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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44화 (144/347)

제42화. 하극상 (4)

"정말로 2중대로 가는 중이었습니까?"

이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응, 그런데? 2중대로 가면 안 돼?"

"아, 아닙니다. 아까 제대로 못 들어서 다시 여쭤본 것뿐입니다."

운이 참 좋다.

일요일 오전에 2중대 사람과 직접 접족을 시도해 보려고 하긴 했었으나, 그가 사실대로 말해 줄 거라는 보장이 없어서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렇게 된 이상.

'2중대로 가서 한종덕이라는 사람을 찾아 직접 물어보면 되겠군.'

그 사람이라면 말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오종한을 잘 부탁한다고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이 었으니까.

* * *

훈련 물자를 들고서 2중대를 방문한 이강진은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타 중대로 온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확실한 건 흔치 않은 일이란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다른 중대를 방문할 순 없다. 사얄대를 지나쳐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2중대는 우리 중대 막사보다 더 깔끔하고 좋아 보이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것 때문에 2중대가 더 좋아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화학 장교님, 어디로 가면 됩니까?"

"행정반, 2층에 있다니까 올라가자."

"예, 알겠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이들.

오이향과 이강진이 행정반에 들어서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행정병들이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충성!"

"충성, 간부님은 안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행보관님!"

행정병이 곧장 행보관을 불러왔다.

2중대 행보관은 상당히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계급은 상사 1중대 행보관에 비해서 계급이 한 단계 낮았다.

"충성, 화학 장교님이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다음 주에 중대 ATT받으실 때 사용하시라고 부족한 방독면 부수 물자 챙겨 왔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허, 알겠습니다. 행정!"

행보관은 무슨 일이 있다 싶으면 바로 행정병을 찾았다.

네 명의 행정병들이 모여 들어 방독면 부수 물자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강진은 오이향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학 장교님,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응, 오래 걸릴 거 같으니까 천천히 볼일 보고 와도 돼."

"감사합니다."

행정반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행보관이 이강진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 줬다.

"나가서 오른쪽 복도를 쭉 따라가다 보면 나올 거다. 입구 쪽 에 있는 소변기 두 개는 지금 공사 중이니까 그거 사용하지 말 고 다른 거 사용해라."

"예, 알겠습니다."

부대시설 관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행보관이다.

행보관이 알려 준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이강진.

'오종한 병장이 2분대 출신이라고 했었지?'

그는 각 생활관에 걸려 있는 팻말을 살폈다.

"박격포반, 3분대…… 2분대, 저기 있군."

화장실 말고 2분대가 머무르고 있는 생활관으로 향했다.

어차피 화장실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펼친 거짓말에 불과 했다.

'개인 정비 시간에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일과 시간이다 보니 생활관에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밖으로 나가 볼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으니 좀 더 돌아다녀 봐도 될 것 같 았다.

1층으로 내려간 뒤에 사열대 밖으로 향했다.

때마침 2중대 병사들이 화단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간부는 없군.'

간부가 있으면 물어보기 껄끄러웠지도 모른다.

그들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간 이강진.

"저기요."

먼저 말을 걸어 봤다.

'누구세요?'라는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나 이들은 이강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아는 척을 했다.

"이어달리기 때 마지막으로 달렸던 그 아저씨 맞죠?"

"네,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전광석과 펼쳤던 이어달리기 대결은 대대 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명승부를 연출한 두 사람은 1075대대 병사들에게 각자의 존 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게다가 체육대회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이강진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은 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강진은 무의식적으로 오종한 병장에 관련된 사건을 물어보 려고 했었다.

그러나 2중대 병사들 사이에선 금기 취급당하고 있다는 사실 이 떠올라 말머리를 돌렸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한종덕 상병이라고, 그 아저씨를 만 나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한종덕 상병님요?"

"누구 아는 사람?"

일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휴게실에 계실 겁니다. 거기 거미줄 제거해야 한다고 행보관 님께서 그러셔서 한종덕 상병님이 빗자루 들고 거미줄 제거 작 업하시는 걸 아까 봤습니다."

추가로 휴게실의 위치까지 전해들은 이강진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서 바로 장소를 이동했다.

'저기군.'

후임들과 함께 휴게실을 청소하고 있는 한종덕 상병.

"아저씨."

"……!"

한종덕은 화들짝 놀랐다.

이강진을 여기서 만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저씨가 여긴 어떻게……."

"화학 장교님, 돕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시간이 많지 않으 니까 빨리 말할게요. 오종한 병장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리고 왜 저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을 했는지 알려 주세요."

"……."

한종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임들에게 작업을 맡긴 후에 이강진을 따로 어디론가 데려 갔다.

"죄송합니다, 저희 중대에서 오종한 병장님 이야기는 꺼내면 안 되는 분위기라서요.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강진의 예상대로 한종덕은 협조적으로 나왔다.

장소를 이동한 뒤에 한종덕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종한 병장님은 내무 부조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계셨습니다. 군대라는 게 원래 다 그렇잖아요? '내무 부 조리가 없다."

'이제는 군 생활도 할 만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좆같은 거."

"알죠."

충분히 공감한다.

군대를 두 번이나 오게 된 이강진이었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종한 병장님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종한 병장님의 맞선임이자 저희 2분대 최고 선임이었던 민고석 병장이었죠."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모양인지 한종덕의 한숨은 더욱 깊어 졌다.

"저희 중대에 -인간 의자'라는 게 있습니다. 혹시 뭔지 아세 요?"

"잘 모르겠네요."

"내무 부조리의 일종입니다. 후임을 불러다가 엎드리게 한 다 음에 그 위에 의자처럼 올라타는 거죠. 민고석 병장이 자주 사 용하던 수법입니다."

"……."

"오종한 병장님은 민고석 병장한테 대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내무 부조리는 없애자고. 애들이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군 생활 잘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꼭 말년 꼬장을 부 려야겠냐고 그랬었죠. 하지만……."

"그 민고석이란 사람은 들은 척도 안 했겠군요."

"예, 맞습니다."

이강진은 알고 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다는 사실을.

"민고석 병장은 상병을 달았을 때부터 틈만 나면 후임들을 때 렸습니다. 마음의 편지로 긁혀도 폭행은 계속되었죠. 오히려 긁 은 후임을 찾아내서 지독하게 괴롭혔습니다. 그 정도가 되니까 누구도 민고석 병장을 건드리지 못하는 단계까지 왔죠."

적당한 또라이는 그래도 상대할 만하다.

하지만 완전 상또라이는 건드리는 것조차 무서워진다.

민고석 병장은 후자에 속한 케이스였다.

"행군 훈련이 막 끝났을 때였습니다. 민고석 병장이 아직 샤워도 못한 일병, 이병 들을 갑자기 부르더라고요. 뜬금없이 옆 드리라고 하고서 그 위에 침대처럼 누웠습니다. 그러고서 아주 태평하게 티비를 보더군요. 거기서 오종한 병장님이 어떻게 하 셨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들고 있던 전투화를 민고석 병장한테 냅다 던져 버렸습니다. 결국 몸싸움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런 결말이 나오게 된 거죠."

"……."

민고석은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 분대장을 달고 있었던 병사였다.

간부가 아니더라도 분대장을 달고 있는 병사 또한 하극상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그래서 오종한은 그에 따른 처 벌로 영창 과 동시에 전출을 당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1중대에는 민고석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이강진은 새삼 '내가 그래도 괜찮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구 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민고석 병장, 본인은 군기를 잡았다느니 어쨌느니 했지만, 이 미 모든 중대원들이 민고석 병장한테 등을 돌린 후였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영창은 확정이었겠군요."

"예, 하지만 오종한 병장님도 영창행을 피하진 못했습니다. 부대 전출까지 당하고 말았죠."

한종덕이 오종한을 신경 쓰는 이유가 있었다.

"오종한 병장님은 스스로를 희생하신 겁니다. 저희가 좀 더 적 극적으로 오종한 병장님을 지켜 드렸어야 했는데……."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 게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후회다.

인간인 이상, 후회를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늘 올바른 선택만 하고 살 수 없듯, 인간은 언제나 후회가 남 는 선택을 한다.

그로 인해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간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신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한정된 공간에서 오랫 동안 생활을 해야만 하는 군대에선 특히나 이런 게 더 와닿는 '오종한 병장은 이번 일을 후회하고 있을까?' 문득 이강진은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생활관으로 돌아와 개인 정비 시 간을 가졌다.

안준렬과 라인혁은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내일, 두 사람은 말년 휴가를 떠난다.

복귀하고 난 다음에 딱 하루만 부대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 다 음 날 바로 전역할 예정이다.

라인혁은 황지웅에게 대놓고 물었다.

"지웅아, 전역 파티는 언제 해 줄 거냐?"

"그런 건 저희들끼리 조용히 준비하게 만들어 주시면 안 되겠 습니까? 미리 알고 하면 감동이 와장창 깨지지 않습니까."

"감동은 개뿔, 전역 기념 파티는 거의 안 빠지고 매번 하는 거 잖아. 이제 와서 서프라이즈니 뭐니 하면서 감줄 필요가 뭐가 있어. 안 그래? 종한아."

갑자기 말머리가 오종한 쪽으로 향했다.

오종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종한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전역 파티를 받을 거란 기대를 애초에 하 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는 것이 목표니까.

어깨를 살짝 으쓱이는 라인혁, 오종한이 엮이기만 하면 대화 가 이상한 분위기로 흐른다.

마침 생활관으로 돌아온 일, 이병 들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희 석시 켰다.

"강진아!"

백우호가 이강진을 찾았다.

"PX 갈까 하는데, 같이 갈래?"

"누구누구 가는데?"

"나하고 태강이, 분섭이 그리고 너."

"나는 말도 안 했는데 이미 가기로 결정된 거냐?"

"내가 어떻게 해서든 끌고 갈 거거든."

그러면 이강진에게 대체 왜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봤던 걸까.

어쩔 수 없이 이강진도 PX 멤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대신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한 명 더 추가해도 돼?"

"상관없어, 철이 데려가려고?"

"아니."

이강진이 원하는 이는 바로…….

< 제42화. 하극상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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