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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24화 (124/347)

< 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3) >

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3)

중대 ATT와 다르게 대대 ATT는 대대 전체가 받는 훈련이다.

오히 려 이강진은 중대 ATT보다 대대 ATT가 더 나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있었다.

'대대 전체가 평가받는 거 니까, 우리 쪽에만 시선이 집중되진 않겠지.'

본부중대를 시작으로 1, 2, 3중대까지. 총 4개의 중대가 움직 인다. 그러다 보니 1중대, 특히 1분대만 집중해서 볼 수는 없을 터.

지켜보는 시선이 분산되기 때문에 이강진은 오히려 대대 ATT 가 마음이 더 편했다.

실제로 진지를 점령한 이후 2시간 동안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중대 ATT였으면 1시간 이내에 대대장이 이곳을 순찰 왔을 것 이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동시에 졸음이 몰려왔다.

-이런!'

이강진은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억지로 졸음 요정들을 내쫓았다.

훈련 도중에 졸기라도 했다간 큰일이다.

게다가 옆에는 안준렬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

그런데…….

너무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문제다.

'뭐지?'

이강진은 안준렬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을 뜨고 있긴 했다.

그런데 눈꺼풀을 깜빡이질 않고 있었다.

"안준렬 병장님."

"……음?"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놀라는 리액션을 펼치는 안준렬의 모습을 본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다.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깜짝 졸아버린 것이다.

설마 눈을 뜨고 졸거라고는 미처 예상 못했다.

그제야 안준렬은 뻑뻑해진 눈을 수차례 깜빡였다.

"미안. 잠깐 잠들어버렸네."

안준렬이 경계근무 중에 졸음이라니.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한 장면이다.

전역할 때가 다 되어가다 보니 안준렬도 이런 식으로 방심을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곤 한다.

'그래도 눈 뜨고 졸았다는 게 신기하네.'

독하기도 했다.

아무리 이강진이라도 이렇게 까진 못할 거 같았다.

중대 ATT였다면 언제 대대장이 이곳을 급습할지 바짝 긴장하고 있었을 테지만, 대대장은 지금쯤 모든 중대를 통솔하느라 상 당히 바쁠 것이다. 그걸 알기에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어졌다.

오전 11시 반.

슬슬 점심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근무 교대는 12시 반이 되어서야 올 터. 아직 1시간이나 더 버 텨야 했다.

'안준렬 병장은 말이 많은 타입도 아니니까.'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응' 혹은 '아니' 같은 단답형뿐 이었다.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다.

'무박 3일은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하네.'

그때는 황지웅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단 둘뿐이다.

'휴가 나가서 뭐 할지나 생각할까.'

대화가 없을 때에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하나 안준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대학을 나왔다고 했었나?"

"저 말씀이십니까?"

"어.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다는 것까진 알고 있는데, 전역하 면 어느 쪽으로 진로를 잡을지 궁금해서."

안준렬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게 굉장히 낯설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대학은 안 나왔습니다. 대신에 투자 공부를 좀 할까 합니다."

"금융권으로 나가게?"

"예. 아마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나중에 부동산도 공부하고 그럴 거 같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주식을 메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이젠 이강진의 턴이다.

"안준렬 병장님은 어떤 거 하실 생각이십니까?"

회귀하기 이전의 삶에선 안준렬의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전역하고 난 다음에 바로 연락이 끊겼다.

전마등이나 라인혁은 그래도 2~3년간 드문드문 문자를 보내 거나 하면서 근황 같은 걸 서로 주고받고 했었지만, 안준렬은 그 런 게 일절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궁금했다.

그가 전역 이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떤 인생길을 만들 계획인지.

"교대 다니고 있으니까, 아마 교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데."

안준렬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재입대를 하니까 몰랐던 것도 알게 되네.'

그밖에 안준렬은 여태껏 숨겨왔던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것 들도 이야기했다.

수능을 망친 탓에 재수를 하고서 교대에 입학했다는 것도 처 음 듣는 내용이었다.

원래 안준렬은 이렇게까지 수다쟁이가 아니었다.

이강진은 반쯤은 신기한 눈빛으로 안준렬을 응시했다.

그제야 안준렬은 자신이 왜 이런 시선을 받고 있는지 알아차 렸다.

"미안. 내가 말이 너무 많았나 보네."

"아닙니다. 안준렬 병장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 는 분이었을 줄 몰라서 놀란 겁니다."

"하하, 그래? 하긴. 인혁이도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었지. 자대 입대하고 일병 달 때까지는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굉장히 과묵 한 인간이었거든. 인혁이하고 같이 휴가 처음 나갔을 때였을 거 야.

그때 휴가 나온 기념으로 시내에서 같이 술 한 잔 한 적 있 거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인혁이가 너처럼 놀라더라. 네 가 그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할 줄 모르고 살았다고."

라인혁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강진은 십분 공감할 수 있었같은 기분이었을 테니 말이다.

안준렬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전역할 때가 다 되긴 했나 보다. 안 하던 짓을 또 하게 되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강진은 이걸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안준렬 병장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어서 한편으로는 기쁩 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아마 군대가 아니었다면 안준렬은 여전히 과묵한 사람으로 남 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장소.

군대는 참 신기한 곳이다.

* * *

점심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완전군장을 매고서 연병장으로 집 합했다.

1075 대대 영내에서의 훈련은 오전 내로 종료. 나머지는 다른 진지로 이동해서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곳까지 차를 타고 간다는 건 어불성설.

대대장은 행군을 택했다.

처음에는 행군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병사들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소식을 들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동안 짬처리 된 행군 훈련이 너무 많다보니 이런 식으로라도 키로 수를 채워야 했다.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걸 알기에 병사들은 군말 없이 군장을 짊어져야만 했다.

그래도 대대 ATT 행군은 나은 편이 었다. 진지까지 도보로 5시 간만 걸어가면 되니까.

대대장이 단상에 올라 병력들에게 외쳤다.

"행군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날씨도 좋으니까 산책 간다는 기 분으로 임하도록. 그러면 덜 힘들 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 다!"

요즘은 산책을 할 때 완전군장을 매고 하는 게 트렌드일까?

병사들은 순간 이런 반문을 하고 싶었으나, 상대가 대대장이 었기에 참기로 했다.

평소 행군이라면 9시간, 10시간은 기본으로 걸렸을 텐데. 그 래도 5시간이라서 그런지 할만 했다.

게다가 야간도 아니고 주간 행군이다.

처음에는 산책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던 이강진이었지 만, 걷다보니 정말로 산책 느낌이 나긴 했다.

'전투복하고 군장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날씨가 덥긴 하지만, 군대가 아닌 바깥 공기를 맡는다는 것 자 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계속 걷고 또 걷기 시작하는 병사들.

아무리 거리가 짧아도 행군은 행군인 모양인지 다들 몸이 축 쳐졌다.

특히 자대 전입 후 처음으로 행군을 하게 된 곽분섭이 가장 힘들어 했다.

반면, 행군왕이라 불리는 백우호는 곽분섭과 다르게 기운이 넘쳤다.

오히려 곽분섭에게 이렇게 물을 정도였다.

"분섭아. 힘들면 내가 군장 들어줄까?"

"이병 곽분섭!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곽분섭은 근성이 좋은 편이었다.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3일 동안 신세를 질 8390 진지에 도착했다.

행군을 마치고 나니 벌써 저 녁 시간이 다 되었다.

그전에 행보관은 병력들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후딱 쳐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텐트 설치에 매진했다.

1분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위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인혁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 거…… 폐가 아니 냐?"

텐트 바로 근처에 낡은 폐가가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사람이 사는 집처럼 보이진 않았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폐가. 때마침 지나가던 통신반장이 라인혁과 1분대원들에게 의미심장한 미 소를 띠면서 말했다.

"조심해. 저번 달에 여기서 훈련 받던 병사들이 폐가에서 귀 신 나오는 거 목격했다고 하더라."

"그, 그게 정말입 니까?!"

1분대원들은 기겁했다.

특히 귀신을 무서워하는 고필중은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갔다. 고필중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아니, 통신반장님! 왜 이런 곳에 텐트를 칩니까? 행보관님이 나 아니면 중대장님한테 말씀드려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 됩 니까?"

"다른 대대도 와서 이곳에서 훈련 받는 거, 너도 봤잖아. 남는 자리 없어. 그냥 여기 써야지."

"하아……."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고필중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굉장히 찜찜했다.

1분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옆쪽에 텐트를 붙인 2분대와 3분대도 불안하긴 마찬가 지였다.

텐트를 치는 동안에도 시선은 자꾸 폐가 쪽으로 향했다.

오늘 잠자기는 다 글렀다.

병사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저녁 8시에 대대 ATT 첫날 훈련이 모두 종료되었다.

병사들은 텐트 안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기 전에 시원한 물로 체온을 낮추기로 했다.

마음 같으면 샤워라도 하고 싶었으나, 여건이 안 되었기에 등 목으로 대체했다.

안준렬과 라인혁이 각자 바가지를 하나 들고서 분대원들에게 손짓했다.

"지웅이부터 와서 엎드려라."

"예!"

쏴아아아아!

차가운 물이 그의 등을 적셨다. 어찌나 차가운지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으으으! 차가워!"

"짜식, 뭐 이런 거 가지고 차갑다고 해!"

짝!

황지웅의 등에 라인혁의 손바닥 자국이 빨갛게 새겨졌다.

"다음!"

"상병 고필중!"

비록 샤워는 못했지만, 등목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셨다.

물티슈로 얼굴에 묻은 위장크림을 지운 후에 텐트에 하나둘 씩 들어가 잘 준비를 서둘렀다.

원래는 텐트 안쪽이 좋은 자리로 평가 받는다. 병사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입구에 가까이에 있으면 간혹 인기척에 잠이 깨곤 한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안쪽 자리가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오늘은 반대였다.

"누가 안쪽에 가서 좀 자라."

"전 싫습니다! 저쪽, 폐가 방향이지 않습니까!"

"귀신 안 나온다니까 그러네. 사내 녀석들이 뭐가무서워서 벌 벌 떨고 있어!"

"그러면 라인혁 병장님이 안쪽에 가서 주무시면 되지 않습니까?"

"나, 나는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질 후임들을 위 해 좋은 자리를 양보해주려는 거잖아. 이 선임의 마음을 어찌 그 리도 몰라준단 말이 냐."

안쪽에서 자기 싫으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다. 1분대원들은 단숨에 눈치 챘다.

폐가의 존재 때문에 병사들은 좀처럼 안쪽에서 자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한 병사가 용기를 냈다.

"내가 잘게."

안준렬 병장이었다.

한 명의 자리가 채워졌으니, 이제 한 명만 더 희생하면 된다. 정 없다면 이강진이 손을 들려고 했다.

하나 그전에 누군가가 먼저 손을 들었다.

"이병 곽분섭!"

신병이 용기를 냈다.

< 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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