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0화. 마지막 유격 (4) >
제70화. 마지막 유격 (4)
첫 번째 장애물 훈련에 접어든 1분대원들.
입구에 들어섰을 때, 서일주가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작년에 우리 훈련받을 때 이런 게 있었나?"
서일주가 가리킨 것은 바로 코스 안내 설명판이었다.
설명판 자체는 작년에도 있었다. 그러나 설명판에 난이도 등 급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았었다.
하나 이 번 년도부턴 달랐다.
[통나무 다리 건너기]
[난이도 * *☆☆☆☆]
이강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었습니다."
난이도 표기가 되어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어려운 난이도를 클리어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는 뜻인가?'
물론 이건 이강진의 추즉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별 다섯 개짜리 코스와 별 한 개짜리 코스가 서로 같은 점수 라면 억울하지 않겠나.
난이도가 있는 코스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 유 격왕과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성태강도 이강진과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고개를 작게, 여러 차례 끄덕였다.
조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한 교육생들.
각 장애물마다 조교들이 두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통나무 다리 건너기 코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 장애물 로 말할 거 같으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눈앞에 있는 통나무 를 타고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조교가 다리 밑을 가리켰다.
"실패할 경우, 진흙탕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 두길 바 랍니다."
한눈에 봐도 피부에 엄청 안 좋을 거 같이 생긴 구정물이 밑 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위생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개구리 몇 마리도 보였다.
"씨 발…...
개구리를 싫어하는 모양인지 최영고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 으면서 몸서리를 쳤다.
도시에서 살다가 온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최영고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개구리가 싫다면, 진흙탕에 안 빠지면 된다.
아주 심플한 방법이다.
문제는 말만 쉽다는 것이다.
"우선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고 난 뒤에 교육생들을 한 명 씩 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교 위치로."
"위치로!"
통나무에 올라선 조교.
양팔을 수평으로 '뻗은 그는 경이로운 균형 감각을 뽐내면서 여유롭게 통나무 위를 걸어갔다.
이것만 수십 번은 넘게 했을 것이다. 괜히 '숙달된 조교'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보다시피 아주 쉬운 훈련입니다. 자, 그럼 누가 먼저 해 보겠 습니까?"
먼저 지원자를 받기로 했다.
그때 이강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209번 교육생! 이강진!"
손을 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교육생,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아주 적극적입니다. 태도 점 수 1점 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이것이다.
성태강은 이건 몰랐다는 표정으로 이강진을 바라봤다.
이것이 바로 짬의 차이라는 것이다.
유격 교관과 조교 들은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교육생을 좋아한다.
이강진은 훈련 기간 동안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교육생 이 되기로 했다.
이강진이 통나무다리 위에 올라섰다.
'생각보다 어려운데?'
습도 때문에 그런지 다리가 미끌거렸다.
'저 조교는 용케도 이걸 건넜군.'
조교가 했으면 이강진도 할 수 있다!
성태강에게 말했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말을 몸소 실 천으로 옮겼다.
집중해서 천천히,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반대편에 도착해 있었다.
"도하 끝!"
깔끔한 마무리까지 군더더기가 없었다.
조교들은 교육생들에게 외쳤다.
짝짝짝!
가장 먼저 나서겠다는 용기와 더불어 깔끔하게 장애물을 넘 는 모습까지.
흠잡을 곳이 전혀 없었다.
"209번 교육생,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점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이강진의 선전에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그다음은 성태강이 순 서를 자처했다.
"211 번 교육생 성태강! 이번에는 제가 해 보겠습니다!"
"이번 교육생들은 아주 열의가 넘칩니다. 종습니다. 211 번 교 육생, 위치로 이동합니다. 위치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한 성태강에게 이까짓 장애물 코 스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쉬웠다.
완벽한 솜씨를 뽐낸 성태강.
이강진은 그를 힐끗 노려봤다.
'성태강, 이 녀석………'
호랑이 새끼를 키운 기분이 들었다.
* * *
장애물 훈련을 마지막으로 2일 차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텐트로 돌아온 병사들은 열악하디열악한 유격장 샤워실을 다 시 이용해야만 했다.
작년에 유격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후임병들은 처음엔 샤워실을 보고 현자 타임에 빠졌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지 않은가. 2일 차가 되다 보 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샤워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낯선 남자들과 알몸으로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고 있 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 쪽으로 돌아온 병사들. 텐트로 들어가기 전에 CP텐트에 걸려 있는 근무자 명단표를 살 폈다.
오늘은 1분대원들이 불침번을 서는 날이다.
"이강진 상병님."
조은석이 이강진을 찾았다.
"오늘, 저하고 둘번초 근무십니다."
"둘 번초라……."
야간 근무에서 가장 기피되는 시간대에 딱 걸리고 말았다.
저녁 10시에 누웠다가 1시간 뒤에 바로 일어나서 근무를 서 야 하는 최악의 시간대다.
잠이 안을 경우에는 1시간 동안 뒤척이기만 하다가 바로 근무를 나서야 하는 때도 생긴다.
그러나 유격장에서는 달랐다.
'피곤하니까 잠은 잘 오겠네.' 눕자마자 바로 잠들 자신이 있었다.
그건 조은석도 마찬가지였다.
유격장에서 저녁 점호는 따로 실시하지 않았다. 취침 준비가 끝나면 분대장이 인원 체크하고, CP텐트로 와서 행보관이 나 다른 간부들에게 보고를 하면 된다.
그러면 바로 취침 시작이다.
이강진은 빠르게 1분대원들을 체크했다.
종원 7명.
원래는 여기에 백우호가 추가되어 있어야 했지만, 그는 지금 조교들과 함께 임시 막사에 머물고 있었다.
'매번 같이 있던 녀석이 없으니까 괜히 씁쓸해지네.'
이강진은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 * *
저녁 10시 30분.
유격 조교들은 병사들보다 늦은 시간에 취침을 취하게 되었 다.
유격 훈련 동안 가장 바쁜 사람은 역시 조교들이다. 내일 훈 련에 대비해서 준비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취침 시간이 늦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백우호는 침대에 누우려고 했다가 도중에 포기했다.
잠이 안 와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둘번초인데 자서 뭐하랴."
컵라면이나 하나 먹고 나서 불침번 근무를 서면 될 거 같았다.
그전에 당직사관에게 먼저 허락을 맡아야 한다.
"충성. 상병 백우호,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행정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왜 없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렇지. 한 명은 행정반을 지키고 있어 야 할 거 아닌가.
때마침 백우호와 같이 유격 조교로 뛰게 된 2중대 소속 허민 용 상병이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백우호와 동기였기에 서로 말을 놓고 지내고 있었다.
"어? 우호, 너 왜 안 자고 있냐?"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던 허 민용은 후번 근무자인 백우호가 벌써 일어나 있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아니, 30분밖에 안 남았기에 그냥 라면 하나 먹고 적당히 시 간 좀 보내다가 근무 교대하면 안 되겠냐고 당직사관님한테 물 어보려고 했는데. 행정반에 아무도 없잖아."
"엉? 진짜네? 뭐야, 교관님 어디 갔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계셨는데?"
2중대 소대장을 찾기 시작하는 두 남자.
그 순간.
갑자기 소대장이 행정반에 들이닥쳤다.
"비, 비상이다, 비상!"
헐레벌떡 뛰어온 소대장.
교육생들 앞에서 보여 주던 저승사자 같은 포스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평소의 소대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대장을 보면서 백우호는 고개를 갸우 뚱했다.
"귀신이라도 보신 겁니까?"
"귀,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걸 봤다……!"
군인에게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을까?
물론 있다.
소대장은 침을 꿀꺽 삼킨 채 말했다.
"사, 사단장님께서 오고 계신다!"
난데없이 유격장에 별이 강림했다.
* * *
불침 번 근무를 서 던 이강진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사단장님이 오셨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이지, 가짜로 말했겠냐?"
통신반장은 애가 탔다.
하필이면 자신이 당직을 맡고 있을 때 사단장이 갑자기 이곳 유격장을 기습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유격장에 오겠다는 통보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온 것이다.
이강진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단장님이 오밤중에 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나 기억을 떠올려 봤다.
적어도 이강진이 알기론 없었다.
회귀 전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가끔 벌어지긴 하지만, 사 단장 이벤트는 규모가 꽤 컸다.
사단장이 왔다는 소식에 대대장을 비롯해 중대장, 소대장 그 리고 행보관까지 싹 불려 갔다.
통신반장은 언제 사단장이 이곳을 방문할지 초조해하고 있었 다.
조은석도 마찬가지 였다.
조은석은 연대장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존재, 사단장과 마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떨 려 왔다.
이들 중에서 그나마 이강진이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강진은 국방부에 가 본 적도 있는 남자다. 사단장도 몇 번 만났었다. 경험이 많다 보니 이런 일 정도는 이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통신반장은 이강진과 조은석에게 당부했다.
"아, 아무튼 사단장님이 여기에 올지도 모르니까 불침번 근무 똑바로 서고 있어라! 온도하고 인원 체크 10분마다 해 두고!"
"예, 알겠습니다!"
사단장한테 털리면 그야말로 끝이다.
원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할 것 없이 바로 삼진이다. 아 웃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20분이 지나도록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강진은 CP텐트 앞을 서성이면서 '그냥 이대로 무난히 시간 이 흘렀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마치 이강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이 통신반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충성! 중사 권주… …. 사 사단장님이 이곳으로 오고 계신단 말 입니까?"
"하아."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길한 느낌은 왜 이리도 늘 잘 맞아떨어지는 걸까. 이 예지 력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이강진은 지금쯤 대한민 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단장이 온다는 소식에 이강진과 조은석은 통신반장의 말대 로 불침 번 근무자가 할 수 있는 최 대한의 일을 전부 다 마무리 지어 뒀다.
혹시 사단장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이후, 레토나 한 대가 근처에서 멈췄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장교들.
그 한가운데에 투 스타가 있었다.
"추우웅! 서어엉!"
통신반장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단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나 사단장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텐트들을 눈으로 빠르게 살피기 시작하 는 사단장.
그 모습에 이강진은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순찰 나온 게 아닌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머지않아 그 이유가 밝혀졌다.
"이 정도면 티비에 나와도 나쁘지 않겠군."
티비?
이강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제70화. 마지막 유격 (4) > 끝
< 제기화. 방송용 유격 (1) >
제기화. 방송용 유격 (1)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찾아온 것도 모자라서 갑자기 티 비 이야기를 꺼내는 사단장.
아직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는 통신반장과 이강진, 조은석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다.
"텐트 대열은 좋은데, 세세한 부분이 좀 부족해. 저기 저쪽은 어느 부대인가?"
"2중대입니다. 사단장님께서 가리키신 텐트는 1분대 텐트입 니다."
"저쪽 텐트를 좀 더 안쪽으로 붙여. 저기만 동떨어져 있는 느 낌이 나는군."
"예, 알겠습니다."
"서둘러! 내일 오전부터 당장 촬영 진행할 테니까. 방송국 사람들 오기 전에 미리미리 다 준비해 두도록 해. 11시쯤에 온다 고 했으니까 그전까지 싹 다 마무리 지어 둬."
대대장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단장에게 물었다.
"그럼 오전 훈련은 어떻게……."
"어떻게 하긴. 시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짬 처리해."
"예, 알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사단장이 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 알고 싶었다.
사단장이 떠 난 뒤.
중대장과 행보관 그리고 소대장은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모양인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신반장이 이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까 사단장님이 방송국 어찌구 저 찌구 하시던데……."
소대장이 대신 설명해줬다.
"내일 갑자기 방송국 즉에서 우리 부대가 유격 훈련받는 모습을 촬영하러 오기로 했습니다."
"아니, 대체 왜……."촬영을 하러 오고 싶다면 미리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지 않겠 나.
너무 뜬금없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소대장이 알려 준 사정은 대략 이러했다.
"원래 다른 부대로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그쪽에 심 한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유격장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고 합 니다. 촬영은 해야겠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 같습니다."
때마침 유격 훈련을 받고 있는 부대가 있다는 제보를 얻자마 자 방송국 즉이 먼저 딜을 해 온 것이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간부들도 문제였다.
'망했네, 망했어.'
이강진은 몰래 혀를 찼다.
내일 오전 훈련이 짬 처리되었다는 소식만 들었을 때에는 하 늘이 돕는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돕기는커녕 더 큰 시련만 주고 떠났다.
교육생들은 눈을 뜨자마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어야 만했다.
유격장에 방송국 사람들이 온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중대장은 아직 비몽사몽 한 병사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침 점호는 생략한다. 오전 훈련도 취소다! 방송국 사람들 이 촬영 나오기 전에 텐트부터 다시 정돈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국방부가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보여 주기식'이다.
보여 주기식의 끝판왕이 방송 아니겠나. 촬영을 나온다는데, 가만히 있을 군대가 아니다.
일단 사단장이 지시한 대로 텐트 위치들을 다시 손보기로 했가장 큰 변화가 있는 건 2중대였다.
텐트 배열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손봐야만 했다.
1중대의 경우에는 그래도 2중대에 비해선 많이 양호한 편이 었다. 1분대, 2분대, 3분대 텐트만 살짝 옮기 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강진은 텐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외쳤다.
"일단 철주부터 빼라. 그리고 운상이하고 태강이가 안으로 들어가서 텐트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 붙잡고 있어. 옮기다가 무 너지면 처음부터 다시 설치해야 하니까."
"예!"
난데없이 이런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사단장의 명령이었기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이것이 군인이 된 자들의 숙명이다.
3분대가 먼저 텐트를 옮겼다. 그다음, 2분대의 차례다.
2분대 분대장이 1분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강진아! 우리가 너희 텐트 옮길 때 도와줄 테니까 우리도 와서 좀 도와줘."
"알겠습니다. 애들아! 이쪽으로 모여라!"
모두가 모여서 한꺼번에 일을 처리하면 그만큼 속도가 더 빨 라진다.
2분대 텐트를 옮긴 후에 모두가 달라붙어 마지막 1분대 텐트 위치를 조율했다.
부소대장이 멀찍이 떨어져서 텐트들의 간격을 확인했다.
"좀 더 오른쪽으로! 더, 더, 더…… 오케이, 양호!"
텐트 위치 수정은 이것으로 끝.
하지만 모든 작업이 끝난 건 아니다.
"주변에 쓰레기 떨어져 있는 거, 다 치워라! 어서!"
부대 관리의 신, 행보관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쓰레기뿐만이 아니었다.
"분과별로 2명씩 나와! 제초 작업할 테니까!"
여름이면 어딜 가든 꼭 필수적으로 하는 제초 작업.
유격장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주변 정리에만 힘을 쏟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방송국 사람들이 오기 전에 슬슬 연병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 * *
걸음을 재촉하며 연병장으로 이동하는 교육생들.
10분 뒤, 방송국에서 온 차량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 작했다.
교관을 비롯한 간부들이 방송국 연줄진과 함께 회의를 진행 했다.
잠시 뒤 교관이 확성기를 들었다.
"교육생들 잘 들어라. 오전 11시부터 PT체조 훈련에 들어갈 거다. 우리 부대가 훈련받는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하니, 최대한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라. 알겠나!"
오늘 하루만 참으면 된다. 그러면 이 방송 소동도 끝난다.
드디어 PT체조 훈련이 시작되었다.
방송이라서 그런 걸까. 교관은 어제보다 더 악독하게 목소리 를 내질렀다.
"자세 똑바로 안 하나!"
교관의 호령에 따라 조교들도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목소리 점점 줄어듭니다!"
"옆에 사람 눈치 보지 않습니다!"
"교육생, 열외 되고 싶습니까아!"
카메라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 면서 고통 어 린 표정을 짓는 교 육생들을 촬영했다.
PD가 다급하게 손짓을 하며 어 딘가를 가리켰다.
1중대 1분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저쪽에 태강 씨 있어! 태강 씨 찍어, 어서!"
카메라 감독은 PD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가 다가오자, 성태강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자체적으로 연줄했다.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굴렀다가 온 사람답게 바로 연기에 몰입했다.
"하나! 둘! 세엣! 네엣!"
구슬땀을 흘리는 성태강.
PD는 만족한 듯 다음 타깃을 노렸다.
"옆에 강진 씨도 찍어!"
이강진과 성태강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카메라는 둘이 같이 나오도록 앵글을 잡았다.
두 사람의 투샷에 PD와 카메라 감독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막간을 이용한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다.
"훈련 많이 힘들어요?"
이강진에게 들어온 질문이었다.
그는 PD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로 했다.
"힘들지만,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어떻게든 극복해 내겠습니다!"
가식이 넘치다 못해 범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너무 힘들어서 지금 당장 탈영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방송용 멘트가 따로 있는 만큼, 이강진은 이들이 원하는 말을 그대로 맞춰 주기로 했다.
카메라가 있다는 것 때문에 훈련은 더욱 빡세게 돌아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촬영 일정 때문에 3일 차 "체조는 30 분 정도만 하고 끝났다.
장애물 훈련을 촬영하기 전에 교육생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텐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뭐야? 저 사람들, 왜 우리 따라오는 거 지?"
서일주가 뒤를 힐끗 바라보면서 물었다.
촬영팀도 교육생들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방송 경험이 많은 성태강은 바로 눈치를 챘다.
"아무래도 저희가 식사하는 장면도 촬영할 의도인 거 같습니다."
"이런 미친! 밥 먹을 때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던데. 군인을 건드리냐!"
엄밀히 말하면 물리적으로 건드리진 않는다. 군인들이 밥 먹 는 모습을 촬영할 뿐.
즉, 시선으로 이들을 건드린다.
하나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최영고가 먼저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근데 서일주 병장님, 촬영팀이 우리 밥 먹는 모습을 찍는다 고 하면, 맛다시 같은 것도 못 먹지 않습니까?"
'……그러네?"
추진해 온 걸 대놓고 써먹을 순 없었다.
"은석아, 혹시 오늘 점심 메뉴 알고 있냐?"
"이 병 조은석! 오늘 점심 메뉴는 생선튀김, 배추김치, 콩자반, 김, 김치찌개 이상입니다!"
"쒰 더 뻑!"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메뉴였다.
* * *
배식을 받는 동안,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무리한 명령을 했다.
"최대한 맛있게 먹는 것처럼 연기해라. 밥 맛있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그렇다고 대답해. 알겠나."
"예!"
맛있을 리가 있겠나.
당연히 없다.
그래도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촬영팀은 본부중대부터 먼저 들르기 시작했다.
본부중대 병사들도 같은 명령을 받았는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메라 밖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교육생들은 야속한 운명의 장 난에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다음 1중대 차례가 다가왔다.
PD는 이번에도 이강진과 성태강이 있는 쪽으로 카메라 동선을 꾸몄다.
'씨 발.'
'온다, 와!'
병사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션을 취했다.
PD가 1분대원들을 향해 카메라 밖에서 물었다.
"훈련 끝나고 먹는 밥맛은 어떤가요?"
대답은 가장 계급이 높은 서일주가 대표로 했다.
"꿀맛입니다. 땀을 잔뜩 흘리고 먹는 밥이라 그런지 더 맛있 는 거 같습니다."
"엄마가 해 준 밥이 더 맛있나요, 아니 면 지금 먹는 이 밥이 맛 있나요?"
"그건……."
악독한 질문이었다.
교육생들은 서일주를 빤히 바라봤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중대장과 소대장도 서 일주가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주목하고 있었다.
이들은 뒤에서 눈빛으로 서일주에게 압박을 넣고 있었다. 어서 대답하라고. 이미 답은 정해져 있지 않냐고.
과연 그의 선택은?
"후, 훈련장에서 먹는 밥이 더 마, 맛있습니다!"
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간부와 카메라가 앞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저리 대답을 해 야만 했다.
촬영팀이 사라진 후.
서일주는 절망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그는 졸지에 뜨거운 효자가 되어 버렸다.
장애물 훈련을 위해 오늘도 산을 오르는 교육생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공터였다.
공터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나무 탑.
코스 설명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레펠 코스]
[난이도
* * *
* * *
]
자그마치 별 다섯 개짜리다.
높이는 20m.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위 로 올라가면 높이에서 오는 두려움이 상당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교육생들은 웬만하면 도전할 엄두조차 못 내는 악명 높은 장애물 코스다.
기운상은 벌써부터 현기증을 느꼈다.
"교육생들 주목합니다. 주목!"
조교가 교육생들에게 이곳이 어떤 코스인지 설명했다.
"보다시피 레펠 훈련입니다.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기만 하 면 되는 아주 간단한 훈련입니다. 아셨습니까?"
순간 교육생들은 '악!' 대신 '아니오!'라고 말할 뻔했다.
이게 어떻게 쉬운 훈련이란 말인가. 애초에 쉽다면 별이 다섯 개나 붙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본 다음에 지원자를 받겠습니다."
이번에도 지원자를 먼저 받는다.
다른 교육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유일하게 두 사람만 의욕을 가득 뿜어 대고 있었다.
바로 이강진과 성태강이었다.
< 제기화. 방송용 유격 (1) > 끝
< 제기화. 방송용 유격 (2) >
제기화. 방송용 유격 (2)
시 범을 보이기 위해 조교가 나무 탑 위로 향하려 던 찰나였다.
장애물 훈련장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대대장과 교관 그리고 촬영 팀이 이곳, 레펠 강하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육생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품었다.
'재수 더럽게 없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오다니.
게다가 별 다섯 개짜리 훈련 코스다. 가장 어려운 장애물 훈 련을 소화해야 하는 타이밍에 촬영 팀이 카메라를 가지고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교관이 조교들에게 외쳤다.
"조교가 시범 보이는 장면부터 촬영 시작하신다니까 잠깐 대 기하고 있어라."
나무 탑 위로 올라간 조교는 그동안 안전장치를 착용했다.
대대장은 밑에서 대기 중인 교육생들에게 당부했다.
"군인답게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해라. 할 수 있다 는 걸 보여 줘!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래, 다들 할 수 있겠지?"
"예!"
아니, 할 수 없는 병사가 있었다.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기운상은 레펠 훈련을 무사히 마 칠 자신이 없었다.
"이, 이강진 상병님……."
기운상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어, 왜?"
"저, 이건 도저히 못 할 거 같습니다. 벌써부터 다리가 떨리는 것이…… 위로 올라가면 사고라도 일으킬 거 같습니다. 어, 어떻 게 합니까?"
그제야 이강진은 기운상이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는 걸 떠올 렸다.
기운상은 대대장 때문에 차마 못 하겠다고 손을 들지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 기운상에게 이강진은 아주 심플한 답을 제시했다.
"손 들고 못 하겠다고 해."
"자, 잘못 들었습니다?"
감히 대대장 앞에서 그런 행동을?
세상에 어떤 미친 병사가 그러겠나.
하지만 기운상은 평범한 병사가 아니다.
"나 믿고 손 들어라. 어차피 네가 못 하겠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여기에 아무도 없어."
기운상은 그래도 된다.
왜냐.
'소장의 아들한테 감히 누가 태클을 걸겠어?'
뭘 하든 프리패스. 그게 바로 소장의 아들이 가지고 있는 어 마어마한 특권이다.
결국 기운상은 이강진이 알려 준 대로 손을 들기로 했다.
눈을 질끈 감고서 자신의 번호를 외쳤다.
처음에는 손을 든 병사가 기운상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 던 대대장은 인상을 확 구겼다.
교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소장의 아드님께서 가라사대.
"대대장남 제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거 같아서…… 이건 도저 히 못 할 거 같습니다!"
"그, 그래? 그럼 쉬어야지! 괜히 무리할 필요 없어! 운상이, 넌 그늘에 가서 앉아 있어라. PD님, 잠시만 이야기 좀 합시다."
"네? 아, 예."
방송도 중요하지 만, 기운상도 중요하다.
아니, 기운상의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표현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니 양해 좀 해 달라고 말을 하는 대대장. 다행스럽게도 PD는 눈치껏 알아서 잘 처리해 주겠다고 약 속했다.
한편 그늘에서 쉬어도 된다는 대대장의 배려에도 기운상은 괜 찮다고 답했다. 결국 그는 분대원들과 같이 밑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죄영고와 조은석은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기운상을 바라봤다.
이것이 바로 소장의 아들이다.
군대는 계급이 전부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서 나무 탑 위로 올라간 조교가 도하 준비를 마쳤
"도하 준비 끝!"
"도하!"
"도하!"
다른 조교의 신호에 맞춰서 시 범 조교가 레펠을 타고 아래로 몸을 날렸다.
벽에 발을 딛고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시범 조교.
밑에서는 다른 조교가 교육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내려을 수 있는지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조교처럼 몸을 '자로 유지하면서 내려옵니다. 발의 각도 가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안 됩 니다. 그리고 하나 더, 빨리 내려을 필요 없으니 천천히 레펠을 풀어 줍니다. 첫째도 안전, 둘째 도 안전이라는 걸 늘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럼……."
교육생들을 쭉 훑어보는 조교.
"지원자부터 먼저 받겠습
"209번 교육생, 이강진!"
"211 번 교육생, 성태강!"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손을 드는 두 남자.
이강진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다.
먼저 지원해서 나서는 자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성태강은 이 강진 덕분에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격왕을 노리는 성태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한편 조교는 두 명이나 손을 들고 지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가 않았다.
"다른 조는 서로 먼저 하라고 등 떠밀기 바빴는데, 이 조는 상 당히 다른 거 같습니다. 기대를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조교는 먼저 성태강을 지목했다.
"211 번 교육생부터 먼저 나옵니다."
이럴 때에는 유명 인사가 유리하다.
이강진이 아무리 1075대대에서 유명하다고 해도 성태강의 인 지도를 따라잡을 단계까진 아니었다.
입대하기 전부터 유명 보이 그룹으로 활동해 왔던 성태강. 조교가 아는 얼굴이었기에 먼저 성태강을 지목했다.
이강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번 장애물 훈련에선 먼저 손을 들었다고 가산점을 주진 않 았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낙하 위치에 선 성태강.
예능 프로그램에서 번지 점프를 수도 없이 뛰어 본 그로선 레 펠 훈련 같은 건 무섭지 않았다.
"211 번 교육생, 도하 준비 끝!"
"도하!"
"도하!"
힘차게 아래로 몸을 던지는 성태강.
밑에선 '오!'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는 능숙하게 벽을 짚고서 아래로 내려왔다.
착지까지 완벽했다.
카메라는 성태강의 레펠 훈련을 빠짐없이 전부 앵글에 담았다.
이다음은 이강진의 차례다.
이강진은 이미 3번 넘게 레펠 훈련을 거쳤다.
이번에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209번 교육생, 도하 준비 끝!"
조교의 '도하!' 신호에 맞춰서 복명복창을 한 뒤, 로프를 천천 히 풀었다.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몸이 밑으로 내려가질 않았다.
로프가 꼬여 버린 것이다.
'이런……!'
몸을 이리저리 틀면서 꼬인 로프를 풀었다.
풀긴 풀었으나, 지체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래로 내려온 이강진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망했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평가 점수는 성태강이 이강진보다 더 높을 터.
'큰일인데.'
이러다가 성태강에게 유격왕을 꼼짝없이 내 주게 될 것이다. 대역전의 찬스가 필요하다.
* * *
3일 차 유격 훈련의 마지막 일정은 참호 전투였다.
촬영 팀은 유격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참호 전투를 카메 라에 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드디어 참호 전투가 막을 열었 다.
이번에도 3중대가 엄청난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책략가 이강진 선생 앞에선 3중대의 무력 따윈 무의미 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이강진은 기운상을 내세운 작전을 펼쳤다. 대대장도 못 건드는 소장의 아들을 누가 건드린단 말인 가.
결국 허무하게 1중대에게 우승 자리를 또 내어 주게 된 3중 대.
그들의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억울하면 강해지거나 아니면 1중대처럼 소장급 이상 되는 아버지를 둔 아들을 데려오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면 된다.
작년에 이어 2연속으로 참호 전투에서 우승을 하게 된 1중대.
이게 다 기운상 덕분이었다.
참호 전투까지 모두 마친 후에 병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텐 트로 돌아갔다.
촬영 팀도 분량을 충분히 확보했는지 해가 지기 전에 유격장을 떠났다.
내심 저녁 때까지 이곳 유격장에 남아서 촬영을 이어 간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교육생들 입장에선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나 모든 촬영이 끝난 건 아니었다.
내일, 장애물 코스 훈련을 받는 모습만 추가로 더 촬영하기로 했다.
잠시나마 자유를 되찾게 된 교육생들.
저 녁 식사 시간이 되자마자 이들은 추진해 온 것들을 꺼냈다.
"방송국 놈들 때문에 배고파 뒤지는 줄 알았네!"
배고픔과 동시에 본의 아니게 불효자가 되어 버린 서일주가 줄기차게 촬영 팀의 뒷담화를 까기 시작했다.
그놈의 방송이 뭔지.
그래도 오늘은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텐트로 하나둘씩 모이는 1분대원들. 이제 슬슬 잘 시간이다.
"하나, 둘 셋…… 가만 태강이는 어디 갔어?"
"일병 성태강!"
갑자기 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야. 거기 있었냐?"
"죄송합니다. 깜빡 잠들었습니다."
"빨리도 잠드네."
"최대한 많이 자둬야 체력을 비축해 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어떻게든 이강진을 제치고 자신이 유격왕을 따내겠다는 의지 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강진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푹 자라."
인원 파악을 마친 뒤에 이강진은 CP텐트로 향했다.
마침 1부소대장이 텐트를 지키고 있었다.
"충성. 1분대 인원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대충 끝내고 너도 들어가서 자라. 가서 푹 자 둬. 그래야 내일 또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이번 년 도에도 유격왕을 노리고 있다며?"
이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태강이가 예사롭지 않은 거 같던데.할 수 있겠어?"
"다 방법이 있습니다."
"오, 그래?"
"예."
쉽게 물러설 이강진이 아니다.
아직 이강진에게 마지막 역전의 찬스가 남아 있다.
* * *
오전에는 2일 차, 3일 차와 동일하게 PT 체조 일정이 잡혀 있 몇 번 하다 보니까 이제 교육생들은 PT 체조에 조금씩 익숙 해지고 있었다. 어리바리하던 2일 차 때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장애물 훈련이 시작되었다.
움직이기 전에 중대장이 교육생들에게 잘 새겨 들으라는 식 으로 강조했다.
"조금 있다가 촬영 팀 온다고 하니까 어제처럼 씩씩한 자세 유지하면서 훈련 받도록 한다. 알겠나!"
오늘은 어제 일정 때문에 못 왔던 사단장도 와서 방송 촬영 현장을 같이 지켜 볼 예정이었다.
장애물 훈련을 받기 위해 움직이는 1분대원들.
이강진과 성태강, 두 남자의 양 강 구도는 여전히 성태강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성태강은 이강진에게 레펠 훈련에서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완벽하게 장애물 훈련을 소화하는 성 태강.
예능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 경험 덕분에 성태강은 안정 적으로 활약을 펼쳐 갔다.
하나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니었다.
반전의 기회가 남아 있다.
그 기회가 마침 이강진에게 찾아왔다.
'여기군!'
이강진은 장애물 코스 설명판을 바라봤다.
[외줄 도하]
[난이도
* * *
*☆☆]
별 세 개짜리 난이도를 가진 장애물 코스로, 로프를 붙잡고 밑 에 있는 웅덩이를 넘어가면 된다.
어제 받았던 레펠 훈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난이도였다.
하지만 난이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강진이 눈여겨보고 있는 건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촬영 팀 그리고 사단장까지!
'다 모였군. 좋아!' 역전의 기회를 붙잡기 위한 발판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모든 걸 건다!'
이강진의 눈에 이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 제기화. 방송용 유격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