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4화. 스타가 된 남자 (2) >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던 이강진이었으나, 포상휴가가 걸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조건 해야 한다!
5박 6일짜리 휴가가 7박 8일로 변하는 마법을 체험할 수 있 는 절호의 기회다. 행보관이 작업에 미친 남자라면, 이강진은 포 상에 미친 남자다. 그런 그가 이걸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행보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좋아. 그럼 네 이름 올려두마."
"그런데 행보관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만."
"말해 봐라."
"휴가 미루는 대신, 대대장님께 받을 2박 3일 포상휴가를 이 번 휴가에 붙여서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까?"
행보관의 대답은 빨랐다.
"그건 상관없다. 어차피 그때 훈련이 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리고 네가 우리 1075 대대의 위상을 높여주고 오겠다는데, 까짓 것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대대장은 어떻게든 이강진을 홍보 모델로 보내고 싶었다.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가 육군을 대표로 홍보 모델이 될 수 있다는데, 무조건 밀어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대대장은 일부러 포상휴가까지 걸었다.
대대장은 부대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서 좋고. 이강진은 휴가 를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서로 윈윈(Win-win)이다.
'이번에 휴가 나가면 돈 좀 바짝 벌어둬야겠군!'
벌써부터 의욕이 샘솟았다.
포스터 촬영을 위해 이강진은 레토나 뒤에 탑승했다.
운전석에는 레토나 운전병인 강속우 상병이, 선탑자로는 소대장이 출동했다.
줄발하기 전에 소대장이 중대장과 행보관에게 짧게 거수경례 를 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빠른 속도로 위병소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1중대 레토나.
뒤에 앉아 있던 이강진이 강속우에게 물었다.
"가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다. 나도 처음 가는 곳이라서 잘 모르겠네. 소대장님은 아십니까?"
고개를 가로젓는 소대장.
"네가 모른다는데 내가 알 리가 있나."
촬영은 부대 내부가 아닌 별도로 잡은 외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들이 탄 레토나는 어느새 시내 한복판에 접어들었다.
'휴가도 아닌데 시내로 나올 줄은 몰랐네.'
이강진은 바깥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면, 강속우는 많이 보던 풍경인지 운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소대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충성. 소위 성태원입니다."
-태원아, 난데. 너희 언제쯤 도착해?
"한 10분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혹시 벌써 도착하셨습니까?"
-어. 생각보다 금방 도착하더라고.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멀 었으니까 천천히 와도 돼. 우리가 빨리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 고.
"예, 알겠습니다. 도착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소대장이 전화를 끊자, 강속우가 운전대를 돌리면서 물었다.
"촬영팀한테서 온 전화입니까?"
"아니, 촬영팀은 민간인들이고. 그분들한테 내가 충성이라고 하진 않지."
"그럼 어떤 분입니까?"
"강진이하고 같이 촬영할 화학부대 간부들."
"엇, 강진이 혼자서 촬영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같이 촬영하는 사람이 있어. 강진이는 알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행보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강진, 그리고 추가로 한 명 더. 이렇게 해서 두 명이 나란히 홍보 모델로서 포스터 촬영을 가질 거라고.
이강진이 소대장의 물음에 답했다.
"여군이라고 들었습니다."
"오, 여군이라고?"
강속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젊은 여자 구경하기 힘든 군대에서 여군을 볼 수 있는 기히.
소대장이 슬며시 웃었다.
"너희가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놀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강진은 떠올릴 수 없었다.
하나 소대장은 지금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너희가 직접 봐야 해. 나도 처음에 봤을 때 눈을 의심했다니 까?"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병사들의 궁금증만 더욱 높아졌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이강진 일행은 바로 안쪽으로 향했 다.
흰색 배경과 수많은 조명들이 놓여 있었다.
사복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군인 몇몇이 이강진 일행을 알아 보고 다가왔다.
"충성!"
"충성. 오랜만이다, 태원아. 그동안 잘 지냈지?"
"예.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위 계급장을 단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그의 시선은 성태원 소위를 지나쳐 이강진에게 향했다.
"네가 이강진이구나.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 반갑다. 이원철이 라고 한다."
"일병 이강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 군의 영웅과 만나게 되었으니, 오히 려 나야말로 영광이 지. 그리고 이쪽이 이번에 너랑 같이 촬영할 파트너."
여군 한 명이 이강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이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위였다.
"오늘 촬영, 잘 부탁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강진뿐만 아니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속우조차 놀랐다.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다.
군인은 거친 일을 소화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진흙탕을 뒹굴 때도 있고, 바르기만 하면 피부 트러블이 절로 생기는 위장크림을 시도대도 없이 발라야 할 때도 있다.
미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직종이 바로 군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향은 달랐다.
화장을 진하게 한 것도 아닌데 미모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 다.
거의 준 연예인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제야 이강진은 소대장이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 었다.
'이것 때문이었군.'
이강진이 여태껏 본 여군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육군본부 가 왜 그녀를 홍보 모델로 선정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근데…… 어디서 본듯한 얼굴인데?'
자꾸만 낯이 익다.
혹시 어디서 본 적이 있나 싶어서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으갑자기 등장한 사진사 때문에 생각을 접어야 했다.
"다들 도착하셨나요? 그러면 촬영 시작하기 전에 먼저 메이크업부터 받고 갈게요. 모델 분들, 대기실로 이동해주세요."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다른 사람하고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지.'
일단은 촬영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사진사도 연예인급 퀄리티를 바라고 촬영을 진행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찰칵, 찰칵, 찰칵!
"좋습니다. 자, 다음. 서로 등을 맞대고 이쪽을 응시하세요. 고 개를 너무 확 꺾진 마시고요."
"예."
조심스럽게 등을 맞대는 두 사람.
오이향의 키가 이강진보다 훨씬 작았다. 그녀의 머리가 이강진의 날개뼈 부근에 살짝 닿았다.
"미안해. 내가 머리를 너무 기댔나 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간부하고 같이 촬영을 하려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잠시 참기만 하면, 이강진의 손에 2박 3일의 휴가가 떨어진다.
좀 더 인내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사진 촬영이 모두 끝난 뒤에 다 같이 모여서 결과물을 확인했 다.
사진사는 사진을 일일이 한 장씩 보여주면서 설명에 들어갔
"약간 어색해 보이는 부분은 나중에 따로 보정 작업을 거치면 없어질 겁니다. 근데 이번의 경우에는 보정이 그렇게까지 크게 필요하진 않을 거 같네요. 모델 두 분이 워낙 선남선녀라서 손을 댈 부분이 없습니다. 하하하!"
립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이향에게는 이 말이 해당된다. 처음에 그녀 를 봤을 때 사진사도 깜짝 놀랐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미 모 수준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피사체가 괜찮아서 그런지 사진 찍는 맛이 났다.
사진을 다 확인한 후에 이원철 대위가 사진사에게 따로 질문 했다.
"이제 다 끝난 겁니까?"
"예. 추가 촬영은…… 없어도 될 거 같네요. 영상 촬영은 안 하기로 했었고. 이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이로서 오늘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오전 내에 전부 다 끝나버렸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 로 끝나다보니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사진사가 일을 대충 한 것도 아니었다. 찍은 사진들 전부 다 잘 나왔다. 나중에 추가로 레이아웃 작업만 따로 맡기 면 된다.
스튜디오를 나온 일행들. 그때, 이원철 대위가 이런 제안을 해 왔다.
"태원아. 모처럼인데 다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지금 부대로 들어가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바로 업무해야 하잖아. 적당 히 농땡이 피우다가 들어가자고."
이강진과 강속우는 이원철 대위의 이런 마인드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소대장이다.
성태원 소위는 이원철 대위처럼 유동적인 성격이 아니다. 신임 소위라 그런지 다소 꽉 막힌 대답을 할 때가 있었다.
하나 이번에는 달랐다.
고민하던 성태원 소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리 융통성 없는 소대장이라 하더라도 한참 선임인 이원 철 대위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할 순 없었다.
무엇을 먹을까.
보통은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메뉴 정하는 것만은 것만으로 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다르다.
"국밥 먹으러 가자."
상급자가 먹자는 대로 먹어야 한다. 아주 쉽고 빠르고 간편한 결정 방법이다.
국밥집으로 들어간 다섯 명의 군인들.
손님이 생각보다 많은 탓에 이들은 따로 테이블에 앉아야만 했다.
이원철 대위와 소대장, 그리고 강속우가 한 테이블에.
이강진은 오이향과 같이 앉게 되었다.
'보통은 병사들 따로, 간부들 따로 앉지 않나?'
이강진은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배치를 바꿔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팀을 나누자고 한 장본인이 이원철 대위였으니까.
군대에선 상급자가 곧 법이다.
식당 아주머니가 주문한 국밥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더 니 이강진을 빤히 바라봤다.
"이강진 씨 맞죠? 티비에 나오던 그 군인!"
"아, 네. 맞습니다."
"어머머머! 아휴, 반가워요!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연예인 만난 기분이네! 호호호!"
아주머니 덕분에 근처에 있던 손님들도 이강진을 바로 알아 봤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이강진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오이향의 식사를 방해한다는 우려가 들어서였다.
"죄송합니다, 오이향 소위님. 괜히 저 때문에……."
"괜찮아. 잘했다고 시민분들이 칭찬해주시는데,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사실은 나도 그 뉴스 보고서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 거든. 직접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그래서 원래 거절하려고 했던 홍보 모델 건도 일부러 받아들였던 거야."
어쩐지.
자리 배치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이원철 대위는 오이향의 이런 속내를 알았기에 일부러 둘만 따로 테이블을 잡게 만 들었던 것이다.
설마 그녀가 스스로 이강진의 팬임을 자처해올 줄은 몰랐다.
"앞으로 잘 부탁해."
"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이강진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얼굴 볼 일이 없을 텐데 앞으로 잘 부탁한다니…… 무슨 뜻인 지 모르겠군.'
휴가를 나가기 이틀 전.
이강진은 통신반장과 함께 새로 들어왔다는 신병을 데려오기 위해 대대 인사과로 향했다.
인사과 문을 열자, 잔뜩 긴장한 신병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 에 들어왔다.
하나 인사과에 신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움을 삼켰다.
존재감을 뽐내는 아리따운 여성. 오이향이었다.
'저 사람이 여긴 왜?'
오이향도 때마침 이강진을 알아봤다.
역으로 그녀가 먼저 이강진에게 다가갔다.
"이번 달부터 1075 대대 본부 중대 화학장교로 오게 된 오이향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그제야 이강진은 오이향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더불어 흐릿하던 과거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 이제야 기억났어!'
회귀하기 전에도 새로운 화학장교가 이곳 1075 대대에 배치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리따운 미모로 한때 1075 대대 전역에 화제가 되었던 인물, 오이향.
본부 중대다 보니 이강진과 그녀는 크게 접점이 없었다. 그래 서 처음 봤을 때, 바로 기억을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강진의 활약을 보고 팬이 되었다.
오이향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이강진을 보러 올 수 있을 터.
'아니, 설마 그러진 않겠지.'
간부에게 시달리고 싶진 않다.
상대가 아무리 예쁜 여군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제34화. 스타가 된 남자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