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12화 (112/347)

제35화. 방송의 힘 (2)

이용진과 방송은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강진이 모르는 이용진의 숨겨진 재능이 있었다.

"조연줄로 일하고 있거든. 그쪽에서 요즘 방송 일 많이 배우 고 있어."

"형이 그쪽으로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나도 내가 설마 방송국에서 일하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지. 근데 강진아.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 다양한 변수 가 존재하는 법이지. 처음부터 어떤 사람은 반드시 이 직업만 가 질 수 있다는 그런 법도 없잖아? 학과와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은 판국인데, 나 같이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은 더 그렇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대응을 하든, 순응을 하든.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 신만의 인생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강진도 마찬가지다.

회귀라는 커다란 변수를 만나게 된 덕분에 지금의 이강진이 탄생했다.

자신의 상황에 이용진의 말을 적용시키니, 공감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럼 형은 어떤 프로그램 맡고 있는데?"

"아마 너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백두원의 푸드기 행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인 데."

한 번쯤 들어봤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백두원의 푸드기행은 이강진이 애청하는 프로그램이다.

"그거, 백두원 씨가 나와서 숨겨진 맛집 찾아다니는 그런 프로그램 아니야?"

"잘 아네."

"우리 분과에 그거 좋아하는 선임이 한 명 있거든. 계속 같이 보다 보니까 재미있더라고."

휴가 나와서까지 챙겨보는 몇 개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백두원의 푸드 기행이었다.

"설마 형이 거기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형, 생 각보다 잘나가는 거 아니야?"

"잘나가기는 무슨. 조연출이 뭐 벼슬도 아니고. PD 정도는 되어야 이 프로그램, 내가 기획하고 만들었다고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 거지, 뭐. 나는 그냥 우리 PD님 열심히 보좌할 뿐이야."

그래도 조연줄은 결코 낮은 직급이 아니다.

프로그램 내에선 나름 영향력이 있다.

그가 난데없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즘 힘들어 죽겠어. 숨겨진 맛집 리스트가 슬슬 바닥을 보 이고 있거든. 인터넷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맛집들을 일일이 우 리 제작팀이 돌아다니면서 찾아내야 하는데, 그게 어디 보통 일 이냐? 근데 위에서는 닦달하지, 아래에서는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어휴…… 진짜 힘들다. 먹고 살기가 왜 이렇게 빡세냐."

고단한 인생사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달달한 소주 한 잔이 필수다.

짠!

술잔을 부딪친 후에 바로 원샷을 했다.

소주 한 모금이 스트레스로 후끈 달아오른 이용진의 몸을 차 갑게 식혔다.

순간 이강진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있었다.

"형. 내가 괜찮은 맛집 아는데. 소개시켜줄까?"

"응? 어딘데?"

이강진의 미소가 짙어졌다.

"바라 식당이라는 곳인데, 그곳 사장님이 음식을 정말 잘하거 든. 근데 워낙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이 되어버렸어. 어때, 내가 연결시켜줄까?"

"오, 좋지!"

이용진이나 이강진이나 서로에게 설마 이 런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황민수는 갑자기 가게를 찾아온 이강진에게 쌩뚱 맞은 소리 를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방송국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찾아올 거라고?"

"네. 원래는 시간을 조금 두고 왔으면 했는데, 당장 다음 주 방 영분이 필요한 시점이라서 촬영을 하려면 최대한 빨리 진행해 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오후 3시쯤에 그쪽 PD님하고 제작진 몇 명이 같이 이곳에 올 거예요. 아저씨의 식당이 방송에 나 가도 괜찮은 수준의 맛을 자랑하는지. 이 걸 알아본다고 하네요."

"대체 어느 프로그램인 디?"

"백두원의 푸드기행이요."

"뭐어 어?!"

황민수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이름이 거론되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럼 백두원 씨가 우리 가게에 온다는 거여?"

"오늘은 아니고요. 아마 테스트 통과하면, 촬영 당일에는 이 곳에 올 거예요."

"허미……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외식업계 종결자라 불리는 남자, 백두원.

그는 한식, 중식, 일식, 양식뿐만 아니라 디저트 사업까지 손을 뻗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 최고의 외식 사업가이자 뛰어난 요리가인 그가 바라 식당을 찾아온다고 하니, 황민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지금 놀랄 틈 없어요, 아저씨. 저하고 어머니가 최대한 옆에 서 도와드릴 테니까, 오늘 아저씨 인생 요리 만들어보세요. 그 래야 백두원 씨하고 만나는 게 확정될 테니까요."

"그, 그래! 알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황민수는 그제야 주방으로 들어가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오후 3시.

정확한 시간에 백두원의 푸드기행 헤드 스태프들이 바라 식당을 찾았다.

황민수와 이강진 모자는 입구까지 나와 이들을 반겼다.

"아, 안녕하십니까! 바라 식당 주인, 화 황민수라고 합니다!"

"장연국 PD입니다."

장연국 PD는 황민수에게 명함을 건네준 뒤, 이강진 앞에 마 주섰다.

"용진이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강진 씨와 친분이 있는 가게 라고 해서 솔직히 탐이 좀 많이 나더군요. 하하!"

으日들은 화제성이라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요즘 방송계에서 이강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연 국 PD는 이용진에게 가게를 소개해준 이가 이강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머릿속에 어느 시나리오 하나가 완성되었 다.

바라 식당을 촬영할 때, 이강진과의 연계성도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다. 그러면 분명 시청률이 올라갈 터.

단, 전제조건이 있다.

바라 식당이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만큼의 맛을 자랑하는지.

이것부터 먼저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백두원과 마찬가지로 장연국 PD 또한 요리 프로그램을 만드 는 PD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어느 가게에서 청탁을 받고 방송에 출연시켜주는 PD들도 있긴 하지만, 장연국은 절 대 그렇지 않았다.

자신만의 굳은 신념이 있다. 이건 백두원도 같았다.

이런 신념 덕분에 시청자들은 백두원의 푸드기행에 나오는 가 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맛집일 거라고 믿는다. 이 덕분에 백두 원의 푸드기행에 소개되기만 하면 그 가게는 무조건 성공한다. 하지만 그만큼 테스트를 통과하기가 어 렵다.

스태프들을 가게 안으로 안내한 황민수는 이강진 모자와 함 께 음식을 서빙했다.

황민수가 짧게 메뉴를 소개했다.

"새송이버섯을 넣은 닭볶음탕과 숙주나물 볶음입니다."

"닭볶음탕에 버섯을요?"

"의외의 조합이네요."

스태프들은 처음언!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맛을 보고 난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괜찮은데요?"

"버섯에 닭볶음탕의 매콤한 양념이 스며들어가서 한층 풍미 를 더하고 있어요. 식감도 나쁘지 않고요."

"다음, 숙주나물 무침 맛볼까?"

"네!"

장연국 PD의 제안에 따라 스태프들의 손이 바빠졌다.

숙주나물 무침도 반응이 좋았다.

"새콤달콤한 게, 밥을 부르는 맛인데요?"

"저희, 여기 공기밥 하나 추가해주세요!"

테스트가 아니라 회식 자리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모든 음식들을 싹 비운 제작팀.

장연국 PD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메인 요리도 그렇지만, 밑반찬들도 상당히 맛있군요. 이 정 도면 방송에 내보낼 만하겠어요."

"가, 감사합니다! PD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황민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강진의 어머니 또한 황민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흘리면서 함께 기쁨을 나눴다.

제작팀은 방송에 내보낼 새로운 맛집을 찾아서 좋고. 황민수 는 가게 홍보 자리를 꿰차게 되어 좋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기쁨의 현장 속에서 이강진은 이용진과 몰래 눈빛을 교환했 다.

마치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했다.

촬영은 3일 뒤에 바로 진행되었다.

일부러 빨리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강진 때문이었다.

장연국 PD는 이강진도 같이 출연해줬으면 하는 욕심을 냈다. 그래서 그가 휴가 복귀를 하기 전에 촬영을 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강진은 군인이다. 휴가 도중에 티비에 나와도 괜찮 을까? 우선은 부대에 물어봐야 했다.

대답은 오케이였다.

오히려 제발 방송에 나와 달라는 대답을 받아서 당황스러웠 다.

육군본부 즉은 이강진을 최대한 띄워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강진이 가급적이면 많은 미디어에 노줄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이강진은 쉽게 허락을 맡을 수 있었다.

이른 오전 시간부터 촬영이 개시되었다.

저 멀리서 백두원이 오프닝 멘트를 읊으며 가게 쪽으로 걸어 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청주에 왔습니다. 중북 지역도 맛이 아주 기가 막힌 가게들이 많이 있죠? 그런 가게 중에 한 곳을 소개시켜드릴까 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백두원이 다가올수록 황민수의 몸이 떨렸다.

이강진은 그런 황민수를 보면서 용기를 복돋아줬다.

"긴장하지 말아요, 아저씨. 이번 촬영으로 대박 터뜨리면, 아저씨의 요리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거예요."

"그, 그렇지……! 후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만약 이 번 방송을 통해 바라 식당이 대박 난다면, 이강진은 황 민수에게 투자를 할 생각이었다.

황민수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강진은 돈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뭉치면, 무서울 게 없다.

'그리고 성공을 해야 아저씨가 우리 엄마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 테고.'

이강진은 황민수에게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그리고 투자.

'돈 벌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죄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이강진은 욕심이 많은 남자다.

특히 돈 욕심이.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1분대원들이 다급하게 이강진을 찾았

"강진아! 지금 티비에 너 나온다! 어서 와서 보너!"

이강진이 부대로 복귀할 때, 마침 티비에서 백두원의 푸드기 행이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11시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군인들 은 리얼 타임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주 말에 푸드기행을 봐야만 했다.

티비에 나오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이강진은 머쓱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이강진은 나름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황민수는 엉망 진창이었다. 너무 말을 못한 탓에 중간에 이강진이 대신 요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1분대원들은 이강진에게 질문 공격을 날 렸다.

"백두원 씨, 직접 만나니까 어땠어?"

"요리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못 먹어본 음식들이 너무 많다고, 나중에 한 번 더 와도 되냐고 물어보기 도 했습니다."

"사인은? 받았어?"

"예. 가게에 걸려 있을 겁니다."

사방에서 병사들의 말이 들려왔다.

"부러운 녀석. 이제는 연예인들하고 어울리면서 다니네!"

"우리도 연예인 만나고 싶은데."

"좋겠다, 강진아!"

이강진을 향한 부러움이 한없이 샘솟을 때.

뒤에서 성태강이 작게 혼잣말을 흘렸다.

"저도 연예인입니다만……."

< 제35화. 방송의 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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