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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03화 (103/347)

제32화. 초록빛 전쟁 (3)

이미 사회에 있을 때, 예초기를 다뤘던 경험이 있는 이강진이 었기에 그는 그날 바로 제초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난이도가 있는 구역을 맡기진 않았다.

얼굴 보호대를 착용한 조일근 상병이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너는 분리수거장 근처 맡고 있어라. 나는 탄약고 쪽 으로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거기 다 끝내고 저도 조일근 상병님 쪽으로 합 류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말로는 알았다고 했지만, 조일근은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탄약고 초소 근처에 비하면 양반이긴 하지만, 분리수거장 주 변도 풀이 만만치 않게 자라 있었다.

거기를 혼자서 다 하려면 늦은 저녁까지 예초기를 돌려야 한다.

그전에 조일근 상병이 먼저 끝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강진은 예초기를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그가 처음 자대로 전입했을 때 1 분대가 맡았던 청소구역이 바로 분리수거장이다.

지금은 경고 카드 누적 최고치를 달성한 박격포반이 이곳을 담당하게 되었다.

위이이이잉!

예초기 특유의 소음이 분리수거장 일대에 울려 퍼졌다.

굉음을 듣자마자 근처에 있던 작은 동물들이 부리나케 도망 쳤다.

동물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근처 에 뱀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도심에선 생전 볼 수도 없는 두더지도 나오는 곳이 바로 군대다. 야생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소답게 별의별 동식물들을 이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모든 동식물들이 안전한 건 아니다. 멧돼지처럼 위험한 존재 도 있는 법.

그런 것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

촤라라라락!

매섭게 돌아가는 예초기의 날 앞에서 풀들은 속수무책으로 잘 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티딩! 팅! 팅!

작은 돌들이 이강진의 안면 보호대에 날아와 부딪쳤다.

'20년 만에 예초기 잡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빡세네!'

날아오는 돌에 눈이 맞아 실명한 사람도 있다. 그런 걸 생각 하면, 예초기를 돌릴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

3박 4일 포상휴가를 따내겠다고 덤벼들었다가 괜히 큰 부상을 입을지도 모르니까.

한 20분 정도 지 났을까.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어.'

처음에 비하면 자세가 많이 안정됐다.

분리수거장 들어가는 입구부터 먼저 작업한 이강진.

측면까지는 괜찮다. 여기까진 할 만하다.

문제는 분리수거장 뒷부분이다.

잠시 예초기를 끈 이강진은 헛웃음을 삼켰다.

"누가 보면 정글에 온 줄 알겠네."

분리수거장 입구와 옆 부분과는 다르게 뒤쪽은 사람의 손길 과 발길이 아예 닿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슬쩍 안을 들여 다봤다. 혹시 잠자고 있을지 모르는 뱀이 있는 지, 아니면 땅벌 무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육안으로는 안 보이기는 하는데.'

수풀이 워낙 우거진 탓에 풀 아래 부분을 다 확인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풀들을 한 번씩 들춰보기로 했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우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빠르게 물러선 이강진.

머지않아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오옹!

얼룩무늬의 야생 고양이가 이강진을 보면서 소리를 냈다.

짬타이거 였다.

"여기가 네 집이 냐?"

이강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고양이는 고개를 가로저 었다.

"그러면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어라. 여기 청소해줄 테니까."

손을 내젓자, 고양이는 다른 쪽으로 몸을 감줬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네."

그냥 예초기를 돌렸으면 분명 고양이가 크게 다쳤을 것이다. 역시 확인해보기를 잘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다시 제초의 시간이 찾아왔다.

탄약고 초소로 올라온 조일근은 예초기를 휘두르면서 근처에 있는 풀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냈다.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라인혁이 조일근을 보면서 외쳤다.

"일근아! 네가 고생이 많다."

"라인혁 병장님이십니까?"

"어. 태강이하고 같이 근무 중이야."

성태강이 뒤늦게 조일근에게 충성을 외쳤다.

심심한 모양인지 라인혁은 계속해서 조일근에게 말을 붙였다.

"우리 강진이는 어때? 일 잘해?"

"아직 모릅니다. 일단 분리수거장 맡기고 전 여기로 올라오긴 했는데…… 여기 다 끝내고 내려가서 도와줘야 할 거 같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예초기 돌려본 적 있다고 해도 거기 분리수거 장 풀들은 좀 많이 억세서 혼자선 힘들 겁니다."

그래도 이강진 없이 혼자서 제초 작업 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한 명보다 두 명이 효율이 더 좋다는 건 이견이 없으니까.

한 40분 정도 예초기를 돌렸을 때였다.

아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일근 상병님! 다 끝냈습니다."

이강진의 목소리였다.

"끝났다고? 진짜?"

"예, 그렇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1시간도 안 됐는데, 분리수거장을 다 정리했을 리가 없다.

"너, 대충 하고 올라온 건 아니겠지?"

"뒤쪽까지 확실하게 다 끝내뒀습니다."

"내가 직접 내려가서 확인한다?"

"그러셔도 됩니다."

이강진은 자신 있었다.

결국 조일근은 예초기를 내려놓고 분리수거장이 있는 곳까지 직접 내려가 확인해보기로 했다.

잠시 후.

탄약고 초소로 올라온 조일근의 표정은 심상치가 않았다.

이강진이 작업을 대충 해서?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초소 안에 있던 라인혁이 조일근에게 물었다.

"어땠어?"

"생각보다 잘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조일근보다 더 깔끔하게 잘 해뒀다.

잔풀까지 구석에 다 던져뒀다. 그러고 나니 분리수거장 주변이 한층 깨끗해 보였다.

초보자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운 양일 텐데. 이강진은 그것을 보란 듯이 해치우고 왔다.

이강진의 예초 솜씨는 조일근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났

'강진이 이 녀석, 물건인데?'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으면 소문만 대신에 이강진한테 예초기를 맡기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소문만에게 너무한 처사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예초병까지 빼앗아오는 건 좀 그렇지 않 은가.

"어흠! 강진아, 넌 그쪽 맡아라. 나는 여기서 예초기 돌릴 테 니까."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협동 작전이 시작되었다.

한 명이 하던 것을 두 명이 하니까 확실히 속도가 빨랐다.

예초기를 돌리는 이강진의 모습은 조일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초소 안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성태강이 라인혁 에게 말했다.

"이강진 일병은 못하는 게 없는 거 같습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어마어마하니까. 곡괭이질도 잘하고, 삽 질도 잘하고, 예초기도 잘 돌리고. 그리고 내무생활 센스도 좋고. 저 녀석은 딱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녀석 같단 말이야."

"나중에 부사관 지원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닐걸. 강진이는 군대를 극도로 혐오하거든. 왜인지 모 르겠는데, 아무튼 지금 상태로 봐선 부사관 지원은 절대로 안 할 거야."

혐오의 원인이 재입대 때문이라는 사실을 두 사람이 알 리가 없었다.

한편 예초기를 돌리던 이강진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근처에서 뭔가가 엥엥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잠시 예초기를 끈 이강진은 이질적인 소리에 집중했다.

오른쪽을 돌아본 순간.

헛숨을 삼켰다.

커다란 벌 한 마리가 이강진의 근처에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꿀벌? 아니, 그것과는 달랐다.

'땅벌이야!'

이강진은 다급하게 외쳤다.

"조일근 상병남 근처에 땅벌집이 있습니다. 예초기 돌리시면 안 됩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예초기 때문에 이강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강진은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제야 조일근은 예초기 작동을 멈췄다.

"아까 뭐라고 했어, 강진아!"

"주변에 땅벌집이 있는 거 같습니다!"

이강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엥엥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조일근이 방금 전까지 예초기를 돌리던 곳에서 수십 마리의 땅벌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런 씨발!"

놀라서 예초기를 떨어뜨린 조일근.

그때 이강진이 외쳤다.

"초소 안으로! 어서 뛰셔야 합니다! 라인혁 병장님! 문 좀 미 리 열어주실 수 있습니까!"

"아, 알았어!"

이강진의 부탁에 따라 라인혁은 다급하게 초소 문을 활짝 열 었다.

땅벌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이강진과 조일근은 냅다 초소를 향해 달렸다.

조일근을 먼저 초소 안으로 들여보낸 뒤, 이강진이 마지막에 들어와 초소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이들에게 외쳤다.

"자세 낮추셔야 합니다! 어서!"

초소에 방중망이 쳐져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일단 자세 를 낮춰 방중망이 쳐진 창문 아래로 몸을 숨긴 네 사람.

이강진이 조일근을 응시했다.

"조일근 상병님. 혹시 담배 가지고 계십니까?"

"담배? 잠깐만…… 있긴 한데. 근데 뭐하려고?"

"담배 연기로 땅벌들 쫓아내려고 합니다."

라이터를 건네받은 이강진은 초소 안에 갇힌 병사들과 함께 담배를 들고 일제히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방중망을 뚫고 초소 밖으로 새어나가기 시작 했다.

원래 초소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 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위 급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근무 수칙이든 뭐든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저렇게 많은 벌들에게 쏘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침 바르는 걸로 끝나진 않을 것 같았기에 이강진과 병사들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독한 담배 연기를 맡은 땅벌들은 그제야 초소를 떠 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인지 조일근이 한숨과 함께 먼저 입을 열었다.

"어우, 야…… 십 년 감수했네."

"괜찮습니까, 조일근 상병님?"

이강진이 먼저 그의 안전을 살폈다.

땅벌 둥지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게 바로 조일근이다.

조일근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어. 난 괜찮아. 너는?"

"저도 괜찮습니다."

라인혁과 성태강은 두 사람과 다르게 계속 초소 안에 있었기 때문에 다치진 않았다.

이강진의 부죽을 받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조일근은 아 찔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말했다.

"별 일이 다 있네. 예초기 돌리면서 땅벌집을 건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군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소 문만 일병이 다친 것도 그렇고. 항상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강진처럼 예초기를 돌릴 곳을 미리 육안으로 살펴보는 것 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이강진은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할 수 있었 다.

만약 이강진이 땅벌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뒤늦게 알아차렸더 라면…….

어쩌면 소문만보다 더 큰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조일근은 이강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진짜 고맙다, 강진아. 네 덕분에 죽다가 살아났어. 너 아니었 으면 난 벌써 병원에 실려 갔을 거야."

"아닙니다. 다 끝난 일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예초기 돌릴 때 저곳은 빼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추가로 행보관한테 저곳에 땅벌집 있다는 것도 미리 보고해야 한다.

그래야 후번 근무자들이 방금 전처럼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제32화. 초록빛 전쟁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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