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9화 돌아온 제초의 계절 (2) >
제69화. 돌아온 제초의 계절 (2)
낫을 가지고 줄기를 자르면 편하겠지만, 그러면 비가 오는 즉 시 다시 금세 풀이 자라 버 린다.
뿌리까지 확실하게 뽑아야 한다. 그래야 이 귀찮고 짜증 나는 제초 작업을 두 번 반복하지 않게 된다.
"엇차!"
코팅된 목장갑으로 허리까지 올라온 돼지풀을 뽑아내는 이강 진.
"뿌리를 뽑는데 무슨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네."
그만큼 돼지풀이 상당히 억세게 자랐다.
성태강 이상 되는 병사들은 그래도 비교적 손쉽게 제초 작업 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밑에 막내 라인 3인방은 풀 때문에 때 아닌 곤혹을 치루는 중이었다.
"이 망할 놈의 벌레들!"
최영고가 손을 휘저으면서 달라붙으려는 벌레들을 ?으려 했다.
그중에서 가장 귀찮은 게 바로 모기였다.
산속에 모기가 왜 이리도 많은지 팔에만 벌써 대여섯 방을 맞 았다.
긴팔을 입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기들은 옷을 뚫어 버릴 정 도로 강한 집착을 보였다. 산에 사는 벌레들은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벌레들에 비해 덩치도 크고 성격도 더럽다.
막내 라인 3인방은 벌써부터 지쳤다.
1분대에서 체력이 가장 약한 조은석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행군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1시간가량을 작업한 끝에 이강진이 휴식 명령을 내렸
"그늘로 이동해서 10분 동안 쉰다. 운상아, 우리 추진해 온 음 료들, 어디다 뒀어?"
"일병 기운상, 저기 나무 아래에다 뒀습니다."
"다들 가서 목 좀 죽여라. 수분도 충분히 보충해 두고. 그늘 밑 에서 열도 좀 식혀 둬. 아직 일해야 할 게 산더미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늘로 이동하자마자 서일주는 곧장 두 다리를 쭉 펴고 그대 로 누워 버렸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엄살 부리는 것치고는 그래도 능숙하게 제초 작업을 해내고 있었다.
역시 짬 클라스가 달랐다.
물론 가장 많은 활약을 펼치는 건 역시 이강진이었다.
그는 쉬는 와중에도 후임들을 챙겼다.
특히 작년 제초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던 후임들을 중점적으로 챙기기로 했다.
"영고야, 모기 많이 물렸냐?"
"이 병 최영고, 잘 모르겠습니다. 막사로 내려가서 확인해 봐 야 몇 방 물렸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모기 물린 곳 가렵다고 막 긁지 마. 그러면 더 부으니까. 은 석이는?"
"저도 많이 물린 거 같긴 한데, 어느 정도 물렸나 감이 잘 안 옵니다."
이강진은 조은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왼쪽 볼에 한 방, 목 아래에 두 방 물렸네."
"헉, 그렇게 많이 물렸습니까?"
"이 정도면 양호지. 아, 그리고 다들 주목해 봐라. 주목."
병사들은 이강진의 말에 '주목!'이라 외치며 그에게 시선을 고 정시 켰다.
"저번에 제초 작업했던 사람들은 알 거다. 작업하던 중에 땅 벌 건드려서 큰일 날 뻔했던 일 말이야. 근처에 땅벌이 있을지 도 모르니까 벌이 한 마리라도 보이는 순간, 그쪽은 피해서 작업해라. 괜히 땅벌 건드렸다가 골로 가지 말고.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제초 작업은 예상 외로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다.
땅벌뿐만 아니라 뱀도 있을 수 있다.
작업하다가 부상을 입는 병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한다.
더위도 무시할 수 없다. 땡볕 아래에서 장시간 동안 작업을 하 다가 더위를 먹으면 며칠 동안 고생하게 된다.
풀만 뽑는 간단한 작업이라고 오인하면 큰일이다. 제초 작업 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 다시 작업 시작해 보자."
"예!"
풀과의 전쟁, 2차전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풀만 뽑고 돌아온 병사들은 일과 시간이 끝나자마 자 그대로 생활관에 뻗어 버 렸다.
사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도 아프고, 피부도 따갑고. 모기 때문에 가렵기도 하고. 이중고가 아니라 오중고, 육중고 정도 되는 듯했다.
1분대원들이 축 늘어져 있는 와중에 오늘 당직사관인 통신반 장이 생활관을 찾았다.
"충성!"
이강진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고생했다, 애들아. 오늘은 저녁에 터치 안 할 테니까 푹 쉬어 둬라. 그래야 내일도 힘내서 작업하지. 환자는 분대장이 조 사해서 나한테 보고하고, 바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해라."
"예, 알겠습니다. 충성!"
"그래, 충성."
진지 공사 주간에는 웬만해선 간부들이 병사들을 터치하지 않 으려고 한다.
안 그래도 일과 시간에 개고생을 하고 왔는데, 자유 시간까지 빼앗아 가면 얼마나 힘들까.
쉴 수 있을 때 쉬어 두는 게 좋다. 이들은 군인이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니 말이다.
이강진은 통신반장이 말했던 대로 환자들을 조사했다.
다행히 1분대는 큰 병세를 가진 환자가 없었다.
하나 다른 분대는 달랐다.
행정반으로 들어선 이강진은 3분대 분대장에게 이런 이야기 를 전해 듣게 되었다.
"민석이가 또 사고 쳤다."
"무슨 사고입니까?"
"글쎄, 그 녀석이 제초 작업하다가 버섯을 발견했나 보더. '이거, 먹어도 괜찮은 버섯입니다. 맛있는 겁니다.' 하고 그냥 먹었다가 지금 의무대로 실려 갔다."
황당한 일이었다.
3분대 분대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거나 주워서 먹고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 만. 강진아, 너는 애들한테 단단히 일러 둬. 버섯 같은 거 절대로 먹고 다니지 말라고. 산삼이 보여도 못 먹게 해. 삼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초 작업할 때 땅벌하고 벌레 그리고 '캠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건만.
설마 버섯이 추가될 줄은 몰랐다.
* * *
제초 작업 2일 차.
오늘은 목진지 제초 작업을 하는 날이다.
부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목진지로 배정을 받게 된 1분대 원들.
오늘은 부소대장도 함께였다.
내리쬐는 땡볕. 부소대장은 병사들에게 '후딱 작업 마무리하고 들어가자!'라고 그들을 독려했다.
부소대장이 구태여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1분대원들은 최대 한 빠르게 제초 작업을 끝낼 생각이었다.
제초 작업에 한창 몰두할 때였다.
갑자기 최영고가 비명을 질렀다.
"배, 뱀입니다!"
병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멧돼지, 뱀 같은 걸 굉장히 싫어하는 1부소대장은 기겁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1분대에는 스네이크 헌터, 이강진이 있었다.
이강진은 혹시 몰라서 미리 챙겨 둔 나뭇가지를 가져왔다. 끝 이 Y자 형태로 되어 있는 튼튼한 나뭇가지였다.
"떨어져 있어라."
"조심하십시오, 이강진 상병님!"
"강진아, 그냥 놔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다가 괜히 너 물리 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동기가 걱정되는 모양인지 백우호가 못 본 척하자는 말을 꺼 내 봤다.
그러나 이강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녀석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험해. 언제 또 우리 쪽으로 올지 모르니까."
그전에 미리 처리해 두는 게 좋아 보였다.
나뭇가지 끝으로 뱀의 머리를 제압한 이강진. 손으로 직접 머리를 잡은 후에 산 아래쪽으로 '휙!' 하고 던져 버렸다. 이강진의 뱀 처리 능력은 언제 봐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부소대장은 병력에게 산 위쪽을 가리켰다.
"강진이가 아래쪽에 뱀 던져뒀으니까, 소변 볼 일 있으면 아 래쪽 말고 위쪽에서 보고 와라."
병사들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불안 속에서 모든 작업을 마무리지은 병사들.
목진지 지역에서 벗어나 작은 산을 가로질러 도로 쪽으로 내 려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멀리서 떨어져 걷던 서일주가 부소대장을 불렀다.
"부소대 장님!"
"왜, 또 뱀이 라도 나왔냐?"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애들아, 너희도 빨리 와 봐!"
대체 뭔 일이기에 저렁게 다급하게 부르는 걸까.
서일주가 있는 곳까지 산을 올랐다.
"무슨 일입니까, 서일주 병장님?"
"강진아, 마침 잘 왔다. 저기, 저쪽 봐 봐!"
세 갈래에서 다섯 갈래로 갈라진 잎줄기들을 가진 풀.
그것은 바로…….
"산삼 아닙니까?"
"그래, 맞아!"
토요일 오후. 그때 이강진과 서일주는 티비에서 방영되던 모 프로그램을 같이 시청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산삼 찾기의 달인'이라는 아저씨가 나와서 이러이러 한 것들은 산삼 잎이니까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조언을 해준 적 이 있었다.
그 아저씨가 알려 준 것과 동일한 잎이었다.
파 보면 확실하게 산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멋대로 산삼을 캘 순 없었다.
"누가 심어 둔 것일지도 모르니까 이건 그냥 놔두고 가시지 말입니다."
"산삼인데? 이걸 보고도 모른 척하자고?"
"남의 물건 건드리면 오히려 더 큰일 납니다. 민원 들어오면 부대 뒤집어지는 거, 시간문제지 않습니까."
군부대 주변이라면 안심할 수 있지만, 이곳은 부대가 있는 곳 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어쩌면 민간인이 소유한 지역일 수도 있다.
서일주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가 주인이 없는 지역일 수도 있잖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할까, 하지 말까 하는 생각 이 들면 안 하는 게 낫다. 그러면 중간이라도 가기 때문이다.
부소대장도 이강진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 민원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이건 놔두자."
"아까운데……."
입맛을 다시는 서일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막 캔 산삼을 먹을 기회가 올까?
그런 서일주에게 이강진은 어제 들었던 사건을 이야기해줬
"민석이가 버섯 먹고 실려 간 거, 서일주 병장님도 아시지 않 습니까. 산삼이 아니면 말년을 병원에서 보낼지도 모릅니다."
그건 싫었다.
결국 서일주는 이강진의 말대로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부소대장이 건드리지 말라고 한 시점부터 게임은 끝 난 셈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오는 이들.
제초 작업을 하다가 산삼도 보고.
오늘은 왠지 운이 좋을 것 같았다.
* * *
제초 작업을 끝내고 막사로 돌아온 병사들.
그날 저녁, 이강진은 볼일이 있어서 행정반을 찾게 되었다.
때마침 행정반 난로에 불을 피운 채 주전자를 올려놓는 행보 관과 딱 마주쳤다.
"충성! 행보관님, 그게 뭡니까?"
"아, 이거 말이냐? 마침 잘 왔다. 이거 한 잔 마셔라."
행보관이 이강진에게 주전자 안에 담긴 내용물을 건넸다. 음료에 약간의 황금색이 감돌았다.
"산삼차다. 귀한 거니까 쭉 들이켜라."
산삼!
이강진은 설마 하며 물었다.
"삼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너희가 오늘 작업했던 곳 근처에서 구했다. 목진지 가는 길 에 작은 산들이 많이 있거든."
그렇다면 이강진이 봤던 그 산삼들이 맞다.
"마음대로 캐오셔도 되는 겁니까? 그러다가 민원이라도 들어 오면……."
"허허, 걱정 마라."
행보관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 일대 산들은 주임원사님 친척들 땅이거든. 주임원사님도 가다가 산삼 보이면 몇 뿌리 캐서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 니까 마음 편히 마셔라."
이강진이 몰랐던 속사정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캐올 걸.'
몇 뿌리는 행보관 주고, 몇 뿌리는 이강진이 몰래 챙기면 됐 을지도 모를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이렇게 좋은 차를 대접받게 되었으니 여기에 만족하기 로 했다.
< 제69화. 돌아온 제초의 계절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