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29화 (229/347)

제73화. 군인이란 (2)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말해 오는 대학생 일행.

이강진은 왜 그들이 본인들한테 이런 말을 해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 다섯 명 이상 되어야만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보니까 세 분만 계시는 거 같아서요."

"아,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마침 이강진이 자초지좋을 설명하기 전에 음료를 가지러 갔던 두 사람이 테이블로 복귀했다.

기운상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바쁜 이강진을 대신해서 조형욱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두 사람에게 알려 줬다.

"우리가 셋이서 여기 앉은 걸로 오인하셨나 보더."

"아, 그렇습니까."

이제 딱 다섯 명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계속해서 이들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는 요 구를 했다.

"저희가 과제를 해야 하거든요. 스터디 모임인데, 다른 곳에 는 자리가 없어서요. 좀 비켜 주실 수 없나요? 어차피 군인들이 신데."

처음에는 양보해 줄까 하는 마음도 있었던 이강진이 었으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어차피 군인들이 니까 양보해 줘도 괜찮다?

그런 논리가 세상에 어디 있나.

"군인이라고 반드시 자리를 양보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강진은 딱 잘라서 말했다.

대학생들은 이강진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줄은 몰랐는지 약 간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반대로 몇몇의 얼굴은 노골적으로 굳어졌다. 이강진이 한 말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양보 좀해 주실수 있잖아요."

"맞아, 어차피 앉아서 이야기만 할 거……."

"그냥 저희한테 양보해 주시면 안 돼요?"

막무가내였다.

"아니, 잠깐만요.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조형욱 병장님."

이강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소리를 하려는 조형욱을 말렸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처하 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진다.

그는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여러분들의 대학 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 거하고 우리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제 막 음료를 시키고 이곳에 앉았습니다. 잔도 테이크아웃 잔이 아니고요. 유리컵 들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군인도 사람이다. 저들처럼 대학을 다니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면서 가정을 꾸리고 생활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마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것처럼 되니까 이강진은 더더욱 물러설 생각이 없어졌다.

결국 대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카페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조형욱은 바로 뒷담화를 시작했다.

"씨발, 정신 나갔네. 아니, 우리가 지들 종이야? 자리 양보해 달라고 하면 '네, 알겠습 니 다!' 하고 양보해 줄 거 라고 생 각했나?

어이가 없네! 에이, 씨. 기분 잡쳤네."

대한민국은 군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각박하다.

방금처럼 군인은 막 대해도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 들도 더러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군인들이 대접받고 산다고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이 그 정도까지 되려면 한참 멀었다.

휴가 첫날부터 이강진은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

전철역 근처에서 5분 정도 기다렸을 때였다.

"강진아!"

저 멀리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강진을 불렀다. 이용진이 허겁지겁 이강진이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미안하다. 평일인데 차가 왜 이리도 막히는지 모르겠네."

"괜찮아. 얼마 안 기다렸는데, 뭘."

"밥은 먹었어?"

"어, 커피나 한잔하면 될 거 같아."

느닷없이 와서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떼를 쓰던 대학생들 때 문에 이강진은 티타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

마침 이용진은 잘됐다면서 이강진을 안내했다.

"내가 얼마 전에 진짜 괜찮은 카페를 찾았거든. 거기 가자."

"좋지."

꿀꿀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다면, 이강진은 언제든 환 영이다.

이용진을 따라 도착한 카페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간판도 워낙 작아서 찾기가 어 려웠다.

"왜 이런 곳에 카페를……."

"나도 모르지. 아무튼 들어와라. 가게가 작긴 해도, 맛은 기가 막히거든. 개인적으로 내가 추천해 주고 싶은 음료가 있는데, 그 건 꼭 마셔 봐라."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 두 남자. 젊은 남자가 이들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아, 또 오셨네요?"

남자는 이용진을 바로 알아봤다.

"네, 오늘은 친한 동생 데리고 왔습니다."

"엇? 뒤에 계신 분, 이강진 씨 아니에요?"

아직도 이강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강진은 직접 젊은 사장에게 인사를 건네 기로 했다.

"예,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유명하신 분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용진이 젊은 남자를 가리켰다.

"26살밖에 안 됐는데 여기 사장님이시. 능력자시지."

"에이, 아니에요. 매출도 얼마 안 나오는 자그마한 가게인데, 사장이라고 추켜세울 만한 건덕지도 없어요. 그보다 주문은 뭐 로 하시겠어요? 제가 특별히 디저트도 서비스로 드릴게요."

"오, 감사합니다. 역시 사장님이 센스가 있으셔!"

단골을 잡는 가게가 성공하는 법.

젊은 사장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메뉴를 확인하는 이강진.

그의 시선이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되었다.

"에일 밀크티……?"

"그게 내가 추천하고 싶은 음료야. 저거, 뭔지 모르지?"

이용진은 이강진이 당연히 에일 밀크티가 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데요.'

심지어 아주 잘 안다.

한때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대표적인 카페 메뉴가 바로 저 에일 밀크티였기 때문이었다.

'에일 밀크티는 2019년부터 유행한 걸로 아는데……'

지금은 2014년도다. 5년이나 차이가 난다.

'뭐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이강진은 에일 밀크티 마니아라고 자부할 정도로 많이 마셨었다. 카페에 가면 거의 90퍼센트 이상은 에일 밀크티를 주문한다. 나머지 10퍼센트는 에일 밀크티가 메뉴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음료를 고른 경우였다.

좋아하는 만큼 에일 밀크티에 관한 지식도 빠삭하다.

에일 밀크티를 최초로 개발한 곳이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

유명 커피 브랜드, '티날레'.

에일 밀크티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설마 티날레가 이곳의 메뉴를 베낀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가게 사장이 에일 밀크티 두 잔과 초코, 치즈 케이크를 하나씩 들고 등장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사장님."

"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두 사람이 편히 대화를 나누도록 일찌감치 자리를 비켜 주는 가게 사장.

인상도 좋은 데다가 눈치도 빨랐다.

하나 지금은 가게 사장보다 눈앞에 있는 에일 밀크티에 더 많 은관심이 갔다.

'내가 아는 그 맛이 맞나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외관상으로 봤을 때에는 색이 약간 달랐다.

맛도 똑같지 않았다.

이강진이 기억하는 에일 밀크티의 이미지가 있었다. '시원함' 그리고 '깔끔함'이다. 밀크티를 마시다 보면 느껴지는 약간의 텁 텁함이 에일 밀크티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에일 밀 크티의 가장 큰 인기 요소였다.

방금 마신 에일 밀크티는 그런 요소가 약간 미약했다.

하지만.

'얼추 비슷하긴 해.'

이곳이 원조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이강진이 모르는 에일 밀크티에 관련된 속사정.

그것이 궁금해졌다.

한편 맞은편에서 음료를 한 모금 쭉 들이켠 이용진이 이강진 에게 소감을 물었다.

"어때, 강진아. 맛이 엄청 유니크하지 않냐?"

"어, 맛있네. 근데 에일 밀크티라는 거, 다른 곳에는 없는 거 지?"

"일단 내가 알기론 그렇지. 사장님한테 한 번 물어볼까? 사장 님!"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젊은 사장은 가게 밖에서 택배 기사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바빠 보이네. 나중에 오면 물어볼게."

"부탁할게, 형."

"그보다 오늘 뭔 일 있었어? 아까 보니까 네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이더라."

방송 업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라서 그런 걸까. 눈썰미가 좋은 편이었다.

이강진은 오전에 카페에서 겪은 일들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이용진은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아니, 불철주야 나라 지키느라 바쁜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말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뭐? 어차피 군인인데 자리나 양보해 달 라고 했다고? 내가 다 화가 나네!"

군필자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군인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풍조는 명백히 잘못되었다.

"강진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세상에 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그래야지. 고마워, 형이 이야기 들어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지네."

"그러냐? 하하! 내가 남 이야기 들어주는 건 잘하거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알았어. 근데 형."

이번에는 이강진이 이용진의 근황을 물어볼 차례다.

"요즘 일, 쉬는 거야?"

"쉰다기보다는 준비하고 있지."

"무슨 준비?"

"새 프로그램. 이번에도 음식 관련 프로그램인데, PD님이 고 민이 많으신 거 같더라."

원래 창작이라는 게 늘 그렇듯 어 렵다.

"나중에 프로그램 정해지 면, 바라 식 당도 다시 한번 출연시켜 줘. 조만간 외식 사업, 크게 해 볼 생각이거든."

"그래?"

이용진의 눈빛이 반짝였다.

"알았어. 내가 유다님한테 한 번 말해 볼게."

"형만 믿을게."

미리 밑밥을 깔아 두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전역 이후에 일을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다.

화요일 점심에는 최영혜와의 약속이 잡혀 있다.

이강진은 11시 30분쯤에 차를 몰고 그녀가 일하는 회사로 향했다.

'12시 10분에 도착하겠네.'

도착하기 5분 전에만 연락 주면 괜찮다고 했었다.

정확히 12시 5분일 때 죄영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강진 씨.

"5분 뒤에 도착할 거 같습니다. 어디서 보면 되나요?"

-아, 회사 후문에서 봐요. 후문으로 들어오시면 바로 주차장 이 보일 거예요. 거기에 차 주차시키면 돼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이강진은 주차장 입구가 있는 후문으로 향했강렬한 배기음을 뿜어대는 스포츠카의 등장에 점심을 먹으러 나온 회사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저기 있네.'

최영혜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강진은 그녀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갔 다.

한편 죄영혜는 벙찐 표정으로 이강진과 그가 타고 온 차를 번 갈아 바라봤다.

"강진 씨…… 차가 엄청 좋으시네요."

"몇 억 안 합니다, 하하하."

"어, 억이요?"

이강진에게는 큰돈이 아니었지만, 직장인인 죄영혜는 달랐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최영혜.

안 그래도 이강진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녀인데, 그 호감이 배로 상승하게 되었다. 역시 돈이 최고다.

< 제73화. 군인이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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