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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23화 (223/347)

< 제70화. 마지막 유격 (3) >

제70화 마지막 유격 (3)

유격의 둘째 날이 밝았다.

새벽 6시에 눈을 뜬 병력은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텐트 앞에 위치한 공터에 집합했다.

작년과 같은 위치였다.

지난 번 유격 훈련을 몸소 체험해 본 적이 있는 선임급들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금 당장 탈줄하고픈 욕망이 솟구쳤지만, 유격 한 번 피하자 고 탈영병으로 낙인찍히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나 죽었소.' 하고 4박 5일을 버텨 내면 된다.

아침 점호는 특이하게 중대장이 직접 실시했다.

"간밤에 다들 잠은 잘 잤나."

"예!"

"좋다! 전체 뒤로 돌앗!"

병사들은 일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전방에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격장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라 그런지 병사들의 목소리는 비교적 쌩쌩했다.

이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 거란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아침 점호는 중대장이 직접 주관하는 만큼 FM으로 진행된다.

국군도수체조를 마친 후에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상의 탈의를 지시했다.

올 게 온 것이다.

"소대장."

"중위 성태원!"

"병력들 인솔해서 구보 뛰고 와."

"예, 알겠습니다."

성태원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렬하게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체 뛰어! 가!"

유격장에서의 구보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다.

작년에 경험한 선임들은 알겠지만, 일단 자잘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너무 많다.

평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이런 길로 디자인을 했는지 병사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유격 훈련을 받으러 온 병사들을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이 런 길을 제작한 게 틀림없다.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소대장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오히려 기운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동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최후의 5분!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군가 가사가 마치 병사들의 지금 상태를 나타내는 듯했다.

병사들의 심정을 어찌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감정이입이 절로 되었다.

그렇게 10분간의 미친 듯한 뜀박질을 끝내고 돌아오자, 병사 들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바지가 땀으로 젖어 병사들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힘겹게 아침 점호를 마친 후, 식사를 진행하기 위해 흰 봉지 를 씌운 식판을 들고 배식 장소로 향했다.

유격장에 설치된 작은 취사반. 그곳에서 취사병들은 대대 병 력의 배를 채울 짬을 만드느라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렸다.

열심히 밥을 만든 이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더럽게 맛없네."

서일주의 말대로 식욕이 뚝 떨어지는 맛이었다.

대대에 있을 때에는 그나마 먹을 만한 맛이었는데, 유격장으 로 오니 그 맛이 뚝 떨어졌다.

밥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많이 열악하다는 건 병사들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들의 혀는 납득하지 못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있다.

"분섭아!"

"일병 곽분섭! 여기, 맛다시 대령했습니다!"

곽분섭은 서일주가 명령을 하달하기도 전에 이미 맛다시를 챙 겨 둔 상태였다.

안 그래도 유격 훈련 때문에 몸도 마음도 고달픈데, 제 대로 먹 지도 못하면 더 힘들지 않겠나.

취사병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들은 맛다시의 힘을 빌리기 로 했다.

* * *

힘겹게 아침을 보낸 병사들은 단독 군장 차림으로 연병장을 향해 이동했다.

오전 9시.

유격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익히 잘 아는 입소식 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냥 선서 한 번 하고, 애국가 부르고, 묵념 하고 그리고 훈시 한번 듣고 대충 이 정도였다.

입소식이 끝난 뒤에 검은색 챙 모자를 쓴 남자가 조교들과 함 께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난 이번 유격 훈련 기간 동안 너희들의 썩어 빠진 정신머리 를 군인답게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선 유격 교관이다."

첫 멘트부터 상당히 강렬했다.

이번에 유격 교관을 맡게 된 사람은 바로 2중대 소대장이었 다. 그는 소대장들 중에서 죄약체라 불릴 정도로 평가가 상당히 안 좋았다.

독기도 없고, 마음도 여리고. 장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대대장은 이번 기회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를 유격 교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반대했다. 1 년에 한 번 있는 대규모 훈련이 엉 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 때문이었다.

하나 대대장은 생각이 달랐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착한 사람이 오히려 성을 내면 더 무섭다고.

대대장은 2중대 소대장에게 독기도 심어 줄 겸 그리고 보다 더 무서운 유격 훈련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서 결국 그에게 검정 교관모를 씌웠다.

그 결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는 게 좋을 거 다. 통제에 따르지 않는 교육생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내가 직접 지옥이 어떤 곳 인지 체험시켜 줄 테니까."

최악의 교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2중대원들은 달라진 소대장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호구 소대장, 줄여서 호대장이라 불리 던 그가 이렇게 변할 줄 은 몰랐던 것이다.

2중대 소대장은 교육생들에게 유격장에서의 기본 규칙을 설 명했다.

"모든 구호는 '악!'으로 통일한다. 교관이 뭐 라고 말을 하든, 대 답은 항상 '악!'이라고 외치도록 해라. 알겠나."

"예……!"

병사들은 무의식적으로 '예!'라는 대답을 해 버리고 말았다.

순간 교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엎드려!"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교관의 목소리에 병사들은 혼란스러웠 다.

처음에는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하고 생각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아직 유격 훈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일단 엎드리고 보는 병사들.

교관의 목소리에 살기가 실렸다.

"하나에 '정신을"둘에 '차리자'.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

"하나!"

"정신을!"

이다음에 둘을 외쳐야 하건만.

2중대 소대장은 일부러 '둘'을 외치지 않았다.

왜냐?

병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다. 다른 목적 따위는 없다.

바들바들 떨리는 교육생들의 팔.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 라도 아래로 내려간 팔굽혀펴기 동작에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는 없다.

그나마 성태강이 오래 버 티고 있었다.

곽분섭은 슬슬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배를 땅에 붙였다. 그 순간.

"교육생, 몸 안 올라옵니까!"

"열외 되고 싶습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습니다!"

빨간색 모자를 쓴 조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곽분섭에게 협 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답은 '악!'으로 통일하라고 했습니다!"

"아, 아아악!"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곽분섭에게 어그로가 끌린 사이에 다른 병사들은 '이때다!' 싶어서 몸을 땅에 밀착시켰다.

유격 훈련은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먼저 걸린 놈이 불쌍한 놈이 된다.

곽분섭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일어서!"

교관이 이 말을 꺼내길 얼마나 기다렸단 말인가.

빛의 속도로 일어서는 병사들. 별거 안 했는데, 이들의 표정 은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돌아 버리겠네!'

'유격이라는 게 이렇게 빡센 거였어?'

하나 본격적인 훈련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제 막 지옥문의 문고리를 잡고 슬쩍 열었을 뿐.

* * *

교관의 괴롭힘은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정말 별거 없었다. 기준을 정하고 헤쳐 모여를 반복한다든지, 잘 안 된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얼차려를 부여한다든지.

이것만 1시간을 반복한 셈이었다.

그래 봤자 아직 오전 10시밖에 안 됐다.

10분간 꿀맛 같은 쉬는 시간을 끝낸 병사들에게 다시 헬 타임 이 펼쳐졌다.

"교육생들에게 유격 훈련의 핵심이자 꽂인 유격 체조를 가르 쳐 주도록 하겠다. 다들 잘 보고 숙지하도록. 알겠나!"

"악!"

"그럼...... 조교 앞으로."

교관의 명령에 두 명의 조교가 단상으로 올라섰다.

그중 한 명은 1중대가 잘 아는 얼굴이었다.

'우호가 저기에 있네.'

이강진은 기분이 참 묘했다.

단상에 올라서서 유격 체조를 선보일 정도면, 그래도 조교들 중에서 나름 괜찮게 훈련을 받았나 보다.

"지금부터 숙달된 조교의 구분 동작과 함께 유격 체조를 교육하도록 하겠다. 우선 1 번부터!"

오랜만에 보는 준비 동작들.

그립다는 느낌보다는 좆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초반 동작은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었다.

유격 체조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동작.

"다음, 8번 온몸비틀기를 알려 주도록 하겠다."

온몸비틀기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선임병들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유격 땐 8번 때문에 여러 명의 교육생들이 뒤로 열외 되 거나 개거품을 물었다.

이번에도 변한 건 없으리라.

"8번 온몸비틀기 준비!"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조교들이 땅바닥에 누웠다. 처음 보는 광경에 후임병들은 '저게 뭐야?' 하는 심정으로 단상을 응시했 다.

다리를 쭉 뻗은 채 왔다 갔다 하는 조교들. 너무나도 손쉽게 해내는 조교들의 모습에 교육생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병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하지만 이 용기의 유효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조교들의 시범이 끝난 후.

이번에는 병사들의 차례다.

교관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다리를 왔다 갔다 하는 교육생 들.

사방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맞춰서 조교들이 교육생들을 갈구는 소리가 하모니로 더해졌다.

이강진은 유격 체조 훈련만 벌써 4번째였다. 본인이 싫어도 몸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병사들에 비해서 그나 마 쉽게 구분 동작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씨발, 개 좆같은 유격!'

그렇다고 유격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 * *

모든 유격 체조 교육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실전뿐.

교관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본격적인 아체조 훈련에 돌 입했다.

"종 열 번!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시작!"

공포의 '마지막 구호 생략' 패턴이 펼쳐졌다.

말하지 말라고 하면 꼭 말하는 사람이 한 명 이상은 존재한다.

이번에도 변함없었다.

"아홉!"

너무나도 당당하게 '열!'이라는 숫자를 외치는 몇몇 교육생들 덕분에 교관은 또다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누가 얼타라고 했어! 너희들이 무슨 금붕어냐! 말하면 3초 이 내로 까먹고 아직 긴장을 덜 했나 보군."

교관은 최악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PT 8번 준비!"

고통의 시간이 펼쳐졌다.

바닥에 누운 이강진은 조교들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적당히 농땡이를 부리기로 했다.

그 순간.

이강진의 사각 지대에서 조교 한 명이 튀어나왔다.

'이런!'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조교는 이강진이 농땡이 피우는 모습을 보고도 모 른 척했다.

빨간 모자 아래에서 보이는 익숙한 얼굴.

백우호. 그가 씨익 웃은 채 이강진을 지나쳤다.

동기 좋다는 게 이런 거 아닌가.

이강진은 그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 제70화. 마지막 유격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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