소 다.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낙하하는 훈련이 많은 데.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소화해낼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느렸지만, 그래도 코스 자체는 기운상 과 아직 차례가 돌아오지 않은 이강진을 제외하고 모두 완주했 다.

몇몇은 재미있다는 소감을 들려주기도 했다.

다음, 이강진의 차례다.

"후우."

비장미가 넘쳐흘렀다.

이강진은 사생결단의 마음가짐으로 암벽등반 코스 앞에 섰다.

"215번 교육생! 도하준비 끝!"

"도하!"

"도하!"

빠르게 손을 뻗은 이강진.

그는 분대원들 중에서…… 아니, 이번 유격 훈련을 받으러 온 1075 대대 병사들 모두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2번의 유격 코스 훈련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병사들과 다르게 행동 하나하나에 능숙함 이 베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강진은 전략도 하나 구사했다.

조교가 시범을 보일 때, 어느 곳에 손을 뻗고 어느 곳에 발을 내딛는지 그 부분들을 전부 다 외워뒀다.

조교가 보여줬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갔다.

"빠르다…"

"잘한다, 이강진! 나이스!"

"좀만 더! 고지가 눈앞이다!"

같은 분대원들의 응원 버프까지 더해지자, 이강진의 행보는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결국 최단시간 안에 고지를 점령했다.

조교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시범을 보였던 조교가 평가판을 들고 있는 조교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저 정도면 만점 아닙니까?"

"만점 줘야지. 웬만한 조교들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저보다는 한 수 아래지 않습니까?"

"글쎄다? 크큭."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첫 코스부터 5점 만점을 획득한 이강진.

줄발이 좋다.

* * *

코스 훈련에서 착실히 점수를 따낸 이강진은 만족스러운 성과로 유격 2일째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적어도 1중대에선 나를 따라잡을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문제는 다른 중대다.

본부중대는 그렇게까지 크게 견제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근 3년 동안 유격왕 타이틀을 비롯해 유격에 관련된 모든 상들을 싹쓸이해간 3중대다.

'내가 입대했을 때, 첫 번째 받았던 유격 훈련에서도 3중대에 서 나왔었지.'

기억이 날 수밖에 없었다.

3중대는 이강진이 전역을 할 때까지 유격뿐만 아니라 대대 체 육대회에서도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몸 쓰는 건 웬만해선 3중대의 차지였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 '무적 3중대'다.

3중대와 격차를 벌려야 하는데.'

유격에는 PT체조, 코스훈련 말고 중대끼리 맞붙는 대항전 같은 것도 자주 펼치곤 했다.

특히 참호전투에 많은 점수가 걸려 있다.

'내일 오후에 참호전투가 있군.'

마음 같으면 이강진은 오늘 저녁부터 참호전투에 나설 멤버 들을 미리 선정해두고 싶었다. 그래야 작전을 짜두든가 할 테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이강진만큼 유격에 의욕을 내비치지 않 았다.

그저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모두가 훈련을 마치고 쉬고 있을 때.

갑자기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다들 CP텐트 앞으로 집합해라, 집합!"

잔뜩 화가 난 중대장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귀를 자극했다.

대체 중대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게 누구일까.

원인을 제공한 자의 정체는 굉장히 의외였다.

병사들을 집합시킨 중대장이 인상을 팍 썼다.

"3중대 중대장이 우리에게 대놓고 도발을 해왔다."

이 말을 시작으로 중대장은 병사들이 코스 훈련을 받는 동안 에 벌어졌던 일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유격 3일차 훈련에 있을 참호전투를 위해 각 중대의 중대장 들과 함께 대대장이 참호전투장을 방문했다.

참호전투는 각 중대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다. 힘과 힘의 대 결! 정면에서 제대로 한 판 붙는 남자들의 싸움에 대대장은 아 주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때부터 3중대 중대장이 패기를 부렸다.

이번에도 무조건 3중대가 이길 거라고.

당시의 일이 떠오른 모양인지 1중대 중대장은 회상을 하던 도 중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뭐가 무적 3중대냐! 빌어먹을 나영훈……! 나보다 기수도 낮 은 주제에 대대장님한테 알랑방귀나 뀌고!"

그제야 병사들은 사건의 모든 전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참호전투 중대 대항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3중대는 반드시 꺾어야 해! 알겠나!"

"만약 3중대를 이기고 우리 1 중대가 우승을 차지한다면, 참호 전투 참가자 전원에게 외박을 부여하겠다!"

휴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박도 나쁘지 않다.

중대장이 근처에 있던 소대장을 소환했다.

"네가 와서 내일 참호전투에 참가할 선수들, 미리 뽑아둬라. 그리고 오늘부터 작전 미리 짜둬. 가능하다면 모의전도 해보고."

"예, 알겠습니다."

우선 선수 선발이 먼저다.

"할 사람 거수해보도록."

지원자를 먼저 받기로 했다.

의외로 지원자는 많지 않았다.

총 8명의 인원을 뽑아야 하는데, 지원자는 딱 4명.

그때였다.

"소대장님, 질문 있습니다."

이강진이 손을 든 것이다.

"말해봐."

"계급 상관없습니까?"

"어. 그렇지. 유격 조교도 이등병이 할 수 있는데, 참호 전투라 고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가려서 받을 게 있나."

"그럼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이강진이 지원함으로 인해 다섯 명째가 채워졌다.

그의 지원은 이미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었다. 이미 중대에서 '포상휴가 사냥꾼'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강진이다. 비록 포상휴 가는 아니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빤히 보이는데 그 걸 이강진이 능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강진은 외박보다 좀 더 큰 수를 보고 참가 지원을 했다.

'3중대에게 점수를 빼앗길 수 없지!'

큰 점수가 걸려 있는 판이었기에 유격왕을 노리는 이강진은 무조건 참가해야만 했다.

이강진의 지원으로 인해 자극을 받은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이강진이 하면 나도 한다! 라는 마인드로 군생활에 임하고 있 는 백우호도 마찬가지로 손을 들었다.

추가로 다른 분대에서 한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인혁이 합 류함으로 인해서 모든 멤버가 완성되었다.

멤버들을 불러 모은 소대장은 8명의 전사들에게 먼저 발언권을 양보했다.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

이번 참호전투 대비는 소대장조차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래 서 작전 같은 것도 미리 구상해두지 않았다.

물론 멤버로 선정된 병사들도 상황은 같았다.

한 명만 빼놓고.

"215번 교육생, 이강진."

이강진의 유격 버전 관등성명을 들은 소대장은 순간 피식했다.

"유격훈련 받을 때나 그렇게 말하고. 간부들 앞에선 그냥 관 등성명 말해도 돼."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유격 훈련에 심취해 있었나 봅니다."

"뭐, 좋은 현상이지. 그래서 왜? 또 질문 있어?"

"질문은 없고 작전은 있습니다."

작전이 있다는 말에 소대장과 병사들의 시선이 이강진에게 집 중되 었다.

필살의 작전이 있다.

3중대를 꺾고, 1 중대가 참호 전투에서 우승할 수 있는 필살기.

이강진은 그것을 모두에게 공유하기로 했다.

유격훈련 3일째 아침.

오전에는 유격체조훈련으로 늘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도 유감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교육생들.

그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만큼, 그들의 근육들 또한 같이 비명을 내리고 있었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유격체조훈련 때문에 평소에 안 쓰던 근 육들을 무리하게 사용하려다보니 발생한 근육통의 영향이었다.

오전 훈련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코스 훈련이 진행되었 다.

오늘 코스 훈련은 오후 3시까지였다. 3시 반 이후부터는 모든 중대가 참호 전투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대대장과 본부, 1중대, 2중대, 3중대 중대장들 이 와서 나란히 자리를 잡아둔 상태였다.

교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생들, 전체 주목한다. 주목!"

"주목!"

"지금부터 중대 대항 참호 전투를 시작하겠다. 각 중대별로 이 미 8명의 선수들을 뽑아뒀을 거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우승한 중대에게는 단체로 점수를 부여하도록 하겠 다. 반대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나머지 중대들은 저 녁 식사 전 까지 PT 체조, 다시 받도록 한다."

이곳저곳에서 병사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전에 겨우 훈련 끝냈다 싶더니. 그걸 다시 한다?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다. 승자가 아니면 기억하지 않는 더러 운 약육강식의 법칙은 이곳 유격 훈련장에서도 여지없이 적용 되었다.

대진은 랜덤 추첨 방식으로 결정된다.

각 중대장들이 나와 제비뽑기를 진행했다.

1차전은 3중대 VS 2중대.

2차전은 1중대 VS 본부중대.

대진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미소를 지었다.

'대진운은 정말 기가 막히네.'

본부중대는 최약체로 뽑히는 곳이었다.

저 대진표대로라면, 결승전 대진은 1중대 VS 3중대가 될 확 률이 크다.

'내 작전이 제대로 통하기만 하면…… 이건 무조건 우승 각이 승부사 이강진의 작전이 그대로 먹혀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 제25화. 유격 훈련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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