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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22화 (222/347)

< 제70화. 마지막 유격 (2) >

제70화 마지막 유격 (2)

이른 아침에 눈을 뜬 병사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바로 유격 훈련이 시작된다.

유격 첫 날은 유일하게 이들에게 익숙한 대대 식당에서 아침을 치르는 날이다.

입소 행군이 머지않아 기다리고 있다는 점 때문일까.

병사들의 입맛은 이미 뚝 떨어져 있었다.

안 그래도 입맛도 없는데, 아침 메뉴도 최악이었다.

서일주가 가장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딴 걸 먹이고 나라를 지키라니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짬밥 문제야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강진은 이제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마침 어제 행정반에서 건빵 돌렸는데, 건플레이크 좀 드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 됐어. 아침에 우유 먹으면 행군하다가 똥 마려울지도 모르니까. 그냥 참을랜다."

대변을 참은 채 행군을 하느니, 자라리 그냥 배고픈 상태가 더 나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 병사들은 유격장으로 미리 보낼 의류대들을 두돈반 뒤에 실었다.

1분대원들은 미리 추진해 놓은 것들도 의류대에 짱박아 뒀다. 선발대로 먼저 유격장에 가게 된 인원들이 그 위에 올라탔다. 행보관이 마지막으로 선발대가 출발하기 전에 준비가 다 끝 났는지 직접 확인했다.

"오케이. 진철아, 시동 걸어라. 출발한다."

"예, 알겠습니다!"

선탑자에 오르기 전에 행보관은 중대장과 짧게 말을 주고받 았다.

이후에 행보관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날렵하게 선탑자 자리 에 올라탔다.

부르르릉!

엄청난 배기음을 들려주면서 이동하기 시작하는 두돈반 차량. 병사들은 먼저 떠나는 선발대를 부럽 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들은 입소 행군을 안 해도 된다. 대신 유격장에 먼저 도착 해서 행보관과 같이 병사들이 머물 텐트들을 일일이 다 쳐 둬야 한다.

뭐든 쉬운 일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9시간 가까이 행군하 는 것보단 가서 텐트를 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전 9시.

1중대 병사들은 대대 연병장으로 출발했다.

연병장엔 본부중대, 2중대, 3중대 인원들이 미리 도착해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1중대가 합류함으로 인해 1075대대 완전체가 갖춰졌다. 단상에 오른 대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이들을 쭉 훑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4박 5일간 유격 훈련이 시작된다. 거두절미하고 딱 세 가지만 기억한다. 첫째! 아무런 사고 없이. 둘째! 군 인답게. 그리고 마지막 셋째! 열외 없이! 대대장이 방금 한 말, 복명복창한다. 실시!"

"첫째! 아무런 사고 없이! 둘째! 군인답게! 셋째! 열외 없이!"

대대장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기가 막히게 잘 모아 뒀다.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짓는 대대장.

"본부중대부터 출발하도록."

"예!"

이제는 법칙처럼 되어 버린 '행군은 본부중대부터 출발'이 이 번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행군을 나서기 전, 이강진은 후임들을 격려했다.

"입소 행군이라고 해 봤자 저번에 우리가 했던 주간 행군하고 별 차이 없다. 겁먹지 말고 자신감 있게 임하도록 해.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백우호가 없었기 때문에 이강진은 부분대장 역할을 일시적으 로 기운상에게 맡겼다.

"운상아, 네가뒤에서 걸어라. 보다가 뒤처지거나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인다 싶은 애들 있으면 나한테 바로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기운상도 이제는 제법 믿음직스러워졌다.

이강진이 전역하면, 기운상이 그 뒤를 이어서 분대장을 달게 된다. 그전에 미리 이강진에게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소장의 아들, 기운상은 이강진의 명령을 받고 1분대 뒤쪽으로 이동했다.

이강진은 앞장서면서 분대원들을 이끌었다.

"1 중대, 파이 팅!"

"파이팅!"

드디어 4박 5일 지옥행의 첫 관문인 유격 입소 행군이 시작되 었다.

지난 여름이 비와의 전쟁이었다면, 이번 여름은 더위와의 전 쟁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로 내리쬐는 햇볕이 병사들을 괴롭혔다.

"더워 죽겠네……!"

"씨발, 벌써 땀난다."

행군이 시작된 지 1시간이 채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 터 끙끙 앓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더위 앞에선 병사들도, 간부들도 모두가 다 평등했 다.

지금 당장 완전군장을 벗어젖히고 옆에 있는 시원한 강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대신 선임들에게 죽도록 갈굼받겠지만 말이다.

강물을 따라가다 보니 쉬는 구간이 나왔다.

"10분간 휴식한다, 전체 탈모!"

"탈모!"

방탄모를 벗자, 안에서 맴돌던 열기가 공기 중으로 빠르게 흩 어 졌다.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이강진은 분대원들을 일일이 챙겼다.

"전투화 벗고 발 말려. 입소 행군 때 물집 잡히면 4박 5일 동 안 개고생 하니까 물집 안 생기도록 주의해라."

"예, 알겠습니다!"

게다가 유격 훈련이 끝나면 복귀 행군까지 해야 한다.

입소 행군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치면 큰일이다.

1분대에서 현재 가장 불안한 조은석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은석아, 발은 좀 어때?"

"이병 조은석! 주간 행군 때 굳은살이 많이 잡힌 덕분에 아직 은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점점 이런 식으로 강철 발바닥이 완성되는 것이다.

짧은 쉬는 시간을 끝낸 뒤에 이들은 다시 완전군장을 짊어졌 다.

아직 갈 길이 멀다.

* * *

점심은 간단하게 전투 식량으로 해결한 병사들.

주간 행군은 야간 행군 때와 다르게 잠과의 싸움이 없다. 대 신 여름이라 그런지 심하게 더웠다. 이점만 빼면 나름 할 만했 다.

하나 아직 위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행군 7시간째.

드디어 그 코스가 병사들 앞에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유격 입소 행군의 마지막 시련.

지옥의 오르막길!

말로만 들었지, 두 눈으로 직접 유격장 오르막길을 본 후임들 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경사도 심한데, 바로 옆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낭떠러지 인 데다가 바닥은 자갈투성이었다.

한순간 방심했다가 발이라도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최소 중 상이다.

최영고는 기겁을 하면서 이강진에게 물었다.

"이, 이강진 상병님! 정말로 여기를 올라가는 겁니까?"

그의 대답은 매우 짧았다.

"어."

선두 라인이 마치 이강진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강진은 이 오르막길만 4번째다. 네 번이나 보다 보니 이제 는 봐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또 너구나.' 하는 느 낌만 들었다.

경사가 심한데다가 자갈밭이다 보니 오르는 게 영 쉽지 않았다.

유격장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능숙하지 않은 후임급들은 발이 미끄러지거나 몸이 크게 기우뚱하는 등 아찔한 상황이 많이 연 줄되 었다.

그 덕분에 행군 속도가 굉장히 더뎠다.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1시간이 흐른 뒤 예정대로 이곳에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10분간 휴식! 옆에 낭떠러지 니까 안쪽으로 붙어서 휴식해라!"

"예!"

간부들의 통제에 따라 병사들은 좌로 밀착했다.

자신이 태어난 해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에 제조된 수통의 물 맛을 느끼는 병사들.

이강진은 1시간만 행군하면 유격장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알 기에 남은 물들을 전부 소진하기로 했다.

방탄모를 벗고 그 위에 수통의 물을 쏟아부었다.

쏴아아아!

시원한 물줄기가 더위로 인해 달아오른 이강진의 머리를 식 혔다.

"이제야 살 거 같네."

밖으로 삐져나온 군번줄을 다시 안으로 집어 넣은 이강진은 거 의 그로기 상태에 접어든 후임들을 살폈다.

"애들아, 힘들지?"

-……예, 죽겠습니다……."

웬만하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그런 패기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성태강이 가장 멀쩡했다.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이 행군이 더 빡센 거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이건 예능이 아니라 리얼이니까."

예능에서 나름 온갖 것들을 다 경험해 온 성태강조차 혀를 내 둘렀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된다.

"거의 다 왔으니까 힘내자. 1시간만 더 걸으면 돼. 이다음에는 샤워하고 푹 쉬기만 하면 된다. 자, 일어서."

휴식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이강진은 분대원들을 다시 일으 켜 세웠다.

또다시 지옥 같은 1시간을 보내게 된 병사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유격장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입구에는 작년과 동일하게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줄을 선 채 박수를 치면서 병사들을 반겼다.

짝, 짝, 짝.

기계 같은 박수 소리였다.

분명 환영 인사일 텐데, 조교들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 다.

그들이 뿜어 대는 이질감에 병사들은 몸서리를 쳤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과 다를 바 없었다.

그중에서 아는 얼굴이 보였다.

이강진의 동기, 백우호였다.

이강진은 백우호를 스윽 쳐다봤다. 특별히 말을 건네거나 하 진 않았다. 어차피 대답은 안 할 테니까.

눈빛 교환만으로도 충분했다.

표정은 굳어 있었으나.

눈빛은 평소의 백우호 그대로였다.

이강진은 씩 웃었다.

과연 백우호의 정체는 악마일지, 아니면 천사일지.

그건 곧 밝혀질 것이다.

복귀하자마자 병사들은 소총부터 먼저 거치를 해 뒀다. 그 뒤에 완전군장들을 텐트 안에 던져 놓았다. 행보관이 텐트를 돌아다니면서 확성기로 외쳤다.

"밥부터 먼저 먹어라! 그다음에 한 녀석도 남김없이 죄다 샤워해!"

"알겠습니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행보관은 식사 배급과 부대 관리에 더 신 경을 많이 써야 했다.

유격장에서 먹는 짬은 어떨까?

곽분섭이 대표로 소감을 표현했다.

"살기 위해 먹는 기분입니다."

맛도 없고, 배가 고프니까 그냥 먹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맛을 더하려면 추진해 온 먹거리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일주가 최영고를 불렀다.

"영고야, 그거 가져와라."

최영고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잽싸게 텐트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가져온 건 바로 맛다시였다.

여기에 추가 오더를 통해서 참치와 김 가루도 가져왔다.

"예전에 인혁이 형이 해줬던 그거 만들어 봐야지."

봉지 안에 분대원들의 밥을 몰아넣은 서일주는 그 안에 맛다시와 참치, 김가루를 잔뜩 넣었다.

이제 이것들을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새빨간 주먹밥이 탄생했다. 그것들을 분대원들 식판에 차례 차례 올려 뒀다.

"자, 이제 먹자. 애들아!"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이제야 사람다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서일주가 만들어 준 특별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이제 샤워를 하러 갈 차례다.

이강진은 분대원들을 이끌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밑에서 알몸으로 비누칠을 하고 있 는 병사들.

언제 봐도 열악한 환경이다.

이곳의 샤워장을 처음 본 후임들은 또다시 벙어리가 되었다.

하나 망설일 시간은 없다.

이강진이 이들에게 손짓했다.

"가자. 후딱 샤워하고 후딱 자야지."

"예! 아, 알겠습니다!"

샤워라기보다는 그냥 몸에 물을 묻히는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이게 어 딘가.

이들은 살기 위한 식사에 이어 살기 위한 샤워까지 소화해야 만 했다.

< 제70화. 마지막 유격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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