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7화. 일탈 (2) >
제67화. 일탈 (2)
이강진은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착각해선 안 된다.
이강진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지금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정보다.
고급을 넘어 특급 정보!
거의 천기누설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 친한 동생이라는 사람이 한 말, 걸러 듣는 게 좋을 거예요. 거기는 공단이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공장들이 나가려고 발버 둥을 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상권도 같이 죽는다.
황민수는 찌라시를 흘린 사람과 둘도 없는 형, 동생 관계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동생 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이런 쓰레기 정보를 고급 찌라시처럼 꾸며서 땅을 사게 만들 려고 꼬드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녀석……!"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운 황민수는 그대로 그것을 들이켰다.
황민수는 사람이 너무 착하다.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통수를 맞는 일이 빈번했다.
사람이 너무 착하면 배신당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민수는 독해질 수 없었다.
왜냐?
천성이 그런 사람이니까.
그 동생을 믿을지, 아니면 이강진을 믿을지.
그건 황민수의 몫이다.
하지만 이강진은 실제로 황민수에게 많은 이득을 물어다 줬다. 주식뿐만 아니라 방송국 쪽 연줄을 활용해서 바라 식당을 전 국구 맛집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상황이 이런데 황민수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보나마나 뻔했다.
이강진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강진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처럼 관계를 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아……."
사람이 분노의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체념을 하게 된다.
믿었던 동생의 배신.
거기서 오는 상실감이 황민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이강진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황민수에게 꼭 이런 이야기를 들 려주고 싶었다.
"아저씨는 지금부터 독해져야 해요. 성공하고 싶다고 하셨죠? 바라 식당을 대한민국 대표 외식 가게로 만들고 싶다고 했죠? 그러면 좀 더 냉정해지셔야 해요. 무슨 일을 추진하든 간에 주 관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하지 마세요. 객관적인 입장에서 끊임 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등해야 해요. 그래야 위험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어요."
이 기회에 이강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업의 노하우를 전수 해줬다.
주식 투자로 돈벌이를 시작했던 이강진은 투자 경험을 토대 로 사업도 본인이 직접 해 본 적 있었다.
잘된 경우도 있었고 망했던 적도 있었다.
성공과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것들이다.
이강진은 이것들을 황민수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전수해줬 다.
멍한 표정으로 이강진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던 황민수는 신 기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너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냐?"
"알바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들은 것도 많아지더라고요. 그걸 토대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본인의 경험이었으나, 황민수에게 회귀를 통해서 얻은 경험 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황민수는 취기로 인해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수차례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래. 강진이, 네 말이 맞다. 내가 독해져야지."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방금처럼 찌라시 같은 거 들어오면 언제든 저한테 물어보시고요. 제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 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들을 여기저기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되니까 저한테 꼭 말씀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내가 너하고 네 어머니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 냐! 하하하!"
이강진 모자를 향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황민수가 지금의 자 리에 올라서기까지 두 사람의 도움이 상당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강진은 또 하나의 미뤄 둔 숙제를 황민 수가 어디까지 진행시켰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우리 어머 니하고는 잘되어 가고 있나요?"
"가게 업무 말하는 거냐?"
"아니요."
이강진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만 들었다.
바로 손가락 하트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건데, 아저씨도 이게 뭔 지 아시죠?"
바라 식당은 젊은층도 많이 오는 식당이다. 이강진은 그곳에 서 잠시 서빙 알바를 할 때, 황민수가 같이 사진 찍기를 원하는 손님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황민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 잘되기는! 그런 거 물어보지 마라! 어흠!"
"아저씨, 제가 방금 말씀드렸죠? 언제든 저한테 물어보시라고 요. 혹시 모르잖아요? 아까처럼 아저씨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지도."
숫기가 많은 황민수.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호탕한 모습이었 다가도 연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금세 이렇게 조용해진다.
"수요일마다 쉬신다면서요?"
"어? 어…… 호만이가 잘해 주고 있어서, 하루 정도는 주방을 호만이에게 맡겨도 될 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더라. 그래서 손님이 그나마 적은 수요일에 조금씩 맡겨 보고 있지."
"잘됐네요. 그럼 수요일날 두 분이서 같이 데이트라도 해보시는 건 어때요?"
"데, 데이트?"
황민수는 기겁을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강진의 어머니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먼저 이성에게 데이트 제안 같은 걸 거의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럴 기회는 더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강진은 매번 집과 식당만 왕복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보 였다.
이제 아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 달라고 말했다. 하나그럴 때마다 그의 어머 니는 아들을 위한 삶 이 나를 위한 삶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 아들의 마음도 있는 법이다.
"아저씨가 먼저 용기를 내시면 돼요.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요. 아저씨가 먼저 걸음을 떼야 해요. 그렇게 해야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 테니까요."
황민수의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그도 이강진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테이블에 소주병이 수북하게 쌓였다.
깊은 숨을 내쉰 황민수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내가 먼저 용기를 내야겠지. 네 어머니가 보여준 용기 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미영 씨한 테 모든 걸 기대하기만 살 수는 없으니까."
결심이 굳었다.
과연 이강진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분섭이처럼만 안 됐으면 좋겠는데.'
레드 라이트는 이제 지겹다.
슬슬 그린 라이트도 좀 구경해보고 싶었다.
* * *
작년에 들렀던 차량 판매 매장에 다시 들리게 된 이강진. 그를 보자마자 남자 직원이 환한 얼굴로 이강진을 맞이했다. 이강진도 직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뒤에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제 차는 어디 있나요?"
차가 출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장을 방문했다.
직원은 시원스런 미소를 선보이 면서 이강진을 밖으로 안내했다.
"여기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옵션은 다 달았고요. 아, 2~3일 동안은 가급적 창문은 내리지 마세요. 코팅을 급하게 했거든요."
이강진의 휴가에 맞춰서 차를 출고해 주느라 여러모로 작업을 서둘러야만 했었다.
그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차 키를 건네받은 이강진은 능숙한 솜씨로 운전대를 돌렸다.
익숙한 차의 배기음.
이강진은 차를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비싼 차는 달라."
회귀 이전에 주식으로 돈 좀 만졌을 때 많은 외제차를 몰고 다녔었던 이강진.
그때의 기분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이 기분.
하지만 과거의 이강진은 지금의 기분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나 이 번에는 달랐다.
"두 번의 실수는 없지."
또다시 회귀 트럭을 찾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휴가 3일 차.
앞으로 이강진의 발이 되어 줄 차량을 집까지 데리고 오긴 했지만, 당분간 쓸모가 없었다.
'혼자서 드라이브라도 가 볼까?' 하고 생각해 봤으나 혼자 이 곳저곳 돌아다니는 건 이강진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행복이라도 데려갈까?"
이런 생각을 해 볼 무렵이었다.
이강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한지윤의 번호가 액정 화면에 새겨졌다.
"어흠!"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지윤 씨. 접 니다."
-강진 씨, 휴가 나오셨다면서요? 저번에 매니저 언니가 강진 씨한테 전화 왔었다고 해서 나중에 제가 따로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 부대에 전화해 보니까 휴가 나가고 안 계신다고 하더라 고요.
"아, 네. 이틀 전에 나왔습니다."
예전에 휴가를 나올 때에는 한지윤에게 휴가 기간을 먼저 말 해 주곤 했었지만, 이번에는 연락이 잘 안 됐다. 그러다보니 그 녀에게 말없이 이렇게 휴가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휴가는 언제까지예요?
"다음 주 월요일까지입 니다."
-그럼 내일 시간 내 주실 수 있나요? 모레도 괜찮아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가요?"
질문을 하면서 한편으론 설렘을 느꼈다.
한지윤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그 이유를 말해줬다.
-제가 출연하는 파트는 촬영이 다 끝나서요. 오래간만에 휴가 받았는데, 집에만 있기도 뭣 하고 해서 오랜만에 바라 식당에 한 번 들러 보려고요. 생각해 보니까 식당이 확장 이전한 다음에 저, 거기에 한 번도 안 가 봤더라고요.
바라 식당이 방송을 타기 전에 딱 한 번 가게에 들렀던 적이 있는 한지윤.
하나 그 이후는 한지윤이 말했던 대로 연예계 활동 때문에 바빠서 들리지 못했다.
-오랜만에 사장님이 만들어 주신 음식 먹을 겸, 강진 씨 어머 님도 뵙고 싶어져서요.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이강진의 어머니는 한지윤의 열성팬이다. 그녀가 출연하는 드 라마는 죄다 챙겨 볼 정도다.
볼 때마다 '어쩜 저리 참할까.'라고 매번 말을 흘렸다.
그 참한 처자가 직접 온다는데, 싫어할 리가 있겠나.
한지윤이 온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이강진의 어머니는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 내려고 할 것이다.
"그럼 제가 아저씨하고 어머니한테 미리 말씀드릴게요. 모레 쯤 오시면 될 겁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그때 봬요, 강진 씨.
갑작스런 일정.
하지만 이강진이 원하던 상황이기도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이 강진과 한지윤.
점심 때 바라 식당에 들러서 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한지윤을 알아볼까 봐 일부러 이른 시간에 약속을 잡게 되었다.
이강진은 새로 뽑은 차에 올라탔다.
조용한 주택가에 스포츠카의 강렬한 배기음이 울려 퍼졌다.
운전대를 잡은 이강진은 씨익 웃었다.
"드디어 네가 활약할 때가 왔구나."
마치 이강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차량은 다시 한번 우렁 찬 배기음을 들려줬다.
< 제67화. 일탈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