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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77화 (177/347)

제55화 새해 첫 시련 (1)

2014년 1월 1일.

새해 첫 아침이 밝았다.

"다들 잠은 잘 잤나!"

"예!"

"전체 뒤로 돌앗!"

척!

"전방을 향해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인지, 아니면 군대에서 제발 꺼내 달라는 절규인지. 복잡 한 감정이 담긴 함성이 1075대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다시 사열대 쪽으로 몸을 돌린 병력.

한 해가 지났음에도 아침 점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애국가, 우리의 결의 국군도수체조까지.

이다음은 당직사관의 재량에 따라 실행하거나 짬 처리하는 순 서 가 하나 있었다.

바로 아침 구보다.

소대장은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항상 아침 구보를 시키곤 한다.

새해라고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전체 상의 탈의한다. 실시!"

"실시!"

당직사관이 소대장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병 력은 오늘 아 침 구보를 안 뛰어도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지도 않았다.

기대를 하니까 더 큰 실망을 느끼는 법이다.

처음부터 그러려니 해 버리니 한편으론 마음은 편했다.

인솔도 소대장이 직접 한다.

"전체~ 뛰어!"

"엇!"

"가!"

하나, 둘, 셋, 넷 구호에 맞춰서 왼발을 내딛는 병력.

1 월 1 일 신년의 아침은 왜 이리도 추운지. 병사들은 소대장 몰 래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 * *

신년 첫 종교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강진은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 곧장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일부러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은 피해서 전화했다. 안 그래도 가게 때문에 바쁠 텐데, 괜히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여보세요. 강진이니?

"네, 어머니. 저예요. 많이 바쁘세요?"

-오늘은 평소보다 더 바쁜 거 같구나. 새해 첫 날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구구, 허리가 다 아프네.

"가게 일도 좋지만, 건강 생각하면서 하세요."

돈도 좋지만, 건강이 최우선이다.

고맙다는 말을 한 이강진의 어머니는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떡국은 먹었니?

"떡국 비스무리한 건 나왔어요."

-비스무리한 게 뭐니?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분명 메뉴에는 떡국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막상 보면 이강진 이 아는 그것과 많이 달랐다.

떡국이라기보다는 짬국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아 보였다.

이강진은 1 월 1 일만 되면 어머니가 만들어 준 떡국을 매번 먹 곤 했었다.

그러나 군대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어머니 입장에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다음 휴가는 언제니?

"혹한기 훈련받기 전에 쓸지, 아니면 명절 때 쓸지 고민 중이에요."

다른 집과 다르게 이강진은 명절 때 친척들을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왕래할 집이 없다 보니 명절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차라 리 혹한기 훈련받기 전에 휴가를 써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봤 다.

어차피 명절 때 작업 안 하고 생활관에서 푹 쉴 텐데. 차라리 1월 중순에 쓰는 게 더 나아 보였다.

-그래, 너 편한 일정 잡아서 쓰렴. 나오면 떡국 맛있게 만들어 주마.

"기대할게요."

생각해 보니 회귀한 이후에 이강진은 한 번도 어머니가 만들 어 준 떡국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휴가 나가면 반드시 먹어야겠네.'

휴가를 나가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는 건 참 좀 은 일이다.

그래야 휴가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전화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다시 복귀했다.

1생활관에는 생기가 넘친다는 분위기보다는 나태한 기운이 팽배했다.

휴일에는 항상 다 이렇다.

평일에 빡세게 작업을 했으니, 주말에라도 푹 쉬어 둬야 하지 않겠나.

리모컨을 잡은 고필중의 입에서 불만이 새어 나왔다.

"더럽게 볼 거 없네. 가요무대 같은 거라도 좀 해 주지."

1월 1 일이다보니 신년 운세를 봐준다든지, 현재 시내 거리가 어떤 분위기인지. 이런 소식들만 계속 송줄되고 있었다.

군인들이 원하는 건 걸그룹 아이돌들의 무대다.

신년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방송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고필중이 백우호를 불렀다.

"우호야! FIFA나 한 판 땡기러 가자."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PX 내기 어떻습니까?"

"넌 새해 첫 날부터 내기질이냐. 그래, 까짓것 한 번 해보자! 보나마나 내가 이길 테니까!"

"절대로 안 봐줄 겁니다, 고필중 병장님!"

서로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휴게실로 사라지는 두 남자.

그 덕분에 리모컨의 소유권은 이강진한테 넘어오게 되었다.

"채널 돌려도 되지?"

후임들이 이강진의 물음에 토를 달리가 없지 않은가.

의자에 앉은 이강진은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나 채널을 빠르 게 돌려보기 시작했다.

도중에 이강진의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나왔다.

[짜잔! 겨울에 커플들끼리 오기에 좋은 그곳! XX 온천입니다! 지윤 씨, 어떤 거 같아요?]

[일단 외관만 보면 딱 제 취향인 거 같아요! 어서 들어가 보고 싶어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호호!]

한지윤이 12월에 촬영했던 예능프로그램이 오늘에서야 티비 를 통해 송줄되고 있었다.

여태껏 드라마를 통해서만 자신을 보여 왔던 한지윤.

하나 그녀는 예능감 또한 중만한 스타였다.

못하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그녀. 대한민국 톱스타가 될 인재 인데, 이 정도는 당연했다.

이강진은 무심코 한지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시 켰다.

온천을 소개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강진은 1월 중에 신청해놓 은 휴가를 떠올렸다.

'저기 한번 가 볼까?'

저렇게 열심히 방송하는 한지윤을 보니까 왠지 무조건 가 줘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청주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래, 휴가 나가서 할 것도 없으니까 저기라도 가 봐야지.'

이런 식으로라도 한지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이강진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행정반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전 병력은 즉시 사열대 앞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들은 이강진은 기운상을 찾았다.

"운상아, 오늘 당직사관님 누구시냐?"

"행보관님이십니다."

……."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사열대에 모인 병력을 향해 행보관은 이렇게 지시했다.

"새해도 됐으니까. 오늘은 일광건조를 실시하겠다."

역시.

이강진의 불안감이 제대로 적중했다.

주말에 하는 일광건조의 90퍼센트 이상은 행보관이 지시하는 것이다. 일광건조라는 이름의 종목에선 대주주인 행보관의 명령에 병력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행보관의 쓴소리가 콤보처럼 날아들었다.

"젊은 것들이 신년부터 뭐 이리 기운이 없어! 퍼뜩 안 하고 워하냐! 대청소까지 시킬까?"

"아닙니다!"

"일광건조 하러 가겠습니다!"

행보관이 하라면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병력은 매트리스, 모포, 침낭 그리고 베개를 가지고 사열대 앞에 하나둘씩 널기 시작했다.

매트리스를 삼각형 형태로 세워둔 뒤에 그 위로 모포와 침낭을 올려 놓는다.

최영고는 이것들을 보면서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일광건조가 됩 니까?"

피식 웃는 백우호.

"될 리가 있겠냐."

모포 위에 모포, 그 위에 또 모포를 쌓기만 했는데, 일광건조가 어떻게 되나.

FM대로 하려면 일일이 다 쫙 펴서 한 겹씩 햇빛이 잘 드는 곳 에 널어 둬야 한다.

하나 여기는 군대다. '우리, 일광건조 했습니다~.'라고 하는 시 늉만 하면 된다.

전투화까지 가져와서 사열대에 쭉 나열해 뒀다.

"이름 잘 보이게 안쪽 꺾어서 놓아 둬라. 나중에 이게 네 거 니, 이게 내 거니 하면서 갈팡질팡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일광건조를 마치고 돌아오니, 생활관이 텅 빈 그런 느낌이었 다.

황지웅과 고필중은 자신들의 침낭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한 겨울에 침낭 없이 어떻게 있으라고…… 행보관님도 너무하 시지."

"그러게 말이야."

말년 병장이라는 이름의 침낭 번데기 둘이 사이좋게 붙은 채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강진은 황지웅에게 일광건조 진행 현황을 보고했다.

"두 분이 가지고 계신 침낭만 빼고 일광건조 끝냈습니다."

"우리 건 빼도 돼. 그보다 강진아. 너, 1 월 중에 휴가 나간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때 나가는 휴가가 견장 없이 나가는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 해."

그 말인즉슨.

"저, 곧분대장 다는 겁니까?"

"어."

군번을 따진다면 원래는 서일주가 달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황지웅과 고필중이 전역하고 2달 뒤, 서일주도 전역한다.

서일주가 만약 분대장을 차게 된다면, 기껏해야 2달이 최대치 다. 그럴 바에야 자라리 그냥 서일주를 건너뛰고 이강진에게 분 대장을 물려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1분대 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계속 나왔었다.

서일주도 이에 대해선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황지웅, 고필중 때와 다르게 서일주는 분대장에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분대장이 자기에겐 잘 안 맞는 직위라고 생각했기 때 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차기 분대장은 이강진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제는 시기를 조율할 차례.

황지웅은 1분대원들이 일광건조 작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일 때, 행보관과 짧은 상담을 마쳤다.

올해 혹한기 훈련 때까지만 황지웅이 분대장을 차기로 합의 했다.

그 이후부터는…….

이강진이 새로운 분대장이다.

"혹한기 끝나고 분대장 교체식 가질 거니까 잘 기억해 둬. 그 때 분대장 수첩하고 분과 운영비 같은 거 인수인계할게."

"예, 알겠습니다."

1월 1일이 됨과 동시에 분대장 교체식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통보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 입대할 당시만 하더라도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긴 하 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신년이 됨과 동시에 이강진은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둬도 돌아간다는 말을 여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분대장이 라

앞으로 해야 할 게 더 많아질 것이다.

* * *

오후 4시 경 이 되 었을 때.

이강진은 후임들을 집합시켰다.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일광건조 시켰던 것들, 다시 생활관으 로 들어 놓자."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도 후임들과 같이 행동에 나섰다.

다른 분대들도 널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다시 회수하고 있었 다.

가장 먼저 전투화부터 챙기기로 한 1중대.

이강진의 전투화에는 그의 이름이 아닌 안준렬의 이름이 적 혀 있었다.

안준렬이 준 간부화였기 때문이었다.

"잘 말랐네."

전역할 때까지도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버려야겠지만 말이다.

전투화를 생활관에 갔다 두려고 할 때였다.

행정반 쪽에서 갑자기 소란이 들려왔다.

'왜 저래?'

저럴 때마다 불안한 느낌이 엄습한다.

'느낌이 안 좋아.'

이강진은 후임들을 찾았다.

"후딱 옮겨라. 행보관님이 뭐 또 이상한 거 시키시기 전에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후임들의 행동이 빨라졌다.

그러나 행정반에서 들려오는 방송 소리보다 빠를 순 없었다.

-지금 전 병력은 즉시 사열대 앞으로 집합하도록!

행보관이 직접 방송한 것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사열대로 집합한 병사들.

행보관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지금부터 대청소를 실시한다."

뜬금없이 대청소라니.

하나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아주 중대한 이유가.

"사단장님이 내일 우리 부대를 방문하신다고 한다."

< 제55화. 새해 첫 시련 (1) 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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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拂上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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