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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17화 (117/347)

< 제37화. 5분대기조 (1) >

제37화. 5분대기조 (1)

종교 행사를 위해 이강진은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바로 교회로 내려갔다.

오늘은 한지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 들어가서 그런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오, 강진이 왔군."

자주 얼굴을 보다보니 목사와 부쩍 사이가 가까워졌다. 목사는 이강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른 중대의 군종병들의 경우에는 최 대한 늦장을 부리 다가 종교 행사 시작하기 20분 전쯤에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강진은 1시간 전부터 교회로 내려와서 목사의 종교 행사 준비를 돕는다.

이렇다 보니 이강진이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었다.

"자네는 참 성실해. 사회에 있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 런 말 자주 듣지 않았나?"

"성실하다는 말은 좀 부끄럽습니다. 저보다 더 성실한 사람들 이 많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한참 멀었죠. 목 사님 같은 경우에도 그렇고요."

"허허허. 빈말이라도 고맙군."

겸손을 차리 면서 동시에 목사를 추켜세우는 스킬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강진과 같이 부식 상자를 옮긴 목사가 잠시 쉬는 시간에 이 런 말을 꺼냈다.

"우리 딸이 안 와서 섭섭하겠군."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 는 거 같아서 좋습니다. 솔직히 지윤 씨가 있다면 더 좋았겠지 만, 그래도 지윤 씨만 보고 교회를 나오는 건 아닙 니다."

아주 능숙한 거짓말 솜씨였다.

사실 한지윤을 보기 위해 군종병을 따냈다. 그렇다고 목사 앞 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럴 때에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좋아 보였다.

목사를 위해서 라도, 그리고 이강진을 위해서라도.

"우리 딸이 자네랑 이야기하는 걸 굉장히 즐거워하더군."

"그렇습니까?"

"이 아빠 앞에선 잘 웃지도 않던 아이가 강진이, 자네 앞에서 는 그렇게 활짝 웃고 다니니까. 안 그래도 배우 생활 때문에 이 모저모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 같은데, 시간 날 때마다 자네 가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게."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방금 '우리 딸을 잘 부탁하네.'라고 들은 것처럼 느껴 졌다.

'내 착각이겠지.'

정말로 그렇게 말해준다면 참 좋을 거 같긴 하다.

미세스 블레스 촬영 때문에 한지윤과 만날 순 없었지만, 그래 도 이강진의 기분은 좋았다.

목사에게 점수를 많이 딴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 면 미래의 장인어른이 될 수도 있으니까.'

행복한 상상이 었다.

막사로 돌아온 이강진은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홀로 식당으 로 향하려고 했다.

그때, 김철이 이강진을 불러 세웠다.

"강진아. 밥 먹으러 가는 거지?"

"어? 어."

"나도 같이 내려가자."

"쥐사반에 볼 일이라도 있어?"

"아니, 나도 아직 밥 안 먹었거든."

주말에도 행정반에 틀어박혀서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행정병의 고중이다.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김철을 바라보는 이강진.

"힘내라, 철아."

"그래, 고맙다. 1분대는 요즘 어때? 신병 새로 들어왔잖아."

안부를 묻는다기보다는 걱정을 하는 거였다.

곽분섭은 현재 1중대 트러블메이커라 불릴 정도로 문제를 많 이 일으키고 있었다.

이강진이 맨투맨으로 붙어서 마크를 해도 이 정도였다.

회귀하기 이전에는 대체 곽분섭을 어떻게 관리했던 건지 신 기할 정도였다.

"정신없지. 매번 집합 걸리고. 난리도 아니다."

"하하하, 힘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알고 보니 너였네."

"나하고 우호, 둘 다지."

그래도 곽분섭만의 장점이 있었다.

파이팅이 넘친다. 기운찬 것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식당으로 내려오자, 때마침 성태강과 백우호가 이강진을 반 겼다.

"충성!"

"강진아, 네 밥 따로 빼놨다. 이거 먹으면 돼."

"땡 큐."

근무자, 혹은 이강진처럼 점심 식사 시간에 제때 오지 못하는 열외자를 위해서 각 분과가 따로 인원수에 맞춰서 밥을 빼놓는 다.

식판에 가득 담긴 밥과 반찬.

백우호가 씨익 웃어 보였다.

"사람들 몰리기 전에 와서 네 것 두둑하게 챙겨뒀다."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어."

동기 좋다는 게 무엇이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 다.

김철도 행정분과가 따로 빼놓은 식판을 가지고 이강진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백우호는 그 사이에 성태강과 함께 막사로 올라갔다. 밥을 먹던 중에 김철이 뒤늦게 뭔가를 떠올렸다.

"강진아. 너, 다음 주부터 오대기 들어간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는 이강진이 아닌 서일주가 들어갔어야 했다.

"서일주 일병님, 다음 주에 휴가잖아."

"아…… 그랬지."

차기 분대장을 선정하랴, 곽분섭의 뒤치다 꺼리를 하랴.

그동안 너무 바빴다. 그러다 보니 서일주가 내일부터 휴가라 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하고 누군데?"

"어디 보자…… 내 기억이 맞다면, 1분대에서는 너, 그리고 고 필중 상병님일 거야."

1중대 축구 투톱이 나란히 오대기를 차게 되었다.

"오대기 비상 걸리면 너하고 고필중 상병님이 제일 빠르게 튀어나갈 거 같다."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겠지."

오분대기조. 줄여서 오대기.

상황이 터지면, 막사에서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한다. 그때, 병사들은 입을 모아서 '오대기 비상'이라고 크게 외친다.

그 사이에 오분대기조로 편성된 인원들은 개인소총과 장구류 를 챙기고 바로 현장으로 출동해야 한다.

오분 내에 이 모든 것들을 마무리 짓는다. 그래서 오분대기조 라고 불리고 있었다.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에 오분 대기조를 차는 그 주간에는 자나 깨나 전투복 차림이어야 한다.

그게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도 장점은 있었다.

"이 번 주는 풀(Full)잠 잘 수 있겠네."

이강진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분대기조에 편성되어 있는 동안에는 외곽근무에서 제외된다. 언제, 어디에 있든 오분 내로 출동해야 하는 것이 오대기의 사명인데, 탄약고나 위병소 근무를 서고 있으면 출동하고 싶어 도 출동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외곽근무에서는 아예 열외 된다.

이 점이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마냥 좋아만 하면 안 된다, 강진아."

"왜 ?"

"아까 지휘통제실에 슬쩍 들렸었거든. 다음 주 당직사령 명단표가 붙어 있기에 봤는데, 2중대 중대장님이 화요일하고 토요일 에 당직 근무 서시더라."

"……."

2중대 중대장은 의도적으로 오대기 비상 상황을 몇 번 걸곤 하는 간부였다. 그가 당직사령을 맡을 때에는 거의 50퍼센트 확 률로 오대기 비상이 걸 린다고 봐야 했다.

그의 기분이 좋을 때에는 오대기 비상을 안 걸 테고. 괜히 화 풀이 하고 싶은 대상이 필요해지거나 아니면 심심할 때에는 오 대기 비상을 걸 것이다.

악명이 자자한 2중대 중대장이 당직사령을 선다는 말에 이강진은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파오는 듯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상황이 안 걸리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오대기를 차게 된 이강진.

라인혁과 황지웅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각각 고필증과 이강진 에게 오대기 수첩을 비롯한 물건들을 인수인계했다.

황지웅이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1 주 동안 고생해라, 강진아. 듣자하니 2중대 중대장님이 당 직사령 근무 설 때 상황 걸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예. 그것 때문에 걱정입니다."

"뭐, 매번 오대기 상황 거시는 분도 아니니까. 긍정적으로 생 각해."

오대기 비상을 일과 시간에 건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개인정비 시간에만 골라서 오대기 상황을 건다는 것이다.

이래서 병사들 사이에선 2중대 중대장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한편, 라인혁에게 오대기 인수인계를 받은 고필중은 이강진 에게 동질감을 표했다.

"아직 X된 거 아니니까. 일단 같이 오대기 차게 되었으니까 잘해보자, 강진아."

"일병 이강진. 예, 알겠습니다."

오대기를 차면 외곽 근무 리스트에서 자연스럽게 열외되지만, 일과 시간까지 열외되는 건 아니다.

슬슬 작업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그전에 이강진은 걱정되는 게 있었다.

노란 견장을 차고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곽분섭. 그가 걱정이었다.

"운상아. 분섭이, 14시에 대대장님 면담 있는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좀 있다 대대장실로 올려 보낼 때 전투화하고 전투복 깔끔하 게 하고 보내. 대대장님, 은근히 그런 거 신경 써서 보시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밑에 후임이 두 명이나 들어왔다고 이제는 제법 선임 티를 내 는 기운상.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기운상도 이제 진급이 멀지 않 았으니, 선임으로서 확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정글모를 쓴 이강진은 고필중과 함께 막사 뒤편으로 향했다. 그늘진 곳에 남아 있는 풀들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뽑아냈다. 오대기 인원들은 목진지 보수 공사를 비롯해서 먼 거리를 이 동해야 하는 작업에서도 자연스럽게 열외가 된다.

영내에서 항시 대기해야 한다. 고필중, 이강진을 포함해서 다른 오대기들도 현재 막사 근처에서만 할 수 있는 작업에 투입된 상태였다.

'고필중 상병하고 둘이서만 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근무 투입 때에는 몇 번 같은 조가 되긴 했었지만, 작업은 처 음이었다.

서로 아무런 대화 없이 일만 하려니까 심심했다. 이강진이 먼 저 잡담을 유도해보기로 했다.

"고필중 상병님."

"다음 주에 휴가 나가시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다리를 다친 덕분에 고필중은 아직도 일병정기휴가를 사용하 지 못했다. 상병이 되고 나서야 쓰지 못했던 휴가를 쓰게 된 것 이다.

"고필중 상병님은 고향이 어딥니까?"

"전라북도 익산."

"가는 데만 하더라도 시간이 꽤 걸리지 않습니까?"

"그렇지. 기차를 타고 가든가 해야지, 뭐. 그래도 항식이보다 는 낫잖아? 그 녀석, 집이 울릉도인데."

"하하하."

거의 하루를 이동 시간에 투자해야만 했다.

부대에서 가장 불쌍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제주도에 사는 병사도 있지만, 교통편이 잘 되어 있어서 비행기 하나만 타고 가면 된다. 하지만 울릉도는 사정이 달랐다.

"그래도 우리 행보관님이 마음씨가 좋아서 다행이야. 항식이한테는 특별히 휴가 하루 더 붙여주곤 하시니까."

이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병사들 생각해주는 사람은 역시 행보관밖에 없다.

작업을 많이 시킨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그건 행보관의 업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업무를 등한시하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강진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그동 안 몰랐던 고필중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군대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각자만의 스토리가 있는 법. 이강진은 이런 것들을듣는 걸 좋아했다.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거 같은데. 강진이, 너는 청주 산다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고향이 거기야? 아니면 중간에 이사했어?"

"이사는 안 했습니다. 태생이 청주……."

대화를 이어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등 뒤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오대기 비상!!!"

< 제37화. 5분대기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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