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9화. 빈틈을 보여라 (1) >
제29화 빈틈을 보여라 (1)
7인조 인기 보이그룹, KGE의 리더인 태강.
처음에 그가 군입대를 발표했을 때, 3일 동안 그의 이름이 계 속해서 인터넷 인기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치 쪽에서 뭐 이상한 일 터져서 그거 덮으려고 일부러 태강 의 군입대를 발표한 거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건 일체 관계없었다.
태강은 예전부터 군복무는 무조건 현역으로 마치겠다고 결심 했었다.
깨끗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한 채 연예계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입대 당일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태강을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덕분에 보충대 병사들은 그날 하루 종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보충대에서 현역 판정을 받고 무사히 19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게 된 태강.
본명은 성태강. 신병교육대에서 부여받은 번호는 352번.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이상, 그는 더 이상 KGE의 인기멤버 태 강이 아니다.
352번 훈련병 성태강이다.
화려한 연예계 무대와 군대. 이 두 장소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서 다들 성태강이 훈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신병교육대 퇴소식 당일.
신교대 대대장은 어느 훈련병을 불렀다.
이병 계급장을 달고 단성에 올라선 성태강.
이윽고 마이크를 든 작전과장이 대대장을 대신해서 입을 열 었다.
"위 훈련병은 신병교육대 훈련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 하였기에 이 상장을 수여함. 2013년 8월 12일. 중령 황서박."
최우수 훈련병 타이틀은 성태강이 차지했다.
그가 유명 인이라서 특혜로 최우수 훈련병을 그에게 양도한 게 아니었다.
모든 훈련을 완벽하게 잘해냈다.
사격뿐만 아니라 행군, 각개전투 등등. 야간행군 때에 뒤처지 는 동기를 위해서 성태강이 군장 하나를 더 짊어지고 행군한 것 은 이미 훈련병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였다.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피지컬과 체력을 보유하고 있는 성 태강.
그는 딱 국방부가 원하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같은 안무를 몇날며칠 계속해서 반복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력 이 붙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입대 전에는 연기에 도전하고 싶어서 일부러 몸을 만들기도 했다. 선명한 식스팩과 이두박근이 그가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상장과 함께 4박 5일 포상휴가증을 받은 성태강은 목소리를 높였다.
"352번 훈련병 성태강! 감사합니다!"
대대장은 그런 성태강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강진 이후로 이렇게 완벽하게 신교대 훈련을 소화해낸 건 네가 처음이다. 고생 많았다."
이강진.
성태강이 현무중대에서 계속 훈련을 받으면서 숱하게 들었던 이름이다.
어떤 성과를 이룩할 때마다 조교, 간부들은 이강진의 모습이 투영된다면서 그의 이름을 계속 거론했다.
그래서인지 성태강은 이강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절로 관심이 생겼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고 싶지만, 그럴 확 률이 매우 적다는 걸 알기에 얌전히 포기하기로 했다.
퇴소식을 마친 후에 동기 몇몇과 함께 앞으로 전역 때까지 계 속 생활하게 될 부대로 향했다.
목적지는 1075 대대.
인사과는 성태강을 1중대로 보냈다.
혼자서 1중대로 오게 된 성태강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계 속 보고 있었다.
잠시 뒤에 '안준렬'이라는 주기표를 단 병장이 성태강에게 다가왔다.
"반갑다. 1분대 분대장, 안준렬이다. 앞으로 내가 잘 부탁한다."
"이 병 성태강! 잘 부탁드리겠습니 다!"
"군장하고 의류대 가지고 나 따라오도록 해."
"예!"
군기가 바짝 든 대답.
이제 막 자대에 전입한 신병 특유의 언행이다.
안준렬을 따라 1생활관으로 향하는 성태강.
마치 첫 데뷔 무대를 가질 때의 기분과 같았다. 아니, 그때보다 더 떨리는 거 같았다.
그때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떨리진 않았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본인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행정반과 1생활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문을 열자, 1분대원들로 추정되는 병사들의 시선이 성태강 쪽 으로 고정되었다.
성태강은 그들을 보자마자 바로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이병 성태강! 금일부로 1075 1중대 자대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씩씩한 자기소개. 그동안 숱하게 카메라 앞에 서 왔던 무대 경 힘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사이에 성태강은 자신의 선임이 될 자들을 확인했다.
도중에 성태강의 시선이 멈췄다.
눈에 띄는 한 남자.
바로 이강진이었다.
신교대에 있을 때 이강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성태강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신교대에서 '전설의 훈련병'이라 불리던 그분이 맞 습니까?"
이강진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본인 입으로 맞다고 하려니까 창피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첫 만남부터 천하의 이강진을 난감하게 만든 신병은 성태강 이 처음이었다.
유명 아이돌이 전입했다!
이 소식은 1중대 전체에 일파만파 퍼졌다.
1생활관 문 근처엔 성태강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병사들로 북적였다.
"설마 진짜 성태강이냐?"
"맞네, 맞아! 티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인데?"
"와, 씨발. 살다 살다 연예인을 내 눈을 직접 다 보게 되네. 진 짜 대단하다, 군대."
"근데 재는 군복을 입어도 인물이 저렇게 살아날 수가 있냐? 신기하네. 연예인 버프가 저런 건가?"
그 누구든 군복을 입은 순간 못난이가 된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몇몇 또한 이 군복 너프 효과를 피해가진 못했다.
하지만 성태강은 이 군복 너프에 면역이었다.
군복을 입어도 그의 잘생김은 어디 가지 않았다.
다른 병사들에게서 볼 수 없는 이기적인 핏.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확 느껴졌다.
연예인이 1075 대대에 온 건 최초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태강을 향한 관심을 최고조에 이르렀다.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건 라인혁의 몫이었다.
"다들 구경났냐. 시끄럽게 하지 말고 후딱 사라져라."
"라인혁 병장님, 신병한테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 까?"
적극적으로 어필해 오는 후임병을 보면서 라인혁은 퉁명스럽 게 답했다.
"뭔데. 쓰잘데기 없는 거면 그냥 가라."
"트리니티 스타, 실물로 보면 어떤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웃이었다.
쾅!
라인혁은 문을 거세게 닫아버렸다.
"짜식들이. 남의 생활관에 와서 난리를 피우네. 귀찮게."
이 때문에 성태강은 좌불안석이었다.
자기 탓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 다.
이것 때문에 괜히 선임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라인혁은 거친 걸음을 뽐내며 성태강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러고서 성태강을 매섭게 응시했다.
"신병."
"이병 성태강!"
"뭐 하나만 물어보자.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할 테니까 잘 듣고 대답하도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갈굼이라는 걸까?
성태강은 마른 침을 삼키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너, 장조환 씨랑 친하냐?"
"장조환 씨라면, 예전에 축구선수 했던 그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맞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로 맹활약을 펼쳤던 장조환. 그는 한 국 축구의 격을 한 단계…… 아니, 적어도 세 단계 이상의 수준으 로 올려놓은 주역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리그에 나가서 오랫동안 축구인으로서 대활약을 펼쳤다.
한국 축구계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인물. 하나 2년 전에 은 퇴를 선언하고, 지금은 축구인이 아닌 방송인으로서 이곳저곳 다양한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는 중이었다.
예체능계에서 이름 좀 떨쳤던 스타가 방송인으로 전향하는 경 우는 의외로 많다. 장조환도 그중 한 명일 뿐.
성태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작년 초에 같이 방송 진행했던 적도 있습니다."
"정말기 거짓말 하는 거 아니겠지?"
"예. 정말입니다. 그 방송 찾아서 보시면 제 말이 거짓인지 아 닌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라인혁의 눈이 반짝였다.
"그, 그래? 어흠! 인맥이 아주 넓네. 마음에 들었어, 신병!"
라인혁이 장조환의 열성팬이라는 건 1 중대 모두가 다 아는 사 실이다.
FIFA에서도 항상 주전 멤버로 장조환을 기용할 정도다.
장조환과 성태강이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고 하니, 신병을 대 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태강아. 무슨 일 있으면 이 형한테 반드시 말하고."
"이 병 성태강! 예, 알겠습니다!"
성태강이 라인혁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이강진과 백우호 는 그의 보급품에 주기를 달고 있었다.
그때, 성태강이 백우호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서일까. 백우호는 성태강의 시선이 뜨 거움을 느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혹시 예전에 래퍼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적 없으십니까? 쇼미더스킬에서 백우호 일병 님을 본 적 있는 거 같 습니다."
백우호는 성태강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있냐. 나, 티비 나온 거 다 합쳐봤자 몇 초도 안 될 텐데."
"랩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 로 전 백우호 일병님의 랩,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선 탈 락이 더 아쉬웠습니다."
"하하하, 그래? 하긴. 거기 현장이 너무 정신이 없고 산만해서 내 본 실력이 안 나온 거였지, 사실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본선 무대까지는 무난하게 진출했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인혁과동시에 백우호의 마음을 동시에 함락시키는 데에 성 공했다.
이것이야말로 1타 2피!
그 모습에 이강진은 과거의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태강이는 예전부터 저랬지.'
립서비스에 특화된 남자다. 그렇다고 인성이 안 좋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격도 괜찮은 편이다. 요즘에 정말 보기 드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군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착한 사람'이 아니다.
'적응하는 사람'이다.
아직 성태강이 가야 할 길이 멀다.
그 증거로…….
"야, 신병."
"이병 성태강!"
황지웅과 고필중은 성태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
"여기는 연예계가 아니라 군대다, 군대. 그러니까 자신이 특 별한 존재인 것 마냥 우쭐대지 마라. 알겠냐?"
"예, 알겠습니 다!"
황지웅과 고필중은 군에 입대하는 연예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혜란 특혜는 모두 그들이 독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었다.
물론 편법으로 병역 기피를 한 연예인들보다는 그래도 군입대를 택한 연예인들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어쩌면 자신들이 받아야 할 포상휴가가 성태강에게 돌아갈지 도 모른다. 이런 불안감이 황지웅과 고필증을 압박했다.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강진은 이 잘 못됨을 일찌감치 바로잡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내가 편해지 니까.'
중간에 끼어버린 자의 고통을 또 다시 느끼고 싶진 않다.
< 제29화. 빈틈을 보여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