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4화. 상병의 품격 (2) >
제44화. 상병의 품격 (2)
이강진의 전략.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태권도 시험 대열로 나란히 선 이강진과 백우호, 기운상.
이강진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들한테 알려 준 거 있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나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혹시 까먹었다면 이 자리에서 다시 알려 줄 생각이었백우호와 기운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무조건 '목소리 크게!' 아닙니까?"
정확한 대답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동작이 어설퍼도, 발차기 각도가 약간 내려와도 무조건 목소 리만 크게 크게 내지르면 된다.
그래서 이강진은 다른 사람들이 태권도 자세 훈련을 받을 때, 백우호와 기운상과 함께 추가로 목소리를 크게 내뱉는 발성 훈 련을 받았다.
이 발성 훈련에 많은 도움을 준 이가 있었다.
바로 사열대에서 태권도 심사를 지켜보고 있는 성태강이었다.
성태강은 가수 줄신이다.
아이돌이다 보니 격 렬한 안무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노래까지 불러야 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방법이 무엇인지 성 태강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태권도에 대해 딱 기본 정도만 아는 성태강이 세 사람 의 사범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과연 이강진의 말대로 목소리만 무조건 크게 내지르면 합격할까?
성태강조차 그게 궁금했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진급 시험 대상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열대에 나와 구경을 하면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결과 를 확인하고자 했다.
인사 장교가 외쳤다.
"다들 준비 됐나."
"예!"
"좋아, 그럼 동작에 맞춰서 시작하도록."
뒤에서 대기 중이던 오이향이 입에 문 호루라기를 '삐이익!' 하고 힘 있게 불었다.
"어이이 이 잇!"
"하아압!"
기합이 잔뜩 묻어 나오는 병사들의 외침.
특히 이강진 쪽이 인상적이었다.
"으랴아아아압!"
"아아아아악!"
유격 때 사용했던 '악!' 구호까지 사용하면서 목소리를 아주 크게 내지르고 있었다.
인사 장교의 시선은 이강진 트리오에게 점점 향하기 시작했 다.
그들의 패기에 인사 장교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나가던 와중에 백우호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옆차기를 해야 하는데 앞차기를 해 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몸을 옆으로 틀어서 옆자기인 척 연기하며 수습을 하긴 했으나―.
인사 장교는 백우호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는 백우호.
'일 났네!'
이러다가 탈락하는 거 아닐까?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모든 동작이 끝난 뒤.
인사 장교는 평가판을 덮었다.
그러고서 간결하게 결과를 언급했다.
"전원 합격. 다음, 체력 테스트 준비해라."
".?"
동작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인사 장교는 합격을 선언했다.
황당해하는 백우호, 그때 이강진은 말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게 바로 군대라는 곳의 방식이다.
* * *
체력 테스트까지 문제없이 통과했다.
이강진은 사격에서 일찌감치 만발을 맞혔기에 진급에 큰 문 제가 없어 보였다.
결국 백우호와 함께 상병 진급에 성공했다.
그들은 기운상과 함께 다음 달부터는 새로운 계급장을 달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진급 시험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계급장을 미리 다는 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달이 바뀐 날, 정확히 1일부터 달게 되어 있다.
그날은 딱 일요일, 종교 행사가 있는 날이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이강진은 상병 계급장을 자신의 전 투복에 달았다.
'보기 좋네.'
이제 한 줄만 더 추가하면 병장이다.
병장 다음은 뭘까?
'전역이지.'
그토록 고대하던 전역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역을 하게 되면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주식, 바라 식당 그리고 시프 코인 대비까지.
나중에는 부동산에도 손을 댈 예정이다.
이강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것들을 돈으로 전부 환산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방송 쪽도 있었네.'
요즘도 가끔 이강진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오퍼가 들어오곤 했다.
국민 영웅 이강진을 이용해서 시청률을 끌어모으고 싶어 하 는 PD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강진의 출연 덕분에 백두원의 푸드기행 시청률이 일 시적으로 상승했었다.
'방송은 나중에 취미로 하든가 해야겠어.'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나름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차피 돈은 알아서 차곡차곡 들어올 테고, 남는 시간에 방송을 취미로 삼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그전에 먼저 무사히 전역부터 해야 한다.
"황지웅 상병님, 저, 교회 내려가 보겠습니다."
"오냐, 잘 갔다 오고. 지윤 씨한테 상병 진급했다고 너무 막 자 랑하고 그러지 마라."
"하하하, 기껏해야 상병 아닙니까. 저, 이런 걸로 민간인 앞에 서 자랑하고 그럴 사람 아닙니다."
"그거야 모르지, 아무튼 슬슬 내려가 봐라."
"예, 충성!"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회를 향해 내려갔다.
이제는 후임급에서 선임급으로 거듭나게 된 이강진.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교회에 도착하자, 한지윤이 목사와 함께 종교 행사 준비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지윤 씨."
"오, 자네 왔나."
"오셨어요, 강진 씨?"
두 사람은 이강진의 달라진 계급장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흠!"
이강진은 헛기침 소리를 내면서 슬쩍 야상에 달려 있는 계급 장이 두 사람에게 잘 보이게 자세를 틀었다.
그러나 한지윤은 그런 이강진의 태도를 이상하다는 식으로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강진 씨? 팔 한쪽이 불편하시기라도한 거예요? 훈련 도중에 다쳤다든지……."
"아, 아닙니다, 다친 건 아니고요. 좀 무겁다고 할까요."
"무겁다니 요?"
"그……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계급장 줄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서 무겁다는 뜻이었으나, 미필인 한지윤이 그걸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목사가 대신 이강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 상병 진급했군. 축하하네."
"하하, 감사합니다, 목사님."
"어머, 강진 씨 상병 되셨어요? 축하드려요!"
그제야 한지윤도 이강진이 대체 무엇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지 눈치챘다.
두 사람에게 축하를 받으면서 이강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 켰다.
이거야말로 엎드려 절 받기다.
'결국 황지웅 상병의 말이 정확했네.'
이강진도 어쩔 수 없는 군인이었다.
* * *
종교 행사가 끝난 뒤 이강진은 뒷정리를 하면서 한지윤과 오랜만에 둘만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드라마 무사히 종영된 거, 축하드려요."
한지윤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미세스 블레스가 저번 주에 종영되 었다.
마지막 화가 방영된 후에 미세스 블레스라는 드라마 제목과 함께 한지윤의 이름이 한동안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 있었다.
"고마워요, 강진 씨. 다른 분들 반응은 어땠어요? 여기 병사 분 들이 미세스 블레스 방영되는 거, 재방송으로라도 계속 챙겨 봤 다고 자주 말씀하시 던데."
"다들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티비에서 지윤 씨 모습을 보는 게 어색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된 거 같더라고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다행이에요, 호호."
드라마 잘 봤다는 말을 듣는 게 한지윤에겐 최고의 칭찬 중 하나였다.
실제로 미세스 블레스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한동안 드 라마 팬들에게 큰 화자가 되었다.
하지만 한지윤에겐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강진 씨하고 같은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
군인 엑스트라를 등장시키는 신이 하나 있었다.
미세스 블레스 연줄을 담당하던 드라마 PD가 그 역할로 이강진을 점치고 있었다.
하나 내부 사정으로 인해 그 신은 촬영 일정에서 제외되었다.
만약 촬영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이강진에게 높은 확 률로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무산되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한지윤은 그게 많이 아쉬웠다.
"나중에 강진 씨랑 같이 일할 기회가 또 오겠죠?"
그걸 이강진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도 한지윤이 이렇게까지 바라고 있으니, 그럴 날이 올지 안 을지 모르겠다는 말은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오면 좋겠네요."
이강진으로선 이게 최선의 대답이었다.
종교 행사를 마치고 막사로 올라온 이강진은 곧장 식당으로 향할 준비를 서둘렀다.
12시 30분이었기에 이미 병사들은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 한 지 오래였다.
이강진만 내려가면 된다.
사열대로 향하던 순간, 김철이 이강진을 불러 세웠다.
"강진아, 밥 먹으러 가는 거지? 같이 가자."
행정반에서 계속 업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던 김철은 이강진처럼 늦은 점심 식사를 하려고 했었다.
때마침 이강진과 마주친 김에 같이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일요일인데도 고생이 많네."
이강진은 김철이 주말에 제대로 쉬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답하기 전에 한숨부터 먼저 내쉬는 김철.
"죽을 거 같아, 요즘 인력난이잖아. 근데 신병은 안 들어오고 ……. 미치겠다, 진짜. 그러고 보니 1분대도 TO 아니지?"
"어, 우리도 신병이 들어오긴 해야 하는데, 네 말처럼 감감무 소식이야."
동시에 두 명의 전역자를 보내게 된 1분대.
그 빈자리를 신병이 와서 채워 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신병 은 들어오지 않았다.
당분간은 신병 가뭄 현상이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고 신병이 들어와도 문제다.
신병이 한 명의 분대원으로서 제 구실을 하려면 최소 3개월이상은 가르쳐야 한다.
여러모로 일투성이다.
"아, 다음 주에 훈련 하나 잡혔더라."
훈련이라는 말에 이강진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슨 훈련? 급하게 잡힌 거 보니까 ATT는 아닌 거 같고, 설마 행군?"
"아니, 사격 훈련."
"그나마 다행이네."
실탄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 급하게 일정을 잡은 게 뻔했다.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강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격은 어디서 하는데?"
"대대 내에서, 본부중대부터 3중대까지 싹 다 진행할 거야. 순번은 3중대부터."
"본부중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이런 훈련이 있으면 대게 본부중대부터 순서가 돌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역순이었다.
"본부중대가 이번 주는 바쁘다나 어쨌다나."
"저번에도 바쁘더니, 이번에도 바쁘다고 하고. 거긴 하루 종일 정신이 없네."
그 때문에 이강진이 오이향과 함께 2중대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김철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내가 본부중대 사람이 아니 니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잘 몰라.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하긴."
안 그래도 바쁜 김철인데, 남의 일까지 왈가왈부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사격이 라……."
자대에선 만발을 맞혀도 포상 휴가 같은 건 떨어지지 앙았다.
그게 좀 아쉬웠다.
'슬슬 포상 휴가 하나 정도는 확보해 둬야 하는데.'
대대 체육대회에서 받은 포상 휴가에 4박 5일을 하나 더 붙여 서 8박 9일 휴가를 완성시키고 싶었다.
포상 휴가로 하도 많이 나가다 보니 이젠 4박 5일 휴가론 성 이 차지 않는 단계까지 오고 말았다.
'가만 있어 보자. 그러고 보니 이때쯤에 뭔가 사건 하나가 터 졌던 거 같은데…….'
그만이 알고 있는 미래 지식 덕분에 많은 포상 휴가들을 자신 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가능성이 보인다.
이강진은 흐릿한 기억 속의 안개를 열심히 걷어내 보기로 했아!'
순간 보고 말았다.
금빛 반짝이는 무언가를.
< 제44화. 상병의 품격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