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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12화 (212/347)

< 제67화. 일탈 (1) >

제67화. 일탈 (1)

행정반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상자들.

그중에서 유독 병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종이 박스 가 하나 있었다.

당직을 맡은 황구연 병장이 빅 사이즈를 지 닌 종이 박스에 관 심을 보였다.

"이거, 누구한테 온 소포야?"

"아, 그거 말입니까? 1분대 최영고 이병한테 온 소포입니다."

"헐, 그래? 내용물이 뭔데?"

"아직 확인 안 해 봤습니다만…… 가벼운 걸로 보아선 과자 박스 같습니다."

"과자라. 좋겠네, 짜식. 여자 친구가 보내 줬나?"

보낸 이가 여자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 자 친구가 보낸 게 아닐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분대에서 여자 친구를 가지고 있는 병사 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부 다 솔로들만 모여 있었다.

행정병이 황구연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거, 영고 누님들이 보내 준 겁니다."

그제야 황구연은 죄영고의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떠 올렸다.

누나가 상당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최영고.

막내인 데다가 군대까지 와 있으니 누나들이 이것저것 다 챙 겨 주곤 했다.

과자 박스도 마찬가지 였다.

최영고뿐만 아니라 그의 선임들에게 '우리 막내, 잘 부탁해 요!'라는 의미를 담아 그들이 먹을 것까지 전부 다 담아서 보냈

"누님들이 센스가 있네. 좋겠다. 우리 분과엔 이런 과자 박스 보내 줄 후임 없나."

"조만간 신병들이 또 대거 들어올지도 모르니 그때 한번 노려 보심이 어떻습니까?"

"흠, 그럴까?"

일 잘하게 생긴 병사를 데리고 가는 게 픽(Pick)의 정석이다.

그러나 최영고 같은 픽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황구연의 머릿속에 아주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건 나중의 일이다.

일단 눈앞에 있는 일부터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이거, 내가 1분대로 갔다 주고 오마."

"욕심난다고 중간에 빼돌리시면 안 됩니다, 황구연 병장님. 후 임한테 온 편지나 선물 몰래 가로채면 바로 영창행인 거, 아시 지 말입니다?"

"알고 있어, 짜샤 그리고 곧 있으면 전역인데 내가왜 이등병 들 물건을 노리겠냐?"

"하하하! 혹시나 해서 해 본 말입 니다."

한때는 1중대를 주름잡았던 황구연도 이제는 전역이 얼마 안남았다고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는 내심 이런 취급이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후임들이 친근하게 구는 만큼 전역의 날이 가까워 졌다는 말이 되기도 하니까.

"읏차!"

상자의 무게는 크기에 비해 가벼웠다.

하나 워낙 컸기에 박스가 시야를 방해했다.

"앞에 조심해라! 워이, 워이!"

병사들은 황구연의 경고를 듣고 알아서 길을 터 줬다.

1생활관 문 앞에 도달한 황구연.

그는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냅다 문을 걷어찼다.

"산타클로스님 오셨다! 뭣들 하냐! 선물 안 받으러 오고!"

동기인 서일주가 곧장 쓴소리를 내뱉었다.

"한 여름에 눈 오는 소리 하고 있네. 남의 생활관 문을 발로 뻥 뻥 차도 되냐? 고장 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러면 문 어떻게 열라고!"

"열어 달라고 말하면 되잖아. 하여튼 무식한 녀석."

두 사람은 얼굴만 마주하면 이렇게 투닥거린다.

이럴 때에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이강진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누구한테서 온 소포입니까?"

"너희 막내."

"영고입니까?"

"엉, 누님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과자 박스다. 근데 정작 당사 자는 코빼기도 안 보이네."

"외곽 근무 나갔습니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그래? 그럼 네가 대신 좀 받아 줘. 난 확실하게 전달했다?"

"예,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황구연 병장님."

서일주와 계속 말다툼을 하기 전에 먼저 황구연을 행정반으 로 돌려보냈다.

생활관 한가운데에 거대한 과자 박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이 자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최영고가 빨리 와서 소포를 뜯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무렵이 었다.

단독 군장 차림을 한 최영고가 생활관 문을 열었다.

"근무 복귀했습니다. 근데 이건 뭡니까?"

"너한테서 온 과자 소포."

"아, 누나들이 소포 보냈다는 게 이제야 왔나 봅니다."

1생활관은 과자 박스를 선물로 보낼 지인을 가진 병사가 없었다.

원래 성태강도 팬들한테 엄청난 과자 선물을 받곤 했었지만, 그 양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너무 많다보니 부대 차원에서 금 지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최영고의 누나들이 이렇 게 커다란 박스를 보낼 때마다 1분대는 죽제 분위기였다.

최영고의 과자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1분대원들은 황급히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하이에나가 따로 없었다.

이들을 진정시키는 것 또한 이강진이 해야 할 일이었다.

"과자에 환장한 녀석들아. 좀 가만히 있어라. 그러다가 다친 다."

PX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과자들이 박스 안에 가득 담겨 있었 다. 병사들은 이미 과자들의 유혹에 푹 빠져 있었다.

생활관에 취식물을 따로 보관하면 안 된다. 그걸 잘 알기에 최 영고는 자신이 먹을 양만 남기고 다른 과자들은 공평하게 병사 들에게 분배했다.

애초에 선임들에게 나눠 주라고 과자를 많이 보낸 거였으니, 분배해서 나눠 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서일주와 백우호는 최영고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다.

"역시 우리 영고밖에 없어!"

"누님들에게 잘 먹겠다고 전해 줘."

"예, 알겠습니다. 아, 이강진 상병 님은……."

"난 괜찮아. 다른 애들한테 나눠줘."

"안 드셔도 됩 니까?"

"어차피 내일 나가서 원 없이 먹을 테니까."

그제야 최 영고와 분대원들은 깨달았다. 내일은 이강진의 휴가일이라는 사실을.

* * *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이강진은 미리 사회의 바 람을 쐬고 싶었다.

'상병 달고 나서부터 어째 휴가를 더 많이 나오는 거 같네.'

처음 신병 위로 휴가를 나갔을 때가 절로 떠올랐다. 그때는 정 말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고향에 온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때 만큼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청주에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군복만 보면 짖어 대는 행복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행복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가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잠시 뒤에 행복이가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이강진의 불안감을 없애 버렸다.

"바깥에서 나는 거 같은데?"

문을 열자, 행복이를 안고 있는 이강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아들 왔구나."

휴가를 너무 자주 나와서일까. 아들이 모처럼 집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그냥 '어, 왔어?' 정도밖에 안 되었다.

휴가를 자주 나오는 것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오늘은 일 안 나가셨어요?"

"어, 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보니 이제 쉬는 날도 생겼지 뭐니. 호호호!"

"민수 아저씨는요?"

"계속 일하시긴 하는데, 매주 수요일은 주방에서 손 떼고 뒤 에서 지켜보기만 했어. 그날은 호만이가 메인 주방장이야."

황민수의 밑으로 들어간 지 몇 개월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오호만은 벌써 황민수의 종애를 받고 있었다.

이강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성장력을 보였다.

'역시 민수 아저씨한테 호만이 형을 소개시켜 주길 잘했네.'

서로 잘 맞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 아주 잘 들어맞았다.

행복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이강진의 어머니가 잊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민수 씨가 너 오면 연락 좀 달라고 말 전해 주라더라. 가게 운 영에 관련해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던데……."

"그래요? 그럼 바로 연락해 봐야겠네요. 아, 지금 연락하면 못 받죠? 가게 바쁠 테니까."

"아니, 괜찮아. 바빠도 요즘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 이 늘어서 전화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그럼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중요한 일처럼 보이니 지체 없이 연락을 해 보기로 했다.

2층 방으로 올라간 이강진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통화가 있었다.

낯선 번호는 아니었다.

차를 사러 갔을 때 견적을 짜줬던 바로 그 사람의 개인 전화번호였다.

"출고 때문인가?"

슬슬 차가 나올 시기가 되긴 했다.

"나중에 연락해 봐야지."

이것보다 황민수와의 통화가 우선이다.

어머니가 말했던 대로 황민수는 이강진의 전화를 바로 받았-여보세요. 강진이냐?

"네, 아저씨. 저예요. 상담할 게 있으시다고 들어서 전화드렸 어요."

-그래? 잘됐구나. 안 그래도 호만이한테 가게 맡기고 난 슬슬 퇴근하려고 했었는데, 오래간만에 둘이서 소주나 마실까?

"저야 좋죠."입대 전에도 이강진은 가끔 황민수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었이강진의 어머니도 같이 마시면 좋겠지만, 오늘은 둘이서만 긴밀히 이야기를 나눌 게 있어서 차마 같이 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황민수가 좋아하는 단골 가게가 하나 있다.

메뉴는 오직 부대찌개 하나뿐.

10년 가까이 왕래를 하다 보니 황민수는 이곳 가게 사장과 서 로 말을 놓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같이 온젊은 친구는 누구여?자네 가게에서 일하는직원? 아니면 혹시 숨겨 둔 자식은 아니겠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부대찌개나 가져와! 소주 2병도 잊 지 말고!"

"허허, 알았네, 알았어."

메뉴가 하나뿐이지만, 이곳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황민수의 입맛조차 반하게 만들 정도니 맛은 충분히 보장된 셈이었다.

'잘만 하면 가게를 크게 키울 수도 있을 텐데.'

이강진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문한 부대찌개가 나오기 전에 황민수에게 슬쩍 자신의 생 각을 흘려 봤으나.

"이 친구는 취미로 가게를 하는 거라서 그런 욕심은 없을 거야."

"본업이 따로 있나요?"

"어."

갑자기 황민수가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 말했다.

"건물주님이시지."

"아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게 확장에 큰 욕심을 내지 않는 사장의 태도가 단번에 납득 되었다.

하나 황민수는 달랐다.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황민수는 속으로 야 망을 품고 있는 남자였다.

원래는 그 크기가 크지 않았었다. 그냥 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가게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라 식당을 전 국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오늘 이강진과 함께 둘이서만 술자리를 가지게 된 이유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부동산 쪽으로 해서 아는 동생 녀석 하나가 나한 테 슬쩍 찌라시를 흘려주더 라. 고급 정보라고 하면서 나만 알고 있으라고 했는데, 네가 부동산에 관해서 잘 아는 거 같아서 물 어나 보려고."

"어떤 건가요?"

"공단이 크게 들어설 곳인데, 그쪽에 미리 가게 세워 두면 내가 그쪽 외식 상권은 싹 쓸어 갈 수 있을 거라고."

결국 땅 사고 건물 올리라는 소리였다.

황민수는 그럴 만한 재력이 충분히 된다. 물론 이강진도 마찬 가지고.

"예전에 너한테 분점 이야기한 적 있지 않냐. 난 바라 식당을 좀 더 크게 키워 보고 싶어. 청주를 넘어서 부산, 서울 한가운데 에 내 가게를 세우는 게 목표야. 그러기 위해서 점점 규모를 늘 려 가야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이강진은 황민수가 따라준 잔을 들었다.

일단 소주를 한 모금 들이 켰다.

잔을 내려놓은 뒤, 이강진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 아까 찌라시 흘려줬다는 그 동생하곤 관계를 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황민수의 주변에 사기꾼이 하나 꼬였다.

< 제67화. 일탈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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