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54화 (154/347)

제47화. 숨겨야 산다 (1)

한때 스파링을 두고 뜨거운 경쟁을 펼쳤던 라이벌과 헤어진 뒤.

이강진은 서점을 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고필중이 이강진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강진아!"

"충성 휴가 잘 보내고 오셨습니까?"

"그렇지, 뭐. 그보다 잠깐 들릴 곳이 있는데. 오래 안 걸리 니까 거기 좀 들렀다가 가자."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고필중이 가자는 장소가 서점일 줄 알았다.

하나 서점 대신 투박한 간판을 단 가게가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판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용사의 집]

"병장 계급장이 없다고 해서. 부대에서 사오라고 하더라. 내 것도 필요하기도 하고."

휴가를 나오기 전에 시행되었던 병장 진급 시험에서 당당하 게 합격하게 된 고필증은 다음 달부터 정식으로 병장 계급장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부대에 병장 계급장이 다 떨어졌다고 하니,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마침 휴가를 나와 있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필중과 황지웅은 다음 휴가자들이 병장 계급장을 사오기 전까지 상병 계급장을 달고 다녀야만 했다.

1= 5 르

---1 ?

용사의 집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쇼!"

50대 남성이 두 남자의 방문을 환영했다.

오랜만에 들린 용사의 집.

이강진은 진열되어 있는 다수의 군용 물품 쪽으로 고개를 돌 렸다.

각종 사단 마크들이 한 줄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사재 군용 제품들도 새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강진은 처음에 용사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문득 떠 올랐다.

그때에는 정말로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곳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군용 물품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미군 제품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진상이 형이 카츄사 지원해서 갔었지.'

아주 가끔 소식만 주고받는 지인의 이름이었다.

카츄사는 짬밥이 뷔페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메뉴도 일반 부대에 비해서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고기는 기본이요, 군대에서 그토록 먹기 힘들다는 과일까지. 웬만한 뷔페보다도 화려하고 맛있다 고 들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토익 좀 공부해 둘걸.'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득이 있을까, 아쉬움만 늘어날 뿐이다.

잠시 사색에 잠겨 있을 때, 고필중은 병장 계급장 수십 개를 봉투에 담아 들었다.

"많이 파세요!"

"허허,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가게 사장의 말에 고필중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다음번에는 여기 올 일 없을 거예요. 내년 초에 전역하거 든요."

개구리 계급장도 몰래 미리 사 뒀다. 앞으로 평생 용사의 집 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순간, 이강진은 고필중이 처음으로 부러워 보였다.

'나도 저렇게 말할 때가 오겠지.'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게 좀 길게 느껴질 뿐.

* * *

택시를 잡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는 이강진과 고필중.

평소에 자주 보이던 택시들이 오늘따라 영 보이지 않았다.

결국 택시 승강장까지 걸어가기로 한 두 남자.

도중에 스마트폰 알람 소리가 들렸다.

이강진은 길 가던 민간인의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소리는 예상보다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들려?육?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네, 여보세요?"

고필중이 통화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어? 아직 부대 아니야. 이제 곧 들어가려고. 그보다 이 시간 대에 통화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가 간부들한테 들키면 나 영창이야, 알았지? 다음부터는 시간 잘 지켜서 통화해. 엄마한 테도 안부 잘 전해 주고. 어, 알았어. 끊어."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이강진은 마침내 조심스럽게 물 었다.

"누구한테 온 전화입니까?"

"동생, 부대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확인 전화한 거야."

"그 스마트폰, 고필중 병장님 거 맞습니까?"

"어. 내 건데?"

딱 보니 사이즈가 나온다.

이제 병장 달았다고 스마트폰을 몰래 반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1중대 병장들은 거의 이랬다.

대부분은 전역을 한두 달 정도 남겨뒀을 때 스마트폰을 몰래 반입하곤 했지만, 고필중은 병장을 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몰래 챙겨 들고 왔다.

'예전에도 그랬었지?'

이제야 고필중과 스마트폰에 관련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고필중은 싱긋 웃었다.

"강진아, 형, 이제 병장이다. 이런 건 그냥 모른 척해 줘."

"예, 알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규율과 규칙을들먹이면서 '절대로 안 됩니다!'라 고 말할 수 있는 병사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니, 있긴 할까?

이강진이 아는 한도 내에선 없었다.

그저 고필증의 스마트폰 때문에 부대에 피바람이 불어오지 않 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

택시를 타고 위병소 앞에 도착한 이강진과 고필중은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가에서 복귀할 때마다 복귀자들에게 가장 큰 절망감을 안 기는 장소가 바로 이 위병소다.

부대 마크와 1075대대 전경을 보는 순간, 답답함과 무기력증 그리고 짜증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이 감정에서 어서 빨리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들은 위병소로 향했다.

그전에 고필중은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잘 숨겼나 확인을 마 쳐야만 했다.

한편 위 병소 근무자들은 휴가 복귀자들의 모습을 확인하자마 자 조장실에 연락을 했다.

"휴가 복귀자 둘 들어갑니다."

-조장실로 들여보내.

"예, 알겠습니다."

선임 근무자가 이강진과 고필증을 불렀다.

"아저씨들, 조장실로 가 보세요."

"네, 수고하세요."

"고생하세요."

휴가 복귀자들이 꼭 치러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소지품 검사.

최근에는 소지품 검사가 좀 느슨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진행 자체는 빼먹지 않고 하는 편이었다.

본부에서 일하는 부사관이 이강진과 고필중에게 가까이 오라 고 손짓했다.

"반입 금지 물품 같은 건 안 가져왔겠지?"

"예, 그렇습니다."

"종이백에는 뭐 들었냐?"

"용사의 집에서 사온 것들하고, 제가 개인적으로 쓸 샴푸, 바 디 로션입니다."

"한번 보자."

부사관은 두 사람이 가져온 종이백만 대충 훑어보는 식으로 검사를 마쳤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부사관은 가 보라는 식으로 손짓 했다.

"PX로 새지 말고 바로 막사로 올라가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올라가 보겠습니다. 충성!"

"어, 그래."

조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고필중은 키득키득 웃었다.

"지웅이 말대로네. 요즘 소지품 검사 엄청 대충한다고 하더니만, 진짜였어."

"그러게 말입니다."

휴가를 워낙 자주 나갔던 이강진도 최근에 소지품 검사가 너무 허술하게 진행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받고 있었던 찰나 였다.

'저러다가 일 한번 크게 터질 거 같은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설령 조장실이 털린다 하더라도 1중대가 털리는 건 0^ 니니까 크게 영향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혹시 모르니 고필중은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원이 꺼져 있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막사에선 소지품 검사를 따로 진행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건빵 주머니에 넣고 가도 괜찮을 터.

막사 근처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두 사람에게 거수경례를 해 오기 시작했다.

"충성!"

"고필중 병장님, 이강진 상병님, 저희 조금 있다가 축구 할 건 데, 같이 한판 어떻습니까?"

아직 일과 시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활 동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필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업 다 끝났어?"

"예, 16시부터 체육활동 해도 된다고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셨 습니다."

"그래? 잠깐 대기하고 있어라. 강진아, 우리도 후딱 옷 갈아입 고 나오자."

"예, 알겠습니다."

오자마자 작업하는 것보다 차라리 공을 차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 * *

분과별 간담회 시간이 찾아왔다.

오종한과 곽분섭은 현재 탄약고 초소 근무를 나간 상태였다. 서일주는 휴가로 인해 열외 되었다.

황지웅은 당직사병 완장을 차고 행정반에서 대기 중이다.

4명이나 자리를 비우니, 1생활관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티비를 보던 고필중은 성태강에게 물었다.

"태강아, 점호 몇 시부터 시작이래?"

"21 시 30분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직 20분이나 남았다.

고필중은 자신의 관물대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에 직 사각형의 얇은 물건이 들려 나왔다.

그것을 본 병사들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 그건……!"

"스마트폰 아닙 니까!"

"쉬 잇!"

후임들을 조용히 시키는 고필증.

"인마, 그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입 다물고 있어라."

"죄, 죄송합니다!"

훗날 군대에서 공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기 가 온다.

하나 이강진이 군복무를 할 당시에는 개인 스마트폰을 부대 로 반입해선 절대로 안 됐다.

걸리면 뭐다?

심금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영창행이다.

그렇기에 고필중은 후임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스마트폰 가지고 있다는 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 라. 알았냐?"

"예, 알겠습니다!"

일단 대답은 하긴 했으나, 성태강과 기운상은 불안함을 감추 지 못했다.

고필중만 따로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은 이강진과 백우호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거 들키면 저희도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이강진도 알고 있다.

하나 알면서도 마땅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아까 휴가 복귀 때에도 그랬듯이 선임이 본인의 의지로 스마 트폰을 가져왔는데, 후임 된 입장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쓴소리 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전마등 병장하고 라인혁 병장 때에도 그랬었고.'

이강진이 할 수 있는 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것뿐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된다.

하나 뭐라고 해야 좋을까.

'예감이 좋지 않은데.'

그래도 이강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지켜보는 것뿐, 그게 다였다.

걱정하는 이강진과 다르게 백우호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킥킥 거리는 고필중을 부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좋겠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스마트폰을 부대로 가져온다는 건, 다시 말해서 전역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뜻한다.

말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 반입.

백우호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었다.

저 녁 9시 30분.

드디어 저녁 점호가 시작되었다.

오늘 당직사관은 소대장이다.

그가 1생활관으로 들어서자, 생활관 책임자를 맡게 된 고필중 이 인원 보고를 시작했다.

"1 생활관 저 녁 점호 인원 보고. 총원 아홉, 열외 넷. 열외 내용, 근무 둘, 휴가 하나, 당직 하나. 번호!"

백우호가 기세 좋게 '하나!'를 외치려고 하던 찰나였다.

"아니, 번호는 생략한다. 그것보다 너희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속으로 '뭐지?' 하는 의문을 품었다.

머지않아 소대장의 입에서 깜짝 놀랄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스마트폰 몰래 반입한 병사 있나?"

< 제47화. 숨겨야 산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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