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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68화 (168/347)

< 제50화. 악습 (5) >

제50화. 악습 (5)

1중대로 돌아온 죄칠완.

돌아오자마자 그는 중대장과 바로 면담을 가졌다.

"가서 반성은 잘 하고 왔겠지."

최칠완은 고개를 푹 숙이 면서 말을 이 었다.

"예, 중대장님. 제가 그동안 후임들에게 너무 못되게 군 거 같 습니다. 여태껏 후임들의 속도 모르고…… 영창 기간 동안 많이 반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처음과는 사뭇 달라진 최칠완의 모습에 중대장은 옅은 미소 를 지었다.

"그래, 사내자식이 살다가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지. 나도 저 번에 너한테 무턱대고 큰소리 지른 거, 미안하다. 그때 너무 화 가 나서 그랬어."

"제가 중대장님 입장이었어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겁니다. 중대 장님 기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사과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한층 어른스러워진 태도를 보이는 죄칠완.

그 모습을 보더니 중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짐 풀어라. 나중에 필요하면 또 부를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2생활관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중대장은 그래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행정반을 나선 최칠완.

뒤늦게 돌아온 행보관은 최칠완을 찾았다.

"칠완이 어디 있냐?"

"방금 2생활관으로 갔습니다."

"뭐? 무슨 2생활관이야! 다시 돌아오라고 해!"

행보관은 최칠완을 다른 분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이 그런 행보관을 진정시켰다.

"제가 방금 면담 나눠 보니까 많이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저 런 태도라면 크게 문제는 안 일으킬 거 같으니, 그냥 전역 때까 지 2분대에서 계속 생활하게 놔두면 어떻습니까? 본인도 2분대 에서 전역하고 싶어 하고요."

"행보관님이 걱정하시는 마음, 저도 잘 압니다. 그래도 자신 의 잘못을 만회할 기회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되겠 다 싶으면 그때 분과 이동을 시키면 되고요."

말이 야 쉽 다.

중대장은 괜히 자신의 이력에 흠집이 날까 봐 어떻게든 최칠 완을 품고 가려고 하는 눈치였다.

하나 행보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칠완은 이미 두 번이나 잘못을 저질렀다. 세 번이 없으란 보장은 없다.

전출을 안 보낸 것도 정말 많이 양보한 거다. 분과 이동은 당 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행보관이었으나…….

'칠완이 녀석이 무슨 연기를 펼쳤기에 중대장님이 이렇게 관 대하게 나오는지 모르겠군.'

모든 것은 최칠완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2생활관으로 들어선 죄칠완.

일과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15분 뒤에 점심 식사 시간이 시작된다. 식사 집합을 하기 위해서라도 다들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최칠완의 예상대로였다.

생활관 문이 열렸다.

"오늘 점심, 군데리아지 말입니다?"

"좋네! 가서 패티 좀 많이 달라고 하……!"

말을 하던 도중에 병사들은 헛숨을 삼켰다.

최칠완 때문이 었다.

"이야, 다들 나 없는 동안 편하게 지냈나 보다? 혈색이 좋아 보이네? 나는 영창 가서 좆뺑이 치고 왔는데."

병사들은 침묵했다.

최칠완과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2분대 내에선 공포의 대상으로 분류되는 존재다. 폭군 그 자체와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말 길어지면 피곤하니까 짧게 말하마."

죄칠완은 그들을 노려봤다.

"누가 나 긁었냐?"

그는 2분대원 중 한 명이 자신을 찔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중대장이 이등병들이 적은 마음의 편지에서 최칠완의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나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최칠완은 2분대 이등병 3명 중 한 명이 범 인이 라고 보고 있었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이강진이 알고 있는 미래의 일처럼, 고윤철이 그 마음의 편지를 적었다.

하나 자신이 했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칠완은 작게 웃었다.

"후후, 이런 개새끼들을 봤나. 그래, 그렇게 평생 입 다물고 있어 봐라. 안 나오고 못 배기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야, 박태중."

"병장 박태중!"

갑자기 지목을 당하자, 박태중은 순간 당혹감을 드러냈다.

"설마 네가 긁은 건 아니겠지?"

"아, 아닙 니다!"

박태중이 한 게 아니라는 건 최칠완도 잘 알고 있다. 그냥 웃자고 해 본 소리였다.

물론 실제로 웃는 사람은 최칠완 말고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

"점심식사 끝내고 상, 병장 들 다 막사 뒤로 집합시켜라. 12시 40분까지다. 안 오는 새끼는 내가 직접 조져 줄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마른 침을 삼키는 박태중.

아무래도 최칠완이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인 듯했다.

죄칠완의 말에 따라 외곽 근무자와 당직을 제외하고 모든 상, 병장급 병사들이 막사 뒤쪽으로 모이게 되었다.

"다 모였냐?"

최칠완의 물음에 고필중이 역으로 질문했다.

"오종한 병장님껜 말씀 안 드렸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 아저씨를 왜 불러. 어차피 우리 중대원도 아닌데."

그는 오종한을 1중대원이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오종한은 최칠완에게 있어서 매우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최칠완, 그가 중대 왕고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종한이 갑작스럽게 1중대로 전입을 오는 바람에 최칠완은 왕고 타이틀을 달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집합 자리에 자신보다 높은 선임을 왜 데려온단 말인가. 오종한은 여기에 없어야 정상이었다.

다 왔음을 확인한 최칠완은 이들에게 대놓고 지시했다.

"너희들한테 딱 일주일 주겠다. 그 안에 어떻게 해서든 나 찌 른 새끼 찾아내서 내 앞으로 데려와라."

"하지만……."

"하지만은 뭔 하지만이야!"

자신의 말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던 상병급 하나의 정강이 를 그대로 발로 차 버리는 최칠완.

병사는 다리를 붙잡고서 고통 어 린 신음을 냈다.

폭력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칠완은 그딴 건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최칠완의 이런 폭주는 상말 때에 정점을 찍었다.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줄 아냐? 이건 명령이다. 상 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게 군인 아니냐? 너희들, 우리의 결 의는 뭐 하러 아침마다 읊냐? 엉?"

"거두절미하고 말하마. 찾아내라. 그 개새끼 반드시 찾아내."

그렇게 말을 흘리면서 최칠완은 박태중을 째려봤다.

"알겠냐, 박태중?"

"……병장 박태중."

"왜 대답이 없어?"

"……아닙니다."

"가만."

순간 최칠완은 박태중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대대장이 마음의 편지 받으러 왔을 때, 네가 당직 아니었냐?"

"예, 그렇습니다."

"너하고 또 누구였냐?"

뒤에 있던 이강진이 손을 들었다.

"상병 이강진."

"너, 앞으로 나와 봐."

일단 최칠완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한 이강진.

그는 박태중과 나란히 섰다.

"대대장하고 같이 돌아다니면서 마음의 편지받았던 녀석, 누 구냐?"

"상병 이강진, 접니다."

"오호, 그래?"

최칠완은 입맛을 다셨다.

먹잇감을 포착한 들짐승의 눈빛이었다.

"그럼 네가 잘 알겠네. 마음의 편지 수거하면서 내 이름 적힌 종이 본 적 있지? 누구냐? 누가 내 이름 썼어?"

이름이 보이고 자시고, 이강진은 애초에 누가 최칠완을 찔렀 는지, 당사자의 이름까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무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안 보였습니다."

"뭐?"

"대대장님께서 내용물이 안 보이게 2번 이상 접어서 제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저한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 이 새끼 봐라?"

순간 욱할 뻔한 죄칠완이었지만, 한 번 참기로 했다.

"좋다. 그럼, 고윤철 그 새끼, 뭔가 적는 시늉이라도 했냐?"

최칠완은 고윤철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강진은 웃음을 삼켰다.

'감 하나는 좋네.'

그러나 이강진은 말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술에 취해 괴로움을 털어놓던 고윤철의 모습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전 모르겠습니다."

"안 되겠네."

주먹을 말아 쥔 최칠완은 이강진의 얼굴을 가격했다.

빠아악!

강한 타격음이 들렸다. 그러나 이강진은 최칠완의 손찌검에 도 물러섬이 없었다.

오히려 침을 '퉤!' 뱉었다. 입안이 살짝 찢어진 모양인지 피가 조금 묻어 나왔다.

"가, 강진아!"

"괜찮냐!"

황지웅을 비롯한 1분대원들이 이강진을 부죽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고개를 돌려 다시 최칠완을 응시했다. 본인의 힘으로 똑바로 일어서 최칠완과 마주섰다.

"최칠완 병장님, 폭력은 금지되어 있다는 거, 잘 아시지 말입 니다?"

"너, 지금 선임 말에 토 다는 거냐?"

"토 다는 게 아니라 병사들끼리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게 폭력이라는 걸 다시금 알려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다시 주먹질을 하려고 할 때였다.

"거기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낮선 목소리가 죄칠완의 주먹을 멈추게 만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황지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오종한 병장님……!"

오종한은 1부소대장과 함께 둘이서 철조망 사이를 뚫고 자란 나무를 잘라 내느라 다른 병사들보다 늦게 막사로 복귀했다.

아직 점심도 먹지 못한 그.

1부소대장을 먼저 보낸 후에 오종한은 사용했던 톱을 공병 창고 안에 넣어 두기 위해 막사 뒤쪽 언덕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였다.

아래쪽에서 소란이 벌어진 걸 포착한 것이다.

'뭐지?'

내려가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최칠완이 상, 병장 들을 모아 두고 뭐라고 쏘아붙이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잠시 후, 이강진을 부르더니 갑자기 그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 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다.

"거기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오종한 병장님……!"

황지웅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병사들이 다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막사 뒤쪽으로 내려온 오종한은 이강진에게 손짓했다.

"괜찮냐? 많이 다쳤어?"

"입안이 살짝 찢어졌을 뿐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의무실로 가 봐라, 우호야."

"상병 백우호!"

"네가 강진이랑 같이 가 줘라."

"예, 알겠습니다."

하나 최칠완이 곱게 보내 줄 리가 없었다.

"야, 이강진.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죄칠완은 억지웃음을 띄면서 오종한에게 말했다.

"오종한 병장님… … 아니, 아저씨. 지금은 우리 1중대끼리 해결 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하 시던 일 하세요. 네?"

미소가 상당히 가식적이었다.

순간 이강진은 휴가가 잘리든 말든 상관 말고 저 얼굴에 주먹한 대만 꽂아 넣었으면 하는 욕구가 셈 솟았다.

하지만 그전에 오종한이 먼저 행동했다.

"아저씨라. 아저씨…… 그렇지. 난 전출 온 사람이니까. 맞는 말이지."

"이야기가 잘 통하네요. 그럼 그냥 못 본 척하고 우리 내비두최칠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오종한이 최칠완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팔 힘이 어찌나 좋은지 죄칠완 의 몸이 오종한에게 그대로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

험상궂은 표정을 한 오종한은 놀라서 헛기침을 하는 죄칠완 에게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 제50화. 악습 (5) > 끝

최칠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오종한이 이렇게 거칠게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편지 때문에 최칠완은 순간 오종한이라는 남자가 어 쩌다가 1중대로 전출 오게 되었는지 깜빡하고 말았다.

"나, 선임이랑 맞다이 뜨다가 온 놈이다. 그런데 내가 네까짓놈 말에 벌벌 떨 줄 알았냐?"

"그, 그게……."

"아니긴 개뿔. 똑똑히 들어라. 내가 1중대에 온 이상, 후임한 테 폭언하고 폭행하는 놈 있으면 절대로 안 봐줄 거다. 물론 너 도 마찬가지고."

그제야 오종한은 최칠완의 멱살을 놓아 줬다. 어찌나 강하게 잡았는지 앞 단추가 다 뜯겨졌다.

팔 힘이 상상을 초월했다.

오종한은 최칠완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 눈앞에서 꺼져라, 지금 당장."

"왜, 싫어? 어디 개싸움 한 번 해볼까? 서로 영창까지 갔다 온 마당에 잃을 것도 없으니 잘 됐네! 해보자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최칠완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또라이 선임과 주먹질하다가 전출당한 오종한과 개싸움을 해 봤자 이길 자신이 없었다.

오히 려 자신만 손해다.

그리고 은연중에 최칠완은 알고 있었다.

그의 후임들이 자신이 아닌, 오종한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최칠완은 영악한 남자다. 눈치도 빠른 편이었다. 저들에게 직 접 자신들의 생각을 말로 들어 볼 필요까지도 없었다.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최칠완은 막사 안으로 향했다.

'탁탁!' 소리가 나게 손을 털어 낸 오종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미친 녀석이었네. 나보고 뭐? 아저씨? 완전 정신 나간 새끼네."

최칠완의 뒷담화를 거침없이 까던 오종한은 멀뚱멀뚱 서 있 는 상, 병장 후임들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오종한 병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후임들은 오종한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오종한의 표정은 어두웠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잘못 들었습니다……?"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오종한이 갑자기 태도를 달리 했다.

"그거 아냐?사람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거. 괴롭히는 자, 괴롭힘 당하는 자그리고 그 외 나머지. 나머지에겐 선택권이 주 어지지. 괴롭힘 당하는 자를 보호할지, 아니면 방관할지. 난 말이다. 방관하는 나머지 사람들도 괴롭히는 자와 같은 녀석들이 라고 생각한다."

"너희들도 똑같아. 최칠완이 후임들한테 폭언, 폭행, 금전 갈 취한다는 거, 너희들도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여태껏 침 묵한 거야. 누구 하나 도와줄 생각도 없고. 그나마 강진이가 제 일 사람 된 거 같더라. 1중대는 2중대보단 그래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 개인적으로 너희들한테 실망했다."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오종한이 말이 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태중에겐 오종한의 말이 많이 와닿았다.

"계급하고 짬이 아무리 최고인 곳이라고 해도,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최칠완 같은 미친놈이 계급으로 밀어붙여서 자 기 멋대로 지랄해도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내가 안 말렸 어도 너희들끼리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많이 아쉽 다."

오종한은 내려놓았던 톱을 다시 들어 올렸다.

"아무튼 다들 잘 생각해 보더라. 그리고 바보같이 당하고 있지 만 말고."

오종한의 말이 옳았다.

군대라고 해도 사람들이 사는 곳 아닌가.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면 바보일 뿐이다.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이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오종한, 죄칠완이 떠난 뒤.

이강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종한 병장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모른 척했기 때문에 이 런 내무 부조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겁니다.그러니까 이제는 우 리 손에서 이런 악습을 끊어 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가장 먼저 1분대원들이 이강진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래, 다른 건 둘째 치고 최칠완 병장 문제는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으니까."

"강진이, 너한테까지 손찌검하는 거 보고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을 거 같다. 씨발, 최칠완 병장이고 뭐고 X까라고 그래!"

1분대가 나서기 시작하자 다른 분대원들도 하나둘씩 동참 의 사를 밝혀 오기 시작했다.

이강진은 박태중을 응시했다.

"박태중 병장님,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박태중도 잘 알고 있었다.

죄칠완에게 가장 많은 불만을 드러냈던 사람이 바로 박태중 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최칠완 앞에서 대드는 듯한 말 을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후임들이 최칠완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해도 모른 척 방관했다.

하나 이제는 달랐다.

오종한이 한 말이 못이 되어 박태중에게 박혔다.

모른 척 방관하는 자 또한 괴롭히는 자와 같다고.

"그래,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박태중.

드디어 그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 * *

일과 시간이 끝나고 찾아온 개인 정비 시간.

최칠완이 돌아온 2생활관의 분위기는 예상대로 상당히 무거 웠다.

"기분 좆같네."

오종한에게 당했던 게 아직도 머릿속에 맴도는 최칠완이었다.

힘없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건만, 오종한은 최칠 완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존재였다.

'하긴 그런 깜냥이 있으니까 선임이랑 쌈박질한 거겠지.'

당분간 오종한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2분대만 집중적으로 조지면 돼.'

범인은 2분대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의심 가는 사람은 고윤철 이 병.

최칠완은 고윤철을 불렀다.

"야, 고윤철."

"이, 이병 고윤철!"

지목당한 고윤철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부르르르 떨었다.

"네가 마음의 편지로 나 긁었냐?"

"아, 아닙니다!"

"아니 긴 뭐가 아니야!"

최칠완은 들고 있던 리모컨으로 고윤철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박태중이 최칠완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만 하십시오, 최칠완 병장님."

"어쭈! 너, 지금 선임한테 뭐 하는 짓이냐? 개기냐?"

"제 후임들 보호하려는 것뿐입니다."

박태중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한편 여태껏 고분고분하던 박태중이 갑자기 이 렇게 나오자 최 칠완은 더욱 화를 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타깃을 박태중으로 바꾼 후에 그에게 위협을 가하려고 했다.

하나 조용히 있던 2분대원들 전원이 죄칠완을 매섭게 노려봤 다.

순간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한 최칠완은 어이가 없다는 표 정을 지었다.

"너희들, 지금 이거 하극상인 거 모르냐?"

"쳐다보기만 하는 것도 하극상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할 말을 잃은 최칠완.

반면 박태중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이제는 병신처럼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 끝까지 해볼 거 면 해보셔도 됩니다. 단 사회 나가서 저하고…… 아니, 우리 분대 원들하고 얼굴 마주치지 마십시오. 그날이 최철완 병장님의 제 삿날이 될 테니까."

여기가 군대라서 그리고 최칠완이 선임이어서 그동안 군말 없이 그의 말에 따랐던 거지, 민간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먹을 불끈 쥔 최칠완.

성질에 못 이겨 다시 폭행을 시도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그만해라!"

문을 열고 들어온 행보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1중대 상병, 병장 급 병사 몇몇도 행보관과 함께 2생활관으로 들어섰다.

행보관은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반성은 개뿔 쥐꼬리만큼도 안 하고 왔구먼!"

"행보관님 이건…… 오해입니다! 이 녀석들이 지금 저를 두고 하극상을……."

"하극상은 무슨! 오자마자 후임 줘 패는 놈이 피해자인 척 연기하려는 거냐?"

"때린 적 없습니다! 방금은 그냥 시늉만 하려고 했을 뿐입니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최칠완이었으나 그가 남긴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었다.

어느새 행보관의 옆에 나란히 선 이강진.

그는 자신의 입 안쪽을 보여 줬다.

"이래도 안 때렸다고 할 겁니까, 죄칠완 병장님."

이강진은 최칠완의 폭행 사실을 물증으로 남기기 위해 일부 러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의 예상대로 최칠완은 분에 못 이겨 이강진에게 주먹을 휘 두르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증거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증인들도 다수 있었다.

최칠완의 편을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

"하아…… 씨발."

할 게 욕밖에 없었다.

* * *

죄칠완은 결국 타 대대로 전출당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중대장이 자신의 이력에 흠이 생길까 봐 어떻게든 끝까지 품고 가 보려고 했으나, 이강진의 상처와 2분대 후임들 의 불안한 정신 상태를 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행보관의 주장에 따르기로 했다.

최칠완이 사라진 이후.

1075대대는 많은 게 달라졌다.

후임들이 선임의 말년 휴가비를 챙겨 줘야 하는 악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최칠완 사건을 계기로 알게 모르게 내무 부조리를 자행하던 선임급 병사들은 한동안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 자신이 제2의 최칠완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최칠완을 몰아내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역시 오종한이었다.

이강진은 점심시간에 다른 병사들 몰래 행보관을 찾았다.

"행보관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만."

행보관은 반쯤 졸린 눈으로 이강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손짓 했다.

"행보관실로 와라."

"에,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문을 확실하게 걸어 잠근 뒤 .

그제야 이강진은 입을 열 수 있었다.

"저번에 저한테 보상 챙겨 주겠다고 하신 거, 기억하십니까?"

"우리 처남이 들고 왔던 주식 찌라시 때문이었지? 물론 기억 하지. 왜, 지금 필요한가?"

"예."

행보관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휴가가 필요한 거지? 어디 보자……. 3박 4일짜리 포상 휴가 권이 하나 있긴 한데, 무슨 명목으로 줘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이강진에게 덥석 3박 4일 휴가를 주 면, 다른 사람들이 분명 의심을 할 것이다.

그래서 행보관은 매번 이강진에게 휴가를 줄 때마다 명분이 될 만한 이유를 하나씩 붙여 놓곤 했었다.

"하도 이것저것 다 가져다 붙이다 보니 이제는 써먹을 만한 게 안 떠오르네."

"근면성실하게 행보관님이 시키신 작업에 임했다는 이유는 어떻습니까?"

"그건 저번에 써먹지 않았나?"

"저 말고 오종한 병장 말씀드리는 겁니다."

"……응?"

행보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휴가증이 아니라?"

"예, 오종한 병장이 가지고 있는 휴가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이제 다음 주면 전역이기도 해서 이번 기회에 오종한 병장 에게 포상 휴가증을 선물로 줄까 합니다."

포상 휴가 사냥꾼이 라고 불리는 이강진이 휴가를 양보하다니.

하기야, 그가 휴가를 양보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백우호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이강진은 휴가를 그에게 넘겼었다.

선임을 생각하는 이강진의 마음이 기특했던 걸까.

행보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중대장님하고 상의해서 4박 5일 포상 휴가 하나 챙겨 줄 테니 걱정 말아라."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안 그래도 나도 종한이한테 휴가 하나 챙겨 주려고 했으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다."

군대가 최칠완 사건처럼 안 좋은 일만 벌어지는 곳은 아니다. 가끔은, 정말로 아주 가끔은 이 런 훈훈한 일도 일어나곤 한다.

< 제50화. 악습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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