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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73화 (173/347)

< 제53화.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1) >

제53화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1) 오종한이 전역한 당일.

이날은 한창 바깥에서 캐롤이 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연인들에게 있어선 상당히 기념비적인 날일 테지만…….

군인들에게 그런 건 없다.

오종한의 빈 자리를 바라보던 황지웅과 고필중은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드디어 우리가 왕고다!"

"이제 우리 위에 아무도 없다, 이 말이야!"

자연인이 된 그런 기분이었다.

오종한은 오늘로서 전역했고, 최칠완은 타 부대로 전출을 당 했다. 이제 명실공히 황지웅과 고필중이 중대 넘버원이 된 것이다.

백우호와 서일주가 기회를 틈타 이들에게 곧바로 아부를 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두 분을 쳐다볼 수조차 없습니다!"

"아악! 내 눈!"

"짜식들, 오버하긴."

오버하지 말라고 말하는 황지웅이었으나, 그래도 기분은 좋은 모양인지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중대 왕고로 군림하게 된 두 남자.

그러나 잠시 후.

허무함이 몰려 왔다.

"하아! 덧없다, 덧없어."

"그러게 말이다."

갑자기 이들의 힘이 쭉 빠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때문이었다.

시내 거리에 나와 있는 아나운서가 크리스마스이브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념하기 위해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커플들을 대상으로 많은 업체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데요. 젊은 커플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한창 죽제 분위기 속에 들 떠 있는데, 황지웅과 고필중은 고작 중대 왕고가 됐다고 기뻐하고 있었으니. 갑자기 현자 타임이 밀려온 것이었다.

그래도 황지웅은 나았다.

"전화나 하러 가야겠다."

"여자 친구랑?"

부러움이 가득 담긴 고필중의 물음.

황지웅은 고개를 크게 끄덕 였다.

"응."

그의 대답이 오늘처럼 잔혹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들렸던 적 은 없었다.

이것이 여자 친구가 있는 승리자의 여유였다.

여자 친구가 있는 사람은 1분대에선 황지웅이 유일했다.

다른 이들은 전부 솔로다.

하나 솔로라고 여자와 통화하지 말란 법은 없다.

1생활관을 찾아온 김철이 이강진을 찾았다.

"강진아, 전화 왔어."

"누구한테서?"

가장 확률이 높은 사람은 그의 어머니다.

이강진의 생일 때, 혹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특별한 날일 때 에는 항상 그의 어머니가 먼저 부대로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하나 김철은 말을 아꼈다.

"와서 받아 보면 알이

이강진의 어머니한테서 온 전화라면 굳이 비밀로 안 해도 될 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철과 함께 행정반으로 이동했다. 수화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진 씨, 저예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한지윤, 그녀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이강진은 순간 한지윤의 이름을 언급하려 다가 간신히 참아 냈 다. 만약 한지윤이 이강진에게 전화를 해 왔다는 사실이 1중대 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이래서 철이가 비밀로 했던 거군.'

슬쩍 김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철은 씩 웃으면서 엄지를 주켜올렸다.

그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일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네, 맞아요. 여기가…… 지금 청주예요.

갑자기 청주는 왜?

이강진이 먼저 묻기도 전에 한지윤이 알아서 사정을 설명했-지방 촬영이거든요. '국토 방랑일기'라는 프로그램, 아세요?

"예, 압니다."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으로, 연예인들 몇몇이 모여서 국내에 서 잘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를 찾아 소개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었다.

이강진보다는 그의 어머니가 자주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다.

-촬영은 거의 끝났고, 이제 매니저 언니랑 같이 올라갈 거 같아요.

"그렇군요.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뉴스 보니까 전국적으로 차가 많이 막힌다고 하더 라고요."

크리스마스 때문이었다.

휴일은 항상 그렇듯 차가 막힌다. 게다가 올해 마지막 대형 이 벤트 아닌가.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유독 더 교통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마워요, 강진 씨. 빨리 출발해야겠어요. 오늘 집에 들어가 야 내일 종교 행사에 나가죠. 강진 씨도 내일 교회 나오죠?

"예. 제가 안 나가면 나갈 사람 없을 겁니다. 하하!"

군종병이 크리스마스날에 안 나가면 큰일이다.

내일을 기약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강진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내일까지 얼마 안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모르게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 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연인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 어나지 않았다.

눈이 안 온다는 사실에 군인들은 크게 안도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된 것도 억울한데, 쉬지도 못하고 눈이 나 치워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하나 그렇다고 군인들의 신세가 나아진 건 아니었다.

불쌍한 건 여전했다.

아침 식사 집합까지 10분 정도가 남았다.

이강진은 누운 채 티비를 보고 있는 황지웅에게 보고했다.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종교 행사 때문이지? 오늘 엄청 바쁘겠네."

"예, 목사님이 오늘은 평소보다 30분 먼저 와 달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빨리 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고생하고. 조금 있다가 교회에서 보자."

순간 이강진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교회 나오시는 겁니까?"

"엉, 오늘은 나가려고."

황지웅은 병장을 단 이후부터 종교 행사에 단 한 번도 참가하 지 않았다.

원래 군대에서 진행되는 종교 행사는 무조건 강제로 참여해 야 한다. 그러다가 병장쯤 되면 슬슬 눈치를 보다가 참가를 안 하게 된다.

황지웅이 딱 그런 경우였다.

하나 오늘은 달랐다.

"크리스마스날에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궁금해서. 전역하기 전에 알고 가고 싶기 하고."

황지웅도 슬슬 전역을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황지웅과 고필중은 50일 뒤에 전역한다. 1월 말에 있을 혹한 기 훈련이 이들의 마지막 훈련이 될 예정이다.

"필중아, 너도 같이 갈래?"

하나 고필증은 격렬하게 거부했다.

"안 가. 난 그냥 영화나 볼란다."

마침 티비에서 '나 혼자 집에'라는 옛날 영화가 크리스마스 특 선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이거, 예전에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추억 돋네."

같이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짬이 안 되기 때문에 이 들은 어쩔 수 없이 종교 행사에 참가해야만 했다.

먼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이강진.

도중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네."

일기예보대로 눈은 안 올거 같다.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니, 흡연 구역에서 오호만이 담배를 피 우고 있었다.

"충성!"

"음? 혼자 내려온 거야?"

"예, 그렇습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오호만도 이제는 상병이 아닌 병장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하나 오호만은 말년이라서 쉰다느니 뭐니 하는 게 없었다.

어쩌면 전역하는 날 하루 전까지도 짬을 만들다가 갈지도 몰 랐다.

"당직 근무?"

"아닙니다. 종교 행사 때문에 저 혼자 먼저 먹으려고 왔습니다."

"아, 오늘이 크리스마스구나. 준비할 게 많겠네. 맨날 짬만 만 들다 보니 크리스마스인 줄도 몰랐네, 하하."

정신이 너무 없었다.

군대에 오면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다른 사람 들은 크리스마스를 기 념한다고 파티니 뭐니 그런 걸 따지고 있 는 반면, 군인들은 오늘 나올 식사 메뉴에 비엔나소시지가 포함 이 되는지 아닌지나 따지고 있어야 했다.

"크리스마스라

"그러고 보니 오호만 병장님은 여자 친구 없으십니까?"

"여자 친구?"

오호만 병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 친구는 없어. 대신에……."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약혼자는 있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오호만 병장은 두 번째 담배를 꺼냈다. 이야기가종 길어질 거 같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입대 전에 결혼하고 오려고 했었거든. 근데 여자 친 구 아버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결혼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어. 이제는 많이 나아지셨다고 하니까, 나 전역하면 바로 결혼식 올리려고."

"추, 축하드립니다, 오호만 병장님."

예상치도 못한 개인사가 튀어나와서일까. 이강진은 처음으로 당혹감을 드러냈다.

"고마워. 근데 마냥 축하받을 일은 아니더라. 한 가정을 책임 지는 가장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먹고 살 궁리부터 해야지. 그 런 의미에서 바라 식당 가서 열심히 요리 배우고 오려고."

오호만 병장이 왜 이리도 요리 쪽에 적극적으로 임하려고 하 는지 이강진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호만 병장님이라면 충분히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다. 아, 나 결혼 일자 정해지면 꼭 와라. 알았지?"

"물론입니다."

오종한 이후로 약속이 하나 더 늘었다.

?

* * *

교회로 내려온 이강진은 다른 군종병들과 함께 목사를 도와 열심히 일을 진행했다.

모처럼 크리스마스날에 한지윤과 만났건만. 너무 바빴기에 서 로 제대로 말을 붙일 시간조차 없었다.

오전 10시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남은 시간은 20분.

한지윤은 피아노 앞에 앉아 새로운 찬송곡 반주를 연습했다.

짐을 옮기던 이강진은 무심코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한지윤의 모습에 이강진은 눈과 귀 그리 고 마음까지 빼앗겨 버렸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누가 부식 상자 좀 옮겨 줬으면 좋겠군."

"상병 이강진! 제가 옮기겠습니다!"

목사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마치 ATT 훈련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다들 일찍부터 모여서 부지런히 준비를 한 덕분인지 종교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에 딱 맞춰서 모든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한숨 크게 돌리는 이강진.

어느새 한지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강진 씨. 이거 마셔요."

이온 음료였다.

캔을 따자마자 내용물을 곧장 비웠다. 안 그래도 목이 타던 와 중에 잘된 일이었다.

목을 죽인 덕분에 다시 여유를 되찾은 이강진은 한지윤에게 어제의 일에 대해 물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오셨을 텐데, 힘드시진 않나요?"

"아니요. 오히려 재미있어요. 방송이 제 체질에 맞나봐요. 호 호."

그간 출연했던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제법 많은 프로그램에 서 한지윤을 찾고 있었다.

그 덕분에 한지윤은 드라마를 촬영하지 않는 기간 내에도 계 속해서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연예인은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다. 잊히면 그것으로 끝이다. 꾸준한 방송 활동만이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지윤은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부지런히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만큼은 시간을 비웠다.

이유는 바로.….

"아, 슬슬 시작하려나 보네요. 우리도 가요, 강진 씨."

"알겠습니다."

다시 움직여야 할 때가 도래했다.

< 제53화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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