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우리 동네 슈퍼스타 (2) >
제46화. 우리 동네 슈퍼스타 (2)
바라 식당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간 이강진.
그러는 사이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황민수가 이강진을 이토록 급하게 찾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그게 안 좋은 쪽이 면 큰일인데.' 가게에 도착한 순간, 종업원이 이강진의 모습을 보자마자 주 방을 향해 외쳤다.
"사장님! 강진 씨 왔어요!"
"진짜?"
1층 주방에서 고개를 불쑥 내민 황민수는 그의 모습을 육안 으로 직접 확인했다.
"강진아, 잘 왔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자신을 다급하게 찾은 이유부터 묻고 싶었다.
일단 황민수는 이강진을 진정시켰다.
"당황하지 말고 잘 들어라."
이강진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각오를 단단히 굳혔다.
어떤 일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황민수가 입을 열었다.
"가게에 네 사인하고 사진 좀 걸어 놓자."
당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이강진의 결심은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 * *
황민수가 이강진을 찾은 이유는 이랬다.
"가게에 오는 사람들이 하도 너를 찾아 대니까 서빙 보는 애 들이나 나나 진짜 죽을 맛이더라, 복귀했다고 일일이 말해 주는 것도 지겹고. 너 보러 왔다는 손님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더라.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가게에 네 사진하고 사인이라도 걸 어 두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다."
"고작 그런 걸로 저를 부른 거예요?"
"고작이라니! 우리는 엄청 심각했다고!"
"어휴.…-?"
황당함 50퍼센트,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감정이 50퍼 센트 섞인 한숨이 이강진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국민 영웅 이강진의 인기는 갈수록 줄기는커녕 오히려 나날 이 커져 가고 있었다.
만약 이강진이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강제로 방송인에 데뷔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 인기였다.
본의 아니게 한지윤보다 유명해지게 된 셈이었다.
'나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기네.'
그래도 안 해 줄 수는 없었다.
하나 막상 하려니까 걸리는 게 있었다.
"사인해 본 적 없는데요."
"그냥 네 이름 적고, 메시지 같은 거 밑에 같이 쓰면 돼. '바라 식당, 번창하세요.'라든지, 아니면 '이 집 사장님 너무 친절하고 잘생겼어요.'라는 말 같은 것도 괜찮고."
노골적으로 사심이 드러나는 예시들이었다.
차마 황민수의 외모 칭찬은 못 하겠고. 이강진은 첫 번째 예 시를 택하기로 했다.
이다음은 사진이다.
"철 민아!"
"네, 사장님!"
주방 보조 한 명을 부른 황민수는 이강진의 곁에 나란히 섰
"아저씨, 제 사진 찍는 거 아니었어요?"
"연예인이 가게에 오면 꼭 그곳 가게 사장이랑 같이 찍곤 하 잖아."
다른 건 다 맞는데, 딱 한군데만 틀렸다.
"전 연예인이 아닌데요."
연예인이 아닌 군인이었다.
황민수는 싱긋 웃으면서 이강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 렀 다.
"너 정도면 이제 연예인이지, 뭐. 자, 웃어라. 치즈-"
기껏 휴가를 나왔더니 희한한 상황을 다 겪는다.
이강진의 휴가 일정은 간단하다.
저녁 이전까지 주식 단타를, 그 이후에는 바라 식당에 나가서 식당일을 돕는다.
하나 황민수는 이제 더 이상 식당 일을 안 도와줘도 된다는 말을 흘렸다.
"그동안 알바를 더 뽑았거든. 그러니까 굳이 무리해서 가게 일 안 도와줘도 된다."
딱히 직장에서 잘린 건 아니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기왕 온 거, 이강진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가게 일을 돕 기로 했다.
두 팔을 걷어 올릴 때.
한쪽 테이블에서 갑자기 괴성이 쏟아졌다.
"씨발, 군대 좆같네! 진짜!"
군대라는 말에 이강진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신분이 군인이니까.
목소리를 높인 테이블 쪽으로 절로 시선이 향했다.
같은 테이블에 네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남자가 술에 취한 모양인지 또다 시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가 나한테 해 준 게 뭔데, 씨발! 하! 억울해서 요즘 잠도 안 온다!"
"야야야, 조용히 해.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저기 봐, 저 쪽 직원 분도……. 어라?"
노란 머리 남자를 말리 던 다른 남자가 뒤늦게 이강진을 알아 봤다.
"저 사람, 혹시 이강진 아니야?"
"어머, 진짜네!"
"연예인이잖아, 연예인!"
다른 손님들도 이들 덕분에 그제야 이강진을 알아보는 듯했 다.
하나 이강진은 손님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저 노란 머리, 낮이 익은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는 사람? 아니, 아무리 봐도 이강진과 접점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익숙했다.
'심지어 목소리도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좀 더 자세히 남자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이강진.
'가만 저 녀석, 혹시……?'
그제야 기억이 났다.
'틀림없어. 저 녀석, 최영고야!'
최영고.
그는 이강진과 특별한 연이 있는 남자다.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때 아닌 만남에 신기해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벨이 울렸다.
"강진아, 7번 테이블 꺼 나왔다. 부탁 좀 하마."
"네, 아저씨."
황민수가 직접 만든 된장찌개, 제육볶음이 나왔다.
이강진은 그것들을 쟁반에 올려 두고 7번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음식 나왔습니다."
일행은 이강진이 자신의 테이블로 오자 반가움을 드러냈다.
"강진 씨 맞죠? 팬이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두 명의 여성들이 이강진을 보자마자 미소를 머금으면서 자 연스럽게 말을 붙여 왔다.
군인으로선 정말 최고의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최고의 순간을 이강진은 바라 식당에서 수도 없이 맛봤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그녀들이 이강진에게 갑작스럽게 부탁을 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사진 찍어 주실 수 있나요?"
"영고가 다음 주에 입대하거든요.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부탁 드릴게요."
노란 머리의 남자 최영고는 그녀들이 군대를 언급한 순간, 다 시 우울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씨발, 그놈의 군대가 뭔지……."
말 속에서 진심 어린 짜증이 느껴졌다.
그건 이강진도 충분히 공감하는 감정이었다.
친구들은 상심이 큰 죄영고를 억지로 한가운데에 데려다 앉혔다.
"한숨 푹푹 쉰다고 입대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마음 비우고 갔다 와. 그리고 혹시 또 모르 지, 강진 씨처럼 오히려 군대 때문에 스타가 되는 경우가 있을지도."
이강진은 멋쩍은 듯 웃었다.
"저도 얻어 걸린 거라서요, 하하하!"
최영고의 친구들과 함께 자세를 잡은 이강진.
직원의 도움을 받아 다섯 명의 얼굴이 사이좋게 나오게 무사히 사진을 찍었다.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최영고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음? 왜요?"
"아닙 니다, 하하."
최영고의 물음에 이강진은 별거 아닌 것처럼 웃음으로 흘려 넘겼다.
순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조만간 보게 될 거라고.
* * *
휴가 복귀 전에 이강진은 황민수와 함께 앞으로의 가게 운영 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눴다.
가게 매장 확장 그리고 차후의 운영 등은 이강진이 전역한 이 후,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기로 했다.
그때 이강진은 바라 식당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강진이 최근에 눈여겨보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부동산이다.
'시프 코인 대란이 오기 전에 최대한 돈을 모아 둬야 하니까.'
그전까지 이강진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 해서 자금을 확보할 생각이 었다.
그리고 시프 코인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왔을 때.
이강진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그 파도에 올라 타 편안하게 서핑을 즐기면 된다.
그 파도가 이강진을 금은보화가 가득한 섬으로 안내하리라.
대충 이렇게 계획을 짜 뒀다.
'그러고 보니 요즘 지윤 씨랑 데이트를 못 즐겼네.'
초반에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한지윤의 얼굴을 꼭 한 번은 보 곤 했었다.
그러나 한지윤이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에 뛰어들기 시작하 면서 마음 놓고 데이트를 즐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스캔들의 위험성도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너무 바쁘 다는 거였다.
한지윤은 방송 스케줄 때문에.
이강진은 주식과 바라 식당 투자 건 때문에.
물론 일요일에 부대 내에서 얼굴을 마주하곤 했지만, 그것만 으로는 부족하다.
'나중에 날을 한번 잡든가 해야겠어.'
다음 휴가의 목표는 한지윤과의 데이트다.
돈도 좋지 만,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다.
'다음 포상 휴가는 어디서 따낼까.'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이강진은 쉴 틈 없이 포상 휴가 사냥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 * *
부대 복귀 날이 다가왔다.
이강진은 부대 근처에 있는 시내에 먼저 도착했다.
고필중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와 버린 것이다.
'근처나 좀 돌아다녀 볼까?'
때마침 맞은편에 이강진이 자주 신세를 졌던 서점이 보였다.
'저곳에서 스파링 많이 사갔지.'
이번 달 호는 이강진보다 먼저 휴가를 나갔던 휴가자가 미리 사온 덕분에 걱정이 없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을 활보하던 찰나였다.
한 군인이 이강진을 보더니 어깨를 크게 움찔했다.
군인의 얼굴을 본 순간, 이강진은 그가 누군지 바로 떠올랐다.
'그 사람이네.'
마지막 남은 스파링 한 권을 두고 두 번이나 경쟁을 펼쳤던 그 남자였다.
남자는 이강진을 보자마자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시선은 이강진의 바로 옆 코너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스파링이 꽂혀 있는 잡지 코너였다.
거리는 이강진이 헐씬 가까웠다.
남자의 이마에 식은땀 한 줄기가 주룩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이강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남자는 이강진의 행동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양보 안 하다가 이제 와서?'라고 따지는 듯한 그런 눈 빛이었다.
이강진은 다시 한번 미소를 보이면서 그에게 양보의 이유를 간략하게 들려줬다.
"저희 부대엔 이미 있어서요. 마음 편히 가져가세요."
남자는 영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이강진을 바라봤다.
마지못해 스파링을 집어든 남자.
모처럼 설욕의 기히가 찾아왔건만, 이강진과 승부를 벌이지 못해서 아쉬웠다.
남자는 계산대로 향하기 전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강진에게 훗날을 기약하겠다는 식으로 말을 건넸다.
"다음번에는 제가 무조건 이길 겁니다."
뭐 이런 사소한 걸로 경쟁심을 다 불태우는지, 이강진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 번이나 당해 본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다음번엔 반드시 이긴다!
승부욕과 복수심 이 가득 담긴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강진은 피식 웃었다.
이것도 어쩌면 군인이기에 겪을 수 있는 웃기지만 슬픈, 그런 해프닝이 아닐까.
'민간인이 스파링에 저렇게 목을 맬 일은 거의 없으니까.'
< 제46화. 우리 동네 슈퍼스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