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0화. 분대장 교육대 (3) >
제60화. 분대장 교육대 (3)
현무중대에 있을 때 만났던 탄약반장, 이문청 중사.
그는 담배를 사기 위해 잠시 PX에 들렀다.
오늘따라 짬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겸사겸사 라면도 사서 먹을 생각이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이야-! 여기 PX 어떻게 생겼나, 그때는 엄청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생겼었구나."
"대대랑 별로 크게 다르진 않아. 그냥 약간 크다는 것뿐이지."
"강진이, 너는 훈련병 시절 때 여기 많이 와 봤었지?"
"뭐, 그렇지."
익숙한 이름이 들린 것이다.
'강진이? 설마……!'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김철과 함께 PX로 나란히 들어서는 남자, 이강진.
"설마 너, 강진이냐?"
탄약반장의 물음에 이강진도 흠칫 놀란 듯했다.
"충성!"
"강진이 맞네! 이야! 오랜만이다, 야!"
이렇게 반가울 때가 다 있을까.
한편 김철도 탄약반장을 보자마자 이강진을 따라 거수경례를 했다.
김철도 탄약반장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탄약반장은 김철이 누군지 까먹었다.
"옆에는 대대 동기냐?"
"저랑 같이 여기 신병 교육대를 수료했던 김철입니다. 현무중 대에 있었습니다."
"아…… 그래? 미안하다. 훈련병만 매번 수백 명 이상 받다 보 니까 누가 누군지 모르겠네. 이해 좀 해 줘라."
김철은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그의 사과를 받아 줬 다.
훈련병들의 얼굴을 잘 기억 못 한다면서 이강진은 어떻게 기 억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얌전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강진은 신병 교육대에 있을 당시, 간부들조차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던 남자다. 그러니 탄 약반장이 김철이나 다른 훈련병들은 기억 못 해도 이강진은 기 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탄약반장과 만나게 되니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보낼 순 없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골라라! 이 형이 사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탄약반장 덕분에 돈을 아끼게 되어서 좋다.
PX 옆에 마련되어 있는 휴게실로 이동한 세 남자.
탄약반장은 이강진과 김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1075대대에 들어갔었군. 거기, 나름 괜찮지. 부대 위치가 너무 외곽으로 빠져 있다는 것만 빼곤 말이야."
탄약반장의 말대로였다.
오죽하면 김철의 한때 소원이 부대에서 네온사인 불빛을 보 는 거였겠나. 그 정도로 1075대대는 외진 산골에 위치해 있었다.
"아! TV에서 강진이, 너 봤었다. 우리 부대에서도 유명했었어. 행보관님하고 중대장님하고 티비 보시더 니 네가누군지 바로 알 아보시더라."
"하하, 그렇습니까. 중대장님하고 행보관님은 어디 계십니까?"
"두 분 다 다른 부대로 가셨어."
"인사도 못 드렸는데……."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너희 올 줄 알았더라면 미리 연락이 라도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뭐, 나중에 두 분 볼 일 있 다면 내가 대신 안부 인사 전해 주마."
"감사합니다, 탄약반장님."
"그리고……."
탄약반장은 슬쩍 김철의 눈치를 살폈다.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두 사람만의 비밀이 있었다.
바로 눈치를 챈 이강진이 김철에게 말했다.
"철아, 너 아까 전화할 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랬지. 근데 탄약반장님 계시는데, 나 먼저 자리를 비우 기엔 좀……."
탄약반장은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괜찮아. 가서 전화하고 와."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어, 천천히 하고 와!' 김철을 먼저 보낸 뒤, 탄약반장은 목소리를 한껏 낮줬다.
"강진아, 너 아직도 주식 하냐?"
"예."
"어때? 돈 좀 만졌어?"
"많이 만졌습니다."
탄약반장이 상상하고 있는 것 이상의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 다.
이강진이 주식 좀 한다는 건 탄약반장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기왕 이강진과 만나게 된 거, 탄약반장은 그에게 또다시 도움을 청해 보기로 했다.
"괜찮은 종목 있으면 추천 좀 해 줄 수 있어?"
"탄약반장님, 주식 끊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강진이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탄약반장은 주식에 대해 별 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식을 하다가 나중에 끊어 버렸다.
손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주식을 하겠다고 나서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지, 근데 내 동생 녀석이 하는 거 보고 나도 조금씩 다시 건드리기 시작했거든. 너도 잘 알잖아? 군인 월급이 쥐꼬리만도 못하다는 거."
그건 이강진도 잘 안다. 그래서 부수입을 위해 주식에 손을 대 는 직업군인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탄약반장도 마찬가지 였다.
"이번 기회에 다시 주식 좀 건드릴까 해서. 일단 소액으로 감 먼저 찾으려고 해 보고 있는데, 잘 안 되네."
원래 남의 돈 따기가 어려운 법이다.
주식 정보 몇 개 흘려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안 그래도 최근 에 이강진이 눈여겨보고 있는 종목들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지 않습니까?"
이강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탄약반장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원하는 걸 말해 보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 주마."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강진의 턴이다.
"탄약반장님, 혹시 분대장 교육대 교관님들하고 친하십니까?"
* * *
분대장 교육대 2일 차.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이 시작된다.
교관은 단독군장을 착용한 교육생들을 연병장에 따로 집합시 켰다.
"오늘은 독도법에 대해 교육하겠다. 나중에 실습까지 겸할 테 니, 잘 보고 머릿속에 확실하게 새겨 두도록 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지도를 보고 목표 지점까지 도달한 분 대에게 단체 상점을 줄 예정이니, 다들 분발하도록. 그럼 교육을 시작하겠다."
독도법. 지도에 표시된 내용을 해독하는 방식으로, 중대나 분 대를 이끄는 직위에 있는 사람에겐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본 소양이다.
그러나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이강진이 포함된 2분대 인원들은 지도를 보면서 머리를 맞대 었다.
총 6명으로 구성된 2분대원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지도 를 보면서 머리를 갸우뚱하기만 할 뿐이었다.
몇 번을 들어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들, 어느 곳이 목표 지점인지 알 거 같아요?"
"전 모르겠네요."
"저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2분대원들.
이들에겐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상점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간 듯했다.
그때 이강진이 입을 열었다.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제가 알아서 캐리해 드릴 테니까요."
"네?"
"아저씨가요?"
이강진은 교육을 듣는 내내 몰래 잠을 청했었다. 교육 내용이 뭔지 알지도 못할 거 같은데 캐리를 하겠다니.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었다.
그러나 이강진은 자신 있었다.
10분 뒤.
교육생들은 분대별로 연병장에 집합했다.
"1 분대부터 독도법 실습을 시작하겠다. 지도를 보고 제한 시 간 내에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도착하지 못하면 성공할 때까지 다시 시킬 테니 분발하도록 해라. 알겠나!"
"예!"
처음부터 다시!
병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제한 시간은 30분. 이 안에 목표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1분대가 먼저 출발했다.
이다음은 2분대의 차례다.
2분대 분대장을 맡게 된 이강진은 교관 앞으로 가서 직접 지 도를 전달받았다.
교관은 다른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강진과 빠르게 눈 빛을 교환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강진.
지도를 받자마자 이강진은 분대원들에게 손짓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아저씨들."
"지도는 안 봐요?"
"지도를 봐야 위치를 알죠!"
이강진은 마지못해 지도를 펼쳤다.
한참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는 분대원들.
이강진은 이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뭐 좀 알겠어요?"
분대원들은 이강진의 물음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대답 했다.
"하나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그럼 조용히 저만 따라오세요. 전 알아냈으니까."
"네?"
"이 짧은 시간예요?"
사실 이강진은 지도를 보기 전부터 목표 지점이 어느 곳인지 알고 있었다.
앞장선 이강진의 뒤를 따라 걷는 2분대원들.
그는 수류탄 훈련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라섰다.
그러던 도중에 이강진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쪽이에요."
"헐…… 여기에 길이 있었어요?"
"몰랐네."
폭이 아주 좁은 길이 나 있었다. 기다란 수풀로 가려진 탓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수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강진.
그렇게 5분 정도 걸었을까.
넓은 교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조교가 이들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몇 분대입니까?"
"2분대 입니다."
조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첫 번째로 출발한 1분대도 아직 도착하지 못했는데, 2분대가 먼저 이곳을 찾을 줄은 몰랐다.
이강진은 2분대원들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말했죠? 저만 믿으라고."
* * *
이강진의 활약은 대항군 훈련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분대별로 움직이 면서 대항군을 잡아야 하는 훈련에서 이강진 은 이번에도 분대장으로서 분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가더니 이내 주먹을 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정지.
분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자세를 낮준 채 걸음을 멈췄다.
잠시 후.
이강진이 갑자기 돌격 명령을 내렸다. 순간 분대원들은 어리 둥절했다. 대항군의 모습이 보인 적도 없는데 뜬금없이 돌격이 라니?
그러나 더 놀랄 만한 상황이 이후에 펼쳐졌다.
대항군들이 알아서 고꾸라지 면서 이들에게 순순히 잡힌 것이
"뭐지?"
"이 아저씨들, 갑자기 왜 이래?"
대항군 역할을 맡았던 신병 교육대 소속 병사들이 이렇게 쉽 게 잡혀 줄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이강진 분대를 제외한 다른 분대를 상대할 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그들이 왜 갑자기 오합지졸이 되어 버렸을까?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 * *
분대장 교육대 4일 차.
오늘로서 모든 훈련이 끝났다.
구막사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조교가 와서 병사들에게 전파 사항을 꺼냈다.
"상벌점 수첩을 수거하겠습니다. 교육생들이 그동안 모은 상 벌점을 토대로 내일 퇴소식 때 최우수 분대장과 우수 분대장들을 선정할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
조교가 돌아다니면서 직접 교육생들의 수첩을 모았다.
이강진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조교에게 본인의 수첩을 건 넸다.
다른 교육생들과 다르게 이강진의 상벌점 수첩만 유독 두툼 해 보였다.
그동안 이강진이 얼마나 많은 상점들을 쌓았는지 이를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강진과 같은 분대에 속했던 병사들도 상점을 많이 받았다.
이게 다 이강진 덕분이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저희도 상점 꽤 많이 쌓을 수 있었어요."
이강진은 그들의 말에 너 털웃음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뭐. 하하하!"
이문청 중사를 통해 뒤에서 몰래 공작을 펼친 이강진. 이것이 바로 인맥의 힘이다.
< 제60화. 분대장 교육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