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6화 (96/347)

제30화. 이발의 신 (2)

이발의 신이라 불리는 남자, 장허국 병장.

그의 손을 거쳐 간 병사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세 자리에 달한다.

원래 1중대에는 두 명의 이발병을 고정적으로 두고 있었다. 현재는 장허국과 백우호가 맡고 있지만, 이번 주 내로 장허국 역 시 이발병의 자리를 같은 분과 후임에게 물려줄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허국에게 이발을 신청하는 병사들의 숫 자는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아졌다.

이발병을 차게 된 두 후임병들의 솜씨가 형편없다는 것도 크 지 만, 어디까지나 가장 큰 이유는 장허국의 이 발 솜씨다.

그는 실제로 미용사를 지망하고 있다. 독보적인 이발 솜씨는 사회에 있을 때부터 이미 두각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발병 자리 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요청이 쇄 도하고 있었다.

이강진도 이들과 같았다.

"네가 웬일이냐? 나를 다 찾아오고."

"장허국 병장님한테 부탁드릴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탁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걸 말하려고 하던 때였다.

"뭔지 알 거 같네."

장허국이 씨익 웃으면서 이강진의 말을 가로챘다.

"머리 이발해달라고 나 찾아온 거지?"

정확했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기에 이강진은 곧장 맞다고 대답했다.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인 장허국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휴가 나가는 애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한테 머리 잘라달 라고 많이들 와라. 근데 강진이,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단 한 명도 안 잘라줬다. 왜인지는 알지?"

"이발병을 이제 내려놓으실 생각이셔서 그런 겁니까?"

"그것도 있고. 그리고 보다시피 사지방 작업도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내 개인 시간 할애해서 다른 사람들 머리 잘라 줄 수는 없잖아. 나도 쉬어야지. 그리고 이미 이발병 두 명이 버 젓이 있잖아? 그럼 개네들한테 잘라달라고 해야지. 안 그러냐?"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이발병이 아니라고 머리를 잘라주면 안 된다는 법은 없 다. 가끔 이발병 둘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재중일 경우일 때 에는 일반병이 다른 병사의 머리를 대신 잘라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한다고 경고 카드 받거나 하진 않는다.

이발병 자리를 내려놓기로 한 장허국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다. 그래서 병사들이 장허국에게 제발 내 머리 좀 손질해달라고 부탁을 해오는 것이다.

하지만 장허국은 이들의 부탁을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이강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장허국의 마음 속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제가 PX 거하게 쏘겠습니다."

"강진아. 나, 병장이야. 더 이상 PX에 목을 맬 짬이 아니라고. 두 달 뒤에 전역하는 사람이 PX 하나에 재주 부리진 않잖아. 안 그래?"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설득하기 빡세네.'

머리를 자르지 않고 밖에 나가서 사재 미용실을 이용하는 것 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군인 머리만큼은 장허국을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사 재 미용실보다도 장허국이 만져주는 머리 스타일이 더 훌륭하 다. 괜히 군인들 사이에서 이발의 신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됐다, 강진아. 일부러 시간 내서 나 찾아왔는 데, 원하는 대답을 못 들려줘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한 거 같아 죄송합니다."

"남은 이발병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걔네들한테 잘 라달라고 해. 우호가 열심히 하는 거 같더라. 우호한테 잘라달라고 하면 어때?"

그건 절대로 안 된다.

백우호가 기운상의 뒤통수에 커다란 땜빵 하나를 만들어버 린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면, 이런 소리는 절대로 안 할 것이다.

하나 장허국은 아직 이걸 모르는 듯했다.

작업 다시 시작하자는 통신반장의 부름에 응답하듯 장허국은 다시 사지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강진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일 났네."

휴가까지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강진은 어떻게든 장허국한테 이발을 받고 싶었다.

이발의 신의 은좋을 받고 싶어 하는 건 비단 이강진만이 아니 었다.

휴가를 앞둔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허국의 마음 속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열쇠로 열거나.

아니면 부숴버리거나.

'그래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야지.'

찾다보면 분명 장허국을 공략할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할 것이다.

장허국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보기로 했다.

다시 한 번 통신분과의 생활관을 찾은 이강진.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지방 때문에 바쁜가 보네.'

개인정비 시간까지 모조리 쏟아 부울 정도로 타이트하게 작 업 중이다. 일과 시간에는 더 바쁠 터.

이강진은 장허국의 관물대를 찾았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이라든지 작품 등이 있으면 그에 관련된 사진 같은 것을 관물대에 붙여두곤 한다.

이강진은 장허국의 관물대에 무엇이 붙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누가 보면 도둑놈으로 오인하기 딱 좋겠네.'

그러면 골치 아파진다. 가급적이면 텅 빈 타 분과의 생활관에 서 오래 머무르고 있으면 안 된다. 괜히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허국의 관물대에는 어느 한 걸그룹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ERA, 요즘 잘나가는 걸그룹이지."

이강진이 역주행 열풍의 주역으로 꼽았던 트리 니 티 스타와 함 께 올해 대세 걸그룹 투톱으로 불리는 팀이었다.

멤버들의 숫자는 총 다섯.

ERA라는 팀 자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좋아하는 멤 버가 있을 것이다.

그 멤버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붙어 있는 사진의 개수를 따져보면 금방 알 수 있지.' 군대에 있으면 생전 안 외우던 걸그룹 멤버들 이름까지 하나 하나 세세하게 다 알게 된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확인 결과.

'혜인이 가장 많군.' 개별사진 개수만 하더라도 총 10장에 달했다. 다른 멤버들은 2~3장밖에 안 걸려 있는 것에 비하면 압도적인 숫자였다.

이 정도면 됐다.

슬슬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신분과 사람들이 생활관에 들어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 좋은 예감이 든 이강진은 일단 몸을 숨기기로 했다. 마침 숨기 좋은 장소가 있었다.

'침대 밑!'

누운 채로 몸을 굴려 침대 아래로 들어갔다. 아슬아슬한 타이 밍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통신분과 병사들.

"아…… 피곤해 죽겠습니다."

"이건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티비 고장 나면 통신, 라디오 안 나와도 통신. 컴퓨터 인터넷 선 연결한다고 통신.

저희가 무슨 AS 업체입니까?"

"이게 통신의 운명이지, 뭐."

강행군에 병사들의 불만은 점점 쌓워가고 있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이강진이 통신분과 생활관에 몰래 들어와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좋은 소리는 못 듣겠군.'

여태껏 이미지 관리 잘 해왔는데, 괜히 이런 걸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포상휴가 사냥을 나서는데 지장이 생길 지도 모른다.

훗날 화근이 될 요소들은 가급적 최대한 배제를 해두는 것이 좋다.

숨을 죽인 채 병사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누군가가 이강진이 숨어 있는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침대 아래가 점점 쳐지기 시작하더니, 이강진의 바로 코앞에서 멈췄다.

'설마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이강진은 끝장이다.

'대체 누가 올라탄 거야!'

속으로 누구일지 모르는 자에게 욕지거리를 한 바가지 퍼붓고 싶었다.

이강진의 속내를 듣기라도 한 걸까.

침대 위에 몸을 던진 남자가 목소리를 냈다.

"조금만 참아. 내가 검열 끝나고 통신반장님한테 가서 우리 분과에 포상휴가 하나 정도는 챙겨달라고 제안해볼 테니까."

'이 목소리는…….'

틀림없다.

이발의 신, 장허국이다.

"장허국 병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나만 믿어라. 우리도 언제까지 무료 봉사할 수는 없으 니까."

"근데 통신반장님이 저희 편 들어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게 좀 걱정입니다."

자기가 담당하는 분과 병사들이 고생을 하면, 그 고생에 따른 보답을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하는 것이 병사들이 바라는 이상 적인 간부의 태도다.

하지만 통신반장은 적어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행보관한테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싫다고 할 사람이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어필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장허국도 확신은 못하는 목소리였다.

순간 이강진의 뇌리가 번뜩였다.

'오호라.'

원래 이강진이 생각하던 작전이 하나 있었다.

장허국이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이 누군지 알아낸다. 그 다음, 연예계에 어느 정도 연줄이 있는 성태강에게 따로 부탁을 해서 나중에 그 여자 아이돌의 사인을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 것으로 장허국과 딜을 해볼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성태강은 이강진에게 크게 빚을 졌다. 사인 한 장 받아달라는 부탁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작전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좋겠어.'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부대 관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연대에서 검열관이 파견되었다.

본부중대를 거쳐 1중대로 향한 검열관들.

"충성!"

1중대 중대장과 행보관, 그리고 소대장은 먼저 사열대로 나가 검열관들을 맞이했다.

"충성. 오랜만이야, 윤 대위. 얼굴 보니까 살 빠진 거 같은데?"

"하하, 워낙 마음고생이 심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부대 검열 결과가 좋게 나와서 마음의 짐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은근슬쩍 잘 봐달라는 말을 간접 적으로 전달하는 윤형 인 대 위였다.

검열관은 피식 웃었다.

"분리수거장부터 먼저 가볼까?"

"안내하겠습니다."

행보관이 먼저 앞장섰다.

부대 관리는 행보관의 주된 업무다. 그러다 보니 행보관이 나서야 할 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분리수거장을 비롯해서 사열대 앞, 헬스장, 휴게실 등을 점검 한 검열관.

마지 막으로 사지방을 방문했다.

"이번에 새로 공사한 사지방이 여기입니까?"

검열관의 물음에 행보관이 바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인터넷 다 들어오고, 컴퓨터 전부 제대로 작동 됩니다. 이미 테스트는 다 마쳤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병사들 이 이용을 시작할 예정입 니다."

검열관은 컴퓨터 하나를 콕 찍었다.

직접 전원을 켜 제대로 작동하는지, 인터넷은 잘 켜지는지 등을 확인했다.

문제는 없었다.

통신분과가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상태는 다 양호합니다. 역시 행보관님이십니다."

"허허허. 그저 평소 부대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뿐입니다. 저는 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게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검열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지 2주 전부터 병사들을 빡세게 굴린 결과였다.

모든 검열을 마친 후에 검열관은 다음 타깃인 2중대로 향했 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슬슬 움직여볼까.'

이강진. 그가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 제30화. 이발의 신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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