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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42화 (142/347)

< 제42화. 하극상 (2) >

제42화. 하극상 (2)

안준렬로부터 받은 사제 전투화를 들고 밖으로 향하는 이강진.

전투화 손질부터 먼저 해야 했다.

사열대 앞에 앉은 채 구둣솔로 열심히 사제 전투화에 광을 내 기 시작했다.

가져온 라이터로 구두약에 불을 붙였다.

그런 뒤에 못 쓰는 양말로 구두약을 묻혀서 광이 날 때까지 계속해서 사제 전투화를 문질렀다.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광내기에 열중하는 도중에 낯선 목소리가 이강진에게 말을 걸어 왔다.

"미안한데 잠깐 불 좀 빌릴 수 있을까?"

오종한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한테 라이터를 빌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거든."

"예, 괜찮습니다."

이강진은 직접 라이터를 켰다.

치익

담배 끝에 불을 붙이는 데에 성공한 오종한은 이강진에게 고 마움을 표했다.

"땡큐, 덕분에 살았어. 근데 흡연실은 어디 있어?"

"사열대를 기준으로 왼쪽 방향 끝에 있습니다. 쭉 걷다 보면 흡연실이 나올 겁니다."

"고마워."

1중대로 온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부대시설이 뭐가 있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강진이 없었더라면 오종한은 흡연실 위치를 알아내는 건 둘 째 치고, 담배에 불을 붙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저 사람도 여러모로 안 됐네.'

만약 이강진도 오종한처럼 말년에 갑자기 다른 중대로 전출 당하면 어떻게 될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네.'

머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방금 든 의문을 지워 버렸다.

다시 광내기에 열중할 때였다.

이번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이강진을 찾았다.

"뭐하냐, 강진아."

이강진이 앉아 있는 곳 바로 옆에 전투화를 내려놓는 백우호.

그의 손에 구둣솔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강진은 왼쪽 전투화를 백우호에게 보여 줬다.

"광내고 있다."

"광? 그거 작업용 전투화 아니야?"

"맞아, 그래도 첫 광 정도는 내 두려고. 그래야 당분간은 깨끗 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하긴 처음부터 관리를 잘해 둬야지. 나중에 가면 뒤늦게 관 리하려고 해도 마음먹은 것처럼 잘 안 되니까."

백우호는 이강진의 사제 전투화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부럽다. 그거, 내심 나도 노리고 있던 거였는데."

"그럼 미리 사전 작업을 해 뒀어야지. 나는 이거 3개월 전부 터 찜해 두고 있었다. 그때부터 안준렬 병장님한테 나중에 짬 처 리할 때 나한테 꼭 달라고 했었지."

"이런 약삭빠른 녀석! 나도 앞으론 그래야겠네."

오늘도 이강진에게 또 하나 배워 간다.

나란히 앉아 전투화를 손질하는 두 동기.

여기에 한 명의 동기가 더 추가되었다.

"전투화 손질하고 있었어?"

김철이었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던 백우호가 걱정을 드러냈다.

"넌 어째 날이 갈수록 눈밑에 있는 다크서클이 더 진해지는 거 같냐?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지?"

"착각 아니야. 요즘 들어서 더 죽겠다, 어휴."

행정병에게 개인 정비 시간이란 없다.

간부가 부르면 행정반으로 무조건 뛰쳐 나가야 한다.

이들도 거의 오대기 수준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병기계 쪽에 문제가 생겨서 아주 난리도 아니야. 전투화 손질 끝내고 바로 행정반으로 가 봐야 해."

"네가 고생이 많다, 많아."

김철은 이강진의 옆에 놓여 있는 구두약을 확인하고서 그에게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강진아, 구두약 잠깐만 써도 돼?"

"어, 상관없어. 근대 이거, 불광내고 있던 건데. 괜찮지?"

"괜찮아, '손질했다.'에 의의를 두는 거니까. 고마워, 잘 쓸게."

세 동기가 사이좋게 앉아 전투화 손질에 돌입했다.

때마침 오종한이 담배를 다 피운 모양인지 사열대를 지나쳐 다시 막사 안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철은 눈을 의심했다.

"저 아저씨, 누구야?"

이강진이 답했다.

"2중대에서 전출 오신 분."

"아! 오종한 병장님이구나."

"오종한 병장님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어?"

혹시 김철이라면 알지 않을까.

이강진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하극상을 일으켜서 영창 갔다가 우리 부대로 왔다는 것 밖에 모르는데."

행정병이라고 부대 상황을 전부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었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이강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본 백우호가 이강진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오종한 병장님이 신경 쓰여서 그런 거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특별히 신경 쓰고 뭐고 할 단계는 아니었다.

모른 채로 지내도 상관은 없으리라, 이강진은 그렇게 생각했 다.

슬슬 전투화 광내기가 끝날 무렵.

갑자기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립니다. 일병 이강진, 일병 이강진은 즉 시 행정반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행정반에서 이강진을 찾았다.

"나 먼저 들어가 볼게."

"오냐."

"강진아, 구두약은 좀 있다 관물대에 넣어 둘게."

"어, 고마워!"

오늘의 당직사관이 누구인지 떠올리 면서 이강진은 곧장 막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직사관 완장을 찬 행보관은 이강진을 행보관실로 따로 불 렀 다.

처음에는 주식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나 이 번엔 그게 아니었다.

"강진아, 미안한데. 내일 딱 하루만 취사 지원 좀 가 줘라."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별건 아니고, 형국이가 저번에 화상 입었던 적 있었잖냐. 그 거 내일 정기검진 받는 날이라서 형국이를 외진으로 빼야 하거 든. 급하게 결정된 거라서 일단 너부터 부르게 된 거다. 네가 그 나마 취사 지원 경험이 많으니까."

신입보다는 경력자를 우선하는 건 사회나 군대나 똑같다.

대신 행보관도 맨입으로 이강진을 무작정 취사반으로 보낼 생 각은 아니었다.

"보상은 내가 나중에 알아서 잘 챙겨 주마."

그게 휴가가 될지, 아니면 외박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강진에겐 무조건 이득이다.

"알겠습니다, 행보관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하루 정도는 거뜬하다.

행보관은 이강진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래간만에 오호만 상병하고 같이 일해 보겠네.'

휴가 내내 쥐사반보다 헐씬 빡센 곳인 바라 식당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이강진은 처음에 취사 지원을 나설 때보다 더 자 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하루만 고생하다 오자.'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 * *

저녁 점호 시간이 찾아왔다.

1생활관은 잠잠했다.

원인은 단 한 명 때문이었다.

오종한, 그가 침묵의 원인이었다.

오종한도 조용히 입을 닫은 채 있었다.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딱딱한 분위기, 답답한 공기를 가장 먼저 걷어낸 사람은 바로 말년 라인혁 선생이었다.

"다들 왜 그래? 오늘따라 너무 조용한 거 아니냐?"

"…어흠!"

"아닙니다, 이제 막 입 얄려고 했었습니다."

후임들은 그렇지 않다며 핑계를 댔다.

하나 라인혁에게 그런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종한이 때문에 그렇지?"

클린 히트였다.

상병, 일병, 이병 라인이 전부 다 위죽되어 있는 것은 오종한 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극상을 일으키고 1중대로 온 인물 아닌가.

성격 또한 보통이 아닐 터.

그래서인지 후임들은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강진은 오종한이 성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건 분위기 때문이 었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분위기를 풀어주는 건 늘 라인혁의 몫이 었다.

"아까 이야기 나눠 보니까 나름 괜찮은 녀석인 거 같더라. 종한이가 너희들한테 조용히 있다가 전역하겠다고 말했었잖아?

그러니까 어려워하지 마. 그렇지, 종한아?"

"예,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인혁 병장님."

"됐어, 아무튼 우리 애들, 다들 착하니까 너도 거리낌 없이 말걸어 보고 그래."

"알겠습니다."

하극상을 일으키고 온 것치고는 상급자에게 깍듯이 대하는 오종한이었다.

그의 모순된 모습에 후임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

눈을 뜬 이강진은 전투복 쪽으로 뻗으려 던 손을 다시 거둬들 였다.

'근무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잖아.'

오늘은 취사 지원을 나가는 날이다.

어제 지급받은 취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랜만에 입어 보는 취사복.

'이 짬내는 변함없이 그대로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이 짬내와 판쵸우의의 눅눅하고 케케 묵은 냄새는 여전할 것 같았다.

행정반에 가서 취사반으로 내려가겠다는 보고를 하려고 했으 나, 행보관은 이미 행보관실에 들어가서 잠을 취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돌아온 당직병이 이강진을 보 면서 말했다.

"오호만 상병님, 사열대 앞에서 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 셨으니까 바로 나가면 돼."

"예, 알겠습니다."

"고생해라."

담배 한 대를 막 피우고 돌아온 오호만은 마침 이강진과 딱 마주쳤다.

"오, 타이밍 죽이네."

"충성! 오랜만입니다, 오호만 상병님."

"그러게, 몇 달 만에 얼굴 보는 기분이네."

실제론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주 정도, 그게 다였다.

"슬슬 내려가 볼까?"

"예!"

오호만 상병과 함께 취사반으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아침 식사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3일 동안 빡세게 구른 경험 덕분인지 이강진은 어렵지 않게 오호만 상병이 시키는 작업들을 소화해 냈다.

오호만 상병이 만든 오리지널 소스를 비엔나소시지에 곁들였다.

안 그래도 맛있는 비엔나소시지가 오호만 상병만의 팁이 더 해지니 2배로 더 맛있어졌다.

"오호만 상병님, 저번보다 요리 실력이 더 느신 거 같습니다."

"요즘 쉬는 시간 때마다 요리 책 보면서 공부하고 있거든. 나 중에 전역해서 요리로 돈 벌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니까."

자영업자로 성공하기 참 어려운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 국이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공부는 필수다.

오호만 상병이 쉬는 동안, 이강진은 짬통을 버리고 오겠다면 서 취사반을 나섰다.

작은 짬통을 들고 잔반처 리장으로 향했다.

근처에 가자마자 짬내가 이강진의 코끝을 자극했다.

"어휴, 냄새. 지독하다, 지독해."

이강진이 잔반처리장에 도착하자, 근처에 있던 고양이 세 마 리가 황급하게 자리를 떴다.

짬타이거가 분명했다.

"어느새 한 마리가 더 늘었네."

이강진이 취사반에서 일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두 마리밖 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마리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래, 많이 먹어라."

짬타이거들이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이강진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켜 주기로 했다.

다시 취사반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저기요, 아저씨!"

두 명의 병사들이 이강진을 불렀다.

1중대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강진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아저씨, 1중대 맞죠? 이어달리기에서 마지막 주자로 뛰었던 그 아저씨."

"예, 맞는데요."

"역시……!"

병사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2중대인데요. 아저씨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서요."

2중대라면

'오종한 병장이 있던 곳인데?'

< 제42화. 하극상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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