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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7화 (97/347)

제30화. 이발의 신 (3)

검열도 무사히 끝났다.

그제야 행보관과 통신반장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고생했다, 주명아."

"중사 권주명. 아닙니다. 행보관님이 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하고 통신은 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하!"

"그래. 통신이 이번에 고생 많이 했을 테니까 네가 잘 다독여 줘라. 필요하다면 분과 외줄도 고려해볼 테니까."

그러나 통신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통신분과한테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 제가 나중에 PX 한 번 사주든가 하겠습니다."

분과 외출 보냈다가 사고라도 일으키면 통신반장이 곤란해진 다.

휴가 한 명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신경 써야 할 게 많은데. 분 대원들을 단체로 외출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냥 자기가 편해지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사열대 앞에서 행보관과 통신반장이 하는 이야기를 몰래 엿 듣고 있던 이강진은 욕지거리를 삼켰다.

'미친. 행보관이 분과 외출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 정도면, 이 야기만 잘 풀어나가면 통신분과에 포상휴가도 줄 수 있을 텐데. 저 아까운 기회를 스스로 걷어 차버리네.'

통신반장은 이기적인 남자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신경 쓸 게 많다는 이유로 병사들의 고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저 인성은 여전하네.'

회귀하기 이전이나, 이후에나.

이강진은 통신반장의 저런 마인드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에게 협조적으로 굴지 않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강진이 먼저 통신반장에게 접근해서 주 식으로 득을 보게끔 정보를 건네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여태껏 이강진은 단 한 번도 통신반장을 먼저 찾지 않았다.

인성이 별로여서다.

병사의 적은 간부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통신반장 같 은 존재가 있기에 이런 말이 병사들 사이에서 도는 것이다.

'통신분과가 불쌍해질 정도군.'

개인정비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노력해줬는데, 돌아 오는 건 PX 1회 이용권이다.

그깟 PX, 뭐가 중요하겠나. 그냥 분대원들끼리 모여서 가면 그 만인 것을.

이강진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결국 통신반장의 말대로 PX 한 번 사주는 것으로 퉁치기로 이 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그래도 행보관은 여지를 남겨뒀다.

"나중에 병력들이 PX가지고도 만족 못하는 거 같으면 나한테 와서 이야기해라. 대신, 이번 주 안으로 말해줘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행보관은 알고 있을 것이다.

통신분과가 PX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래서 일부러 저렇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하나 통신 반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행보관과 헤어진 뒤, 통신반장은 행정반으로 향했다.

'장허국 병장이 오늘쯤 통신반장한테 이야기 해본다고 했었 지.'

마침 오늘은 통신반장이 당직을 서는 날이다.

이야기를 하려면 오늘이 제격일 것이다.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군.'

이강진이 생각해둔 작전은 혼자서 성공시킬 수 없다.

협 력자가 필요하다.

'어디, 동료를 구하러 가볼까.'

저 녁 점호까지 40분 남았다.

장허국이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찾았다.

"나, 통신반장님한테 갔다 오마."

"힘내시기 바랍니다, 장허국 병장님!"

"장허국 병장님만 믿겠습니다!"

목표는 포상휴가 하나를 가져오는 것.

장허국은 포상휴가를 받으면, 자신이 사용하기보다는 고생한 후임들에게 이 공을 돌릴 예정이었다.

어차피 장허국은 이 발병으로 받아둔 포상휴가 4박 5일짜리 가 하나 있다. 이걸 말년휴가에 붙여서 사용하면 된다.

각오를 굳힌 채 행정반으로 향하는 장허국 병장.

상대는 이기주의의 끝판왕인 통신반장이다.

'힘든 싸움이 되겠어.'

그래도 해내야 한다.

분대장으로서, 그리고 통신분과 최고선임으로서 이럴 때 멋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똑똑똑.

"충성. 병장 장허국,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던 통신반장이 장허국을 힐긋 바라 봤다.

"어. 무슨 일이 냐."

"통신반장님, 잠깐 드릴 말이 있습니다만."

"중요한 이야기야?"

"예, 그렇습니다."

통신반장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두 명의 행정병, 정일문 상병과 김철 일병을 슬쩍 바라봤다.

행정병들뿐만 아니라 당직병도 있다.

듣는 귀가 많다.

"행보관실로 와라."

"예, 알겠습니다."

행보관실에 들어선 두 남자.

통신반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침 나도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됐네."

순간 장허국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어쩌면 통신반장이 알아서 통신분과에 포상휴가 하나 주려고 하는 거 아닐까?

"이번에 너희가 고생 많이 했잖아."

"예.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남들 쉴 때 쉬지도 못하고 사 지방 가서 일하고.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그래. 나도 잘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고 있다.

의외로 술술 잘 풀린다. 포상휴가라는 이름의 희망의 빛이 보 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대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내일 저녁에 내가 PX 쏠 테니까 애들하고 같이 가자."

"잘 못 들었습니다……?"

뜬금없이 웬 PX?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통신반장. 장허국은 어이 가 없었다.

"통신반장님. 정말 그걸로 끝입니까?"

"왜. 니들, PX 가는 거 좋아하잖아."

"예, 좋아합니다. 하지만 PX는 저희가 원한다면 언제든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걸 포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거 같 습니다."

"내가 사준다니까? 그러면 포상이지. 너희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어."

안 된다.

통신반장과는 더 이상 말이 안 통한다.

예전부터 이런 사람이라는 걸 장허국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나오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통신반장님."

더 이상 통신반장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장허국은 자신과 분과의 뜻을 확실하게 전하기로 했다.

"저희 통신 쪽에 포상휴가 하나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포상? 아니, 대대 대표로 병기본 측정 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아니고. 무장공비를 잡은 것도 아니고. 강진이처럼 대항군을 잡 거나 유격왕을 따낸 것도 아닌데 포상휴가를 어떻게 주냐? 명 분이 없잖아."

"병사들이 사지방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된 거, 저희 덕분이지 않습니까. 잠도 줄여가면서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취침시간에도 일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부대 검열도 무사히 잘 받았다고 들 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너희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고."

통신반장의 태도는 완고했다.

군대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통신반장을 설득하는 일이다. 적어도 장허국한테는 그랬다.

여러모로 어필을 해봤지만, 결국 통하지 않았다.

감정만 상한 채 행보관실을 나서는 장허국.

"하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행정반을 나섰다.

통신반장도 기분이 언짢은 모양인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담 배와 라이터를 들었다.

"일문아. 나, 사열대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 테니까 무 슨 일 있으면 와서 알려줘라."

"상병 정일문. 예, 알겠습니다."

통신반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일문이 김철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들 저러신데. 철아, 넌 아는 거 없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타 분과 일을 김철이 알 리가 없을 것이다. 그때 김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일문 상병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행정반을 나선 김철.

화장실을 가려면 오른쪽 복도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왼쪽 길을 택했다.

아침 점호를 마치고 분과별 식사집합이 이루어졌다.

통신분과 분대원들은 아직 기대감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통신반장과 일전을 치렀지만 원하는 소득을 얻지 못한 장허국은 분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직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라고.

끝난 건 아니다. 장허국은 계속해서 통신반장에게 도전해볼 생각이다.

분대원들이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통신반장을 바라볼 때마다 장허국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마땅한 묘수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당직병이 사열대로 나왔다.

"집합 끝난 분대는 바로 식사하러 가서도 좋습니다."

장허국은 반사적으로 인솔자 위치에 섰다.

"가자."

"네!"

기운찬 목소리를 내는 분대원들과 다르게 장허국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오전 집합 때 행보관이 나와 직접 작업 인력을 분류했다.

"통신은 검열 받느라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좀 쉬어라."

"감사합니다!"

작업을 빡세게 굴리기로 유명한 행보관조차 통신이 고생을 많 이 했다는 걸 알아줄 정도였다.

지금의 행보관이라면, 혀만 잘 굴린다면 포상휴가도 어렵지 않게 할당받을 수 있을 터.

하지만 통신반장이 문제였다.

분과 담당 간부가 있는데, 그를 재쳐두고 행보관에게 가서 직 접 포상휴가를 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아무도 예상 못한 해결사가 행동을 개시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강진은 행정반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통신반장을 찾았다.

"통신반장님. 혹시 잠시 시간 되십니까?"

"응? 나 찾아온 거야?"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이 제 발로 통신반장을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신반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되고말고!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그래주신다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막사 뒤편으로 향했다. 이강진이 먼저 통신반장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괜찮은 주식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

통신반장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도 행보관처럼 이강진 덕을 보고 싶었다.

"뭔데? 말해 봐."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떤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들어줄게."

"통신분과에 관한 일입니다."

순간 통신반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는 표정을 유지했다.

"걔들이 너 괴롭히기라도 해?"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번에 통신분과 덕분에 사지방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근데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있는 거 같아서 마음이 좀 아픕니다."

"네가 마음 아파할 일이 뭐가 있어? 어차피 타 분과잖아."

"예전에 통신 쪽한테 도움을 많이 받은 적이 있습니다. 1분대 에 사람 숫자가 부족할 때 저희 대신 청소구역 청소해준 적도 있고, 장허국 병장은 저한테 전화카드도 그냥 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1 분대와 통신분과 사이가 각별하다는 건 통신반장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통신분과 덕분에 제가 좀 더 많은 주식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알려드리려는 것도 사지방에서 얻은 고급 정보입니다. 통신분과가 힘내주지 않았더라면, 이 정보를 그냥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통신분과가 가져다준 정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강진은 결론을 이야기했다.

"통신반장님 능력이라면 포상휴가 정도는 충분히 챙겨주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한 번만 힘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행보관님한테 잘 이야기해보면 가능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좀……."

"제가 그만큼 가치 있는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강진이 가진 카드가 너무 탐이 났다.

결국 통신반장은 이강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았다. 내가 어떻게든 포상휴가 챙겨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통신반장님."

"자, 이제 말해보더. 어떤 좋은 선물을 가져왔는지."

이강진의 차례다.

"코스로즈라는 연예기획사가 있습니다. 이쪽 종목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가져온 선물의 정체.

그것은 '가시를 숨긴 장미'다.

< 제30화. 이발의 신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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