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6화. 차기 분대장 (3) >
제36화. 차기 분대장 (3)
황지웅은 고필중의 모습을 힐끔 훔쳐봤다.
솔직히 고필중이 하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다.
물론 그건 안준렬이나 라인혁이나 같은 마음이었다.
라인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희한한 녀석들. 보통은 분대장을 안 차려고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는데. 우리 분대는 분대장을 하고 싶어서 난리가 난 녀석들이 어떻게 둘이나 있냐. 아니지. 셋인가?"
그렇게 말하면서 라인혁의 시선이 안준렬에게 향했다.
안준렬이 분대장을 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본인이 직접 분대장을 달고 싶다고 전마등에게 의사를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라인혁은 안준렬과 반대로 싫다고 했다. 초록 견장이 탐이 나 긴 하지만, 저 견장을 차게 된 이상 군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질 거라는 사실을 선임들을 통해 숱하게 봐 왔다. 그래서 스스로 분 대장 도전권을 포기했다.
물론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있다. 한 조직의 리 더라는 자부심. 그리고 4박 S일의 포상휴가. 이런 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귀찮 은 걸 싫어하는 라인혁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분대장이 별로 끌 리지 않았다.
고필중도 라인혁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까보니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놀라웠다.
하나 안준렬은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다면 오히려 좋지. 싫은 걸 억지로 차게 만드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하긴, 그렇지."
그건 강제로 분대장을 떠넘기는 선임 입장에서도 덜 미안해 지는 경우였다.
가장 베스트는 둘 중 한 명만 분대장을 희망하는 것인데. 일이 좀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라인혁이 안준렬의 생각을 물었다.
"누구로 할 건데? 결정권자는 어쨌든 너잖아?"
"……글쎄."
그는 좀 더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갑자기 이 야기 나온 건데, 그렇다고 그걸 오늘 내로 정하는 것도 좀 섣부 른 판단일 거 같으니까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볼게. 나중에 안 되 겠다 싶으면 다수결로 정하자."
다수결은 민주적인 방법이자 동시에 최후의 수단이다.
대대 ATT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번 주 내로 정해도 훈 련에 큰 지장은 없으리라고 예상된다.
"간담회는 여기까지. 이제 슬슬 점호 준비해라."
"예, 알겠습니다."
황지웅과 고필중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마쳤다.
동시에 출마 선언을 한 상병들.
이강진은 갑작스레 발생한 2파전을 보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동시에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아는 미래대로 흘러갈까?'
이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안준렬이 이야기한 이번 주까지 각 후보자 캠프는 전략 회의 에 돌입했다.
서일주와 기운상은 황지웅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백우호와 서태강은 고필중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각자 머리를 모았다.
그 와중에 백우호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저희에게 든든한 아군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누굽니까?"
백우호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라인혁 병장님."
"아!"
확실히 강력한 아군이다.
합류만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고필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힘들 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필중 병장님? 라인혁 병장님, 저희랑 같은 라인이지 않습니까? FIFA로 맺어진 동맹 라인인데, 라인 혁 병장님이 저희 편을 안 들어준다면 누구 편을 들어준다는 겁니까? 설마 황지웅 상병 쪽입 니까?"
"아니. 라인혁 병장님은 어느 쪽이든 손을 안 들어주실 거야."
이런 공적인 일이 있을 때에, 라인혁은 안준렬보다도 더 객관 적으로 결정을 내리 려고 한다.
고필중은 이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엄밀히 따지자면 라인혁 병장님이 메인이 되어 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까. 메인은 어디까지나 안준렬 병장님이지."
그것 또한 일리가 있었다.
선대 분대장의 의견이 라인혁보다 비중 있게 반영되는 게 사 실이다.
라인혁이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봤자 안준렬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라인혁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일은 최대한 중립적인 입 장을 표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라인혁이 고필중의 편을 들어주는 순간, 밸런스가 망 가진다.
어느 한 후임만 예뻐한다면, 다른 후임은 버려지는 꼴 아닌가. 라인혁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라인혁 라인'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라인혁 본인이 사용한 게 아니었다. 주변에서 계속 라인혁과 어울려 다니는 친한 후임들 과 그를 붙여서 같은 라인이라고 말을 하다 보니 이렁게 된 거 였다.
"라인혁 병장님에게 의존하지 말고, 우리들끼리 알아서 잘 해 보자."
고필중이 이렇게까지 말을 한 이상, 후임들은 그의 의견에 따 를 수밖에 없었다.
안준렬과 라인혁을 제외한다 치 면.
남은 인물은 단 한명.
"강진이를 포섭해보겠습니다."
백우호의 눈이 번뜩였다.
최후에 죄후까지 가서 다수결의 싸움까지 도달한다면, 한 명 이라도 더 많은 표를 미리 확보해두는 게 중요하다.
1분대에서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은 딱 세 명 뿐이다.
안준렬, 라인혁.
그리고…… 이강진.
백우호의 걸음이 빨라졌다.
'강진이라면 고필중 상병님의 편을 들어줄 거야!'
이강진과 고필증은 통하는 게 있다.
바로 축구다.
두 사람은 1중대 축구 투톱으로 불리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같은 축구인들끼리 뭉쳐야 살지 않겠나.
"강진아!"
이강진이 있다고 들은 휴게실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백우호보다 선수를 친 인물이 먼저 자 리 잡고 있었다.
서일주 일병이었다.
"뭐냐, 백우호.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추, 충성."
서로 경쟁하는 관계지만, 그래도 서일주가 백우호보다 선임 이었기에 거수경례를 해야만 했다.
"강진이하고 이야기 좀 하려고 왔습니다."
"강진이, 지금 바쁘다."
플랭크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강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서일주는 이강진의 기록을 대신 세주고 있었다.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면서 무릎을 땅에 붙이는 이강진. 기다렸다는 듯이 서일주가 그의 기록을 말해줬다.
"2분 10초. 대박인데? 강진아, 너 이러다가 나중에 막 피트니 스 대회 나가고 그러는 거 아니냐?"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군대에서 노가다와 개인 헬스를 병행하다보니 어느 새 잔 근 육과 체력이 제법 붙었다.
한지윤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겠다는 일 념 하나로 최근에 부 쩍 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더니 성과가 나오고 있었다.
노력에 따른 결과가 나오기 시작해서인지 이강진은 만족스러 웠 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동시에 찾아온 건 만족스럽지 못한데.'
불편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마음 편히 운동하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강진아. 간만에 PX라도 갈래?"
"강진이는 운동 끝나고 나하고 PX 갈 거 다. 네가 나설 자리는 없어."
"동기들끼리 PX도 못 가게 하시고.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서일주 일병님?"
"못 가게 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가라는 거잖아."
두 사람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냥 빈말이라도 누구 편이 되어주겠다고 말을 해버릴까?
'아니, 그건 섣부른 행동이야.'
이강진이 군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다.
아무리 사격 솜씨가 좋아도, 아무리 병기본 즉정 결과가 좋아 도, 아무리 경계근무를 잘 서도.
사실 쓸모가 많은 건 아니다.
군대에선 인간관계 개선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원 활한 대 인관계를 위해서 라도 이강진은 노골적으로 누구 라인에 서겠다는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측이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간을 보는 것도 좋지 않다. 만약 다수결로 결정하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어느 한 쪽을 골라야지.'
그전에 안준렬이 차라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긴 하다.
하지만 안준렬은 이런 면에서 의외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 이곤 한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강진은 차기 분대장을 따를 것 이다.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그나마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군생활을 보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안준렬은 고민이 많았다.
둘 중 한 명만 고르면 되는 문제를 이렇게까지 심도 있게 생각하게 될 줄이야. 본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황지웅도 그렇고, 고필중도 그렇고.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는 것처럼 다들 좋은 후임이다.
그런데 둘 다 분대장을 차기를 원하고 있었다.
안준렬의 고민을 들은 서원구는 신기하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우리는 서로 분대장 차기 싫어서 난리가 났는데. 너희 1분대 는어째 그 반대냐?"
"그러게. 나도 신기할 정도다."
둘 다 분대장을 차고 싶다고 해서 경쟁이 붙은 것은 정말 보 기 드문 일이다.
그 보기 힘든 일이 지금, 1분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한테 물려줄 건데?"
"모르니까 너한테 자문을 구하려고 온 거잖아. 만약 네가 내 입장이라면 누구한테 분대장을 물려줄 거 같아?"
"나? 음……."
서원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필증이."
"이유는?"
"일 잘하잖아? 선임들한테도 싹싹하게 굴고. 그리고 상병 단 이후부터 필중이가 군기반장 노릇도 해주고 있는데, 솔직히 선 임 입장에선 필중이 같은 후임은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지."
고필중이 직접 중대 일이병들을 관리해주는 덕분에 병장들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필중이는……."
몇 달을 쉬 다가 왔다는 게 단점 이다. 그것을 말해주려고 한 순 간, 서원구가 먼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객관적으로 봐야지. 솔직히 몇 달 쉬 었다고 분대장 주지 말라는 규율, 규칙 같은 거 없잖아? 일만 잘 하면 그만 아니야?"
"물론 지웅이가 섭 섭하게 생각은 하겠지. 하지만 누구를 고르 든 간에 어느 한 쪽은 섭섭해질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일 잘하는 고필중에게 넘겨주는 게 낫지 않아? 그래야 네 말년도 편해질 테고."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일 잘하는 분대장에게 물려줘야 나중에 안준렬과 라인혁이 편 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인섭은 군종병 오디션까지 치르게 되었다.
"준렬아. 이럴 때에는 냉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 시킬 수 있는 결과는 없어. 선택받는 쪽이 있으면 선택받지 못 한 쪽도 나오는 법이야.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그냥 빨리 결정해 라."
"……그게 좋겠지."
고필중 쪽으로 마음이 기울려고 하던 찰나였다.
멀리서 1부소대장이 안준렬을 불렀다.
"준렬 아!"
"병장 안준렬."
"잠깐 나랑 같이 인사과에 좀 내려가자."
갑자기 인사과는 왜 가자고 하는 걸까.
서원구에게 조언 들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1부소대장 이 있는 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인사과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큰 건 아니고."
줄발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고 갈 생각인지 1부소대장은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신병 데리고 가라고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거든. 중대장님이 우리 1분대한테 이번에 오는 신병 준다고 했으니까 신병들 데 리러 가는 김에 어떤 녀석인지 미리 봐 둬라."
이 시국에 신병이라.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안준렬은 고민했다.
< 제36화. 차기 분대장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