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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15화 (215/347)

< 제68화. 미묘한 관계 (1) >

제68화. 미묘한 관계 (1)

대한민국 남성들은 보통 20살에서 23살 사이에 입대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하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입대를 늦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은석도 그중 한 명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바로 언론 쪽 일을 시작하게 된 조은석.

28세까지 일을 하다가 더 이상 군대 문제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늦은 나이에 입대를 결정짓게 되었다.

난생 처음 받은 훈련은 생각보다 많이 고달팠다.

애초에 조은석은 운동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기자 일을 하다 보니 야근은 필수였고, 불규칙한 생활 패턴 덕분에 운동은 꿈도 못 꿨다.

그랬던 그가 신병 교육대에서 처음으로 훈련을 받게 되었으 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한때 탈영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나 자신보다 한참 아래인 동생들도 군말 없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고 조은석은 악으로 버텼다.

결국 무사히 이등병 계급장을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신병 교육대 퇴소 당일.

조은석은 정들었던 동기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꼭 연락해야 해, 형!"

"휴가 맞춰서 우리끼리 술 한잔해야지!"

"다들 내가 전화번호 적어 준 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라!"

"우리 먼저 간다!"

1075대대로 배치받게 된 이등병들이 두돈반에 탑승했다.

신병 교육대 차량이나, 자대 차량이나 승차감이 거지 같은 건 동일했다.

밖을 내다보면서 풍경을 즐기는 조은석.

'가만 있어 보자, 1075대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은데?'

처음에 1075대대라고 적혀 있는 쪽지를 받았을 때부터 낯설 지 않은 느낌이 그를 엄습했다.

들어 본 거 같은 숫자 배열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들어 봤더라?'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이 예전에 설정해 둔 네 자리 비밀번호 숫자 배열인가?

그건 또 아니었다.

'옛날 사무실 비밀 번호? 선배 노트북 패스워드? 모르겠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1075.

마침내 대대 위병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은석이 받은 1075대대의 첫 인상은 간단했다.

'완전 산골짜기에 있는 부대네.'

보이는 거라곤 온통 초록색과 하늘색, 갈색뿐.

이곳에서 자신의 마지막 20대를 불태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차가 정차하자, 선탑자로 탑승했던 하사가 뒤에 탄 이등병들을 재촉했다.

"짐 챙기고 하차해라. 하차!"

"하차!"

복명복창하며 아래로 뛰어내리는 이등병들.

낯선 풍경에 이등병들은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사의 인솔에 따라 이들은 인사과로 향했다.

많은 인원들이 인사과를 가득 채웠다. 인사 장교는 이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 시기에 이렇게 많은 신병들이 올 줄이야. 하긴 우리 부대 에 신병이 너무 안 오긴 했었지. 아무튼 환영한다, 애들아. 가서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은 담배 피우고, 통화하고 싶은 사람은 인사과 나가서 오른쪽에 보면 전화박스 하나 있으니까 가서 가족 들한테 목소리라도 들려줘라."

"그, 그래도 됩 니까!"

신병 교육대에서 통제되었던 담배와 전화를 이 렇게 손쉽게 허 락받으니 믿기지가 않았다.

인사 장교는 너 털웃음을 흘렸다.

이들의 반응이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녀석들아. 담배 없지? 내가 줄 테니까 흡연자들 거수해 봐라."

거의 3분의 1가량이 손을 들었다. 조은석도 흡연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직업 특성상 생활 패턴이 일정치 않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 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연스럽게 담배 를 접하게 되었다.

기자 생활을 할 때에는 담배와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건만. 신 병 교육대에선 커피는커녕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어서 미칠 뻔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자대는 신병 교육대만큼 모든 걸 통제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물론 통제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부대가 털렸다거나, 아니면 병사 몇몇이 간부의 심기를 건드렸거나.

하나 이들이 전입 은 타이밍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인사과에서 나오자마자 담배를 입에 문 조은석은 길게 연기 를 뿜어냈다.

"바로 이 맛이지."

오랜만에 느끼는 담배 맛에 황홀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동기 중 한 명이 조은석의 반응을 보면서 웃었다.

"하하! 은석이 형, 신교대에서 담배 어떻게 참았어요?"

"몰라. 어떻게 하다 보니까 참아지긴 참아지더라."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것이 군인 정신이었다.

안 될 줄 알았던 것도 강제로 가능하게 만든 곳. 군대의 힘에 조은석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까 인사 장교님이 전화도 해도 된다고 했었지?"

"네. 전화하시게요? 카드, 저한테 있는데."

인사 장교가 전화하라고 준 카드였다.

"어, 줘 봐. 전화 좀 하고 와야겠어."

"여기요."

"땡큐, 금방 끝내고 다시 돌려줄게."

가족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들이 늦은 나이에 입대하게 되었으니, 다른 부모들보다 더 걱정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뭐…… 이 시간대면 집에 아무도 없을 때니까."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대게 빈 집이 된다.

가족들의 개인 폰으로 전화를 걸어도 여전히 받질 않았다.

"다른 사람한테 전화해 볼까?"

친구들한테도 연락을 해 봤지만, 전화를 받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 녀석들, 설마 내 전화인거 알고서도 안 받는 건 아니겠지?"

귀찮다는 핑계로 안 받을 수도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할까.

모처럼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는데, 아무하 고도 연락을 못 하고 돌아가는 건 너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선배한테 연락해 봐야지."

조은석과 같은 언론 매체에서 일하는 남자, 서형면에게 전화 를 걸어 보기로 했다.

같이 일한 지는 이제 3년이 되어 간다. 신인으로 들어왔던 조은석의 사수가 바로 서형면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와 부쩍 친 해지게 되었다.

직업 특성상 서형면은 모르는 전화가 언제, 어느 때에 걸려 와 도 바로 받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보세요.

"선배님! 접니다!"

-응? 혹시… … 은석이냐?

"네, 맞아요!"

수십 통의 도전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그 기쁨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벌써 자대 배치됐어?

"네, 오늘 신교대 퇴소하고 방금 막 자대로 왔어요."

-시간 참 빠르네. 엊그제 너 입대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벌써 자대 입대라니. 거참, 그래서 자대는 어디냐? 최전방으로 끌려 가거나 그러진 않았지?

"최전방은 아닌데, 전방 쪽에 위치한 건 맞아요. 1075대대라 고 하는데……."

아까부터 자꾸 낯이 익은 숫자 배열을 가진 대대였다.

-뭐? 1075라고?

"네, 선배님은 아세요?"

혹시 서형면이 1075대대 줄신이라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인마! 1075대대, 거기잖아! KGE 리더, 태강이 있는 곳!

"……아!"

이제야 조은석을 여태껏 괴롭히던 미스터리가 풀렸다.

어쩐지 1075대대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하게 느껴진다 싶었-이 자식 보너라? 명색이 기자라고 천운이 따라주네. 태강과 같 은 부대에 배치되고 말이야. 연예 담당 기자들이 아주 좋아하겠 구먼조은석은 연예계 쪽 담당은 아니었다. 첫 입사 때에는 연예계 관련 소식들을 다루는 일을 했었지만, 지금은 경제와 정치 쪽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었다.

만약 조은석이 아직도 연예계 담당 기자였더라면, 1075대대 에 태강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태강이 어느 중대였죠?"

-1 중대였을 거야.

"1 중대라……."

-그곳에 배치되면, 너 완전 대박치는 거다. 그 잘나가는 아이 돌, 태강의 군 생활을 아주 상세하게 기사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유일해지는 거야!

특좋을 독점할 수 있다!

기자로서 구미가 당기는 멘트였다.

태강의 소식은 수요가 상당히 많은 죽에 속한다. KGE 자체가 워낙 인기가 많은 그룹인 데다가 팬들도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진짜 내게 운이 따라주긴 하나 보네.' 대신 단점이 있었다.

'군대에 와서도 기자 일을 해야 하다니. 어이가 없긴 하네.'

강제로 워커홀릭이 되어 버렸다.

서형면은 조은석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중대로 가라고. 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도I나.'

첫 입대를 시작으로 신교대 생활까지.

그동안 군 생활을 겪어 오면서 조은석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 게 되었다.

군대는 개인의 의지나 생각 따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러기 위해서 개성 따위는 개나 줘 버려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그 일을 시켜 주지 않는다. 그냥 손이 비 면 아무나 집어 넣는다. 이게 군대의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1중대로 가겠나.

'그냥 운에 맡겨야겠군.'

확률은 25퍼센트.

그래도 절망적인 확률은 아니었다.

흡연과 전화통화를 마치고 다시 인사과로 돌아온 신병들.

인사과에서 일하던 행정병 하나가 인사 장교에게 물었다.

"인사 장교님, 저번처럼 중대에서 막 간부님들 오셔서 우리 쪽에 신병 더 많이 달라고 기 싸움하기 전에 미리 신병들 분배해 두는 게 좋지 않습니까?"

신병이 들어올 때마다 펼쳐지는 중대간의 기 싸움 때문에 인사 장교도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미리 분배해 버린다면 소용없지 않을까?

"그래야겠다. 어디 보자, 이걸 어떻게 분배한담……."

귀찮음이 몰려온 모양인지 인사 장교는 그냥 랜덤으로 배치 하기로 했다.

"에이,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까."

랜덤 프로그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병들도 인사 장교와 내심 같은 마음이었다.

어느 중대가 좋은지, 나쁜지 이들은 전혀 모른다. 그냥 걸리 면 그곳에 가면 된다. 오히려 그게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은석은 달랐다.

'제발 1중대, 1중대 걸려라!'

결과가 나왔다.

"본부중대부터 호명할 테니까 본인이 어디 소속인지 잘 기억 해 둬라."

"예, 알겠습니다!"

차례차례로 병사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인사 장교.

다행스럽게도 본부중대에는 조은석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다음, 1중대."

드디어 대망의 1중대다!

계속해서 인사 장교가 병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왜 내 이름은 안 나오지?'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조은석은 아직도 불리지 않은 상태였

"1 중대는 이것으로 끝."

실패했다!

한숨을 깊게 내쉬는 조은석.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태강의 기사를 써 오라는 선배들의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안심하던 찰나에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아, 미안, 한 명 빼먹었네. 조은석."

"이병 조은석!"

인사 장교가 조은석을 가리켰다.

"너도 1중대다."

1중대에 당첨된 것만으로도 감지 덕지한데, 태강과 같은 분대로 지정되었다.

조은석은 태강을 슬쩍 바라봤다.

태강은 아직 조은석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내가 기자라는 거 밝히지 말아야지.'

그래야 정보 얻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백우호가 다가와 조은석에게 물었다.

"너, 사회에서 뭐 하다가 왔……."

말을 이어 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생활관 문이 열리면서 이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은석은 이강진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국민 영웅께서도 납셨군.' 특종감들이 한 자리에 몰려든 셈이었다.

한편 휴가에서 막 복귀한 이강진은 조은석을 말없이 내려다 봤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거기서 압박을 느낀 조은석은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혹시 이강진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건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발생했다.

그 순간 백우호가 기습적으로 아까 했던 질문을 마저 꺼냈다.

"사회에서 뭐 하다 왔다고 했지?"

그때 조은석은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기자 하다 왔습니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 러내고 만 것이다.

'조은석, 이 미친놈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으나, 불행하기도 이 자리에 회귀 트럭 은 없었다.

< 제68화. 미묘한 관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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