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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28화 (128/347)

< 제39화. 취사 지원 (2) >

제39화. 취사 지원 (2)

분과별 간담회 시간 때 이강진은 성태강과 같은 날에 맞춰서 휴가를 나가겠다고 안준렬에게 보고를 했다.

두 사람의 휴가 희망 날짜를 적은 안준렬은 고개를 끄덕이면 서 그것을 수첩에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태강이는 신병위로휴가니까 거의 99퍼센트 확률로 원하는 날짜에 나갈 수는 있는데, 강진이는 너무 속단하진 마. 대대 ATT 때문에 지금 휴가 신청자들이 밀려서 아마 날짜 조정이 있을지 도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강진은 자신 있었다.

이미 김철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포섭해뒀기 때문이다.

김철을 이용해서 행정분과에게 잘 좀 부탁한다고 양념을 친 다면, 이강진이 원하는 음식이 나올 것이다.

이강진은 그걸 날름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정치라는 요소가 생 길 수밖에 없다. 이 정치를 적절하게 이용하면, 자신에게 큰 무 기가 된다.

"오케이. 휴가는 이것으로 됐고…… 오늘 전달 사항이 하나 있 다."

병사들의 귀가 번뜩였다.

"형국이 알지? 2분대 소속 도형국. 대대 ATT 훈련 도중에 형 국이가 팔을 좀 다쳤다고 하더라."

도형국은 1중대에 두 명 있는 취사병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 는 병사였다.

병사들이 훈련을 받는 동안, 도형국은 취사반에서 열심히 밥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에 왼쪽 팔에 가벼운 화상을 입게 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당분간은 쉬는 게 좋다고 하 더라. 그래서 한 3일에서 4일 동안 형국이를 대신해서 취사 지 원을 나갈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혹시 갈 사람 있어?"

일반 보병들에게 취사병이라는 건 미지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일과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대 식당으로 내려가서 하루 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개인정비 시간이 좀 지날 무렵에 다 시 막사로 복귀한다. 이 생활이 전역할 때까지 반복된다.

취사병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1분대원으로선 '이 걸 지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만 들 뿐이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들은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감이 안 왔다.

이럴 때에는 물어보면 된다.

기운상은 1분대 죄고선임 중 한 명인 라인혁에게 물었다.

"라인혁 병장님. 취사병은 어떤 일을 하는 겁니까?"

"밥 만들고 반찬 만들고, 국 만들고. 그러는 거겠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라인혁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몰라, 임마. 나도 해봤어야 할지. 들은 것도 거의 없고. 아무 튼 밥 만드는 일이라는 것만 알아두면 될 거다. 아, 몇 개 더 있 네."

기왕 이렇게 된 거, 라인혁은 자신이 아는 것들을 더 말해주 기로 했다.

"기상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새벽 다섯 시야. 아침 점호는 자 연스럽게 열외. 일어나자마자 바로 대대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 침밥 준비하면 돼. 식사 시간 끝나면 설거지 하고, 또 점심 준비 하고. 그 다음에 설거지 후에 저녁 준비. 그리고 다시 막사로 복 귀하면 될 거야."

"쉬긴 하는 겁니까?"

"쉬지. 우리 제초작업 할 때, 기억 안 나냐?"

병사들은 잡초들과 벌였던 초록빛 전쟁 당시의 기억을 떠올 렸다.

대대 식당 근처에 내려가서 제초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병사들이 땡볕 아래에서 풀과 열심히 씨름하는 동안, 취사병 몇몇은 그늘에서 잠을 자거나 아니면 취사병들끼리 모여서 족 구를 하곤 했었다.

"취사병들은 쉬는 시간이 딱히 고정되어 있지 않더라. 쉴 수 있을 때 쉬는 느낌? 그러니까 일과 시간에도 대놓고 자도 간부 들이 뭐라고 안 하지."

"아하……."

그리고 취사병을 하면 작업병과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포상 휴가가 떨어진다.

이것이 라인혁 선에서 알 수 있는 취사병의 전부였다.

한때 군대 척척박사라 불리던 이강진조자도 취사병에 대해선 잘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잘하면, 포상휴가로 연결 지을 수 있겠는데?' 포상의 냄새가 살짝 풍겼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병 이강진."

갑자기 이강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포상휴가 노리는 거지?"

안준렬의 추즉은 정확했다.

부정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강진은 곧장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루 정도 취사 지원을 나가는 거면 아무런 보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3~4일 동안 취사 지원을 나가는 거 면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잘하면 1박 2일 포상휴가를. 그 이하여도 최소 외박권은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강진이 짠 견적이다.

포상휴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강한 이강진. 안준렬은 그 열정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강진이, 네가 수고 좀 해줘라."

"예, 알겠습니다."

포상휴가를 건 이강진의 도박이 과연 통할지. 이것은 추후에 지켜봐야 할 문제다.

행보관과 함께 일과 시간에 산을 누비면서 작업 타임을 가졌 던 이강진과 백우호는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의 감촉조차 두 사람의 피로를 온전히 감싸 주지 못했다.

"하…… 오늘 역대급으로 힘들었네. 그렇지, 강진아?"

이강진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화를 신고 산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여기에 작업까지 하게 되었으니, 안 힘들 수가 있을까.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져 있는 이강진의 등을 안준렬이 토닥 여 줬다.

"고생했다, 강진아. 널 위해서 내가 좋은 소식과 더 좋은 소식을 가져왔는데, 어떤 거 들을래?"

나쁜 소식이 없었다.

꽝 없는 선택. 어느 것을 고르든 간에 부담이 없었다.

옆에서 백우호가 부럽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안준렬 병장님. 저한테는 좋은 소식 없습니까?"

"군대에선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너도 일병 짬 됐으니까 알잖 아?"

백우호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다.

안준렬은 다시 이강진에게 물었다.

"어느 거 들을래?"

"좋은 소식부터 먼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첫 번째는 비교적 간단한 거였다.

"휴가 일자, 네가 1지망으로 뽑았던 날짜로 확정되었다."

이강진이 뒤에서 손을 쓰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원하는 날짜 로 당첨되었다.

좋은 소식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이다음, 더 좋은 소식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다음 거는 어떤 겁니까?"

"취사 지원에 관한 거야. 지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논 의할 것도 없이 너로 결정됐어."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냥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안준렬도 이거 가지고 '더 좋은 소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진짜배기는 바로 뒷내용이었다.

"행보관님이 너 혼자만 취사 지원한 것에 감명 받으셨는지 모 르겠지만, 너 이 번에 휴가 나가는 거에 추가로 포상휴가 1박 2 일을 더 붙여주겠다고 하시 더라."

이강진의 도박이 성공했다!

그가 원하는 최대치의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면 100퍼센트만족이다.

"감사합니다, 안준렬 병장님."

"나한테 고마워할 건 없고. 네가 평소에 행보관님한테 좋은 이 미지를 심어준 덕분에 그런 거지. 취사 지원 기간은 3일로 확정 되었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대대 식당으로 내려가면 돼. 그동 안 외곽 근무는 전부 면제될 테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예, 알겠습니다."

이 대화를 바로 옆에서 실시간으로 경청하던 백우호는 더더 욱 이강진을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회는 거머쥐려고 노력하는 자의 것.

이강진은 다시 한 번 승리자가 되었다.

이미 포상휴가 1박 2일을 일찌감치 확정지어뒀으니, 마음은 한결 편했다.

처음 하게 된 쥐사병 업무라도 별 걱정은 없었다.

'그냥 시키는 것만 하다보면 되겠지.'

취사 지원을 나가기 전에 이강진은 오호만 상병을 찾았다.

이번에 부상을 당한 도형국과 마찬가지로 오호만도 취사병으 로 일하고 있었다.

때마침 오호만은 생활관에서 티비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충성."

"음? 강진이 아니냐? 네가 여긴 어쩔 일로 왔어?"

"이번에 제가 취사 지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 너로 결정됐어?"

오호만은 이강진이 취사 지원으로 오게 되었다는 게 좀 의외 였다.

"안준렬 병장님이 우리 쪽으로 에이스를 보낼 줄이야. 나는 우 호 정도만 예상하고 있었는데."

누가 오든 상관없다.

어차피 3일만 일하면 되는 거였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형국이가 복귀할 때까지 잘해보자."

"예, 알겠습니다."

"뭐, 구체적으로 알려줄 건 없고. 대대 식당 가서 직접 일해 보 면 알 거야. 취사병의 하루가 어떤지 말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봤자 잘 모를 거거든."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것만큼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도 없다.

"불침 번이 5시에 깨워줄 거야. 그러면 전투복 말고 취사복 입 고 나랑 같이 대대 식당으로 내려가면 돼. 언더스탠드?"

"예."

순간 이강진도 영어로 'Yes'라고 대답할 뻔했지만, 그냥 평범 하게 답하기로 했다.

"취사복은 형국이 꺼 줄 테니까 그거 입어. 너하고 형국이하고 체형이 비슷하니까 잘 맞을 거다."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자신이 임시로 쥐사병이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취사복을 건네받은 순간, 그제야 이강진은 조금씩 깨 달을 수 있었다.

'회귀 이전에도 취사 일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설마 재입대를 통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달콤했던 주말이 지나가고 1075 대대에 다시 평일이 찾아왔 다.

새벽 5시.

기운상이 조심스럽게 이강진을 깨웠다.

"이강진 일병님. 다섯 시입니다."

"……어, 알았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확실히 외곽 근무 때문에 중간에 잠을 깨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남들보다 1시간 일찍 기상해야 한다는 건 좋지 않았무의식적으로 전투복 쪽에 손을 1썯으려 했던 이강진은 뒤늦 게 행동을 멈췄다.

"취사복 입어야지."

소위 '떡볶이'라 불리는 주황색 활동복을 입은 이강진.

옷을 입자마자 짬내가 진동했다.

"어휴, 이 빌어먹을 짬내."

이 옷을 입으면, 적어도 짬타이거들한테는 인기가 있을 것 같 았다.

행정반으로 들어선 이강진은 당직사병에게 물었다.

"혹시 오호만 상병, 어디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호만이? 사열대 앞에서 담배 피우고 있을 걸? 안 그래도 너 보면 그쪽으로 오라고 말 전해달라고 하더라."

"감사합니다. 충성!"

"어. 취사 지원, 힘내고."

응원을 받으며 사열대로 향했다.

그곳에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아직 어두운 새벽 밤하 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오호만이 서 있었다.

"강진이 왔어?"

"충성. 좋은 아침입 니다."

"그러게. 밥 하러 가기 참 좋은 아침이지."

담뱃불을 끈 후에 오호만이 먼저 앞장섰다.

"슬슬 출발해볼까."

"예!"

이강진의 첫 취사 업무가 시작되었다.

< 제39화. 취사 지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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